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수저의 등급
민병식
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기도 하고 숟가락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음식을 먹기 위해 사용하는 수저라는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사람의 계층을 비유하는 단어로 변질되었다. 부유한 가정이나 권력가에서 태어나면 금수저, 부모의 충분한 경제적 지원을 못받는 가정에서 태어나면 흙수저라고 하는 자조
섞인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금수저로 태어나면 이미 만들어져있는 부모의 후광으로 가만히 있어도 부유하게 사는 것으로 인식이 되고 흙수저 출신들은 열악한 가정
환경에 먹고 살기도 힘드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
과 출발부터가 다른 셈이 된다.
농담으로만 들렸던 수저의 등급이 최근에는 더욱 세분화 되어 금수저 위에 다이아몬드 수저, 그 위에 플라티늄 수저가가 있고 금수저 밑에는 은수저, 동수저, 놋수저, 플라스틱수저, 흙수저가 있다고 하니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만들어낸 웃지못할 시대의 헤게모니다.
고착화된 계층 간 차이를 없애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세월이 흐를수록 계층의 차이는 더욱 심화되고 신분
상승의 사다리는 없어져 간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당연히 금수저를 가질 수 있어야하는데 금수저는 계속 금수저, 흙수저는 계속 흙수저로 대물림되는 빈곤의 악순환은 극복 불가능한 사회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속담의 대표적 사례였던 사법고시가 폐지
되고 돈이 없으면 접근조차 불가능한 로스쿨 제도로 바뀐 것도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반전의 여지는 없을까. 내 부모가 내게 금수저를 쥐어주지 않았다고 해서 한탄 속에서만 살 것인가. 또 그냥 태어난 대로 흙수저로만 살아야하는 것일까. 부자인 금수저는 모두가 행복할까 등의 의문이 생긴다.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러나 행복의 기준은 각자 다르다. 꼭 반짝반짝 빛나는 금이어야 금수저이고 부모의 후광을 물려받아야 금수저인지는 모르겠다. 부자든 가난하든 부모에게 있어 아이는 최고의 보물이다. 부모의 둘도 없는 사랑으로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자란다면 아이는 황금보다 소중한 존재 아닌가. 모두가 재벌이 될 수 없듯이 똑같은 것을 성취할 수는 없다.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밥을 먹더라도 세상에 꼭 필요한 소중한 존재의 역할을 한다면 금보다 더 빛날 것이다.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진정 가치 있는 것은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고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노력으로 이루어낸 결과들이며 타인을 위해 애쓴 시간 들,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꿈과 희망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들이다.
중국을 통일하고 진나라를 세운 진시황은 영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구하려고 신하를 세계 각지로 보내 온갖 진귀한 약초를 공수해와 먹었으나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아무리 비싼 음식을 먹고 좋은 옷, 좋은 집에 살아도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다. 세상을 떠날 때 평상시 쓰던 수저 한 벌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다면 설령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돈많은 금수저라 할지라도 당사자는 더 높은 다이아몬드 수저가 되기 위해 발버둥을 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의학자인 허준 선생은 태생 자체가 금수저가 아니었음에도 동의보감이라는 우리나라 최고의 의학서를 남겼고 천재화가 김홍도는 몰락한 중인 출신
이었다. 또, 황진이는 기생이었지만 시, 서, 화에 능한 당대 최고의 여류문인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부자 들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부러워하던 남매가 요정할머니의 부탁으로 행복을 의미하는 파랑새를 찾아 여러 세상을 해맸으나 그 어디서도 찾지 못하고 결국 집에 돌아왔을 때 파랑새가 집에 있었다는 벨기에 동화 '파랑새'는우리가 원하는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고 말한다. 힘들더라도 참고 이겨내는 인내, 힘든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긍정, 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 자신을 빛내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진정한 금수저이지 않을까. 영리하지만 선하지 못한 삶보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사는 감사의 삶, 부족하지만 함께하는 나눔과 용기를 잃지 않고 도전하는 희망의 수저가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