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상형 전자담배 논란, 유해성 연구가 선행되어야
지난 11월 26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는 액상형 전자담배 논란을 다룬 제27회 국민생활과학기술포럼이 ‘액상형 전자담배 논란 : 국민 건강 어떻게 지키나?’를 주제로 열렸다. 국민생활과학자문단이 주최한 본 포럼은 국무총리실 국민안전안심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후원으로 참여했다.
최근 액상형 전자담배가 중증 폐질환을 유발한다는 논란이 일어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본 사안과 관련해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유해성 검증이 완료되기 전까지 사용중단을 강력히 권고했다. 이보다 앞서 미국 보건당국 역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의 자제를 권고하고, 일부 주에서는 긴급판매금치 조치를 내린바 있다.
정은주 국민생활과학자문단 생활화학물질안전분과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이번 포럼에서는 액상담배의 유해성에 대해 알려진 것은 무엇이고, 아직 밝혀진 바가 없는 부문에서 앞으로 연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한다. 포럼을 통해 국민의 궁금증이 해소되고, 앞으로 액상담배를 어떻게 다뤄야할지에 대한 폭넓은 아이디어를 수렴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역사를 돌아보면, 새로운 물질이 개발된 뒤 충분히 검증을 거친다고 하지만 소수의 인원으로 제한된 기간 안에 안정성에 대한 검증이 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듭하면서 유해한 화학물질의 사용을 제한하고, 개량하며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 문제는 액상형 전자담배가 과학적으로 얼마나 해로운지 밝혀내야 하고, 국민 건강을 위해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액상형 전자담배가 더 큰 사회문제가 되기 전에 이번 포럼이 솔루션을 찾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액상 전자담배 유해성 과학적 검증이 우선
첫 번째 발제는 이규홍 안전성평가연구소 호흡기질환제품 유효성평가연구단장이 ‘액상형 전자담배 유해성 연구 고찰’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이 단장은 “최근 미국에서 전자담배 흡연으로 인한 폐질환으로 사망자가 처음 발생했다. 이 사례를 계기로 우리 정부도 액상형 전자담배의 사용중단을 강력히 권고하게 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의심사례 1건이 밝혀지면서,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의 성분 파악이 진행되고 있다”며 논란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는 덜 해롭다는 인식이 퍼져있지만, 전자담배는 일반담배와 거의 같거나 더 치명적인 위해성을 나타낸다. 두 유형의 담배로 심혈관 영향을 비교한 결과, 전자담배의 증기가 노출된 경우 58%, 일반 담배에 노출된 경우에는 57% 기능이 저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혈중 니코틴 함량 역시 전자담배의 증기 노출의 경우 70.3ng/ml인데 비해 일반 담배연기는 15ng/ml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주요성분에는 니코틴과 프로필렌 글리콜(PG, Propylene Glycol), 식물성 글리세린(VG, Vegetable Glycerin), 가향성분, 대마성분, 비타민 E 아세테이트, 중금속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러한 성분에 대한 유해성 검증 자료가 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액상형 전자담배와 관련한 폐손상 환자의 기관지 폐포 세척액을 분석한 결과, 환자 중 86%가 THC(대마성분액상)이 포함된 전자담배를 사용하고 있었다. 또 29명의 기관지 폐포 세척액 일체에서 비타민 E 아세테이트가 검출되어 이와 관련성이 있다는 예측에 힘을 실었다.
이 단장은 “현재까지 밝혀진 액상형 전자담배 피해 사례를 보면, 미국에서 1,479명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력이 있는 폐질환자와 33명의 사망자가 보고되었다. 캐나다에서도 1건이 있고, 한국에서도 의심환자가 처음으로 보고됐다. 그러나 이런 위험성과는 별개로 최근 5년 간 국내 액상형 전자담배 수입량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액상형 전자담배 성분에 대한 독성자료 생산과 호흡기계 영향 규명에 대한 연구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보건당국이 주관하는 민관합동조사위원회에서도 유해성 자료를 내고, 호흡기 영향에 대한 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담배 성분의 체내 영향 연구, 흡입독성 연구, 관련기전 규명을 위한 자료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액상형 전자담배 유해성을 제대로 밝혀내기 위해서는 독성 안전성을 전담하는 정부기관이 설치 돼야 한다고 제안하며 마무리했다.
▶ 주제발표. (왼쪽 사진부터) 이규홍 안전성평가연구소 호흡기질환제품 유효성평가연구단장, 조준호 한양여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백유진 대한금연학회장
두 번째 발제는 조준호 한양여대 보건행정학과 교수가 ‘전자담배와 청소년 호흡기 건강’에 대해 발표했다. 조 교수는 “전자담배관련 동향을 보면, 전자담배의 독성가스가 폐 조직 손상의 원인으로 의심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또 비타민 E 아세테이트가 전자담배로 인한 폐 조직 손상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보고서도 발표되었다. 이에 전자담배회사인 쥴(Juul)에서는 박하향 판매를 중지했고, 미국 최대 유통회사 월마트도 전자담배 판매를 중지했다. 또 다른 쥐 실험에서도 전자담배의 발암성은 증명된 바 있으며, 맨톨 전자담배 속에 안전 수준을 넘는 발암물질이 발견됐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된 적 있다”고 밝혔다.
국내 담배사업법에서는 ‘담배란 연초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을 의미한다.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에는 전자담배의 법적 정의가 ‘니코틴 용액이나 연초 및 연초 고형물을 전자장치를 사용해 호흡기를 통해 체내에 흡입하여 흡연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만든 담배’라고 기재돼있다. 이처럼 전자담배의 정의와 규제가 모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 교수는 전자담배에 대한 유해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전자담배 사용은 성인을 포함해 특히 청소년들의 호흡기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천식과 기관지염의 위험을 높이고 기침, 천명 등의 발병 위험성 또한 높아진다. 이처럼 단순한 1차적 위해성 문제도 있지만, 전자담배 사용자체만으로도 청소년의 약물 사용 위험도는 높아진다. 또한 전자담배가 청소년의 약물 사용 게이트웨이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전자담배와 금지약물의 병용은 청소년의 호흡기의 건강을 굉장히 악화시키며 불법 전자담배 액상제를 사용할 경우,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는 점도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우려를 전했다.
마지막 발제는 백유진 대한금연학회장이 ‘전자담배의 공중보건학적 영향과 규제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현재 국내 성인흡연율은 40%대에 이르고, 청소년 흡연율 역시 20%에 육박했다. 한동안 청소년 흡연율이 낮아지다가 정체기를 겪었는데 최근 다시 조금씩 높아지는 모습이다. 특히 전자담배 사용률은 굉장한 속도로 높아지고 있어, 2019년 기준 전자담배 사용률은 3.2%에 이르렀다.
백 회장은 “공중보건학적 측면에서 볼 때 전자담배가 건강에 덜 유해한가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흡연자와 비흡연자 그리고 과거 흡연자에 대한 유해성 평가도 있어야 하며 성인, 청소년, 임산부, 정신질환자 등 인구집단으로도 나눠 조사해야 한다. 이를 평가하려면 담배제품 성분의 유해물질 양, 담배제품 배출물의 유해물질 양, 개인별·인구집단별 위해성 역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중보건학적인 입장에서 다가가야 하는 점도 분명히 말했다. “전자담배 관련 이슈는 배터리 폭발이나 소아약화사고 등의 문제도 있고, 최근 불거진 중증 폐질환 유발 사태도 있다. 그 외에 유해성 여부와 금연보조제 역할, 이중, 다중사용 등의 문제도 얽혀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야 한다. 미국 고등학생의 담배제품 사용률 추이가 지난해 급등했는데, 이 역할을 하게 만든 것이 바로 전자담배였다. 게다가 전자담배와 함께 일반 담배를 피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전자담배는 여전히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 전자담배가 급격히 활성화된 2015년에는 인터넷을 통한 청소년의 구매가 원활했고, 이후에는 성인인증 등 절차가 강조되면서 잠깐 주춤했지만, 중고거래로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
백 회장은 “담배제품의 발암성을 비교해보면 넓은 스펙트럼을 나타낸다. 일단 전자담배가 좀 더 안전하다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전자담배가 심혈관계 질환을 발생시키는 기전으로 밝혀진 경우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백 회장은 신종담배를 대상으로 한 시장 진입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종담배 중 상당수가 법적인 담배의 정의인 ‘연초잎’에 해당되지 않는데, 모든 제품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또 개별 담배제품의 유해성 여부 판단과 관련된 관리, 허가제도가 없기 때문에 이를 개선해야 한다. 담배규제기본협약에 따르면 가향 첨가물을 포함한 담배제품의 성분측정과 일반인을 위한 정보공개를 권하고 있다. 제대로 된 조사와 정보공유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아울러 현 담배사업법과 건강증진법 역시 개정 전략이 필요하다. 액상전자담배 등 신종담배를 담배의 규제 범위에 포함시키는 담배사업법 일부개정안의 발의됐으나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라며 관리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안전성 재검토와 유해성 정보전달의 필요성
▶ 패널토론. (사진 왼쪽부터) 이규홍 안전성평가연구소 호흡기질환제품 유효성평가연구단장, 백유진 대한금연학회장, 윤 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 강호일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첨단분석팀장, 김규봉 단국대 약대 교수, 임경민 이화여대 약대 교수, 이점규 국립보건연구원 호흡기·알레르기질환과장, 조준호 한양여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발제 후 이어진 토론에는 김규봉 단국대 약대 교수를 좌장으로 강호일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첨단분석팀장, 윤 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 이점규 국립보건연구원 호흡기·알레르기질환과장, 임경민 이화여대 약대 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이점규 국립보건연구원 호흡기․알레르기질환과장은 “정부에서는 공중보건 측면의 국민건강 확보가 중요하다. 이번에 청소년 건강을 위한 전자담배 관련 조치는 적합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해성을 단정적으로 연관 짓기 전에 연구가 앞서야 한다. 현재 호흡기 유해성 연구가 수행중인데, 앞으로는 단일물질 노출은 물론, 복합적 노출에 대한 연구도 실행되어야 한다”며 유해성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경민 이화여대 약대 교수는 “전자담배는 에어로졸 형태의 고농도로 인체에 노출된다. 현재까지 안전성 여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사전에 안전성 재검토가 이뤄져야한다. 특히 호흡계의 경우 반응성이 높지만 접근하기 어려운 조직이라 연구결과도 제한적이다. 또한 청소년이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10년 후, 20년 후를 예측하기 어렵다”며 사전에 안전성 재검토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강호일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첨단분석팀장은 “세계보건기구는 전자담배가 기존의 담배보다 덜 유해하다는 어떤 정보도 없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전자담배와 궐련의 생성물질은 다를 수 있지만, 이를 다 알 수는 없다. 덜 유해한지, 더 유해한지, 세계 어떤 국가에서도 아직 연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자담배는 어떤 성분의 많은 첨가제를 넣는지조차 모른다. 적어도 판매하기 전에 이를 알려야 하는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며 규제, 법안에 마련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전자담배가 담배보다 유해하지 않다는 인식은 판매사의 주장에서 나온 의견이다. 사업자의 광고가 아닌 정확한 정보가 전달돼야 한다. 소비자 상담에서는 기기 관련 안전성 문제도 많이 지적되고 있어, 이에 대한 연구도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일반 담배는 경고문구, 사진으로 유해하다고 인식되는데, 전자담배는 청소년 노출에 있어 경각심이 여전히 부족하다. 무엇보다 청소년이 유해환경으로부터 제대로 보호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확한 정보전달의 시급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