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가을이 되면서 토란이 제철을 맞았다. 들깨를 갈아 걸쭉하게 해서 만든 토란국은 속도 편하게 하고 기운도 나게 한다. 여름철 토란잎이 개구리들의 우산이었다면 가을철 알토란은 맛있고 건강한 식재료의 주인공이 된다.
토란은 천남성목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열대 아시아가 원산지이면서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분포돼 있다. 영어권에서 부르는 ‘타로(taro)’라는 식물이 바로 토란과 비슷한 종이다.
천남성과 식물은 약초로도 사용되는데 아린 맛의 알칼로이드 독성분이 있다. 토란이나 타로, 한약으로 많이 사용하는 천남성, 반하도 모두 천남성과다. 이것들은 생으로 먹으면 목이 아려서 먹을 수 없다. 따라서 삶거나 쪄서 익혀 먹거나 별도의 수치과정을 거쳐야 한다.
토란은 한자어로 바로 토란(土卵)이다. 그밖에 한의서에는 우(芋), 우자(芋子), 토지(土芝), 토련(土蓮)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토란(土卵)은 땅속의 알이라는 의미이고 우(芋)는 자체로 토란을 의미한다. 이밖에 올빼미를 의미하는 준치(蹲鴟)라고도 했는데 토란의 모양이 올빼미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양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토란의 기운은 평이하면서 냉한 편이고 맛이 맵고 독이 있다. 맛이 맵다는 표현은 신미(辛味)로 기록되기도 하고 아린 맛은 별도로 ‘험(薟)’자를 사용해 기록했다. 험(薟)은 ‘아리다’는 의미다. <동의보감>에는 ‘생으로 먹으면 독이 있는데 목이 아려서 먹을 수 없다’고 했다. 토란은 생으로 먹었을 때 목을 알알하게 하기 때문에 독이 있다고 한 것이다.
토란의 얼얼한 느낌은 바로 수산칼슘(calcium oxalate, 옥살산 칼슘) 때문이다. 토란 등의 천남성과 식물들은 칼슘을 수산칼슘 형태로 저장하는데 이 수산칼슘의 결정이 바늘 모양으로 뾰족해서 삼킬 때 목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수산칼슘은 열을 가하면 쉽게 분해되기 때문에 익혀 먹으면 자극감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토란은 반드시 익혀 먹으라고 하는 것이다.
토란은 위와 장을 편안하게 한다. <동의보감>에는 ‘입맛을 돋우고 장위(腸胃)를 편안하게 한다’고 했다. <본초강목>에서는 ‘생선과 함께 삶아 먹으면 기를 매우 잘 내리고 속을 고르게 하여 허한 것을 보해 준다’고 했다. <식료본초>에는 ‘붕어, 잉어와 함께 국을 끓이면 기를 잘 내리고 중초(中焦, 소화기)를 보한다’고 했다. 토란은 특히 붕어와 궁합이 잘 맞아서 토란붕어죽은 위장과 속을 보하는데 그 어떤 음식보다 효과적이다.
익힌 토란은 맛도 좋다. 이에 과거에는 토란이 구황작물로 사용돼 흉년에 곡식을 대신했다. 먹을 것이 없을 때 토란을 삶아 먹으면서 흉년을 이겨냈다는 기록들이 많다. <본초강목>에는 ‘중국 민산(岷山) 기슭의 비옥한 들에 토란이 자라는데 죽을 지경에 이르러도 굶주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토란이라도 풍부했기 때문인 것이다.
토란은 피부를 튼튼하게 하고 희게 한다. <동의보감>에는 ‘피부를 충실케 하여 살찌고 피부를 희게 한다’고 했다. 토란은 피부를 부드럽게 하면서 피부 톤을 밝게 한다. 토란은 특히 피부 쪽 살을 채워 튼실하게 만들어준다. 문헌에 보면 토란이 살찌게 한다[肥]는 기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감자보다 칼로리가 낮아 비교적 안전한 다이어트 식품에 속한다.
‘알토란 같다’는 속담도 있는 것처럼 토란은 맛도 좋고 건강 효능도 매우 풍부하다. 단 독성분이 있어 반드시 열을 가해 익혀 먹어야 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토란은 장을 매끄럽게 한다. <동의보감>에는 ‘토란은 속을 매끄럽게 한다’고 했다. 토란에는 마와 마찬가지로 뮤신이란 성분이 많아서 끈적거린다. 뮤신은 장점막을 보호하는 효능이 있다. 장을 매끄럽게 한다는 표현은 장점막을 건강하게 한다는 의미다. 특히 토란은 뮤신과 함께 식이섬유도 풍부해 위장과 더불어 대장건강에도 좋아 변비에도 도움이 된다.
뮤신은 폐기관지 점막도 촉촉하게 한다. <본초강목>에 ‘사람의 장위를 두터이 하면서 열증에 의한 기침을 제거한다’고 한 것을 보면 토란의 뮤신은 장 점막, 폐기관지 점막에 동시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토란은 혈액을 맑게 한다. <본초강목>에는 ‘숙혈(宿血)을 깨뜨린다’고 했다. 숙혈(宿血)은 오래된 뭉친 혈액이란 의미로 일종의 어혈(瘀血)이다. 어혈은 혈액순환장애를 일으키는 제반 혈액의 문제로 토란은 어혈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토란은 산후 어혈제거에 좋다. <향약집성방>에는 ‘토란은 산후에 삶아 먹으면 파혈(破血)하며 그 즙을 마시면 혈갈(血渴)을 그치게 한다’고 했다. 파혈(破血)은 어혈을 제거한다는 의미다. 혈갈(血渴)은 과다 출혈 후에 나타나는 갈증을 말한다.
토란은 예로부터 흰색과 자색이 있었다. 그런데 흰색보다는 자색이 맛이 더 좋다. <식료본초>에는 ‘하얗고 깨끗한 것은 맛이 없고 자색이 좋은데 기를 통하게 한다. 달인 즙을 마시면 갈증을 멎게 한다’고 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대만 음료인 타로(토란) 밀크티가 자색을 띠는 이유는 바로 자색 타로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흰색 토란도 맛이 담백하고 효능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토란은 종기 등의 치료에 외용제로 많이 사용해왔다. 토란을 갈아서 종이 위에 말라 그것을 종기 위에 파스처럼 붙였는데 마르면 다시 붙이기를 반복한다. 이것을 토란고법(土卵膏法)이라고 하는데 종기를 빨리 삭게 하면서 죽은 살을 없애고 아물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토란을 이용한 종기 치료법은 과거 아주 흔하면서도 매우 효과적인 치료법 중 하나였다.
옛날에 생토란을 달인 즙으로 빨래를 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옷의 색이 옥처럼 깨끗해졌다. <의학입문>에는 ‘토란은 기름때가 찌든 옷을 빨아서 옥처럼 희게 만든다’고 했다. 이는 바로 토란에 포함된 옥살산이 표백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도 녹이나 잉크 등에 의한 얼룩을 제거하는 표백제에 옥살산이 포함돼 있다.
생토란을 만지면 자칫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토란에 풍부한 뮤신과 옥살산 칼슘 등은 일부 체질에서 가려움증이나 자극감을 유발한다. 따라서 생토란은 맨손이 아닌 반드시 장갑을 끼고 손질해야 한다.
익힌 토란국이라도 일부에서는 간혹 복통을 유발하기도 한다. 토란을 제대로 삶아내지 않았을 때 목이 따끔거리면서 위장관 증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토란줄기로 만든 나물을 먹고 목이 따가운 경험들도 흔히 한다. 하지만 충분하게 익혔는데도 위장관 알레르기와 함께 피부 가려움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토란은 나름대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독성분을 만들어놨다. 이러한 성분은 불편함을 유발하지만 충분히 제거 가능하기 때문에 문제 되지 않는다. 적절하게 요리를 하면 걱정 없다.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토란. ‘알토란 같다’는 속담은 토란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