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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증인이시요(4)
말씀: 계1:5-8. 2024년 1월 7일 일요일 오후 2시
5절입니다.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 죄들에서 우리를 씻으시고](계1:5) 4절은 성부 하나님과 성령에 대한 말씀이라면 5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실한 증인(대언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땅의 왕들의 통치자(왕)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언자이셨고, 우리의 대제사장이셨고, 우리의 통치자(왕, 주)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에서 우리를 씻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곧 하나님의 피 입니다(행20:28). 예수님의 피는 상속 언약의 피 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보배로운 피 입니다(벧전1:19).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 백성들을 거룩히 구별하시고(히13:12), 자신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고,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제거하셨습니다(엡1:7, 요일1:9). 킹 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어떤 성경에도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씻으셨다(washed)는 말씀이 없습니다(계1:5).
여러분은 그분의 피로 씻음 받았습니까? 캐톨릭 사제들이 뿌리는 성수나 물세례나 기타 어떤 종교 행위로도 사람들의 죄는 씻기지 않습니다. 사람이 흘리는 피와 땀의 행위로는 결코 죄를 씻을 수 없고 제거할 수 없습니다. 절기마다 엄숙하고 경건하게 종교 의식에 따라 드리는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결코 죄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히10:4). 죄를 씻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습니다.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에 따른 것이니라.](엡1:7).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골1:14). 그분의 피를 통해 우리는 용서, 구속, 화평, 의, 깨끗함, 거룩함을 입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는 하나님과 가깝게 되며,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사람들을 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본 사람들은 모두 깨끗하게 보십니다.
“신실한 증인”(5)이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정확히 계시하시고 증언하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하나님에 관한 완전한 지식이 없고, 그분을 정확히 증언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한 분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신실한 증인입니다. 그분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고 아버지로부터 보고 들은 것만을 말씀하셨기에 신실한 증인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증인들이 되어야 합니다(행1:8).
“땅의 왕들의 통치자”(5). 이 땅의 왕들은 자신이 최고의 권력자인줄로 압니다. 자신들 위에 절대적인 권세, 전지전능한 통치자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예수님은 유대(민족)인의 왕이시고, 이스라엘(국가)의 왕이시고, 영광의 왕이시고(시24:7), 의의 왕이시고(히7:2), 평강의 왕이시고(히7:2), 성도들의 왕(계15:3),이시며 왕들의 왕(계19:16)이십니다.
5절에서 예수님을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5)이란 표현에 특별히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란 뜻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이외에도 모든 창조물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십니다(골1:15).
예수님은 성령의 첫 열매입니다(롬8:23). 아담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첫 사람인데 예수님은 하나님(말씀)께로부터 사람으로 태어나신 첫 사람, 하늘에서 난 첫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창조물 가운데 처음으로 하나님께 태어난 창조물입니다.(firstborn/first begotten).
예수님은 죽으셨지만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신 첫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일컬어 “내가 이 날 너를 낳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칙령을 밝히 보이리라.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이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2:7). 이 구절을 신약 성경에서 어떻게 인용하고 적용하는지 보십시오. [바로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심으로써 그들의 자손인 우리에게 성취하셨다는 것이라. 이것은 또한 시편 둘째 편에, 너는 내 아들이라. 이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고 기록된 바와 같도다.](행13:33).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낳으신 아들입니다(히1:5, 5:5).
성경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몇 나옵니다. 엘리야, 엘리사는 죽은 아이들을 살린 적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 역시 죽은 자들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나인성 과부의 아들(눅7), 나사로(요11), 회당장의 딸(막5) 등을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을 때 부활의 몸을 입은 것이 아닙니다. 요나는 고래 뱃속에서 나올 때 본래의 흙으로 된 육신의 몸이 죽었다 살아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부활의 몸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죽었습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려 진 엘리야와 죽었던(신34) 모세는 함께 변화산(마17:3)에서 주님과 같이 영광중에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실 때 육체의 몸이었지만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을 때는 영적인 몸, 영광스런 몸, 하늘에 속한 몸이셨습니다. 이것이 역사상 첫 번째 있었던 일이라 그분을 첫 열매, 처음 나신 분이라고 말합니다(롬8:29). 구약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 뒤에 일어났습니다(마27:51-53). 우리는 그분과 같은 첫 열매 종류에 속한 자입니다(약1:18). 우리의 간절한 소망도 썩지 않을 몸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한 몸, 땅에 속한 몸, 흙으로 된 몸, 썩을 몸이 죽거나 살아있을 때, 주께서 “이리로 올라오라”하시는 날에 부활의 영광스런 몸, 영에 속한 몸, 하늘에 속한 몸, 썩지 않을 몸, 죽지 않을 몸으로 일으켜지고 홀연히 변화하여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은 몸이 되며, 우리 주님과 같은 몸을 입게 되는데 이 몸은 영원히 쇠하지도 병들지도 늙지도 죽지도 않습니다.
6절입니다. [하나님 곧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분께 즉 그분께 영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1:6).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자신의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크리스천들은 실제적인 왕이나 통치자가 아닙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양떼들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고 통치하려는 자들이 더러 있지만 크리스천들은 이 땅에서 종들로 서로 섬겨야 합니다. 지금 현 세대에서 주님을 섬기고 그분과 함께 고난을 당한 자들이 장차 그분과 함께 통치합니다(롬8:17, 딤후2:12). 구원은 은혜로 받지만 통치는 행위에 따라 주어지는 보상입니다(고전15:41-42).
지금 우리는 영적 제사장의 직분을 가졌습니다. 베드로전서 2:5을 보십시오.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벧전2:5). 우리는 결코 구약의 레위 제사장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전에서 희생물을 드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영적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 소유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에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함이라.](벧전2:9).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는 왕가의 제사장입니다.
다가올 세대에 우리는 이 땅을 문자 그대로, 물리적으로 다스리는 정치적인 힘을 지닌 왕과 제사장이 됩니다(계5:9-10). 주님이 친히 세우시는 왕국에서는 칼을 든 자, 돈을 가진 자, 인기 많은 자가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현 세상에서 주님을 섬긴 크리스천들이 그들의 행위에 따라 왕이 되고 제사장이 됩니다. [또 우리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우리가 땅에서 통치하리이다, 하더라.](계5:10). “우리가 땅에서 통치하리이다.”란 말씀은 문자 그대로 땅에서 왕으로서 통치하는 것이지 영적으로 다스린다, 마음을 다스린다, 영적 왕국을 다스린다는 식으로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1:5-6절에서 예수님은 신실한 증인,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난 자, 땅의 왕들의 통치자입니다. [또한 내가 그를 나의 처음 난 자로 삼아 땅의 왕들보다 더 높게 하며](시89:27). 이 예언의 말씀은 다윗의 씨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인데 요한계시록 1:5-6절 말씀과 일치합니다.
계속해서 [그의 씨가 영원히 지속되고 그의 왕좌가 해같이 내 앞에 있으리니 그것이 달같이, 하늘에 있는 신실한 증인같이 영원히 굳게 세워지리로다, 하셨도다. 셀라.](시89:36-37). 시편의 “처음 난 자, 땅의 왕들보다 높게 된 자(왕들의 통치자), 신실한 증인”이란 세 가지 타이틀이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그를 ...만들리라.”(미래)고 하셨는데 이는 우리 주님에 관련된 예언의 말씀입니다. 1:5-6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와 관련해서 하신 일은 “우리를 사랑하사(loved us),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에서 우리를 씻으시고(washed us),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made us)분”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높이 찬양하고 열심히 전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것이 왕가의 제사장이 해야 할 사역입니다(벧전2:9).
7절입니다. [보라, 그분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시리라.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겠고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분으로 인해 통곡하리니 참으로 그러하리라. 아멘.](계1:7). 22:12절도 함께 봅니다. [보라, 내가 속히 가리니 내가 줄 보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할 행위대로 주리라.](계22:12). 주님의 공중 재림은 자신의 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을 불러 가셔서 그들의 행위에 따라 보상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고후5:10, [이는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라.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서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은 자신의 성도들이 행한 행위에 대한 보상을 위한 것이지 잘못의 심판석이 아닙니다.
지난 서론에서 살펴본 대로 계1:7절 상(上)은 주님의 공중 재림인데 이는 성령을 통해 이 땅의 성도들의 몸 안에 오시는 임재가 아니라 올리브 산에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천사들과 함께 올라간 그 동일한 예수님이 부활의 몸을 입고 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시는 장면입니다. 주님의 공중 재림과 성도들의 휴거는 세상이 모르게 은밀한 가운데 일어납니다.
계1:7절 하(下)는 주님의 지상 재림인데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봅니다. 그분을 찌른 자들(로마, 유대인)도 봅니다. 주님의 지상 재림은 세상 사람들의 기쁨과 환호가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불법과 죄들과 원수들을 심판하고 멸망시키실 것이므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통곡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요, 실체임을 알고 확인할 때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통곡하는 것 외에 아무 할 일이 없습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시는 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가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계22:20). 주님은 친히 자신의 입으로 “내가 반드시 속히 가리라.”고 하십니다. 누군가 주님이 더디 오실 것 같다거나 안 오실 것 같다고 한다면 그는 현재 불신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성도들의 마음속에는 주님의 공중 재림의 긴박성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봉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봉인된 책이 아니라 열린 책입니다. 겉으로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문제는 닫힌 눈, 닫힌 마음입니다. 불신은 마음을 가립니다(고후3:14,15). 마귀는 믿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가립니다(고후4:3-4).
자, 본문 7절입니다. [보라, 그분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시리라.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겠고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분으로 인해 통곡하리니 참으로 그러하리라. 아멘.](계1:7). 이 구절은 교회가 큰 환란 전에 휴거되는 진리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휴거된 성도들은 구름들 속으로 채어 올라가고 그분이 하늘로부터 내려오셔서 공중에서 만날 때 우리는 통곡하지 않고 기뻐합니다. 모든 성도들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지상으로 오실 때 우리는 영광 중에 흰말을 타고 그분을 뒤따라옵니다.
만약 일부 주장대로 크리스천들이 큰 환란을 통과해야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재림을 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 아니라 통곡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록된 말씀(7)과 맞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서 나타나리라.](골3:4). 큰 환란 때 우리는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구름들과 함께 오시리라.’고 합니다. 구름들을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름들과 “함께” 옵니다. 주님의 출현, 현현에는 항상 구름이 함께 나타납니다. 이 구절은 구약의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실 때 구름이 엿새 동안 그 산을 덮었습니다(출24:16). 성막을 지어 봉헌할 때 구름이 회중의 장막을 덮었습니다(출40:34,35).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할 때 회중의 성막 쪽에 구름이 덮었습니다(민16:42).
예수님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신다.”는 것은 그분이 구약 성경에 계시된 주 하나님이심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내가 밤의 환상들 속에서 보았는데, 보라,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들과 함께 와서 [옛적부터 계신 분]께 가니 그들이 그를 그분 앞에 가까이 데려가더라.](단7:13).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불쌍합니다.
변화산에서도 제자들은 빛나는 구름들이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덮는 것을 보았습니다(마17:5). 주께서 부활 승천하실 때에도 구름이 그분을 받아들였습니다. [이것들을 말씀하신 뒤에 그분께서 그들이 보는 동안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이 그분을 받아들여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더라.](행1:9), 마태복음을 보겠습니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의 표적이 하늘에 나타나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지파들이 애곡하며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마24:30).
주께서 지상으로 재림하시는 것을 보는 땅에 거하는 사람들이 통곡하는 이유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분이 주 예수님인 것을 한 눈에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이전에 이미 자신의 재림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올라가실 때 다시 오실 모습에 대해서도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행1:10-11). 그 말씀들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주님은 문자적으로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천사들과 함께 부활하신 몸이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몸을 입은 그대로 올라가시면서 재림 때 오실 모습 역시 동일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어떤 존재들이 있다면 그는 결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this same Jesus.
슥12:10절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1:7절의 예언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주민들 위에 은혜의 영과 간구하는 영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나 곧 자기들이 찌른 나를 바라보고 사람이 자기 외아들로 인해 애곡하듯 그로 인해 애곡하며 사람이 자기의 처음 난 자로 인해 쓰라리게 슬퍼하듯 그로 인해 쓰라리게 슬퍼하리라.](슥12:10).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찌른 예수님을 보고 애곡하고 쓰라리게 슬퍼할 것입니다. [또 다른 성경 기록이 다시 이르되, 그들이 자기들이 찌른 자를 보리라, 하느니라.](요19:37).
교회는 이 땅에서 재림하시는 주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들림 받았다가 그분과 함께 옵니다.
유대인들과 그들을 지배하던 로마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았던 예수님을 보았고 자기들이 찌른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의 재림이 이렇게 공개적이라면 ‘도둑 같이’ 오시는 주님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온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살전5:2). 주님이 도둑같이 오시지만 결코 도둑같이 우리를 덮치지는 못합니다(살전5:4). 우리는 낮의 자녀요, 빛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도둑은 예기치 않는 시각에 아무도 모르게 옵니다(계3:3,16:15).
성도들을 데리러 오시는 주님의 공중 재림은 큰 환란 전에 비밀스럽게 옵니다(살전5:2, 고전15:51-53). 성도들의 휴거 때, 가족 중에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믿는 가족을 도둑맞는 것같이 사라진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 불신자들은 아무도 그분을 보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기 때문니다(살전4:17).
8절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마침이라. 지금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 올 [주] 곧 [전능자]가 말하노라.](계1:8). 주님은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마지막입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글자입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그리스어 알파벳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인데 주님은 자신을 ‘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글자가 곧 하나님이란 말은 아닙니다. 글(글자)은 말(말씀-words)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요1:1)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을 밝히 드러내는 수단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모든 사람들에게 영이요, 말씀이신 하나님을 드러내 주셨고 보여 주셨습니다.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마침이란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드러내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11).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마지막이라.](계22:13). 예수님은 모든 단어, 모든 말의 첫 글자가 되시고 마지막 글자가 되십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시작은 주님으로 말미암습니다. 주님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권능으로 그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끝, 마지막은 주님으로 말미암습니다. 주님은 창조자요, 성취자요, 완성자입니다. 율법을 주신 분이며 율법의 성취자입니다. 대언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성취하십니다. 우리의 인생, 삶도 주님이 시작이요 처음이시고 주님께서 끝이요 마지막입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왕좌 앞에 계신 일곱 [영]과](계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했습니다. 이 교회들은 요한이 개척한 교회나 임의로 선정한 교회가 아니라 주님이 보내도록 지정하신 교회입니다.
주님은 요한에게 편지를 보내야 할 일곱 교회를 특별히 지목하셨습니다. 당시 아시아, 로마, 유럽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었지만 특별이 일곱 교회를 지정하신 것은 일곱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수이기 때문입니다. 7일은 모든 날이듯 일곱 교회는 모든 교회를 의미합니다.
[나 예수는 내 천사를 보내어 교회들 안에서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후손이요 빛나는 새벽별이니라.](계22:16). 교회들, 즉 일곱 교회가 모든 교회란 뜻입니다. 세상 모든 교회의 형태이며 은혜시대의 교회 유형을 나타냅니다. 성경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이 절묘하게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어 넣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지키시지만 우리 역시 주님의 말씀 보존에 대한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계22:18-19).
모든 성도들은 순수하게 보존된 주의 말씀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소위 학자란 사람들이 성경을 멋대로 칼질하면서 더 좋은 번역, 더 나은 성경을 만들었다고 자랑합니다. 지키라는 말씀들을 없애 버리거나 그 속에 자신들의 말을 더해 버립니다. 주님의 엄중한 경고를 듣고 주의해야 합니다. 이 책을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지만 더하거나 빼는 자에게는 재앙들이 있습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8). 예수님의 자기 계시, 자기 선포입니다. 이는 계시록에 4번 나옵니다(7:8,11, 21:6,13). 히브리어(알렙과 타브)로 기록된 구약 성경과 달리 신약성경은 헬라어(알파와 오메가)로 기록되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각 단어의 글자들 즉 일점일획까지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그분의 말씀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8)라고 하심으로 성경에 주어진 말씀(단어)은 모두 주님을 현현하는 계시의 수단이 됩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은 주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와 신격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고 믿어야 합니다. 말씀은 처음부터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도 계십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8)란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성경의 가치, 존엄, 권위, 신성에 대해서 확실히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때로 사람들 중에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면 “당신은 성경 숭배자.”라고 비아냥대거나 “성경이란 책을 숭배하면 우상이 된다.”라는 이도 있습니다. 성경이 아니라 성령이 중요하다는 이도 있습니다.
성경책을 펴면 어디서나 알파와 오메가 즉 글자들이 보입니다. 기록되어 있는 한 글자 한 글자, 한 단어 한 단어가 모두 다 주의 영광스런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주 하나님 자신의 이름보다 더 크게 하셨습니다. [내가 주의 거룩한 전을 향해 경배하고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진리로 인해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로 크게 높이셨기 때문이니이다.](시138:2).
주님께서 '주의 말씀'(성경)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이셨습니다. 주님은 주님 외에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영광을 돌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 영광을 돌려도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이 말을 듣고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에 영광을 돌리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정해진 자들은 다 믿더라.](행13:48). 우리는 주의 말씀에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주의 말씀에 영광을 돌리는 것은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요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 그분께서 피에 담근 옷을 입으셨는데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느니라.](계19:13) 하나님의 말씀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바울서신도 보십시오. [끝으로 형제들아, 우리를 위해 기도하되 주의 말씀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와 같이 자유로운 행로를 가져 영광스럽게 되며](살후3:1). “주의 말씀이...영광스럽게 되며”. 주의 말씀은 곧 주님과 동일하므로 그분의 말씀에 영광을 돌리는 일은 우상 숭배가 아니라 성도의 마땅한 직무입니다. 성경을 높이고 영광스럽게 하는 자가 되십시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아무리 찬양하고 높이고 영광을 돌려도 우상 숭배가 아닙니다.
다시 8절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마침이라. 지금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 올 [주] 곧 [전능자]가 말하노라.](8). 주님은 시작과 끝마침이십니다. 처음(the first), 시작(the beginning)은 예수님이십니다. [처음인 자가 시온에게 이르기를, 보라, 그들을 보라, 할 것이며 내가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사 41:27). 처음인 자=하나님. [또 그분께서는 몸 곧 교회의 머리시니라. 그분께서 시작이시요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난 자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 가운데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골1:18). *who is the beginning.
예수님은 처음이십니다. 결코 사람(서민, 민중)이 먼저(first)가 아닙니다. 조국, 민족이 먼저가 아닙니다. 가족이 먼저가 아닙니다. 나 자신이 먼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처음부터 계셨고(요1:1, 요일1:1), 처음이요 시작이신 분이 말씀이신 예수님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으로 시작해서 주님으로 끝이 납니다. 주님으로부터 시작되지 않는 창조물은 없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시작되지 않는 생명은 없습니다. 구속 사역은 주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주님이 끝마치십니다. “시작과 끝마침이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요, 한 분이심을 증언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주} 곧 그의 구속자인 군대들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니라. 나 외에는 신이 없느니라.](사44:6). 구약 성경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쉽게 예수님의 신분과 정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오 야곱아, 내가 부른 자 이스라엘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한 나는 마지막이니라.](사48:12).
주님은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멸시했고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찔렀습니다. 주님은 지금 계십니다. 주님은 전에도 계셨습니다. 주님은 앞으로도 계십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저 하늘에 계십니다. 주님은 전에 대언자로 계셨습니다. 주님은 앞으로 만왕의 왕으로 영원히 계십니다.
“주 곧 전능자가 말하노라.”(8). “전능자”는 주님의 다른 이름으로 성경에 총 50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전능자는 하나님 자신이십니다(계4:8, 11:17).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나는 전능자 하나님이니라.”(창17:1)고 하셨고, 야곱에게 “나는 [하나님] 곧 [전능자]니라.”(창35:11)고 하셨습니다.
전능자 주님께는 불가능이 없고, 어려워서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판단할 때 주님은 그 때부터 자신의 일을 시작하십니다. 사람에게 끝이 주님에게는 시작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죄인들의 죄가 끝나는 지점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새로운 창조, 새로운 생명을 시작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신들의 몸에서 자식이 태어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함을 알았습니다. 각자 자신들의 몸 상태를 알았고 더 이상 생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출산이 불가능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오셔서 “{주}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느냐?”(창18:14)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때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십시오(시78:41).
창조주이신 주님께 어려운 일, 힘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님이 계획하시고 말씀하신 일에 가능성, 확률을 따지지 마십시오. 주님의 잉태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남자를 안 일이 없으므로 이해하지 못했으나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느니라, 하매](눅1:37). 받아들였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전혀 가능성이 없는 0%의 확률일 때, 어떤 소망도 미련도 둘 수 없을 때 우리는 끝이라고 말할 때 주님께서 일하시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주님께서 불치병자들을 고치신 기록들을 보십시오. 누가 보아도 불가능한 병자들의 질병을 고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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