빌립보서 4:16〜23
◈ 새번역 ◈
16 내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여러분은 내가 쓸 것을 몇 번 보내어 주었습니다.
17 나는 선물을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장부에 유익한 열매가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18 나는 모든 것을 받아서, 풍족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보내 준 것을 에바브로디도로부터 받아서 풍족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향기이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입니다.
19 나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 주실 것입니다.
20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영광이 영원히 있기를 빕니다. 아멘.
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십시오. 나와 함께 있는 교우들이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22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특히 황제의 집안에 속한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
◈ 묵상 Point ◈
(출처 : 묵상과 설교 / 성서유니온)
▪ 기쁨의 원천인 주의 은혜
주의 은혜는 기쁨과 감사의 이유와 원천이고, 어떤 형편에서든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이며,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상 속에서도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 은혜가 우리 심령에 임하고 또 머물기를 기원한다.
◈ 설교 / 진정한 기쁨의 이유 ◈ 빌립보서 4:14〜23
(출처 : 생명의 삶 플러스 / 두란노)
우리는 슬픔에 관하여 ‘슬픔에 빠진다’라고 표현하고, 기쁨에 관하여는 '기쁨이 넘친다'라고 표현합니다. 곧 기쁨은 내면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넘쳐흐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징 중 하나는 기쁨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로 인해 넘치는 기쁨을 언급하며, 그리스도인이 진정으로 누려야 할 기쁨에 관하여 가르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자신의 괴로움에 참여한 일을 칭찬합니다(14절). 곧 자신을 위해 연보함으로써 함께 괴로움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고마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은 그와 함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바울은 비록 홀로 갇혀 있었지만 빌립보 교회가 함께함을 느꼈기에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함께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돌아보며 물질과 마음을 나눌 때, 하나님이 주시는 크나큰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처음 복음을 전하던 때를 회고하며 그때 빌립보 교회만이 '주고받는 일'에 참여했다고 말합니다(15~16절). '주고받는'은 상업 용어로, 재정적 상호 교류를 의미합니다. 곧 빌립보 교회는 바울을 위해 물질적 선물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영적 가르침을 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받은 물질적 도움을 영적으로 해석했기에 영적인 것으로 보답했습니다. 성도의 교제와 섬김은 이처럼 상호적이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서로의 영혼을 위해 마음과 뜻을 주고받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로 인해 모든 필요가 풍족히 채워졌다고 언급하며,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표현합니다(18절). 빌립보 교회가 바울을 섬긴 것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섬김이 하나님을 위한 제사, 곧 예배가 되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타인을 위해 내어놓는 일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빌립보 교회의 필요를 채우시리라 축복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19절), 특별히 그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공급을 빌립보 교회도 동일하게 경험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후원과 섬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비록 그것이 우리가 모은 물질이더라도 우리에게 생명과 능력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셨기에 우리가 마음과 물질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마지막 문안을 전하며 자신과 함께 있는 사람들의 문안도 전합니다(21~23절). 특별히 바울은 문안하는 대상을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로 제한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 모두’에게 전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의 대상으로 영접한 성도들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문안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과 영적 교제에는 이처럼 경계가 없습니다. '가이사의 집 사람들'의 경우처럼 소속만 언급된 사람이든, '성도 모두'로 지칭된 익명의 사람이든 주님 안에 있다면 모두 귀한 형제자매입니다. 모든 믿는 자들을 향하여 열린 마음으로 문안을 나눌 때 진정한 기쁨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나오고 기도할 때마다 기쁨이 되는 누군가가 있습니까? 바울에게 빌립보 성도들은 자랑이요 기쁨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사람들과 진정한 코이노니아(교제)를 이룸으로 참된 기쁨을 날마다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