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을 않고도 골프를 잘 친다는 것은 불을 때지 않고 밥을 짓는 것처럼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정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도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지만 어느 수준에 이른 뒤에도 그 수준을 유지하려면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을 않고도 골프를 잘 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만약에 그런 방법이 있다면 수많은 골퍼들이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그 방법을 터득하려 들 것이다. 연습할 짬을 내기 힘든 사람들이라면 더욱 기를 쓸 것이다. 실제로 싱글 핸디캡 골퍼들은 연습할 시간을 낼 수 없을 경우 연습을 보완해줄 묘방을 찾아 온갖
시도들을 해본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클럽을 하나 갖다 놓고 빈 스윙을 하기도 하고
그립을 제대로 하도록 만들어진 스윙연습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때로 아령으로 스윙 동작을 하기도 한다. 긴 우산이 연습할 틈이 없는 골퍼에게 좋은 스윙감각을 유지시켜줄 뿐만 아니라 스윙을 개선시켜 주는 효과까지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체험으로 알아냈다. 얼마전 1주일 내내
골프채 한번 잡아보지 않고 라운드에 나섰다. 1주일 동안 연습장 한번 안 가보고
골프장에 간다는 것이 골프깨나 친다는 사람으로선 여간
거북한 것이 아니다. 뻔뻔스럽고, 죄스럽고, 송구스럽고, 간이 부은듯 하고, 그리고 제대로 될까 염려스럽고, 최악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스러운, 매우 복잡한 느낌을 갖기 마련이다. 그래도 골프는 매혹적인 것. 그런 복잡한 감정 때문에 라운드를 마다할 수는 없다.
광릉cc 10번홀에서 내려다 본 정경.
잔디빛은 누렇게 바랬지만 여전히 파란 그린과 잎을 떨군
나무들로 들어찬 숲의 모습이 오히려 초겨울의 풍만함을 느끼게 한다. 아무래도 그냥 라운드에 나서는 것이 뭣해서 광릉cc 내에 있는 연습장에서 허겁지겁 한
박스를 두들겨 보고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동반자는 20여년 알고 지낸 지인 두 분과, 첫 대면의 40대 중초반의 건장한 체격의 기업 관계자였다. 지인 두 분은 구력은 오래 되었으나 열정적으로 골프에 매달리지 않아 90대 전후를 치고, 한분은 이제 구력이 1년 된 분으로, 90대도 치지만 100대 넘는다고 했다. 시작 전부터 동반자들은 나의 골프이력을 입에 올리며 잔뜩 바람을 넣고 "오늘 한수 배우겠다"고 뭔가 보여줄 것을 기다리는 눈치가 확연했다. 이런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란 걸 잘 안다. 연습도 하지 않는데다 라운드 회수도 적어 감각이 무디어진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뭔가 보여주고자 할 때 어김없이 추락의 경험을 맛봐온 터라 "챙피만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자세로 라운드에 임했다. 다행히 첫 홀의 티샷은 한가운데로 잘 날아갔습니다. 어프로치 감이 떨어졌지만 파5 첫홀은 파 세이브. 두번째 홀에서는 드라이버와 세컨드 샷을 모두 당기는 바람에 보기. 그러나
마음을 추스려 파행진을 이어가다 3펏 때문에 보기를 더하고 숏홀에서 버디를 보태 전반 37로 마무리했다. 라운드 전의 정황을 생각하면 아주 잘 친 셈이다.
맥주를 한잔 한뒤 후반 라운드에 접어들자 감각이 더 좋아졌다. 여전히 어프로치 감각이 문제였으나 한개의 보기와 두개의 버디를 해서, 마지막 홀을 남기고 이븐. 18번홀 드라이브샷은 좋았고 두번째 샷도 잘 날아가는 듯 했는데 볼을 찾을 수 없었다. 라이트가 켜진 상태라 정확히 볼의 방향을 못본 탓에 찾는데 실패,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동반들이 더 아쉬워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다.
광릉cc 6번홀 그린에서 7번홀로 이동하는 길 가에서 발견된 매혹적인 자주빛 열매. 이름을 모르지만 보는 이 모두를 감탄케 할 정도로 투명한 자주빛 열매는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연습도 안했는데 이렇게 감각이 좋은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바로 긴 우산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 연습할 짬을 못낼 때 사무실에서 긴 우산을 거꾸로 잡고 스윙 연습하는 버릇이 생겼다. 우산의 구조 상 빠른 스윙이 안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좋은 스윙궤도를 지키며 처음부터 끝까지 스윙을 완성하는데 주력했다. 우산 손잡이가 아래로 가도록 우산의
머리 끝을 잡고 느린 속도로 스윙아크를 그려가는 방식이다. 이 연습이 필드에서 스윙의 리듬을 유지해주고 부드럽고 완성도 높은 스윙을 보답해준 것이다. 연습장 갈 틈을 못내는 골퍼에게 정말 권하고 싶은 연습방법이다. 연습장에서 정신없이 공을 쳐내는 것보다 긴 우산 들고 한 스무번 정도 이상적인 스윙을 구현해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임도 체험으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