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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일기글(박성진)
2022.2.9. 수. 영하 4도, 아침에 보일러를 틀었다. / 박성진
다온이가 아빠의 출근을 막고 울었다. 동동거리고 서럽게. 한참을 어르고 이야기해주다가 버둥대며 우는 걸 보면서 나왔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학교에서 책장 하나를 비워 가지고 왔다 4단 짜리다. 페미·퀴어 / 제노사이드·전쟁을 분리해서 진열할 생각으로. 여전히 업무와 진행하는 일에는 진척이 없다. 의욕이 없으니 당연하겠지만 집중하고 귀찮음을 인내하는 힘이 고갈된 듯 하다. 점심을 집에서 가지고 온 과일과 떡, 쉐이크로 때웠다. (중략)
2시에 시작한 인사자문위가 일찍 끝나 3시를 넘겨 학교를 나섰다. 4시 40분쯤 교육청 도착. 수요집회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특히 충청도 선생님들이 많이 오셨다. 포남초에서 함께 근무하다 충북으로 간 선생님도 참가해 눈물의 투쟁사를 읊조렸다. 문태호 교육감 후보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잠시 내가 형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발언할 때 평소답지 않게 격양된 모습이었다. 차분히 말을 골랐지만 내용은 빈. 천막농성장으로 전국에서 답지한 과메기와 호두과자 군고구마가 눈에 띄었다. 먹을 것이 많아 차는 내놓지 못했지만 말랭이와 한라봉차는 잘 놓고 왔다. 다음주 수요일 밥차가 온다기에 기대된다. 호두과자가 눈 앞에 어른거린다. 돌아오는 내내 저녁놀이 붉었다. 예전에는 깜깜했는데 오늘은 춥지 않고 사람들 얼굴이 오랫동안 보여서, 좋았다. 윤용숙 고성 간성초, 남정아 태백, 감나혜 인제 남초.
저녁 8시가 조금 넘어 도착해 카레와 와인을 먹었다. 겨우 정신 차리고 글을 쓴다. 내일 쓰지 않고 오늘 마무리해서 다행이다.
2022.3.21.월. 눈이 다 녹지 않았는데 아침 영하 1 / 박성진
모닝의 앞 유리 눈이 얼어붙어 산타페를 탔다. 봄눈이라 무용하게 생각했던 제설작업이 이렇게 유용한 줄 몰랐다. 온기가 물러가고 다시 초겨울로 돌아간 듯.
호*이가 왔다. 금요일 하* 아빠의 전화와 문자가 내내 마음을 괴롭혔다. 잘 지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나? 그 시작이 부자연스러워 방법을 계속 골몰하게 된다. 그 덕에 머리가 무거워진다. 두통이 멈추지 않는다. 약한 고통의 두통이어서 머리가 사로잡힐 정도는 아니다.
작년 4학년과 올해 4학년의 일로 송** 샘과 이야기 나눈 일이 잦았다. 그러다 보니 선입견이 생겼다. 능력과 신체에 관한 것. ‘나태의 상징’, ‘무절제의 외화’라는 생각이 먼저 든 게 사실. 요즘은 많은 부분 이해가 가지만, 학급 운영 능력과 교사 자질에 대한 의문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주제넘은 짓이다. 내가 감히 누구를 판단할 계제인가? 현상과 사태만 바라보려 한다. 경청, 공감, 합의, 절차, 도움 그러나 그 안에 마음이 깃들게 할 것.
영*가 남동생의 유증상으로 방과후를 하지 못하고 집으로 갔다. 부모님은 PCR결과 확인 후 내일 등교시키겠다고 하셨다.
이** 샘이 확진이다. 금요일 3, 4교시 3학년 수업을 하게 되었다. 각종 양식과 서류, 보고, 입력 등으로 하루가 쏜살같이 갔다. 저녁식사는 들깨막국수과 들깨온면. 양 때문에 감동이 덜했지만. 하루 종일 육아하고 저녁을 그렇게 정성스레 차려내는 영진씨에 대한 불경이다.
속초교육문화관의 이동도서관 서비스로 책 3권을 한 달간 빌리게 되었다. 조던 B.피터슨의 [의미의 지도], 첫 인상이 좋지 않았다. ‘정치적 올바름과 공정에 관한 토론책’에서 우파의 논리를 시종일관 견지했기 때문이다. [서영동 이야기], [연구자의 탄생]은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이다.
일기가 점점 의무감이 되고 있다. “일기가 점점 의무감으로 다가올 때 이겨낼 방법이 있나요?” 4월 미리 준비해본 질문.
2022.4.20.수. 낮 최고 26도, 맑음. 여름 바지 개시 / 박성진
숙취로 하루종일 멍-했다. 어제 전교조 속초고성양양지회 첫 통합행사의 여운. 오간 사람들만 스무 명 가까이 된 듯 한데 막걸리키트에 진심인 산호유치원 두 분, 양양에서 오신 선생님 네 분은 그저 막걸리 마시고 노래부르며 노는 모임이 되어버린 분위기에 어리둥절해하셨다. 죄송스러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른 소모임, 우리의 포부와 계획들을 주절주절 안내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죄송함은 양양에서 일부러 찾아주신 중듬샘 네 분에게 더했다. 다들 처음 뵙는 얼굴이라 어색해 그 모둠에 가볼 엄두를 못냈다. 아는 얼굴, 친한 얼굴,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그리고 알아 나갔으면 싶은 얼굴들.
집행부가 만든 느린마을 막걸리키트로 만든 시음용 막걸리 4종의 6병 분량. 나는 복분자와 꿀을, 태영은 갈아넣은 바나나에 신라샘 약수로 마무리, 성주는 16도짜리 무첨가, 동철 형은 한 병은 마시고 한 병에 가져온 사이다 야구르트를 섞은 시판 막걸리와 비슷한 맛을 참가자들에게 선보였다.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거기에 새롭게 사간 막걸리 15병. 방울토마토, 닭강정, 경원의 장떡, 기정떡, 과자, 마른안주, 소세지, 성주의 양은잔, 내 찻잔, 지회 지원의 음료수를 거의 다 비웠다. 아쉬워서 근처 고깃집에서 2차. 10여명 정도의 집행부와 중등 선생님들이 남아 소주와 맥주로 마무리. 낮은산에서 나오게 될 탁샘의 동화를 내가 소개했고, 태영이는 야학했다는 중등 선생님께 내 시집을 소개했다. 탁샘이 시집을 묶을 원고를 준비하라고 또 재촉했다. 벌써 대여섯 번째 이야기하는 거라고. 나보다 내 시집에 진심인 사람. 원고를 진짜 준비해야겠다.
남정아 샘의 연락을 몇 번 놓친 게 미안해 어느새 마음의 짐이 되고, 연락해 예의 무거운 그 주제로 돌아가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다. 그래도 지금 가장 고통받는 사람이 유천초 징계대상자들이고, 내가 같은 고통을 겪을 때 절대 외면하지 않을 사람들 역시 그들일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밖에서 통화 중에 탁샘이 나와 오랜만에 둘을 연결해 주었다. “남정아 이제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너다”, “전교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이런 탁샘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다시 이어진 통화해서 나는 또 눈물이 쏟아져 흐느끼며 무슨 말들을 나누고. 경원은 함께 한 중등샘의 호봉타령과 위계 관계에 흥분하며 어떻게 해야하냐며, 노동운동 무슨 소용이냐며 크고 심원한 문제를 물어본다. 답이 없는 문제에 쉽게 답하기란 얼마나 좋은가.
성주와 탁샘과 함께 강현 하나로마트 앞에서 헤어졌다. 12시가 다 된 시간, 마무리된 어제.
저녁 정미제에서 있었던 마을 총회. 많은 분들과 2년 반만에 마스크 없이 모임을 가진 흥분이 있었다. 코다리찜은 짜고, 내어놓은 찬들은 어쩐지 고만고만했다. 옆집 아저씨가 따라준 소주잔에 입만 댔는데 어제의 취기가 고스란히 올라와 놀랬다. 소주 탓인가, 숙취 탓인가.
씻고 아이들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저녁에 아빠 나간다고 울어대던 아이들이 순하게 널브러져 있다. 첫째는 먼저 잠들었고, 둘째와 한참 입 맞추고, 안고, 만져대고 시시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잠이 들었다.
2022.5.19.목.
이임호 선생님,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답장 한 번 드린 게 다여서 늘 부채감이 들었습니다. 변명하자면 선생님의 편지는 거듭 읽고 생각하고 싶어 쉽게 답장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몇 번이나 펜을 들었다 놓았다했는지 모릅니다. 제 일상은 잡다하고, 생각은 갈피 없어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이번 편지를 받고 결심했습니다. 꼭 답장을 드리기로. 내용이 얕고 잡다해도, 저의 요즘을 선생님께 전해드리겠다 마음을 다잡습니다.
작년 12월 조경국 소소책방 사장이 [일기 쓰는 법]이라는 책을 유유출판사에서 냈습니다. 보내준 책을 읽고 작년 12월 26일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늘이 5월 9일이니 5개월 가까이 빠짐없이 썼습니다. 이제 제법 이력이 붙어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30분 책상에 앉아 온전히 회고하고 쓰는 행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글을 쓸 때와 읽을 때의 고독은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쓸 때는 누군가와 계속 대화하는 기분이 듭니다. 덩달아 영진씨도 책을 읽고 같이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재우려 방에 넣어놓고 식탁에 나란히 앉아 같이 또 각자 일기를 씁니다. 쓴다고 스스로 나아지는 건 없지만. 기억을 보조하는 도구로, 세찬 감정을 뒤돌아보며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글쓰기 모임의 주제도 ‘일기’로 정해 관련된 책들을 매달 읽고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모임 때마다 서로의 일기도 한 두 편 공유합니다. [역사 앞에서], [제국의 통로],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 등을 앞으로 읽을 예정입니다.
거리 제한이 완화되어 학교도 점점 일상을 되찾고 있습니다. 엊그제 운동회도 했습니다. 2년만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맘껏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학교의 역할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은 코로나와 함께 입학한 세대라 문해력과 관계성에 문제가 있다고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말하고 있습니다. 비단 3학년만 그럴까요. 작은 학교는 정도가 덜하긴 하지만 코로나 2년 반은 교육의 풍경을 많이 바꿔버린 것 같습니다. 교수방법론에 머물던 미디어가 전면적으로 수업에 적용된 것과 피치 못할 상황이 강요한 교육과정의 유연성 등이 외적인 변화라면, 내적으론 학생-교사-학부모의 관계성에 불가역적인 변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제게 설명할 능력도 언어도 부족하지만 확연히 달라진 학교의 분위기가 존재합니다.
아이들의 또래가 비슷해 잘 어울리는 가족들이 몇 있는데 학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물어올 때면 학부모와 교사의 간극을 거듭 실감합니다. 교사로서 학부모와 학생의 요구에 좀 더 민감할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가족이기주의와 교육에 대한 오래된 편견을 마주하게 되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 가능할까 고민합니다. 특히 제가 학교에서 맡고 있는 업무(학교폭력 관련 업무)에 비춰보면 함께 결론에 이르는 게 점점 힘들어짐을 느낍니다. 원인과 결과가 있을 텐데 서로 상충하는 이해관계, 헤아려야 하는 관계의 전사(前史)들, 다양한 심리 문제에 이르기까지 보듬어야 하니 제대로 된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반쪽짜리 해결책이 나옵니다. 학교에서 점점 학부모 민원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교직 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사들이 명퇴하는 나이대가 이제 50대 중반으로 내려간 지 오래입니다. 그러니 좀 더 젊은 나이대로 중요한 일이나 업무가 배정되고, 일에 필요한 에너지와 역량만큼 당연히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보듬고 배려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것은 이제 꼰대 문화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생애주기와 경제적 여건들의 변화, 직업윤리의 변화, 능력주의-공정 논의가 교육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음을 느낍니다.
편지에 개와 관련된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철학자와 늑대]가 떠올랐습니다. 철학자가 11년 동안 브레닌이라는 늑대와 살며 인간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탐구했는데 늑대에 관한 동물기로 읽히는 책입니다. 저 역시 선생님이 언급하신 ‘집요한 반감’을 가진 사람 중 하나입니다. 제 주위에 동물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인 것 같습니다. 함부로 대하거나, 본성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만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의 글이 동과 인간과의 관계를 교육과 관련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꺼리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소소문고에서 낸 첫 번째 시집이 펄북스로 넘어간 이후, 2022년 4월에 <숨>이 절판되었습니다. 조경국 형의 말로는 진주문고 사장님이 출판사를 폐업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혁신도시점에 이어 초전점까지 새로 진주문고 분점을 내는 바람에 더 이상 출판사를 유지할 여력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대표님이 직접 출판사 사정 때문에 책이 절판된다고 연락주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두 번째 시집의 원고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시집으로 묶여질 수준인지, 어떤 출판사에서 원고를 받아줄지 모르지만 시 쓰기를 게을리하고 싶지 않습니다. 몇몇 교사들과 시 쓰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한 지 2년이 다 되어갑니다. 함께 한다는 것이 주는 강제와 의무감이 저같이 나약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산길을 걷고, 밤새 별 보며, 음악 듣고, 술잔 기울이며 나누던 그 모든 말과 글들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 기간이 좀 더 길고 길었다면 어땠을까 가끔 상상해봅니다.
권나무가 [다정하다고 말해주세요]라는 책을 냈습니다. 문학동네 임프린트인 ‘달’이라는 출판사에 나왔고 이병률씨가 표사를 달았습니다. 나무가 책을 보낼테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쓰고 있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는데 에세이일 줄 몰랐습니다. 이런 소식에 질투심이 일고 잠깐 창작열에 불타는 자신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건강히 잘 지내세요, 선생님.
2022.6.1.수. 마르고 덥고 바람부는 날
지방선거가 있어 휴일인 날. 쉬는 날은 어떻게 귀신같이 아는지, 아이들은 6시부터 일어나 활동을 시작. 아침으로 준 빵을 잘 먹지 않았다. 놀고 싶어 들썩이는 아이들. 아빠와 노는 게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한숨 돌리기도 쉽지 않았다. 어제 학교 알뜰바자회에서 사온 공룡 인형, 화폐놀이 세트, 엘사 치마에 반짝 관심을 보인 후 100조각짜리 겨울왕국 퍼즐 맞추기에 돌입하여 완성. 이후에는 하람이가 정해주는 이런저런 놀이에 동원되었다. 9시도 되기 전에 지쳤다.
투표하러 집을 나서며 점심으로 영진씨와 나를 위한 짬뽕순두부 담을 냄비, 아이들은 흰순두부 냄비를 따로 챙겼다. 나오는 길에 회룡초에 차들이 주차되어있어 혹시나 싶어 검색해 보니 투표소가 물치가 아니라 회룡초.
순두부집에 냄비를 들고 갔는데 이른 시간에도 테이블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묘한 시선을 보냈다. 직원이 친절하게 냄비 하나를 차까지 들어주었다. 국물이 넘칠까 조심조심 운전해서 회룡초에 도착. 건물 한 켠 차를 세워두고 하람이 다온이를 앞세워 체육관에 설치된 투표소로 갔다. 처음 기표소에서 도지사, 군수, 교육감 3장을 투표하고, 다음 기표소에선 기초의원, 비례 등의 4장을 투표했다. 하람이가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고 싶어 해, 내가 손으로 짚어주면 하람이가 도장을 찍는 분업을 했다. 엄마 손을 잡은 다온이와 투표소 입구에서 만나 입구 안내요원에게 과자와 사탕을 받았다.
우린 맥주와 짬뽕순두부를 아이들은 흰순두부로 점심을 배불리 먹고, 함께 5시 30분까지 늘어지게 잤다. 낮잠 든 시간은 각기 달랐지만 언제나 내가 먼저 곯아떨어진 것은 오늘도 사실. 저녁으로 영진씨가 짜장면을 만들었다. 모두 푸지고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을 씻겨 재우려 방에 들여보내니 9시가 다 되었다. 출구조사 확인.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참담한 결과에 헛웃음만 나왔다.
강원도는 진보교육감 12년만에 다시 보수교육감 시대로 돌아간다. 진보교육감 12년. 얻은 것도 많고, 잃은 것도 많다. 학교로 보자면 개선된 것이 많지만, 교육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후퇴한 것이 더 많다. 전교조는 현장의 운동성을 상실했고, 선한 의도로 교육청으로 향했던 동지들은 오만과 편견으로 똘똘 뭉쳐진 채 자기들끼리 견고한 카르텔을 만들었다. 그게 이번 선거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보수교육감의 화려한 부활에 기여했다. 유천초 동지들은 이제 어떻게 될까?
영진씨와 전에 맛있게 먹었던 맥주가 맞나 싶을 정도로 뒷맛이 쓴 한 잔. 술이 금세 올랐다. 성경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운동회
책은 없어도 축구화와 공은 챙겨오던
반에 함께 놀 친구가 없어
다른 학년 형과 동생에게 목매던 한 아이가
그토록 기다리던 운동회
벗어도 된대도 마스크 쓰고
웃고 떠들고 소리치고 응원하고 달리고
푸른 하늘 세찬 바람
끊어질 듯 흩날리는 만국기
오랜만에 맘껏 뛰놀며 즐거웠다
울며 고통을 고백하던 다섯 입들 목청껏
청팀 이겨라, 백팀 이겨라
행복에 겨워 또 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끝까지 불화했던 다섯 중 한 부모가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전학 간다니 과거는 다 덮겠다고 교장을 붙잡고
그런 아이는 안 변한다고
득의만만한 미소 지었다
남자 하나 전학 가고
반에는 이제 여자 다섯
똘똘 뭉친 지금의 다섯은 언제까지 다섯일까
대부분 여섯이었고
가끔 다섯과 하나였던 교실
텅 빈 책상 위 남은 기념품 하나
2022.6.16. 목. 모처럼 해를 보았다.
일기 쓴 지 6개월이 다 되었다. 최근에는 매일 밤 일기를 쓰기보다 몰아서 낮에 쓰는 일이 많다. 학교에서 틈틈이 쓰는데, 수업이 있고 아이들이 찾으니 내용이 산만하다. 요즘 내 생활처럼. 학교 일도, 아이들과의 활동도, 수업도, 가족과의 유대도 점점 생기를 잃고 있다. 생활을 돌아보자.
요즘, 신혼 때의 일상으로 돌아간 것 같다. 평일에 고정된 일정만 삼일. 화요일(전교조 집행부), 수요일(춘천 집회 / 연어) 그리고 목요일(기타 동아리 / 자작나무). 신혼 때 아내와 함께한 일정들인데, 병으로 함께 쉰 1년을 제외하고는 혼자서 이어오고 있다.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먹는 날이 월, 금 딱 이틀. 이마저도 행사가 있으면 뒤로 밀리고. 가끔 회의로 잡히는 주말 일정은 미안해서 말도 못 꺼내겠다.
지난 주말 청주에서 독서교육교사모임 준비로 만남이 있었다. 이미 2개월 동안 매주 일요일 저녁 줌으로 만나온 터였는데, 일정 때문에 함께하지 못한 한 번의 줌회의에서 모임 사람들이 나를 회장으로 추대했다. 이영근 형의 근거 있는 계획이 주요했는데, 자만이 아니라 사실 내 생각에도 적합한 인물이 나밖에 없구나 수긍하게 되는 상황 논리가 있었다. 선생님 한 분이 나에게 몇 개의 모임에서 이끄는 입장에 있냐 물어보셨고. 5개라고 답했는데 순간 밀려오는 회환과 죄책감. 시소(시쓰기모임), 자작나무(글쓰기모임), 책미래(학교독서모임), 통기타모임(전교조) 그리고 독서교육교사모임을 언급하며 영진씨가 떠올랐다.
처음 본 지영진은 지금의 나와 비슷했다. 아니 나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학교, 자작나무, 연어, 전교조, 인디스쿨에서 주도하고, 준비하고, 갈무리하는 존재였다. 항상 제일 먼저 고민하고, 계획하고, 움직이고, 정리하는 사람이 지영진이었다. 방학은 오로지 자기계발을 위한 연수를 위해 썼다. 신혼여행을 준비하면서 여권을 처음 만든 10년차 교사를 바라보며 존경하는 마음보다 짠한 마음이 먼저든 건 그래서였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지영진이 고분고분하지 않다고, 드쎄다고, 방법과 태도가 온순하지 않다고 모함하고 배척했다. 동료교사들에게 정신적 린치까지 겪었다. 결혼-병휴직-유산-임신-출산-육아의 기나긴 9년을 거치며 지금은 집 밖 출입을 삼가하는, 아기-남편-요리-집안일-미싱-SNP운동만 남긴 사람이 되었다.
거기에 비해 타협과 합리화에 익숙한 나는 갈등 상황이나 회의 시간의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속에 없는 말도 잘하고, 덥썩 일을 맡아 벌이고, 친하지 않은 사람과 얼싸안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람 좋다, 일 좀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런 말이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계속 듣다 보니 가끔 나의 속성 인양 여길 때가 있다. 하지만 아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면 직면하게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영진씨의 삶은 보통의 대한민국 여성의 삶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서사와도 촘촘히 연결돼 있다. 전자를 강조하면 내가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이유와 겹친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은 짐을 결혼한 여성에게 강요하고 있는가? 아픈 지점이다. 후자를 강조해도 ‘쎈 사람’이 아닌 ‘당당한 사람’으로 불려야 한다. 누군가 부려놓은 반강제적인 삶. 남자들은 결혼으로 기껏 조금의 자유를 잃지만(그것도 야금야금 금세 되찾겠지만) 여자들은 모든 것을 잃는다. 그래서 이름이 아닌 엄마, 아내, 아줌마 등으로 불리는 것일 테지.
반성을 반성해야 하는 때는 반드시 온다.
화의 생사
다른 친구 공부 봐주다
다했다며 부르는 소리 몇 번 넘긴 뒤
무시하네.
아이의 한 마디에 불 붙었다
아이의 지난 잘못을 불쏘시개 삼아
더욱 타오르는 화
너는 재수 없고, 싸가지 없다!
모두 놀랐지만 내 목소리가 높고 떨려서
아이는 고분고분해지고
나머지 아이들도 함께
눈동자가 흔들리고
손 둘 곳 애매해질 때
슬슬 어떻게 불 꺼야하나 고민되기 시작할 때
우리 아이에게 재수 없고, 싸가지 없다고 했다면서요?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목소리를 상상했다
푸시식
네 말과 내 말은 같은 말이나 다름없으니, 앞으로 조심해라.
아이들은 뭔가 알았다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사그라드는 불을 쬐고
불씨는 옮겨붙는다
오직 내 속에서
차곡차곡 온도를 높이는
2022.6.29.수.
저항행동 253일, 단식투쟁 16일, 몸과 마음 춘천 행
어제(화) 지회집행부 회의, 마지막까지 버텼어야 했는데 마무리되는 잠깐을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기분이 태도가 된 날. ‘위드멕시코’에 가서 500cc 세 잔 연거푸 마시고 집으로 오며 교감선생님에게 가족이 아파 내일(수) 연가를 내겠다고 했다. 이제 가족처럼 생각되는 단식자 3명이 있는 춘천에 갈 생각이니 영 틀린 말은 아니다.
5시에 일어나 춘천 도교육청에 도작하니 7시 10분. 김나혜는 교육청 정문을 지키고, 윤용숙은 천막에서 태은님의 간호를 받고 있었다. 얼굴이 누렇고 눈을 뜨지 못했다. 남정아는 삭책 나갔다 오는 길에 누군가 찢어놓은 현수막을 걷어왔다.
지난 주말 단식자 세 명에게 줄 장모님이 뜬 손뜨개가방을 동해에서 가져와 이틀 밤 영진씨가 광목으로 안감을 덧댔다. 그 손뜨개가방을 전해주니 윤용숙이 누워서도 가방을 꼭 끌어안았다. 8시 20분 구급차가 왔다. 구급대원 둘이 윤용숙을 들것에 실어 갔다. 출근하는 교육청 직원 몇이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건물에서 내다보는 사람, 정문 안에서 평소보다 많은 직원들이 나와 동태를 살폈다. 김나혜, 남정아가 망연자실해 천막 입구에 주저앉아 한참 울었다. 효소와 감잎차, 죽염을 챙겨 다시 정문 앞에 앉았다. 아침 피켓팅 후 농성장 당번인 영지샘 혼자 밥 먹고 왔다. 점심 피켓팅 후에도 혼자 밥을 먹고 온 영지샘. 단식자들에게 떠밀려서 먹고 오니 소화가 되지 않는지 연신 명치를 두드렸다. 비가 거세지니 오한이 들어 남정아의 등산점퍼를 빌려 입었다.
오후 수요집회. 또 흥분해서 스스로에 도취 된 말을 쏟아냈다. 내 말이 윤용숙이 실려가는 모습을 희화화한 게 아닌지 뒤끝이 썼다. 단식자를 돌봐주는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곡기는 생명이다.”를 곱씹으며, 집에 도착해 늦은 저녁을 먹었다.
2022.6.30.목.
저항행동 254일, 단식투쟁 17일, 마음은 춘천 행
기타 모임에 개인 사정으로 빠진다고 했다. 2명만 참석 의사를 밝혀 모임은 취소. 나를 생각하면 미안했지만, 단식자들을 생각하면 미안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화요일 회의의 분노와 실망이 온몸과 마음을 휩쓸고 다닌다. 하지만 그렇게 보여질까 두려워지기도 한다.
2022.7.1.금.
저항행동 255일, 단식투쟁 18일, 마음은 온전히 춘천 행
승리는 왜 이렇게 슬금슬금 다가와 절망에게 곁을 내어주는가? 어떤 희망도 전망도 없어 보였던 곳. 판에 박힌 슬픔과 분노, 구호만 울렸던 장소.
신경호가 첫 출근하며 단식자 둘에게 허리 굽혀 인사했다. 비서실에서 탄원서를 공손히 받아 갔다. 그리고 낮부터 시작된 길고 긴 협상. 저녁 8시를 훌쩍 넘겨 이뤄낸 극적인 타결. 단식자들은 전권을 협상자들에게 맡겼다. 저항 255일 단식 18일 만에 일궈낸 상처투성이 승리.
홍규형과 통화하다 눈물이 터졌고, 단식자들과 울면서 영상통화를 간신히 끝냈다. 지부 텔방에선 협상타결을 두고 여전히 날선 말들이 오갔다. 걱정하고, 축하하고, 응원하는 말에도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내 안의 온기가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엄연히 받아들여야 할 고립의 현주소.
오랜만에 유미와 통화했다. 협상 타결 소식을 전했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투쟁했던 사람들과 그 어떤 중재도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투쟁자들 보다 먼저 지치지 않기.
농성장 단식 16일째 구급차가 와서 한 명 실어 간다 직원 몇 창가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본다 점심에 뭐 먹지 고민하며 효소, 감잎차, 죽염 들고 남은 둘 정문에 앉는다 부당징계 내린 감사관에게, 제 글에 ‘좋아요’ 누르지 마세요. 도교육청 담당 기자에게, 저희 한 명 실려 갔어요. 정문 지키는 용역들에게 탄원서 밟지 마세요. | 비 내리기 시작한 아침 피켓팅 비 퍼붓는 점심 피켓팅 비 그친 오후 수요집회 발언과 구호, 투쟁가 속 바쁘게 빠져나가는 발자국 소리 집회하는 소리만 울리는 하늘 다시 시작되는 비 용역이 머리 기댄 유리창 단식자의 천막 위 야근하는 교육청직원의 차 집회 끝내고 떠나는 텅빈 손 남은 둘의 적막 17일만에 미음을 뜬 취식자 17일째 접어든 단식자 보고 있다 같은 비 |
2022.09.26.월. 구름 낌
아침, 정말 오랜만에 자전거 타고 출근했다. 따뜻하게 입어서 그런지 학교에 도착할 즈음 몸이 훈훈해져 땀이 조금 났다. 10월 중순 연어 사람들과 공룡능선 산행이 있으니 날씨가 허락하면 부지런히 타야지 거듭 마음먹었다.
다온이는 아침에도 기력이 없고, 쉽게 눈물을 흘렸다. 하람이는 어린이집에 가고 엄마와 다온이는 함께 송소아과에 갔다. 내게 위암을 알려준 이상호 내과가 있던 자리. 영진씨는 종목이 다르니 상관없다고 했다. 경미한 장염. 60세가 넘은 여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게 대해주셨다고. 아이가 급할 때 수액을 맞을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영진씨 큰삼촌이 가족 카톡방을 나가셨다고. 요즘 장모님과 영진씨의 통화내용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의 부덕함에 정점을 찍었다. 어느 집이나 악당이 한 명씩 있다. 사태와 증상의 위중이 다를 뿐. 일단 이기주의로 무장하고, 부모의 양육태도와 환경 등에 영향을 받았을 테고, 정황상의 불가피함도 인정되는 복잡한 문제인 것은 동일. 영진씨는 “성진씨에게 이제 이야기하기도 쪽팔린다.”고 했다. 큰삼촌 딸의 결혼식이 끝나는 대로 장모님이 먼저 카톡방을 나가려 했는데, 상황이 우습게 되어버렸다고. 고스란히 상황을 견디고 있는 나머지 가족들이 안쓰러웠다. 할머니로 인해 불이 옮겨붙고 커지긴 했지만 사실 천천히 예열되어 차곡차곡 발화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곧 불이 옮겨붙을 최적의 상황이 된 것이다. 건조한 바람, 잘 마른 장작, 의심 없이 튀어올 불꽃.
이제 몇 년간 왕래가 힘들겠지만 큰삼촌은 큰누나의 충고와 지청구를 안 들어서 좋을테고, 큰삼촌의 상식 밖의 행동과 말이 이제 시야 밖으로 사라졌으니 장모님에게도 좋을 것이다. 할머니의 여생을 보살피고 견뎌야하니 얼마 남지 않은 유무형의 유산도 큰삼촌이 알아서 챙기셨으면. 그래도 되지 않을까? 다른 가족들에게 부담 지우지 않도록.
돌아가시는 날까지 자식들 눈치 보고, 죽음을 준비한 여비까지도 관리주체에 의해 끊임없이 흔들리게 될 할머니의 상황이 서글플 뿐이다.
서로의 다음
다락논 사이 외길
비켜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곳
죽은 고라니가 있다
목을 꺾어 쾡한 눈으로
자신이 건너온 곳을 보고 있다
핏자국 어지럽게 식은 마지막 한 걸음
고작 두 걸음이면 다음 논인데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건
의지 마저 내어주는
흰자 없는 검은 눈에
파란 하늘과 노란 벼가 비치는 일
장조모가 팬티를 빤다
세면대 곳곳에 묻은 누런 자국 못 보고
돌아와 안마의자에 파묻혀 집에 가고 싶다고
문턱이 높아 부러진 뼈 붙을 새 없던
사위어가는 한 줌의 정신
당신이 당한 기억만 붙잡고
딸들을 내친 기억은 헝클어져
나는 몰러. 기억이 안나. 늬 아부지가 그랬지.
멀거니 이편을 바라본다
무해한 눈 속에 담기는
어지러운 세간
큰딸의 비애어린 표정
한숨 속 서둘러 지워지는 자국
바퀴 아래 고라니를 비켜 가듯
우회할 수 없어 어르고 달래어
업고 지고 끌고라도 이르러야 하는
다음이 있다는 듯
2022.10.14.금.
지윤 작가 초청 강연이 있는 날. 작가님에게 드릴 닭강정, 모닝빵을 샀다. 내일 산행 때문에 뒤풀이를 하는 게 힘들 것 같아서 탁동철 책, 오명환 시집, 내 시집, 자작나무 문집, 나명희 선생님의 책을 따로 준비했다.
6시 10분에 시작해 7시 30분쯤 강연을 마쳤다. 기억에 남는 건, 10분 동안 5가지 주제어 중 하나를 선택해 글을 쓴 것이다. 나는 처음에 ‘완벽’으로 글을 쓰다가 너무 진부해 보여 다른 주제어로 바꿨다. 시 비슷한 것을 쓰다 중간에 포기했다. 잘 써야한다는 부담감. 사람들이 보는 글. 공개적인 장소에서 함께 시간에 맞춰 써내야 하는 글. 생소한 경험이었다. 오래전 백일장의 기억이 떠올랐다.
작가님을 비롯해 두 사람 정도 자신의 글을 발표했다. 그 중 윤주샘도 끼어있는데 질문을 가장 많이 한 것도 윤주샘.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점, 책을 쓰고 싶은 욕구, 결국 자신의 욕망을 대리하는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 노미샘은 일기의 무형식을 강조하며 편하게 쓰기를. 황시백의 애쓴사랑과 열하일기를 예로 들어 말씀하셨다. 작가님이 크게 공감했다. 내가 품은 작가님의 말은 ‘글이 가져다준 느슨한 연결’이다. 작가님의 동생이 시종일관 사진도 찍어주고, 강연 중에 도움말을 주기도 했다. 책을 만든 책나물 대표님도 고맙게도 간식을 사 오셨고, 글쓰기에 관한 도움말도 얹어주셔서 이야기자리가 풍성해졌다.
행사 자리 정리를 돕고 2층에 올라가 작가님 일행과 조촐하게 뒤풀이를 가졌다. 맥주 8캔을 나눠마시며 대표님이 준비해오신 첫 북토크 축하 기념 케잌에 불도 부쳤다. 작가님 동생이 기타를 치며 꽃다지 노래를 부르기에 나도 두 곡으로 답했다. 더 오래 있고 싶었지만 내일 공룡능선행이 걱정되어 그만 일어났다. 집에 도착하니 10시 30분. 준비물을 챙기고 12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15시간 산행을 간다. 떨린다.
홧병
화가 나면 화낼 일인가
생각했다 곰곰히
감정을 생각하는 일이란
또 다른 감정이 생겨나는 일
말과 태도에 문제가 없는지
생각을 거듭하면 내 탓 같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색해 웃고 맞장구 치고
자주 침묵했다
개운치 않은 것이 앙금처럼 쌓여
엉뚱한 곳을 겨냥했다
소중한 사람들을 아프게 했다
처음 용기 내 말해본 불편함
죄송한데 앞으로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엄마뻘 어른이 다음 날 교실로 찾아와
거듭 조아리며 사과하신다
내내 함께 숙이며 주고받는
화해의 긴 의례들
모든 허물들이 내 것인 양 애틋해져
찾아와주셔서 고맙다고
반성을 끝낼 반성이란 없어
나는 스스로 병이 된다
2022.10.30.일.
산청에서 양양으로 향하던 중 청송휴게소에서 부재중 전화를 보고 교감선생님께 전화드렸다. 혹시 어제 이태원에 간 5학년 아이들이 있는지 확인해봐 달라는 말. 이미 교직원 카톡방에는 각 학년의 안전 이상 여부가 올라와 있었다. 어제 5학년 단톡방에서 연어축제에 간 아이들 몇이 불꽃놀이 사진을 올렸고, 줄줄이 답을 달아놓은 것을 보았다. 교감선생님께 5학년 전부 무사하다고 안심시켜 드리고,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마지막 아이 학부모와 통화하기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마지막 통화 후 큰 한숨이 새어 나왔지만.
동해에 도착해 칼칼한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고, 8시 ‘시소’ 줌모임을 위해 서둘러 양양으로 출발. 사람들이 이태원 참사가 그곳에 간 사람 탓이라고 말할 때 든 불편한 마음. 단지 내 생각과 달라서가 아니라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착각하는 것 같아서, 사회가 응당 제공해야 할 안전망이 사라졌는데, 그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몇몇 관계들을 마음으로 정리했다.
8시 ‘시소’ 10월 모임, 두 분이 빠진 다섯 명. 시가 모두 좋았다. 잠깐 모임을 함께 했던 분이 시로 동서문학상 맥심상을 받았다고 며칠 전 병현이가 소개했을 때 직접 축하할 방법이 없었지만 일제히 기뻐했다. 모임 중간에 병현 자신이 필명으로 발표한 ‘원통’이라는 시가 인제박인환백일장 일반부 대상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수상소식을 연이어 이야기하는 게 겸연쩍어 많이 망설였다고. 모두 마음껏 축하해주었다. 나는 농으로 “우리 중에 제일 시를 못 쓰는 병현이가 장원을 받았으니 우리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 한 걸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다. 함께 동인지를 묶어보자고 용기를 북돋우는 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희연에게
- 남희정, 박연지 후보에 부쳐
희망과 연대라니 더구나 민주라니
거리에 널부러져 더러워진 말들을
씻기고 말린다 포슬하게
눈물 많은 사람이
강인함으로 거듭나
고통받는 사람 곁에서
씩씩하게 버텨내려고
희연은 온다
다시 같이 다같이
너머. 멀리. 가보려고
안녕,
말끔하고 해사해진 말들과 함께
만나게 될 오래된 미래야
새로이 도래할 사랑하는 이름아
2022.11.17.목.
교무실에서 속초시립합창단 공연 팜플렛을 보았다. 교감 선생님이 가져다 놓은 것. 2019년부터 합창단 활동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파트는 베이스.
2012년, 2014년 나도 같은 합창단의 테너 파트였다.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은 좋았지만, 합창단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다.
2012년 관사에 같이 살던 선생님과 합창단에 들어갔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지만, 합창은 발성부터 노래까지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오봉교회에 함께 다니던 합창단 지휘자가 간곡히 권해서 얼떨결에 오디션을 봤다. 내 시창은 내가 듣기에도 민망했고, 준비해간 자유곡은 음이탈을 해가며 간신히 끝냈다. 결과는 합격. 지휘자가 손을 써 가능했음에도 재능과 열정으로 입단했다 믿고 싶었다. 마침 ‘남자의 자격’이라는 합창 프로그램이 인기 있던 터라 더욱 그랬다.
차근차근 발성과 독보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무엇보다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이 즐거웠다. 파트별 연습 후 다 같이 노래 부르는 순간. 각기 다른 목소리들이 만드는 화음에 오소소 소름 돋고 눈가가 짜르르했던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서로를 배려하고 메워주는 음악적 순간과 공간이 좋았다. 하지만 전공자들이 보내는 비전공자들에 대한 냉소, 지휘자와 몇몇 단원들 간의 알력 싸움, 파벌 만들기, 속초시 관계자들의 간섭으로 1년 내내 괴로웠다. 정작 노래보다 붕괴된 관계 사이 눈치 보고 줄타기하느라 온통 시간과 마음을 쏟아야 했다. 연습을 끝내고 오면 기가 다 빨려 나간 느낌이었다. 정기 공연을 끝내고 괴로워하며 합창단을 그만뒀다. 지휘자가 바뀌었다는 소식은 그 뒤에 들었다.
2014년. 아직 신혼에 젖어있을 무렵 새로운 지휘자에게 연락이 왔다. 분규가 수습되어 쇄신된 속초시립합창단에서 다시 노래해보지 않겠냐며 예전 합창단원들에게 일일이 부탁하고 다닌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였다. 무엇보다 세월호 추모 공연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지휘자가 미더웠다. 신혼임에도 아내가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합창단 안에선 2년 전의 파벌, 알력 싸움이 재연되었다. 사태 해결을 책임져야 할 속초시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뒷짐 지었고, 결국 단원들끼리만 피 터지게 싸우다 파국에 이르게 만들었다. 연말 정기 공연을 끝으로 미련 없이 합창단을 떠났다.
요즘은 합창단 분위기가 어떻냐고 스치듯 묻는 말에 교감 선생님은 몇몇 단원의 그릇된 행태를 말하며 “내가 입이 시거워서 말을 않는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어떤 상황인지 눈에 펼쳐진다. 단원들의 면면을 보니 10년 전 그 사람들인 것 같다.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일지라도 여전히 같은 사람들. 합창단에서 터줏대감 노릇하며 시 관계자들을 주무르고, 동료 단원과 반주자, 심지어 지휘자까지 갈아치우는 이 지역의 마피아들. 속초시는 단원들과 지역 정서와 여론을 운운하며 책임을 합창단에게만 지울테고.
속초시립합창단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권력욕과 명예욕을 그럴싸한 예술로 포장해 무대에 올리고 있다. 당시에는 당당히 맞설 수 없었던 그 불가사의한 일들이 이제는 불의한 일이었음을 안다. 초심자여서, 노래 실력이 부족해서, 비전공자여서 되려 스스로 자책했었다. 내게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다 입을 다물었다. 비단 합창단 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어떤 조직이나 사회에서도 비슷한 일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사실 우리는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살아가는 것이 무수한 치욕과 싸우면서 부단히 패배하는 일이라도 소리내 외치고 싶다. 자격을 논하는 자리마다, 우리 존재 자체가 자격이라고.
심폐소생교육
꼭 살리고 말겠다는 마음
숨이 가빠지고 땀나게 가슴을 누른 뒤
손가락으로 턱을 올려 기도유지 한다
인형은 금세 의식이 돌아와 숨을 내쉰다
뒤부터 자리가 차고
실습하겠습니다 하면
느릿느릿 걸어 나왔을
의무교육에 온 사람들이
오늘은 절박한 생존자
제세동기 사용 실습 시간
기계를 작동시키자
기도유지 하세요, 강사의 말에
갑자기
기도를 올리는 선생님
여기저기 터지는 잠깐의 웃음 뒤
덮쳐오는
겹겹의 정적
서서히 짓눌리고 있는
누운 인형들
2022.11.26.토.
주말이 고민이다. 육아와 돌봄에 대한 부담 때문인데 특별한 활동과 쉼의 중간 그 균형이 중요하다. 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 집은 그렇다. 보통 우리 가족은 금요일 오후 어린이집에 들러 아이들을 데리고 동해로 출발, 일요일 저녁 먹고 양양으로 돌아온다. 반복과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영진씨와 내가 만든 가족의 주말 일정이다. 온종일 아이들과 함께해야 하니 육아와 돌봄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동해에서 주말은 토요일 책방과 마트, 일요일 그림책나라와 까페가 기본. 그중 책방은 아이도 나도 만족할 수 있는 주말의 의식(리츄얼) 중 하나이다.
오후 1시부터 삼척의 연책방에서 북마켓을 한다기에 장모님과 가족이 함께 나섰다. 책을 고르는데 주인분이 다가와 2023년 달력에 첫째 사진을 쓰고 싶다며 조심스레 그림으로 된 사진을 보여준다. 첫째가 책방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옆모습, 민소매 차림인 걸 보니 처음 방문한 9월에 찍은 사진 같았다. 그날 아이들은 과일쥬스와 한과를 얻어먹었다. 첫째와 영진씨에게 달력에 사진을 써도 괜찮은지 물으니 둘 다 흔쾌히 좋다고 했다.
연책방은 삼척 시청 근처 호젓한 주택가에 위치한 작은 동네책방이다. 주인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부모님이 계신 삼척으로 내려와 책방을 열게 되었다고. 방문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살가워서, 온다프레스의 책들이 정성스럽게 진열된 게 반가워서 말을 걸었다가 알게 된 사정이다.
이후 인스타그램을 통해 책방에서 진행한 다양한 활동들과 모임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OOO이 연 책방, 해변 플로깅, 작가와 함께하는 행book학교(소설 쓰기), 라탄 공예, 대화 모임, 아침 독서 챌린지, 금서 읽는 밤 등의 행사와 요일별 독서모임이 쉴새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이렇게 다종다양한 활동을 쉼 없이 이어가야만 책 읽는 희귀한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겨우’ 유지될 수 있다는 게 안타깝기도 했다.
한 사람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주변의 공기가 달라지는 경험을 자주 한다. 살짝 앞으로 숙인 고개, 오르내리는 눈, 흘러내린 머리카락, 책장을 다잡은 손. 그렇게 ‘책 읽기’는 ‘책 읽는 사람’과 하나가 된다.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읽은 후의 눈빛은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책방 간판만 있어도 동네 모습은 달라진다. 오가며 책방에 들러 신간을 확인하고, 진열된 책 여기저기를 넘겨보며 누군가를 떠올리고, 꼭 나와 같은 이야기를 마주쳤을 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고, 결국 책에서 눈을 들어 마주치는 사람과 서로 안부를 묻게 되는, 오래 머물러도 허물이 되지 않는 곳. 머무는 사람, 그것도 책 읽는 사람이 한 공간에서 몰두하는 모습은 요즘처럼 모든 게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에는 귀해서 더욱 의미 있다.
연책방이 오래오래 그 자리에 머물렀으면. 그렇게 우리가족의 토요일 오후 한때를 책임져 줬으면. 세상 모든 동네마다 그런 동네책방 하나씩 있었으면. 내 오랜 꿈을 대신하고 있는 그들의 열정과 분투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동네책방에 간다.
말씀하신다
당신 명의로 분양받은 아파트엔
큰 아들 내외와 손주가 살고 있다
평생 아들 아들 했는데
관절이 주저앉고 나서야
동거인이 된 할머니
컴컴한 집안 하루 종일 티비를 보다
전화했었나 하시며
큰 딸에게 뜨개실
둘째 딸에게 과일
셋째 딸에겐 속옷
보내달라 말씀하신다
입 덜기 위해 당신이 차례로 보낸
봉화 외가의 막걸리집
꽃 같은 미성년의 한 시절 술시중들고
온갖 희롱과 모멸을 견뎌낸 세 딸에게만
보내달라 말씀하신다
가슴에 불이 켜지는 딸들
회한과 눈물에 휩싸인다
부탁이라 말하고
명령으로 듣는 말씀
늦어지면 골내시는
그리고
언제나 그랬고 무슨 일이 있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관 같은 집에 홀로 담겨
전화했었나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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