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0: 29. 큰 무리 - 마 20: 31. 더욱 소리 질러
4. 맹인 둘을 고치시다 ( 20: 29-34. 막 10: 46-52 눅 18: 35-43 )
29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마 20: 29. 큰 무리 -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 저희가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좇더라. )
1]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여리고는 예루살렘에 가까운 도시이다.
그곳을 떠날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좇았다.
2]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많은 무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가 사건의 중심인물인가? 누가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쓰임을 받는 자인가?
그가 역사의 중심이요 변화의 전환이 된다. 이 쓰임에 선택받은 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데 여리고 성을 지나고 있었다. 여리고는 팔레스틴 지방의 최고 오래된 성읍 중 하나로 BC 7,000년 경 세워졌다.
요단강 서쪽 약10Km 예루살렘 동북쪽 약 24Km 위치한 성읍으로 갈릴리 지방과의 연결된 도로이며 예루살렘의 관문 역할을 했던 곳으로 지금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시면서 그곳을 통과하고 계셨다.
수 6장을 보면 이 여리고 성이 기도로 무너졌던 성으로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이곳을 전초기지로 삼은 곳이다. 그런데 헤롯 대왕 때 이 여리고 성을 다시 신축했는데 당시 팔레스틴 지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소문이 났다'고 한다.
'큰 무리가 따르더라' 그 당시 예수님이 가시는 곳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런데 본문의 배경을 보면 이때가 유대 최대의 명절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각 지방에서 수 많은 인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무리들이 모여들었다.
마 20: 30. 길 가에 앉았다가 -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 소경 둘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
‘다윗의 자손’은 구약성경에 약속된 메시아를 가리킨다.
그 두 사람은 불쌍한 맹인이었지만 놀랍게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약속된 메시아라는 지식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들리는 소문을 통해 또 하나님의 은혜로 그런 지식과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1]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그때 맹인 둘이 길 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들었다. 여기서 맹인에 대하여 알아보자. 당시나 지금이나 멩인은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이다. 마가복음에서는 거지라고 했다. 맹인들의 특징은 가난하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처럼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일할 직장이 없었다. 혹 있다 할지라도 몸이 건강한 사람과 경쟁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 맹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구걸하는 일밖에 없었다. 당시는 부정 탄다고 해서 죄인시하고 따로 격리시켰다는 설도 있다.
본문은 두 맹인의 신앙을 볼 때 그들의 신앙은 대단하다. 우리는 때로 '저 사람은 신앙이 참 좋은 분이다'라고 했는데 뜻밖에도 신앙이 없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도무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 중에서 위대한 신앙을 만날 수가 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즉 하나님의 선민이라던 그들이 오히려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전혀 무지했다. 그런데 비록 육신의 두 눈이 멀어 세상을 볼 수가 없었으나 영의 눈이 떠져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봤다. 종교지도자들이나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장로들, 이런 사람들이 오히려 신앙이 없었다. 이들 중에 누구 한 사람도 예수님께 칭찬을 받은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이방인이라고 멸시했던 백부장과 같은 사람을 보면 오히려 신앙이 대단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고넬료다.
* 행 10: 1-2 –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1)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다.
경건이란 '좋은 예배 자'라는 의미로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마음 자세를 가리켜 경건이라 한다.
이 말은 '이웃 앞에서 경건,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 자기 자신과의 경건'을 의미한다.
(2) 가정의 복음화를 이룬 사람이다.
'온 집안이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
(3) 백성을 많이 구제한 사람이다.
구제는 '착한 행실'을 의미하는데 '불쌍히 여기다', '측은히 여기다', '자비를 베풀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이것은 곧 궁핍한 자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왔다. 고넬료는 로마의 귀족으로 지체 높은 권세자였다. 이 사람이 자기 나라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나라, 유대나라, 피 식민지 백성을 구제한 것이다.
(4) 기도의 사람이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여기서 우리는 고넬료의 경건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발견합=할 수 있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다.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을 하던 자가 베드로와 요한 사도들의 치유함을 받았듯이 우리들은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느냐에 따라 성령의 은사를 얻을 수 있다.
2]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그 불쌍한 맹인들은 주님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그들의 외침은 애절한 절구였다. 온 세상이 떠나갈 것 같은 외침이었다.
'다윗의 자손'은 구약의 약속된 메시아를 가리킨 말로 그들은 불쌍한 소경들이었으나 놀랍게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약속된 메시아라는 지식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아마 들리는 풍문을 통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러한 지식과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1)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길가에서 기다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듣고'이다. 그렇다. '들어야' 한다. 무엇을 들어야 합니까? 예수 소식, 복된 소식을 들어야 한다. 바울 사도도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이라고 했다. 자주 듣는 사람이 믿음이 자란다. 자주 듣는 사람이 깨닫는다. 자주 듣는 사람이 생각이 넓어진다. 자주 듣는 사람이 교회의 일도 한다.
주께서 무엇을 요구하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시키는지 자주 들어야 하고 자주 살펴봐야 합한다. 교회는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실 수가 있다, 내 눈을 뜨게 하실 수가 있다는 그런 간절한 신앙이 저들에게 있었다는 점'이다. 그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주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 국가의 문제나 교회의 문제도 해결하실 수 있다. 내 가정의 문제도, 내 사업의 문제도 내 질병의 문제도 해결하실 수 있다는 신앙을 저와 여러분이 가져야 한다.
그들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신앙이다. 기도는 믿음 있는 자만이 하는 것이다.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믿음이 없이는 기도도 못 한다. 기도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기적을 산출할 수 있는 힘이 기도의 힘이다. 기도는 몇 천 번 이야기해도 절대로 손해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복된 소식을 듣는 신앙이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요즈음 사람들에게는 뉴스에 민감하다. 특히 소문을 통해 먹고사는 사람은 즉 증권투자가들과 부동산 투자꾼들은 세상 돌아가는 뉴스에 민감하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는 영생의 뉴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늘 우리는 영생의 소식을 전하는 복음뉴스를 들을 때 절대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2) 고백하는 신앙이었다.
'주여'란 당신이 나의 생명의 주인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생명의 주인으로 역사의 주인공으로 알았다. 신앙은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행하는 것이 축복의 지름길이다.
주님의 긍휼을 원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히 없이는 우리 인생들은 한시도 살수가 없다. 예수님의 은혜를 덧입고자 하는 간절한 외침이다. 이 외침은 허튼 외침이 아니다.
여기 '외치다'라는 말의 헬라어의 원 뜻은 '비명'을 말하는데 '그 중에서도 고통에 찬 비명을 표현할 때 미친 사람의 고함과 출산 시 임산부의 외침에 사용되는 말'이다.
(3) 메시아 신앙을 가졌다.
'다윗의 자손이여!' 이 칭호는 중요한 칭호다. 이 말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다는 고백이다. 구약 성경에 보면 메시아는 다윗의 혈통을 통해서 오신다고 했다. 인류를 구원하고, 나를 돕고, 나를 구원하고, 나를 치유하시는 분은 다윗의 계보를 통해서 오신다고 했다. 그 메시아가 오면 하나님 나라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그 하나님 나라를 이사야는 이렇게 표현했다.
* 사 35: 5-10 –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8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9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마 11장에도 세례 요한이 감옥에서 사람을 예수께로 보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아인 줄 믿었지만 감옥에 있다가 보니까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자를 보내어 묻었다. '당신이 정말 오실 메시아입니까?' 그러자 예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요한에게 이렇게 말하라!
* 마 11: 5 -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것이 바로 메시아의 증거다. 메시아가 오면 '맹인이 눈을 뜬다. 메시아가 오면 농아인이 말한다. 메시아가 오시면 못 듣는 자가 듣는다'. 맹인들이 이것을 믿었다.
마 20: 31. 더욱 소리 질러 - 무리가 꾸짖어 잠잠 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 무리가 꾸짖어 잠잠 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
무리들은 그 불쌍한 소경들을 동정하기는커녕 그들을 꾸짖으며 “잠잠하라”고 말했다.
예수님을 좇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던 그들은 예수의 동정심을 갖고 있지 못했다.
시각장애인들이 고침을 받는 데는 예수님 측근에 둘러서 있는 사람들이 도움을 주는 자들이 되지 못하여 오히려 방해 거리였다.
그러나 그들은 더욱 소리를 질러 말했다. 주께 나아가는 자는 사람의 방해 때문에 낙심치 말아야 한다.
1] 무리가 꾸짖어 잠잠 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사람들은 맹인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부르짖음에 대하여 오히려 그들을 꾸짖었고 잠잠하라고 했다. 무리는 예수님을 좇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을지라도 예수님의 동정심을 소유하지 못했다.
맹인들이 치료의 은혜를 받는 데에는 예수님 측근에 둘러서 있는 사람들이 도움을 주는 자들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꾼이었다.
먼저 믿는 우리는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다른 이들을 영접하고 주께로 인도하는 자가 되어야지 그들에게 거리낌을 주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하지 못함은 신앙생활이나 기도생활에 장애가 있음을 보여준다.
은혜를 받으려하면 꼭 방해자가 있다. 무리들이 꾸짖으며 시끄럽다고 방해를 했지만 두 맹인은 그들이 꾸짖고 멸시하지만, 더욱 신앙의 길로 다가섰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순리대로 풀 수가 있고, 양보도 있고, 충고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신앙은 절대로 타협하지 마시오, 타협하면 망한다. 하나님의 말씀만 좇아가면 지금은 망할 것 같으나 하나님은 건지신다.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한 사람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그를 동정하기는커녕 잠잠하라고 꾸짖었다. 신앙의 결단은 고독 속에 이루어진다. 기독교 철학자 '케엘케골'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결단을 가리켜 이 일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야하는 외톨이의 결단'이라고 했다.
그 결단에는 아무런 동조자도 없다. 당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도 신앙의 길에서는 동반자가 아니다. 적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그래서 신앙의 결단은 언제나 고독한 결단이다.
성도 여러분! 신앙의 길에는 여러 가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 난관은 뚫어야 한다. 삭개오도 많은 사람이 난관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난관을 뽕나무를 이용하여 극복했다. 다니엘은 사자 굴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친구들은 7배나 뜨거운 풀무 불 속에 던짐을 받았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이기고 승리했다.
* 시 42: 11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더욱 소리 질러 가로되' 소리 질렀다는 것은 목청을 돋구었다는 뜻이다. 흔히 우리는 소리 지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체면 상하는 일로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큰 소리를 내는 것은 교양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당하기 쉽다. 그런데 성경에는 '부르짖는다'는 말이 수 없이 많이 나온다.
* 시 50: 15 -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 렘 33: 3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사람들은 세 가지 경우에 소리를 지른다.
(1) 공포의 순간에 소리를 지른다.
누가 소리를 지르라고 하지 않아도 지른다.
(2) 아프거나 절망할 때
사람들은 이것을 신음이라고 말을 한다.
(3) 기쁘고 즐거울 때
사람들은 이것을 큰 소리로 환호한다고 한다.
우리는 큰 소리로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부르짖어 소리 지르는 것은 기도와 찬송뿐이다.
이 맹인은 방해가 있을 때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거기서 끝나면 주님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석학자 바클레이는 '무엇으로도 예수님을 만나고자하는 두 맹인의 고함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의 소리는 입술의 소리가 아니고, 심장에서 나오는 소리요, 영혼의 고함 소리였다'고 했다.
두 소경의 신앙이 무엇입니까? 이번 기회가 내 일생에 있어서 마지막 기회다.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주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알았다. 이번에야말로 내 병을 고치리라, 내 눈을 뜨게 하리라는 생각이다. 적어도 우리도 그런 정도의 배짱은 있어야 한다.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던 야곱의 기도가 바로 그런 기도였다. '나를 축복해 주시지 아니하시면 나는 놓을 수가 없었다.' 끈질긴 인내의 기도다. 그렇다. 신앙인은 인내와 배짱이 절대로 필요하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기도에 대하여
* 렘 29: 12-13 –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여러분! 기회를 놓치지 마시오.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다. 바로 지금 역사가 일어난다. 아멘.
소경들은 무리들의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낙심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더욱 소리를 질러 말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이와 같이 우리가 주께로 나아갈 때 사람의 방해가 있을지라도 낙심치 말고 힘써 나아가야 한다.
2]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그들은 육신의 장애를 가졌으나 예수의 왕 되심을 믿고 의심하지 않은 신실한 자들이다.
(1) 왕 되심을 증언하였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여리고 성을 떠나자 큰 무리가 뒤를 좇았다. 길을 갈 때에 시각장애인 두 사람이 예수께 구원을 요청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외침 가운데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 소리가 있었다. 이것은 예수가 이스라엘의 왕이시요, 하늘나라의 왕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들은 세상에 서는 하찮은 사람들이었지만 예수을 알아보는 영적 눈을 소유하고 있었다.
① 천국의 창(窓)으로의 다윗
* 겔 34: 23-24 – 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24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②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
* 마 1: 1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병을 다스리사 고쳐 주심
예수를 메시야로 부르자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을 괴롭게 하는 병, 곧 어두움의 병을 물리쳐 주셨다.
예수는 병을 다스리시는 우주의 왕이셨던 것이며, 실제는 병을 고치심으로 자신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왕이심을 드러내셨다.
① 예수의 주권
* 마 8: 2 -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② 죄 사함의 권세
* 마 9: 6 -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3) 추종자를 거느리심
예수의 전능을 보고 수 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다.
이로써 예수께서는 이 세상의 왕들이 그렇듯이 수행자들을 거느렸고, 그 모습은 왕의 모습 그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가식된 추종이 아닌 진정 어린 추종을 받는 진정한 왕이셨다.
① 셀 수 없는 추종의 무리
* 계 7: 9 셀 수 없는 흰 옷 입은 무리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흰옷 입은 큰 무리는 대 환난 전에 144000으로부터 인침을 받았고 대 환난을 통과하는 자들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이라는 말은 교회의 세계성을 말한다. 교회는 온 세계에 하나이며 그 구성원들은 온 세계에 흩어져 있다.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다는 말은 구원받은 자들의 수가 충만함을 말하며, 흰옷은 성결과 의를 가리키며, 종려 가지는 승리와 기쁨을 상징할 것이다. 구속받은 성도들은 대환난을 무사히 통과하여 승리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대상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십사만 사천의 인을 친 후에 흰 옷 입은 무리는 전 세계에서 나옴을 알 수 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은 '셀 수 없는 무리'를 연결하는 표현이다. 이렇게 요한이 중복적으로 표현한 것은 구원의 문이 모든 민족에게 열려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Morris).
* 계 5: 9 -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ㄱ 각 나라 - 국가를 초월
ㄴ 족속 - 민족을 초월.
ㄷ 백성 - 신분을 초월
ㄹ 방언 - 언어를 초월.
ㅁ 흰 옷 입은 무리는 전 세계에서 나옴을 알 수 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필요 없다. 복음이 땅 까지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큰 무리.
ㄱ 여러 견해.
Ⓐ 십사만 사천은 들림 받은 직후의 유대 그리스도인이고, 셀 수 없는 무리는 천년왕국의 보좌 앞에 있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이다. 개벨라인[A. C. Gaebelein], 스코필드[C. I. Scofield] 등이 주장한다.
Ⓑ 십사만 사천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이며, 셀 수 없는 무리는 유대와 이방 그리스도인들이다. 따라서 십사만 사천은 큰 무리들 가운데 포함된다. 벵겔[J. A. Bengel], 존슨[A. F. Johnson] 등이 주장한다.
Ⓒ 십사만 사천이나 셀 수 없는 무리들은 모두 유대와 이방의 그리스도인이다. 단지 이방인들이 유대인보다 더 많은 숫자를 이루고 있다. 알포드[Henry Alford], 비더울프[W. E. Biederwolf]등이 주장한다.
ㄴ 저자의 견해
흰 옷 입은 무리는 십사만 사천과 다르다. 큰 환난을 통과한 자들로 천년 왕국에 들어간 변화된 성도들이다.
십사만 사천과 셀 수 없는 무리의 비교.
구 분 : 십사만 사천의 무리 :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무리
장 소 : 지상에서 일어난 사건 : 천상에서 일어난 사건
시 기 : 환난 전반기 : 환난 이후의 사건[7:14]
내 용 : 구원에서 예정[인 맞음] : 실현된 구원의 모습
인 원 : 십사만 사천[한정된 수] : 셀 수 없다[무 한정된 수]
대 상 :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 전 세계의 많은 성도
특 성 : 사역적인 무리 : 구속사적인 무리
흰 옷을 입었다.
흰 옷은 그리스도 앞에 설 때 성도들이 입는 옷으로 구속의 은혜로 의의 승리를 찬양하는 예복이다. 마귀를 대적할 때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만, '그리스도의 신부'로써는 성결의 흰 옷을 입어야 한다.
* 엡 6: 11-17 –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계 19: 8 -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종려 가지를 드는 것은 승리와 기쁨, 축제를 상징하고 있다.
셀 수 없는 것
* 창 13: 16 - 땅의 티끌 -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 창 15: 5 - 하늘의 별 -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 창 32: 12 - 바다의 모래 -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모습 :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ㄱ 흰 옷의 의미
'흰 옷'은 정결과 승리를 상징하는 옷으로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아 구속받았음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아 구속(救贖)함을 받은 자들이 피 뿌린 옷을 입고 의인들이 된 자들을 말한다. 다른 천사가 인을 치니 흰옷을 입고 종려가지를 들고 나온 많은 사람들이 있다.
* 시 51: 7 - 눈 -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 사 1: 18 - 양털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 창 49: 12 - 우유 -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 단 11: 35 - 씻음[회개] - 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몰락하여 무리 중에서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았음이라.
* 단 7: 9 - 순결, 성결 -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ㄴ 손에 든 종려나무 가지.
'종려 가지'는 일반적으로 승리나 기쁨의 상징으로 사용된다(Trench, Vicent, Alford).
* 대하 3: 5 - 그 대전 천장은 잣나무로 만들고, 또 순금으로 입히고, 그 위에 종려나무와 사슬 형상을 새겼고
* 겔 41: 20 - 땅에서부터 문 통로 위에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 벽이 다 그러하더라.
* 레 23: 40 - 초막절의 초막 -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 느 8: 15 -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 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 시 92: 12 - 번영 -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성장하리로다.
* 아 7: 6-8 – 아름다움 - 6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즐겁게 하는구나. 7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송이 같구나. 8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 요 12: 13 - 승리 -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 계 7: 9 - 승리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 왕상 6: 29-36 – 솔로몬의 성전 - 29 내 외소 사방 벽에는 모두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 형상을 아로새겼고 30 내외 성전 마루에는 금으로 입혔으며 31 내소에 들어가는 곳에는 감람나무로 문을 만들었는데, 그 문인방과 문설주는 벽의 오분의 일이요, 32 감람나무로 만든 그 두 문짝에 그룹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곧 그룹들과 종려에 금으로 입혔더라. 33 또 외소의 문을 위하여 감람나무로 문설주를 만들었으니 곧 벽의 사분의 일이며 34 그 두 문짝은 잣나무라. 이쪽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고, 저쪽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으며 35 그 문짝에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그 새긴 데에 맞게 하였고 36 또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로 둘러 안뜰을 만들었더라.
② 왕의 군대
* 계 19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를 따르는 하늘 군대는 선한 천사들을 가리킨다. 주께서는 모든 천사와 함께 오실 것이다.
* 마 25: 31 -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천사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탄 것은 성결함과 기동력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심판을 도울 모든 천사는 다 성결하고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 그리스도의 재림 때 천사들과 함께 오는 것으로 보아 천사들이다. (Ladd, Rist, Barclay, Swete, Beasley - Murray).
* 시 103: 21 -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 시 148: 2 -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 마 13: 41-42 –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 마 24: 30-31 –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눅 2: 13 -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대적자들과 전투하는 것으로 보아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의미한다. (Johnson, Barker).
* 계 15: 1-2 – 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 계 17: 14 -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 천사와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의미한다. (Alford, Mounce, Plummer).
세 견해 중 첫 번째가 나름대로 타당하다.
하늘 군대란?
* 슥 14: 3-5 – 3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 이왕의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4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5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이를지라. 너희가 그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
* 유 1: 14 -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 고전 15: 23 -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 계 12: 5 -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 사 13: 3-4 – 3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자들에게 명령하고 나의 위엄을 기뻐하는 용사들을 불러 나의 노여움을 전하게 하였느니라. 4 산에서 무리의 소리가 남이여 많은 백성의 소리같으니 곧 열국 민족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움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
ⓐ 검열 받은 군대다.
* 겔 37: 9-10 -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 생기 받은 군대다.
ⓒ 그 예언이 계 19: 14-15에 하늘 군대로 성취된다.
ⓓ 백마를 타고 예수님을 따른다.
백마를 탔다는 것은 기독교 복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종이다.
ㄱ 계 7장 같이 하나님의 인 맞은 종이다.
* 계 7: 1-4 – 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ㄴ 계 10장 같이 작은 책을 꿀 같이 먹고 다시 예언하는 종이다.
* 계 10: 8-11 –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ㄷ 계 11장 같이 척량 받아 쓰임 받다가 들림(휴거)받는 종이다.
* 계 11: 1, 3-6, 11-12 – 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ㄹ 계 14: 1과 같이 예수님과 함께 시온산에 강림하여 심판에 참예하는 종이다.
* 계 14: 1 -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그리스도께서 피 묻은 옷을 입고 있는(13절) 반면에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하늘에 있는 군대들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사실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짐승을 비롯한 대적자들과의 싸움에 참여하며 하늘에 있는 군대들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권능을 목격하며 그 승리에 참여할 뿐임을 암시한다. (Beasley - Murry, Ladd, Morris, Mounce).
그러기에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갖고 있을 무기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나타나지 않는다.
* 살전 4: 14-17 –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계 19: 14-15처럼 기독교 복음 운동을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말씀 되시고 진리 되시는 예수만을 따르는 것이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충신과 진실을 따르고 있다. 이것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