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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살요목」 중에서 「보살계 서문」
~~~불자여 진실을 말하고 신뢰를 지킬지니, 결코 망어를 하지 말라. 이것이 우바새 우바이의 계이니, 신명이 다하도록 지킬지니라. (나무 석가모니불)~~~
금주의 법어--삼보와 수행
금주의 법사--대선사 금하당 광덕스님
주보를 좀 보실까요. 지난번까지는 삼보에 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삼보에서도 부처님이 바로 법신이시고 보신이시고 화신이시다. 진리의 몸이시고, 완전히 닦으신 지혜의 몸이시고, 큰 자비이신 방편을 행사하시는 변화의 몸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을 변화의 몸으로밖에 보지 못하지만 부처님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큰 지혜의 몸과 우리의 눈으로 알 수 없는 무한대의 변화, 무한대의 생명, 무량수의 수명을 가지시고 일체 자재를 성취하신 법신이신 부처님이시다. 그래서 부처님은 법신이다. 영원히 현재하신 부처님이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가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다 하더라도 부처님은 법이신 까닭에 실로 감각, 인식, 현상을 초월해서 영원히 현재하신다고 우리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리고 불보, 법보, 승보에 관한 얘기를 지난번에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자세한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승보에 세 가지가 있다. 오늘 주보에 맨 앞에 써놨죠. 승보에는 보살승, 성문승, 범부승이 있어서 널리 중생을 위하여 거룩한 법을 선설한다고 하였다. 불법을 범부 세간 속에 깊이 심어 역사를 빛내는 것은 승보다. 그러므로 승보를 공양하면 무량복을 얻는다. 경에는 그렇게 말씀이 되어 있다 하는 대목입니다. 지난번에 여기까지는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보살승이라고 하면 경에도 지난번에 나온 것처럼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대세지보살 하는 큰 성자를 보살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보살 가운데서도 대개 닦으신 수행의 정도에 따라서 차서가 있습니다. 대개 보리심을 발해서 수행해 나가는 공이 쌓여서 마침내 부처님, 불과, 성불을 한다면 성불에 이르기까지의 계위가 있어서 보통 52위가 있다고 하죠.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해서 50지에 등각, 묘각해서 52위가 있다고 하고 십신을 빼면 42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보살이 발심해서 모두가 보살이라고 하지만 보살 가운데는 처음 발심해서 아직 수행이 깊지 못해서 얕은 분과, 깊은 수행을 이루신 부처님이 다 되신 분과 그런 차이가 있다. 그렇게 해서 그걸 모두 보살승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보살은 우리가 겉으로 봐서 수행 정도에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원래 거기는 계단에 올라가는 것처럼, 그 계단이 차서가 꼭 있는 것처럼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50위가 정연하게 있는 것으로 되어 있어도 원래 이것은 마음을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 한 번 밝게 보면 52위를 단번에 뛰어 넘어서 성불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견성 성불입니다. 본성의 청정을 봐버리면 단번에 이뤄져요. 초발심의 발심과 동시, 즉시에 청정자성을 보면 그것으로 보살의 위가 다 갖춰지고 지혜를 다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대개는 일심에 들어가는 도리의 방법을 쓰지 않으면 삼아승지겁을 닦아야 한다, 삼천위를 닦아야 한다. 길고 긴 시간 동안을 갈고 닦아서 성불한다고 말을 합니다. 보살은 대개 그런 것이고 여기 계신 우리 형제들은 모두 보리심을 발해서 수행을 쌓아가시는 보살들입니다. 그래서 보살 가운데는 십신 십주 십행 어느 계위에 계신지 그 가운데는 십지 보살도 계실 겁니다. 부처님은 불보이고,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은 전부 승보에 속하는 것이라고 알아달라는 겁니다.
성문승은 목건련, 목련존자 혹은 사리불존자 혹은 수보리존자 하는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 법문을 듣고 수행하시는 스님들이 주로 성문들입니다. 그 가운데는 마음을 내서 막 수행을 시작하신 스님들도 계시고, 또 차차 공부를 해서 도력을 갖춰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의 도에 들어가신 분도 계시고, 신통력을 갖춘 분도 계시고, 더 뛰어 넘으셔서 더 배울 것이 없는 아라한까지 되신 분을 무학이라고 합니다. 성문 가운데는 유학 무학이 있다고 하죠. 유학은 더 배울 것이 있는 분이고 무학은 더 배울 것이 없어서 무사지, 스승이 없는 자리에 도달한 분을 말하는 경우도 있죠. 그래서 성문승 가운데는 이렇게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범부승 가운데는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계를 받고 계를 성취하고 참되고 착한 범부나, 정견이 부족하여 널리 많은 사람에게 부처님의 거룩한 도의 법을 설해주고 중생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해주는 범부승입니다. 그러니까 성인은 못되더라도 부처님의 계를 받고 계행을 존중하고 부처님의 법을 배워서 모든 사람에게 부처님의 법을 설법해주는 사람을 범부승이라고 합니다. 스님들 가운데는 보살승부터 아라한이나 나한 독성자님 같은 성자도 계시지만 이런 범부승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범부승 말고 또 복전승이라고 하는 일류의 스님들이 계시다. 복전승이 무엇이냐 잠깐 읽어 보실까요. 또 한 류의 승이 있으니 복전승이다.
여기는 스님들 가운데 성인 되는 스님도 계시지만 그리고 계행을 잘 닦고 수행이 완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성인 같은 스님이 계시지만, 여기는 그만 못한 스님들입니다. 복전승이라고 착한 원을 항상 일으키고, 착한 행을 하도록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서로 돕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지만 자기 자신도 가끔 금기를 행해요. 자기자신도 가끔 잘못해서, 잘못하면 잘못을 인연하여 참회하고 마음을 돌이켜서 다시 새로워져 가며 닦아가는 그리고 그것을 자기 혼자 닦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더불어 함께 닦으면서 그 사람들을 인도하고, 그 사람들을 가르치고,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줍니다. 그러니까 아까 범부승이라고 했는데 복전승이 오히려 범부승입니다.
그래서 이 범부승은 울금화라고 여기 나오는데 울금화는 꽃 가운데 아마 굉장히 아름다운 꽃인 것 같습니다. 제가 찾아본 바로는 인도에 지금도 있다고 하고 노란 꽃이 핀다고 그럽니다만 아마 다른 세간에 있는 꽃인 것 같습니다. 그 꽃은 비록 시들었더라도 싱싱한 어떤 꽃보다도 꽃이 아름답다고 한 것처럼 이와 같이 스님 착한 원을 세워서 수행하고 허물을 따라서 자기 업장을 소멸시켜 가는 스님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이로움과 도움을 주고자 하는 스님은 울금화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 스님을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면 앞에 말한 네 가지, 보살승 성문승 범부승 이 분들에게 공양하는 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중생을 이롭게 하되 잠시도 쉼이 없다. 사실 승보가 없으면, 잘났든 못났든 스님들이 계시지 않으면 아마 잘난 스님들이 앞으로도 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보조국사나 원효대사와 같은 큰스님이 계셨다 하더라도 그 앞, 전후에는 역시 범부승도 계셨을 겁니다. 범부승도 계셨기 때문에 다음에 역시 스님들이 새롭게 탄생하셔서 성자가 나오고 세상을 밝히는 태양과 같은 분들이 계시지 않았겠는가. 이 분들이 세간에 나와서 당신의 허물을 범해가면서도 중생과 같이 살면서도 그리고 중생 속에서 법을 설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중생에 이롭고 도움 되고 세상이 밝아지는 일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불법은 영원, 이 땅에도 광명이 실현되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여러 핵심 가운데 그런 허물 있는 스님이라도 허물이 있을 적마다 자기를 참회하고 돌이키고 정견을 버리지 않는다 이 분은 복전승이다. 역시 복전승도 아까 말한 범부승이나 성문승 보살승과 같이 공경하라. 그 공덕이 같다고 말씀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 3에는 어째서 삼보를 보(寶)라 하느냐, 보배 보자를 왜 썼느냐는 말씀이 여기에 나옵니다. 그런데 보배 보자 쓴 이유를 견고하다, 깨지지 않는다는 거죠. 둘째는 무구하다, 때묻지 않고 청정하다. 세 번째는 여락, 중생에게 즐거움을 준다. 넷째는 난우, 만나기 어렵다. 다섯째는 능파, 능히 가난한 빈곤을 다 깨버린다. 여섯째는 위덕, 육신통을 갖추었다. 그래서 모든 마군을 항복 받는다. 일곱째는 모든 원을 원만성취한다. 여덟째는 장엄, 보리로 장엄한다. 아홉째는 세묘, 세간의 모든 묘한 것을 초월했다. 열째는 불변, 세간의 팔풍에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열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이 보배는 한이 없는 보배다. 삼보를 공경하고 삼보를 섬기고 성현을 받들면 한이 없는 보물이 나온다. 왜 한이 없는가? 지혜와 복덕이 끝없이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삼보가 참말 보배 가운데 보배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에 덕병이라는 말이 있는데 덕병은 중생에게 즐거움을 준다. 하늘의 덕병이다. 덕병은 무슨 병인 것 같습니다. 단지, 항아리같은 병같은데 병이라면 대단치도 않는데 덕병 얘기가 경을 보면 종종 나옵니다. 뭐든지 소원하는 것이 그 병 안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소원하면 모든 것이 나오는 것이 덕병인데 천상에는 덕병이 있답니다. 이 덕병에서 중생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필요한 것을 다 준다는 겁니다.
끝에 팔풍에 움직이지 않는다고 나오는데 팔풍이란 사람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마음을 들뜨게 하는 8가지를 팔풍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선동하는 것이죠. 이로우니 해로우니 이런 문제가 생겼다 하면 사람의 마음이 동합니다. 다음에 자기 세력이 쇠약해진다는 문제가 등장하면 역시 흔들립니다. 자기를 누가 허문다, 비방한다, 헐어서 말한다. 다음에 자기의 명예가 있다. 혹은 자기 뜻에 맞는다. 혹은 자기를 비방한다. 혹은 괴로움이 온다. 혹은 즐거움이 온다. 이런 모두가 우리의 마음을 조용하게 하지 않고 항상 흔들게 만들어서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데 이것을 팔풍이라고 합니다. 이 팔풍에 흔들려서 번뇌가 더욱더 크게 일어서 중생이 더욱더 깊은 고난 속에 빠져 들어간다고 하는 겁니다. 형제들 이제는 8월입니다. 그동안에 더위 속에서 성장시킨 힘을 8월과 함께 결실 시켜서 우리 모두 이 한 해가 더욱 알찬 한 해가 되도록 정진하십시다. 형제 여러분 감사합니다.
<불광인의 선서>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우리는 불광법등입니다. 전법으로 바른 믿음을 삼겠습니다.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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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지일심보살님이 훌륭하게 사진을 찍고 정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법문내용은 메일로 미리 받은 거라 쟐 받아 젹었는데 요즘 유튜브 음질이 좋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그동안 음질이 깨끗해서 받아적기에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바라밀 님,
큰스님 법문 잘 받아지녔습니다. 녹취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우리는, 佛, 法, 僧 (불광 법회 정상화에 항상 이로움과 도움을 주시는 울금화와 같은 혜담 스님) 三寶를 공경하고 받들어 덕병에서 넘쳐나는 지혜와 복덕으로 불광 정상화를 이루어 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