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농사 이야기(2013/09/02~09/28)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하이데거
|
9월이다.
이때쯤이면 사실상의 모든 농사는 제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
밭의 풀도 없어야 하고, 논도 풀 없이 가지런해야 한다.
9월은 10월을 위한 디딤돌 정도여야 한다.
헌데 난 아니다.ㅠㅠ
올 해 중고 트랙터를 하나 구했다.
남한테 일 맡기는게 편하긴 해도, 돈도 돈이지만 마음에 안차게 일 해놓기 일쑤라 몇년간 벼르다가 질렀다.
헌데 문제는 너무 자신감이 넘치다 보니 써레질을 대충 해버렸다.
해서 모 10판을 떼웠다. 한 3일 정도 논바닥을 누비며 깊은 곳에 모를 손으로 심었다.
이런 닝기리!
근데 우렁이가 다 먹어치워버리네. 아 올해 왜이래!
지나가던 사람들이 논 주인을 얼마나 욕했을까?
막 상상이 된다.
벼가 어느정도 크고 볏모가지가 고개를 숙이니 동네 한 분이 "그래도 봄판에 비하면 할아버지네!"한다.
벼가 크니 구멍 난 곳이 안보이고 그러다보니 볼만해 진거다.
어쨋든 봄에 먹은 욕 가을엔 칭찬으로 바뀌었다.
제발 봄에 본 것은 잊어버리시라!
고추가 이제서야 익기 시작한다.
남들은 2번 정도 땄을텐데.....
그래도 좋다! 고추가 달렸으니....
초벌 따서 널어 말렸다.
어쨌건 올 해는 고추가루 직접 만든다.
고추장도 담는다.
풀반 콩반인 밭에 기어다니며 예초기로, 낫으로 풀을 베어낸다.
예년같으면 김매기 끝내고 군데 군데 나 있는 풀 정리할 시긴데 올해는 일복 터졌다.
포기는 안된다. 끝까지 간다.
김장 갈았다.
옆 동네 형님 밭에 같이 심었다.
세 집이 나누어 먹는 김장이라 수월하게 파종하고 모도 심고 했다.
9월 8일이다.
여름 내내 뒷산 계곡에 몇번간게 피서의 전부였다.
속초 사는 후배가 팬션 잡아놓고 전화했다.
"형님 애들 데리고 놀러 오세요."
그래 가자! 가서 시원한 바다 한번 보고 오자.
이 맘 때면 물이 좀 차서 해수욕장이 한가하다.
우리 아이들이랑 현지 아이들 말고는 물에 들어가는 이들이 없다.
어른들은 발만 담그고 왔다.
다시 일상이다.
배추모는 이제 자리를 잡았고, 무도 그렇다.
콩도 꼬투리를 달았다.
풀이 많은 곳은 역시 생육이 부진하다.
아내가 오래전부터 프라이팬 타령을 해대서 장날 대장간에 들렀다.
대부분 공장에서 가져다 팔지만 여기는 손님이 주문하면 용도에 맞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여기서 무쇠 프라이팬 하나를 구했다.
일반 팬에 비해 다섯배쯤은 무겁지만 처음에 길만 잘 들이면 코팅이 벗겨져 못 쓰는 일은 없다.
거의 반 영구적이다. 무쇠 프라이팬 강추!
어이없게도 여름이 가 버렸다.
붙잡고 싶었다. 아직 콩밭에 풀이 여전하고 6월 20일 심은 늦모도 걱정이었다.
허나 가는 시간을 내가 무슨 수로 막는 단 말인가!
콩밭 옆에 늘어 선 밤나무는 벌써 열매를 내고 있다.
우리 집 뒷산의 으름나무에서 따 온 으름이다.
아이들은 개구리며, 가재며, 으름, 밤 같은 걸 따온다.
개구리나 가재는 몇일 데리고 놀다가 다시 뒷산 개울에 방생해 주고 밤이나 으름은 몇일씩 두고 먹는다.
첫댓글 ㅎ.. 잘 보았습니다.. 으름 .. 먹어보지 못했는데.. 맛은 어떨지..
@horseshoebay(Vancouver/인천) 그렇군요.. 역쉬 홀스님은 모르시는게.. ^^;
과육이 꼭 바나나 같이 생겼는데 속은 검은 씨로 꽉 차있어요. ㅋㅋ
먹기가 편하진 않습니다. ㅋㅋ
씨가 많아 불편하긴하나 달짝지근하니 맛 좋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귀농을 은밀히 권해드립니다.^^
부럽기도 하고 저렇게 많은 일을 처리하는게 대단하기도 합니다. ^^
사실 일은 도시에서 직장 다니는 분들이 더 많이 하지요.
저희는 농한기가 있어 놀땐 사정없이 놀아줍니다.^^
으름, 오랜만에 보네요^^ 저 달달함을 느끼고 싶네요.
장날 나가봐도 으름은 안팔더라구요.
어디 구할만한데도 없구요.
자가 채집이 아니면 어려운 열매지요.
아이들이 참 행복할것 같아요.
갑자기 아이들 우는 사진을 올리고 싶은 욕망이 불쑥! ^^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건강하시구요.
아주 아주 잘 보앗어요 아는 단어로 집을 짓고 산다
공감이 갑니다..
사진도 글도 좋습니다. 공감도 되고 눈물로 나고......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