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의 중환자실
그렇게 중환자실에서의 생활은 시작됐고 그 곳에서
산소호흡기와 여러 개의 줄로 이어진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새벽예불과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는 일뿐이었다.
하루에 적어도 두 명씩은 죽어나가고,
새로 수술하고 와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
몇 달째 정신이 안 들어 울면서 하소연하는 보호자들,
나는 지옥을 미리 와본 느낌이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도 금할 수가 없었다.
‘부처님 법만 미리 알았다면 이토록 고통도 느끼지 않고
편안하고 환희심 속에서 병원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신경외과의 중환자실은 24시간 긴장상태이기 때문에
불을 끄지 않는다. 달리 잠자는 시간이 없다.
잠을 잘 수도 없고 잠도 오지 않아 새벽 4시쯤 되면
물을 놓고 기억나는 대로 예불문과 천수경 반야심경을 하고
관음정근을 하고 그 물을 마셨다.
간호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혼자 모든 걸 해내려고 애썼다.
수술결과는 아무 것도 보장 받을 수 없었다.
팔다리의 마비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될지 수술 후에도
중풍환자처럼 팔다리 마비상태로 그냥 지내야 될지
어떤 후유증이 올지 다시 재수술을 해야 할지 모든 게 미지수였다.
하지만 나는 매일 매일이 즐겁고 감사했다.
며칠 만에 멀겋게 나오는 미음에도 감사하고
친절한 의사선생님과 간호사,
면회 와서 걱정해주는 가족 친구들 남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신 관세음보살님 모두가 감사했다.
아직은 어린 둘째딸이 어린 나이 때문에 면회가 되지 않자
울다, 울다 그냥 갔다고 친정엄마가 전했다.
갑자기 엄마가 걷지도 못하고 이상한 짓을 많이 해서
엄마 옆에서 심부름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너무나 급하다고 해서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얼굴도 못 보고 당부도 못 하고 갑자기 와버렸다.
아이들 때문에 나는 내 힘과 의지로 일주일 만에 나가리라 작정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기도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했다.
그 결과 너무도 빨리 회복되고 있었다.
중환자실에는 여러 개의 침대가 굉장히 넓게 분포돼 있는데,
나의 가장 가까운 쪽의 침대에 있는 50대 초반 정도의
아주머니 환자는 8개월째 혼수상태로 있었다.
하루 종일 엄마를 찾으며 부른다.
아마 무의식 중에도 엄마만 있으면 이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리라는 생각에서인가 보다.
밥도 안 먹고 약도 안 먹고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산소호흡기와 뇌로 연결된 여러 줄 중 하나라도 빠지면
위험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온몸을 꽁꽁 묶어 놨다.
그러니 면회시간에 온 열 몇 살짜리 아들과 스물이 갓 넘은 듯한 딸은
엄마를 붙들고 “엄마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라며 울다, 울다 간다.
그 어린것들이 막대한 병원비를 감당 못해
의사선생님께 그냥 퇴원 시켜달라고 하소연한다.
그 말을 듣고 너무나 울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했다.
‘관세음보살님 차라리 저분 대신에 저를 데려가세요.
저는 부처님 법 속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고 또 죽는다 해도
어떤 방법으로든 부처님 법 속에서 살 테니까
저분 대신에 저를 데려가 주세요.’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순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는지
그 아주머니에게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누워서 꼼짝할 수는 없으니 천장을 본 채로 소리를 질렀다.
“아주머니 제 말 잘 들으세요.
제 말 잘 들으면 엄마한테 가실 수 있어요.
지금처럼 밥도 안 드시고 약도 안 드시고
간호사선생님 말씀 안 들으시면 절대로 낫지 않아서
엄마한테 갈 수 없으니 꼭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50대 무의식 환자의 “엄마, 엄마”
그 아주머니께서 듣든지 못 듣든지 큰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아주머니께서 그 때부터
식사도 하고 약도 고분고분 드신다는 것이었다.
그 후 갑자기 일반 병실로 옮겨도 좋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중환자실에서 6일 만에 일반병실로 옮겼다.
그 후 그 아주머니의 상태를 끝까지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잘 치료가 됐으리라고 생각한다.
일반병실에 와서 재수술 들어가며 불안해하는 여대생에게
팔에 있던 합장주를 껴주며 기도해 주었고,
치매로 불안해하는 할머니께는 10년간 지닌 108염주를 쥐어주며
돌리는 법을 알려드렸을 때 편안해 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이런 인연들을 맺게 해주신 것에 대해 부처님께 감사드렸다.
하지만 나의 너무나 부족한 공부를 절감하였고
여기서 퇴원하면 부처님 공부를 제대로 해보리라 결심했다.
그 이후로 2년간의 불교대학공부,
그 후에 다시 승가대학부설 김포불교대학에 재입학하여 포교사가 되었다.
다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며 지금은 제대로 된
포교사가 되어보려고 연수와 기도, 군법회로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그 때 만난 관세음보살님은 지금도 매월 초하룻날이면
홍련암의 파도소리에 어우러지는 비구니스님의 간절한
염불소리와 함께 만난다.
병실에서 혼자 물 한 잔을 놓고 올리던 새벽예불을 이제
홍련암을 비롯해 직지사, 법주사 등 전국에 있는 모든 절에서
삼라만상을 깨우는 범종소리, 목탁소리와 함께 올리고 있다.
5.불교대학 입학…보살행 서원
언제까지 이 행복한 시간이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남겨진 시간동안 여러 방편으로 부처님법을 펴고 싶어
방송대 국문과에도 입학해서 하루를 48시간으로 쓰고 있다.
나를 걱정해주시는 분들은 건강을 염려하지만,
아직은 재발의 위험도 없이,
물론 약간의 후유증으로 힘들기는 하지만 그 또한
기도정진을 게을리 말라는 뜻으로 알고 함께하련다.
어디 어느 곳을 가나 부처님 법음이 가득한 이 도리를
보다 많은 이들이 깨달아‘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실천하는 진정한 불자의 길을 가게 해달라고 발원해본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조금은 절절히 느껴
형식적인 위로가 아닌 부처님 마음의 끝자락이라도
흉내 내며 가슴 아파할 수 있게 됐다.
이제 10월 첫째 주에는 매월 나가는 군법회의 창립법회행사,
둘째 주의 해인사 보살계 행사,
셋째 주의 적멸보궁 철야기도,
넷째 주의 선운사 문학기행 등 바쁜 일정이지만
만나는 사람 모두가 한 분 한 분 부처님이라 생각하며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드린다.
단풍이 지고 있는 초겨울에 나는 다시 또
새로운 부처님을 만나러 떠날 것이다.
-월간불광 창간 30주년 기념 신행수기 공모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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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가현(昭歌縣)에서
일본의 소가현(昭歌縣)이란 시골의 빈촌 농가에 정자라는 딸을 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어느 사람의 소개로 동경에 있는 부호집에
정자를 하인같은 가정부로 보내게 되었는데
집안이 극빈하여 떠나는 딸자식에게 아무것도 기념으로 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불심이 깊은 사람이라 '나무관세음보살'의
글자를 얇은 종이에 써서 조그만 주머니 속에 넣어서
그것을 옷깃 깊숙이 넣고 바늘로 꿔매주며 그 딸에게 이르기를
'정자야,너의 옷깃 속에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니 그리 알고
불철주야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불러라. 그리하면 너의
신상이 편안하고 장차 귀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일러 주었다.
정자는 착하고 고지식하여 동경으로 가서 가정부로 일하면서
어머니가 가르친 대로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찾았다.
그 부자집에는 10 여명의 일하는 여자들이 있었는데 신참인
정자에게 온갖 궂은 일만을 골라서 떠 맡겼다.그래도 정자는
관세음보살만을 생각하며 불평불만 없이 열심히 맡은 일을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를 반년이 지나서 정자가 생각하기를
관세음보살을 몸에 지닌 채 화장실에 드나드는 것이
불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사이에 옷깃 속에서 주머니를
꺼내어 복도 마루기둥 갈라진 틈새에 살짝 끼워 놓았다.
그후 정자는 밤마다 다른 아이들이 잠자는 틈을 타서 살짝
일어나서 기둥을 향하여 수십번씩 절을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그러다가 어느날,이것을 안 한 아이가 정자를 놀릴 속셈으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짜고 정자를 밖으로 심부름 보내놓고
그 주머니를 꺼내고 그 자리에 멸치대가리를 대신 넣어 놓았다.
그리고 몇일이 지난 뒤에 여러 아이들이 밤늦도록 자지않고
있었는데 그날도 여전히 정자가 나아가서 그 기둥을 향하여
절을 하는 것을 본 아이들이,
"야! 이 못난 것아, 거기에 무엇이 있다고 절을 하느냐.
아직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쓴 쪽지가 있는 줄 알고
절을 하느냐.
우리들이 벌써 주머니를 꺼내고 거기에 지금은 멸치대가리 밖에
없는데 그것을 모르고 절만 하는구나.이 어리석은 것아,
그만두고 방에 들어가서 잠이나 자거라"
하였다. 그러나 정자는
'너희들이 그런 못된 장난을 하였구나.너희들이 멸치대가리로
바꾸어 넣었거나 말거나 나는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는 것으로
믿고 예배 공양을 할 따름이니 너희들이나 참견말고 들어가서
잠이나 자라"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절만 한다.그런데 여러 아이들이
살펴보니 멸치대가리를 끼워 놓은 기둥 구멍에서 방광(放光)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구멍에서 관세음보살님이 오색구름을 타고 나타나시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본 여러 하녀들은 무의식적으로 '나무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무수히 예배하였다.
이 사실이 주인에게 알려지게 되자,신심이 강한 주인 내외분은
이 아이를 며느리로 삼게 되었으니 여러 하인들이 이제까지
촌뜨기 바보라고 업신 여겨왓던 정자를 이제는 아씨 상전으로
모시고 섬기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 일본에서는 "멸치대가리도 신앙심이 진실하기만
하면 관세음보살로 화현(化現)한다" 라는 말이 유행 되었다.
도서(초발심불자를 위하여)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