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차 청주 산악회 등반 일정을 다음과 같이 알려드립니다. 가족 동반 환영이며 많은 동기들이 참석해 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진천 사석에 있는 만뢰산은 보탑사와 진달래로 유명한 곳입니다.
진달래 꽃밭에서 가족들과 즐기는 만찬! 모두 기대하세요.
1. 행선지; 진천 사석 만뢰산 2. 집결시각; 2006.4,16(일) 09:00. 3. 집결장소; 수동 초우마을 (김인기 동기 운영
4. 준비물; 등산화, 방풍방수의, 배낭, 모자, 장갑, 식수, 간식 (점심을 해결할 정도로 많을수록 좋음) 그리고 기름값 정도의 교통비+@
5. 참고로 이동은 김인기 동기 차량으로 이동예정임; 부족시 이성모 원장, 이정화 차량으로 이동예정
6.가급적 음주가무는 사양합니다. 적당한 몸풀기 정도의 반주만 허용 예정
1.등산화; 등산은 발로 하는 것이므로 등산화에 대한 투자에 인색해선 안된다. 2. 방풍방수의; 비맞아 저체온증이 되면 곤란하므로,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3. 배낭; 손에 물건을 들면 위험 요소가 증가하므로 필수품이다. 4. 기능성 내의; 면내의가 땀에 젖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많으므로, 등산장비점에서 구입해야 한다. 모든 종류의 내의가 다 있음. 5. 등산바지; 신축성이 좋은 등산전용 바지를 입어야 함. 청바지 절대 불가.
만민(萬民)이 기대고 산 ‘生居鎭川’의 진산 만뢰산성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onthly.chosun.com%2Fupload1%2Foblee%2Flob040507_1.jpg) <석성 터>
어디나 명산에는 대찰(大刹)이 있다. 그 뿐인가. 나무와 바위와 계곡에는 저마다 전설이 열려있다. 명산 기슭에서는 그 산의 정기를 타고 태어난 명인들이 있다. 높기만 하다고 다 명산이 아니다. 산이 낮다 해도 산세나 풍기는 분위기가 뭔가 다른 산들이 있다. 김제의 금산사가 그렇고 경주 남산이 그렇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onthly.chosun.com%2Fupload1%2Foblee%2Flob040507_2.jpg) <만뢰산성터>
또 하나 옛부터 들이 넓고 물산이 풍부하여 살기 좋다 해서 ‘살아 진천, 죽어 용인’이라는 말 있었다. 그 말마따나 ‘생거진천(生居鎭川)’의 으뜸으로 알려진 만뢰산(萬賴山, 611.7m)이 진천에 있다. 일명 보련산·만노산·금물노산·이흘산이라고도 불렸던 이 산은 충남 천안시와 충북 진천군의 경계인 진천 연곡리와 백곡면 대문리에 솟아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onthly.chosun.com%2Fupload1%2Foblee%2Flob040507_3.jpg) <비선골 보탑사>
만뢰산 기슭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3층목탑이 있는 보탑사가 자리잡고 있는가 하면, 통일신라시대 명장 김유신(金庾信) 장군의 탄생지가 있다. 수해(樹海) 한가운데 펼쳐져 있는 만뢰산 연봉들은 활짝 핀 연꽃을 닮아 꽃잎처럼 부드럽다. 만뢰산 정상은 그 가운데 제일 큰 꽃잎이다. 우리나라 불교건축의 정수로 꼽히는 보탑사 3층목탑은 바로 연꽃술에 해당하는 곳에 앉혀져 있다.
진천군에서 제일 높다는 만뢰산은 옛날부터 군사요충지였다. 정상에는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쌓았다는 둘레 1,300m나 되는 석성이 있다. 빗물을 모아 두었다가 썼을 우물터와 망루터·깨진 토기와 와당 그리고 이곳저곳에 나뒹구는 돌무더기를 들춰보면서 1,500년 전의 만뢰산성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러나 최근 만뢰산의 모습이 확 바뀌었다. 우리나라에 3기 뿐인 고려 초기 때의 것으로 보이는 백비(白碑, 비문이 새겨있지 않은 비, 보물 제404호)와 5층 석탑만이 뒹굴던 비선골(碑立洞)에 큰 절이 섰다. 바로 그 절터에 우뚝 선 보탑사 3층목탑을 보려고 전국에서 수많은 산도들이 찾아온다. 20여 농가가 계단식 논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살던 비선골이 떠들썩해졌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onthly.chosun.com%2Fupload1%2Foblee%2Flob040507_4.jpg) <태령산>
전의(全義) 이씨들만 모여 살던 비선골에 아스팔트길이 나고 대형버스들이 줄지어 들락거린다. 뿐만 아니라 만뢰산 한가운데로 송전탑이 늘어서고 산허리에는 임도가 났다. 계곡을 따라 음식점들이 자꾸 들어서다 보니 산도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뿐만 아니라 진천의 명물인 참숯을 굽느라 검은 숲이 차례로 잘려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라에 난리가 나면 병정들이건 백성들이건 모두 다같이 피신하던 곳, 산 이름 그대로 만민이 기대고 살았던 만뢰산이 베풀기만 하다가 끝내 뭉개지고 있다.
진천만뢰산에서~ | 야생화 사진 |
2005.04.12 1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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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안성·진천의 경계에 서있는 명산
[산행 길잡이]
만뢰산 등산로는 계곡과 능선을 따라 거미줄처럼 나있다. 문봉리 김유신 생가터 뒷산으로 김유신 장군의 태가 묻힌 태령산에서 시작하여 만뢰산을 잇는 능선을 한 바퀴 돈 다음, 보탑사가 있는 비선골로 내려오는 산길을 택하는 것이 오가기 쉽고 주변 볼거리도 있어 좋다. 김유신 탄생지에서 200m쯤 내려와 지능선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태령산 정상에서 1시간쯤 능선길을 따라가면 쥐눈이에서 올라오는 안부고개를 지나 사송리로 내려가는 임도 고갯길에 다다른다. 만뢰산 정산으로 가는 능선길이 넓게 나있다. 여기서부터 참나무와 소나무 숲속으로 지그재그로 난 능선길을 30여분 동안 숨가쁘게 오른다. 560m봉을 지나면서 힘들지 않고 느긋하게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내비치는 숲길을 오른다. 30여분쯤 더 가면 만뢰산 정상이다. 정상은 평평하게 닦인 헬기장이다. 뾰죽한 봉우리를 깎아내어 아마도 정상의 높이가 1~2m는 낮아졌을 것이다. 정상 주위에 신라가 쌓은 석성이 있는데 풀숲에 가려 잘 보이질 않는다. 헬기장 한쪽 귀퉁이에 움푹 패인 옛 우물터가 메워지지 않고 어느 정도 원형을 유지한 채 남아 있다. 여기 저기 널린 토기 파편과 기와 조각들이 옛 성터임을 일러준다.
정상에 서면 진천, 경기도 안성, 천안시 일대의 산과 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라의 전초기지가 들어설 만한 요충지이다. 하산은 비선골로 나는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중간에 보련계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잠시 망설이게 되지만 남쪽으로 뻗은 능선길을 택한다. 30여 분쯤 가다보면 왼쪽으로 꺾어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연꽃 모양의 연곡리 깊은 골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속에 둥지를 튼 보탑사도 내려다볼 수 있다. 보탑사 주차장까지 4시간 30분쯤 걸린다. 산행시간을 줄이려면 연곡저수지에서 임도를 따라 태령산과 만뢰산이 만나는 임도 고갯길로 올라가서 만뢰산 정상을 오른 다음, 비선골 보탑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해도 좋다 (약 3시간 소요). 진천에서 제일 높은 민뢰산을 올랐다는 감회도 크지만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金舒玄) 장군이 쌓았다는 신라 고성을 돌아보는 것도 만뢰산 산행의 의미를 더해준다.
비선골 보탑사 3층목탑 둘러보길
만뢰산에 올랐다가 들러볼 수 있는 명소도 많이 있다. 비선골 보탑사는 만뢰산 기슭 연곡리 절터에 우뚝 서 있다. 이곳 보탑사에는 경주 황룡사 9층탑 이후 처음으로 3층까지 지은 목탑이 있다. 탑의 높이는 42.71m, 1층의 넓이는 60.14평, 2층은 50.33평, 3층은 41.40평이다. 1층의 금당에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심주를 중심으로 약사보전·극락보전·대웅보전·적광보전 등 사방불을 모셨으며 2층 법보전에는 8만대장경을 모신 윤장대와 4면 벽에 한글 법화경을 새긴 석경이 있다. 3층 미륵전에는 미륵삼존불을 모셔놓고 있다. 먼 훗날 불교 문화재로 길이 남을 것이다.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김유신 생가터도 가볼 만한 곳이다. 연곡리 못미처 상계리 계양마을은 예부터 담안밭이라고 불렀다. 옛날에는 커다란 담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큰 주춧돌이 남아 있었다. 김유신 장군의 부친인 김서현 장군이 만노태수(萬弩太守)로 있을 때 이곳에 집을 짓고 살았으며 이곳 만뢰산성에서 백제군을 방어했다고 전한다. 이곳은 신라 진평왕 17년 (595년)에 태어난 통일신라의 명장 김유신 장군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으며 근처에 소년시절 말 달리며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치마대(馳馬臺)라 부르는 치마바위가 있다. 뒷산 태령산에는 김유신 장군의 태를 묻었다는 태실 유지와 주위에 돌로 쌓은 둘레 216m의 석성이 남아 있다. 생가터에는 현재 1983년에 세운 유허비와 비각이 남아 있다.
(대한문화재신문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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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지런한 이정화 총무님! 이번에도 역쉬... 이번에는 꼭 함께 하자구. 박해순 역사문화 교실 한번 더 열까? 그렇다면 강의 준비좀 해오고...
내 고향 연곡리...효자마을로 그 효자비는 할아버지와 백부의 효성을 기리고...만뢰산(萬賴山)이라고 임진란 후부터 불렀다지...임진란 때 지금 길상사 쪽에 왜놈들이 진을 치고 있을 때 만뢰산에 만 명이 피신하여 목숨을 구했다는 거지...그 전에는 만라산(萬拏?山) 이라고 아마 지네(?) 닮았다고 해서...내 기억에.
살아있는 역사를 공부도하고 체력도 다지고 친구와 우정도 나눌 수 있으니 이 아니 일석삼조리요? 그런데 마음만 있고 동참 못하는 심정도 헤아려 주길. 이번만은 아무일 없을런지...
정화야 다음번에는 경주 남산 등반계획을 세워보면어떨까?
그려~ 좋아! 내가 아름다운 풍경마을에 경주관련 기사 올려놓았는데 읽어보았냐? 언제 한번 뭉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