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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호 저술가 · 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1945년 2차 대전이 독일-이탈리아-일본의 패망으로 끝나면서 미국은 ‘자유의 십자군, 승리의 나라, 세계 최강의 국가’임을 세계만방에 각인시킨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정은 180도 달라진다. 대전 이후 최근까지 미국은 큰 규모의 전쟁에서 5번 싸워 단 한 번 이겼다. 1991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대상으로 한 걸프전을 빼고, 한국, 베트남, 그리고 9/11사태 이후 2003부터 2011년까지 이라크 영토에서 벌인 전쟁, 아프간에서까지 모두 이기지 못하거나 졌다. 이뿐 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이하 우크라) 전쟁에서도-이는 앞의 사례들과 매우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할 수는 없으나-러시아의 승리를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미군은 정말 강한 것일까? 낯선 질문처럼 들리지만 군사안보 분야에서 이미 많은 연구와 논란이 진행되고 있는 물음이다. 자료는 온라인으로 얼마든지 검색 가능하고 페북에서도 종종 좋은 자료를 접할 수 있다. 다른 논지의 주장도 많지만, 여기서는 자타 공인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의 문제를 이들 자료에 기초해 4가지 정도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상대에 대한 무지의 문제
지피지기는 싸움의 기본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미국의 첫 번째 문제는 상대에 대해 무지할 뿐 아니라 공부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만한 무지이다. 미국이 아프간 전쟁에서 패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서류상 미국은 고성능 무기를 포함 아프간 군인 30만 명을 훈련시켰다. 그런데 양치기 탈레반에 졌다. 분석에 따르면 특수부대 3만을 제외한 나머지 군인들은 서방의 졸개로 처신하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를 위해 싸울 의지가 전혀 없었다. 이들은 탈레반에 투항했다. 베트남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은 호치민과 하노이 정부를 소련과 중국의 꼭두각시 정도로 인식했고 베트콩을 무장 민병대 수준으로 간주했다. 남베트남의 친미정부가 부패와 무능 자체라는 정보보고는 무시됐다. 미국의 전쟁 지휘부는 북베트남을 중무장한 미군의 화력으로 3년 안에 밀어붙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호치민 정부와 인민의 강고한 민족적 의지와 그것이 가진 단단한 힘은 무기 이상의 것이었다.
상대를 모르는 문제 중에는 전쟁의 성격 자체에 대한 이해 부족도 포함된다. 앞서 든 여러 전쟁은 대체로 내전의 확대판이다. 내전은 첨단화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갈등이 아니다. 예를 들면 종교적 갈등처럼 힘으로 정리될 수 없는 것들이다. 심지어 이라크에는 9/11 테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거짓 명분을 만들어 쳐들어갔다. 전쟁의 목표가 분명할 리 없다. 때문에 도덕적, 정치적 명분-요새 미국이 내세우는 말로 하면 가치동맹, 가치외교-을 내세워 끼어들었다. 사실 미국은 이 나라들을 잘 모른다. 언어도, 전통도, 지리도, 종교도, 갈등의 내용과 성격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고성능 무기만을 무차별적으로 쏘아대었다. 민간인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라며 밀어붙였다. 이런 전장에서 2차대전 스타일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르딘 독트린(Ledeen doctrine)이라는 용어가 있다. 1990년대 미국을 풍미했던 네오콘 외교 전문가 중 하나인 M. 르딘이 내세운 논리를 칭한다. 월포위츠 독트린이 미국의 세계 지배를 그린 것이라면 르딘 독트린은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론이다. “저항하는 약자에게 최대한의 징벌을 가함으로써, 미국의 힘을 과시하면, 그것이 다른 나라에 교훈이 된다”는 것. 여기서 ‘저항하는 약자’ ‘징벌’이란 필자가 점잖게 번역한 것이고, 르딘은 실제 ‘조무래기 국가들(small crappy countries)’이라고 불렀고, ‘패대기를 치고’라는 식으로 말했다. 조잡하기 그지없는 아이디어지만 문제는 네오콘들이 그런 수준의 사고방식을 가졌고, 또 그 수준에서 정책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군사력을 믿고 사회체제를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모르는 대외정책이 실패할 것은 애초부터 자명한 일이다.
2. 현장과 지휘부의 괴리 문제
패배한 전쟁을 분석한 연구자들이 끌어낸 미국의 문제점 중 하나는 현장에 대한 정보수집이 부족하거나, 수집한 현장정보가 상층부의 정책결정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설령 전달되더라도 중요한 판단자료로 취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 중 하나는 정보의 소비자-즉 대통령을 포함한 정책 상층부 관료들—들의 선입견이나 편견, 거칠고 둔탁하게 들리는 현장정보보다 이론적으로 정리되고 객관적 수치로 표기된 정보가 선호되는 정책환경 때문이라고 한다. 현장정보의 실패가 아니라 상층 지휘부의 실패라는 의미이다.
베트남 전쟁의 경우 CIA의 현장정보는 정확했다. 그러나 정보는 대통령과 보좌관들이 품고 있는 ‘도미노 이론’과 맞지 않았다. 베트남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전쟁을 벌인 것이 아니라는 보고를 받았으나 그들은 현실을 보려 하지 않았다. 대통령과 보좌관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보았다. 같은 일이 부시의 이라크 전쟁에서 반복되었다. 체니, 럼스펠드 등 강경 네오콘들은 침공이 더 많은 문제를 낳을 것이라는 정보보고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아예 정보를 자신들의 노선에 맞게 수정-예를 들면 있지도 않은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해버렸다. 대통령은 이들에 의해 가려졌다. 군과 정보당국의 위험보고는 무시되었다.
1979년 2월 이란 혁명. 그때까지 미국의 호위 속에 온존하던 팔레비 왕정이 무너졌다. 혁명이 오고 있는데도 카터 대통령은 왕정을 ‘혼돈의 중동지역에서 단 하나의 안정적인 섬’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백악관은 이란 인민들이 품고 있는 팔레비 왕정에 대한 반감과 미국에 대한 증오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건 CIA 같은 정보당국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팔레비의 정보기관에 의존했기 때문이었다. 거리에는 반미정서가 넘쳐나는데 팔레비 정부는 듣고 싶은 정보만을 미국에 전달했다. 혁명과 함께 이어진 테헤란 대사관 인질사태에 미국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현장을 몰랐던 미국의 실책은 1980년 ‘데저트 원’이라고 불렀던 인질구출 특별작전의 처참한 실패로 고스란히 재연되었다.
한편 1980년대 이래 오늘날까지 미국의 대외정책은 네오콘들이 좌우한다. 이들은 ‘제국의 논리’로 무장된 인물들이다. 미군의 정체성과 임무도 여기에 연결되어 있다. 미군은 자기 나라를 방위하는 군대라기보다 미국의 다국적 경제와 세계화 이데올로기를 수호하는 제국의 첨병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군 상층부에 넘쳐나는 것은 국제 정치경제 이론가들이고 모자란 것은 전쟁의 현실과 현장을 꿰뚫어볼 줄 아는 지휘관이다. 군이라는 조직이 갖추어야 할 본래적 의미의 전문성, 실무역량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전쟁 패러다임 변화와 군수산업의 문제
상식적인 얘기지만 전쟁의 승리를 보장해주는 공식은 없다. 같은 맥락에서 첨단성능의 무기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전쟁의 승리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무기체계는 끊임없이 달라지고 전쟁의 패러다임 역시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이번 우크라 전쟁에서 나타난 특징 중 하나로 꼽는 것은 우크라든, 러시아든 공군의 존재감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전투기나 헬기가 아니라 드론과 미사일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방공무기의 발전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우크라 미사일 한 방에 러시아 흑해함대의 지휘함이 침몰한 것이다. 최근 초음속 미사일의 발전이 눈부시고 그에 관한 한 미국보다 러시아가 적어도 몇 년은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항공모함 중심의 전략을 가진 미국에는 커다란 위협이다. 항모의 이점은 전 세계 어느 곳이든 막강한 화력을 이동시켜 상황에 비교적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추적도 어렵고 요격도 사실상 불가능한 초음속 미사일에 흑해함대의 기함처럼 항모가 피격된다면 미군의 전쟁은 불리한 상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이든 러시아든 중국이든 새로운 전쟁 개념을 만들고 첨단무기를 아무리 발전시킨다고 해도, 상대방의 전력 역시 그에 못지않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기 그 자체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일 수는 없다. 설계도의 제원상으로는 미국 무기가 최강일 수 있겠으나 실제의 현장에서도 그러할지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미국의 경우 첨단무기에 대한 요구가 유달리 강하다. 적국의 위협과 경쟁요인도 있지만 군수산업과 연관된 국내적 요인들이 더 크게 작동한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미국의 무기산업은 자본주의 기업체들이 책임지고 있다. 첨단무기일수록 기업의 이익도 커진다. 이익이 큰 만큼 로비의 힘도 강해진다. 또 개발과 생산에 긴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는 만큼 첨단무기 구매는 정년 이후 군 당국자의 재취업이나 소득에도 무척이나 긍정적이다. 첨단무기는 정치인들에게도 유리하다. 무기회사에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지역 일자리와 경기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의원의 정치생명도 연장해준다.
이러한 이익의 사슬구조가-군사적 케인즈주의라고도 불리는-군수산업 관련 기관들의 조직문화를 구성한다. 일찍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탄했던 ‘군산복합체’의 문제다. 오늘날 복합체는 ‘군-산-정(의회)-언(언론)-학(학계) 복합체’로 더 커졌다. 군산정언학 복합체의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국가의 전략목표보다 자신들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점이다. 다만 그 이익을 국가이익의 이름으로 포장할 뿐이다. 첨단무기는 이를 실현하는 가장 좋은 소재이다.
4. 무기생산 역량의 문제
지난 2021년 오스트레일리아는 무려 660억 달러에 이르는 프랑스제 잠수함 구매계약을 취소하고 대신 미국의 잠수함을 구매하기로 했다. 그런데 미국이 계약 일정에 맞춰 배를 인도할 수 없다는-실제는 인도 자체가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사실이 드러났다. 왜? 자기네 해군의 수요조차 맞출 수 없을 만큼 미국의 선박 제조능력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미국은 우크라에 보낼 155미리 포탄을 한국에서 사갔다. 포탄 공급량이 소모량을 감당치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올해 1월 말, 나토 사무총장은 한국, 숄츠 독일 총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방문, 우크라 무기지원을 요청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우크라 전쟁으로 지금 미국과 유럽의 무기, 탄약 등 군수물자 재고는 비상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채워놓는 데 향후 수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55미리 포탄을 생산하는 공장은 펜실베니아에 있는 제너럴다이내믹스의 스크랜턴 공장 단 한 군데이다. 이곳의 한 달 생산능력은 1만 4000발. 하루에 6000발 이상 쏴대는 우크라의 수요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향후 3년 안에 3만 6000발 생산능력으로 증설한다지만 그것으로도 모자란 것이다. 한 군사 전문가는 ‘무기 생산능력’이 전쟁을 좌우한다는 것을 우크라 전쟁이 보여주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제조업을 하청으로 유지한다. 군수물자 역시 마찬가지다. 쉽게 말해 미국 무기의 부품이 예를 들면 중국의 공장에서 오는 것이다. 공급사슬이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탓에 어느 한 곳에서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시스템 전체는 중단상태에 빠진다. 물리적 네트워크와 사이버 네트워크의 결정적 차이다. 미국이 우크라에 무기를 더 빨리 공급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의 하나는 제조업 기반을 다른 나라로 옮겨버린 탓에 국내에서 무기생산을 완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의 산업능력은 T90 전차를 연 1000대씩이나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실물경제 중심으로 경제를 꾸리면서 러시아가 확실한 물적 기반을 갖춘 덕에 전쟁수행 역량의 우위를 점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물경제 중심과 금융자본 중심의 경제체계가 어떤 차이와 결과를 낳는지 이번 전쟁은 확연하게 보여준 셈이다.
결론:미군은 세계 최강일까?
물론이다. 미국은 군사력뿐 아니라 경제, 문화 등의 측면에서도 세계 최강이다. 문제는 그 강력함이 승리로 이어지기는커녕 실패한다는 점이다.
이유는 외부에 있지 않다. 앞서 살펴보았듯 내부적 요인들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부적 요인의 핵심은 무엇일까? 우월주의와 예외주의가 뒤섞인 ‘문명적 오만’ 때문에 자신의 문제를 알면서도 고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S. 헌팅턴이 지적하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사회가 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기도 하다. “서구는 이념이나 가치, 종교의 우수성 때문에 자신들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은 다른 나라와 문명에 자의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지구적 범위의 갈등과 위기를 초래하는 가장 위험한 행위임을 깨달아야 한다. 서양의 문명은 서양의 문명일 뿐이다. 세계는 다양한 국가와 문명의 집합체이다.”
미국이 막강한 힘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다문화적 세계에 대한 인식의 부재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과 미군은 세계 최강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