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을 위한 선의 지혜] 4. 세계적인 명상 붐과 한국불교의 과제 2
대중 눈높이로 명상 쫓다간 불교 존재 잃어
서양 대학·대기업 명상 붐 불며
자본주의 시장경제서 보편화 돼
해탈 깨달음 목적인 불교 명상과
생산성 위주 치유 명상 구별돼야
명상은 동양에서 시작했으나 21세기에 와서 미국을 중심으로 과학과 결합하여
대중화, 생활화 되어 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명상이 주류 문화가 되었다.
이런 명상 붐은 이제 한국에도 역수입 되어
삼성과 같은 대표 기업에서도 임직원을 위해 명상 프로그램이 개발 보급되었고
최고 시설의 명상시설까지 건립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명상 붐에 대하여 한국불교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서구 치유 명상, 불교 명상에서 배워 가다
명상은 본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문명사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났지만,
가장 전문적이고 체계적 명상법을 전승 발전시켜 온 것이 불교 명상이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고요히 명상에 들어 중도를 깨달아 생사의 괴로움을 해탈하였다.
이후 부처님의 모든 설법은 중도와 깨달음으로 가는 명상 수행에 대한 말씀이다.
이러한 불교의 명상 수행은 남방과 북방 승가의 전통으로 각각 전승 발전하여 현대에 이르렀다.
지금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서구의 명상은 불교의 깨달음 명상에서 배워간 것이다.
미국 MIT대 존 카밧진 박사가 만든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감소)은
서양에 명상을 과학과 결합시켜 대중화에 성공한 최초의 프로그램이다.
카밧진은 스스로 한국불교 숭산 스님에게 참선을 배운 제자라 자처한다.
이후 달라이라마와 남방 상좌부승가의 전통 수행법인 위빠사나 명상도 수련하여
자기의 명상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한국 삼성그룹에서 개발한 명상도 이 카밧진의 MBSR을 모델로 자체 개발한 것이다
(이것은 필자가 삼성그룹 MTF팀을 만나서 확인하였다.
당시 삼성그룹 명상팀 관계자들은 자기들이 명상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임직원들의 복지 차원이라 했다).
그런데, 카밧진 등 서양의 명상 지도자들은
명상의 목적을 심신의 건강 회복 즉 치유에 두고 있다.
MBSR 명상도 그렇고 삼성이 개발한 명상 프로그램도 목적은
참여자들의 스트레스 감소를 통한 마음 건강 회복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신심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서구의 명상을 ‘치유 명상’이라 이름 짓고자 한다.
치유 명상이 성공한 이유
서구에서 개발된 치유 명상은 불교에서 배워 갔지만,
불교 보다 더 광범하게 보급되고 크게 유행하고 있다.
반면에 불교 명상은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럴까?
카밧진과 같이 미국에서 치유 명상 붐을 일으킨 명상지도자들은 대부분 재가자들이다.
이들은 불교의 다양한 명상 전통에서 수련한 체험을 바탕으로
현대 과학, 의학, 심리학과 결합하여 명상을 현대인들에게 맞게 과학화, 프로그램화하였다.
서양의 선진국 시민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겪는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초조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는데
명상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면서 대중에게 다가간 것이다.
치유 명상에서는 명상을 규칙적으로 하면 뇌에서 행복 물질이라는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초조 불안 스트레스를 인지하는 뇌 부위 활동이 감소하고
평안과 행복을 느끼는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
규칙적으로 명상하는 사람은 집중력이 높아지고 창의력이 증대한다.
스트레스가 줄고 평상심을 회복하며 대인 관계도 좋아진다고
과학자들은 뇌를 스캔하는 MRI나 임상 연구를 통해서 증명하고 있다.
서구의 치유 명상가들은 이와 같이
명상의 과학적인 효과를 증명하여 일반 대중들에게 신뢰감을 준다.
특히 초조 불안한 마음이나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는 현대인들에게는
명상이 약물에 의한 치료보다 더 좋은 자연 치유책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하여 서구의 치유 명상은 대중화에 성공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나 서양인들은 기독교 신앙과 문화에 오랜 동안 젖어 있었기 때문에
동양의 명상을 신비주의나 미신으로 보았는데,
명상의 효능이 과학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보고 긍정적으로 인식이 바뀌게 된 것이다.
치유 명상이 서구에서 대중화에 성공한 또 다른 요인은
프로그램화와 수월한 지도자 양성이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참선을 안내할 때 그냥 화두를 주고는 좌선을 시킨다.
화두가 무엇이고, 어떻게 참구하는지 등에 대하여 자세한 안내가 드물다.
참선 지도자 양성이란 말조차 금기시한다.
하지만, 서구의 치유 명상은
현대 교육의 방법론을 도입하여 명상하는 이유, 방법, 효과 등을
단계별로 안내하고 점차 몰입하게 프로그램화하였다.
또한 쉬운 교재와 함께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도 동시에 운영한다.
서구 치유 명상의 눈부신 성과
이렇게 치유 명상은 과학화, 프로그램화,
그리고 지도자 양성을 통하여 실로 눈부신 성과를 보여준다.
특히 대중의 주목을 받는 스포츠 스타들의 명상은 붐 조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미국 프로농구리그 NBA의 역대 최고 선수로 꼽히는 마이클 조던은
게임 시작하기 전에 5분 이상 명상하는 습관이 있었다.
또 조던에게 명상을 하도록 권한 NBA 역대 최고의 감독 필 잭슨은 리그 우승을 11회나 하였는데,
그는 그 비결을 재능 있는 선수들에게 명상을 하게 하여
자기 실력 발휘에 집중하게 한 성과라고 자평하였다.
필 잭슨 감독은 저서 〈일레븐 링즈〉에서
일본 선승들로부터 참선을 배워서 지혜와 힘을 얻었다고 밝혔다.
근래에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스타 엘링 홀란드 선수가 골을 넣고
세레모니를 할 때마다 자신이 하고 있는 명상 자세를 보여주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제 치유 명상은 미국 산업계에도 진출하여
미국 서부 실리콘밸리의 첨단 기업들마다 명상실이 운영될 정도로 보편적이다.
특히 구글에서는 차드 멍 탄이라는 엔지니어가
회사에 명상 동아리를 만들어 사내 명상 강사를 하다가
마침내 명상 교재를 책으로 출판하여 세계적인 명상 스타로 떠올랐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이후 구글 출신 명상가의 활약은
산업계에 명상 교육 붐을 불러일으켜 기업 임직원들에게 명상 교육이 중요한 트렌드가 되었다.
우리나라 삼성도 명상 교육을 광범하게 하고 있다.
필자도 수 년 전에 삼성그룹의 한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화두 참선을 화두 명상이라 하여 1박2일 20시간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 화두 참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에 초청 받아 사원들에게 프로그램을 할 경우 종교색을 배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기업은 사원들에게 불교의 참선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다스려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지혜와 힘을 키워서
업무를 잘 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두 참선이란 말도 화두 명상으로 바꾸고,
깨달음이나 좌선 등의 용어는 사용하지 못하고
종교를 초월하여 보편적인 말을 사용해야 했다.
어쨌든 명상이 자본주의의 첨단 기업에까지 보급 되어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명상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도 소비될 정도로
명상이 필요하고 그만큼 대중화, 보편화되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서구의 치유 명상은 과학화, 대중화를 통해 눈부신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의 발달과 함께 등장한 명상 앱 ‘캄(Calm)’은
미국 명상, 릴랙스 분야에서 최고 앱인데, 기업 가치로 22억달러(약 2조 5천억대) 규모라 한다.
이제는 치유 명상으로 큰 부를 창출하는 시대가 되었다.
치유 명상 지도자들이 명상 콘텐츠로 부자가 될 수 있고,
다양한 명상 관련 일자리도 늘어나고, 명상센터도 번창하고 있다.
서구 치유 명상은 자본주의 경제제도에도 완벽하게 적응하여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치유 명상의 성취를 어떻게 볼 것인가?
불교 명상에서 유래한 치유 명상의 눈부신 성장을
불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우선 명상이 대중화, 보편화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불교 명상과 흐름을 같이 가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도 있다. 불교 명상과 치유 명상은 그 목적이 다르다.
치유 명상은 명상을 통하여 스트레스를 줄여서 일을 잘 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을 안내한다.
특히 산업 명상은 심신 치유를 통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지만, 불교 명상은 생사의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해탈하는 깨달음을 목적으로 한다.
깨달음을 향한 불교 명상을 하면 심신 치유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즉 깨달음 명상을 하면 스트레스가 줄고 평상심을 회복하여
생활도 잘 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영원한 행복으로 가는 것이다.
치유 명상을 하면 스트레스를 줄이고 심리적인 안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괴로움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은 아니다.
불교의 입장에서는 그런 치유 명상과도 동행하면서
한편으로는 치유 명상의 그런 한계를 알려주면서 깨달음 명상으로 안내해야 한다.
이것이 불교의 존재 이유이고 깨달음 명상의 가치이다.
만약 불교계가 치유 명상의 성취에 자극 받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다고
깨달음 명상을 포기하고 치유 수준으로 명상을 안내한다면,
불교의 존재 의의와 가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불교계가 이에 대한 바른 진단과 대안 제시를 통해
불교 명상의 가치를 정확히 전달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명상의 상품화, 세속화가 확산되면서
불교 명상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한국불교의 승가 명상 수행은
나이든 꼰대들이 하는 것으로 치부되어 버릴 것이다.
▶한줄요약
불교계가 치유 명상 성취에 자극받아 대중 눈높이 맞춘다고
깨달음 명상 포기한다면 불교 존재 의의와 가치를 잃게 된다.
불교계는 이에 대한 바른 진단과 대안 제시를 통해
불교 명상의 가치를 정확히 전달해 나가야 한다.
2023. 02. 17
박희승 교수
현대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