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들어 가는 작은 세상
돌하우스 공예
사람들이 가끔, 아니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내게 자주 묻는 말이 있다.
"언제부터 이런 작은 걸 만들기 시작했나?"
이다.
글쎄... 언제부터였을까... 굳이 머리를 쥐어짜듯이 생각해 본다면...시골에서 살던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세계여행 사진 책이 몇 권 있었다. 그 가운데 유럽을 소개하는 책을 아주 꼼꼼하게 들여다보던 기억이 난다.
독일 편이었는지, 프랑스 편이었는지는 잘 생각은 안 나지만 어떤 도시를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다음 장을 보니 그 배경 뒤로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 얼굴이 커다랗게 찍혀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미니어쳐로 만든 도시였다.
아!! 놀라워라!!그때 그 감동과 놀라움만큼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크면서도 그 사진의 감동과 모습은 잊혀지질 않았다. 꼭 유럽으로 여행을 가서 그 미니어쳐 도시를 보고 싶었다.
그게 내 꿈이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결혼하고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을 때, 두 딸이 인형을 갖고 놀 수 있는 집을 내 손으로 만들어주었다. 나무로 만든 선물 상자를 길에서 주워와서 작은 톱으로 썰고 갈아서 이층집도 만들어주고 의자, 책상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집 앞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행복했다. 그러면서 어딘가에 우리 아이들과 살 수 있는 마당이 있고 나무들이 있는 언덕 위에 작은 집을 한번 꼭 지어보리라 꿈을 꾸었다.
모든 꿈이 그렇듯이, 꿈은 꿈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살면서 알게 된다.
내가 짓겠다던 언덕 위에 집도 그렇다. 이루지 못한 꿈을 갖고 살면 언제나 아픔을 갖고 살게 되는 것 같다. 그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나만의 약을 갖게 되는 것도 또 하나의 살아가는 힘이다.
그 약이 바로 나에게는 ‘돌하우스’ 만들기다.
깊은 밤, 아이들이 모두 잠든 틈에 일어나 알프스 산에 하이디 오두막을 짓는다. 불쑥 나타난 귀여운 손녀딸에게 치즈를 구워주고 염소젖을 데워주던 벽난로를 만들고, 하이디가 잠들던 달빛 비치는 다락방을 만든다. 그러면서 나는 알프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잣나무 소리를 듣는다.
톨스토이가 쓴 ‘구두장이 마틴’도 만나러 간다. 구두를 고치고 살던 착한 사람 마틴.
추운 겨울, 배고프고 지친 몸으로 지나가던 가난한 엄마와 아기를 따뜻한 난로옆에 앉히고 빵과 우유를 주던 의자와 테이블을 만들 때, 러시아의 몰아치는 겨울바람 속에 피어나는 톨스토이의 인간애와 신에 대한 그의 열망을 생각한다.
구두장이 마틴 집을 돌하우스로 만들고 처음으로 작은 전구를 넣어 등불처럼 호롱을 만들어 켰다. 모두 불을 끄고 아이들과 들여다 보는데, 큰 딸아이가 속삭인다.
“엄마, 너무 행복해...”
행복해하는 우리 아이들과 나를 위해, 읽고 나서 마음에 깊이 남는 그림책, 이야기책, 소설책, 만화 속에 한 장면들을 작은 나무 상자라는 공간 안에 작게 만들어 채워나가다 보면 내 손으로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놀라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책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세상을 눈앞에 만들어 간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참 행복한 작업이다.
이번 겨울 방학, ‘꿈꾸는 교실’ 돌하우스 특강으로 만든 짱뚱이 만화 시리즈를 나는 너무도 사랑한다.
특히 짱뚱이와 짱뚱이 아버지 이야기를 보면 울 아버지가 생각난다. 2년전 쯤, 나에게 한없이 모든 걸 주었던 울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짱뚱이네 집 안방을 돌하우스를 만들었다.
어렸을 때 우리 집도 짱뚱이네 집처럼 둥근 나무 밥상이 있었다. 어느 여름, 식구들이 둥근 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데 형광등이 하필이면 밥상위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땐 형광들이 새로 나와 기술이 부족했는지 자주 떨어졌는데 그게 하필 밥상이었으니.... 펄펄 뛰는 엄마를 뒤로 하고 허허 웃으며 이건 최고의 영화 장면이라고 우릴 웃겨주던,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울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만들어갔다.
어렸을 때부터 놀던 곳, 살던 집, 그 거리, 골목... 이런 것들에 대한 추억이 없는 요즘의 우리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무엇을 떠올리며 자신의 마음을 보듬을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 쓸쓸해진다.
짱뚱이 돌하우스를 만들었던 친구들이 비록 시골에 살면서 짱뚱이처럼 살진 않았지만 짱뚱이의 어린 시절 추억들을 조금이라도 나눠 갖고 그 귀여운 아이네 집 방을 돌하우스로 만들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면 돌하우스가 주는 선물을 듬뿍 받아가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첫댓글 찌잉~ 찌잉~ 찌잉~
어쩌면- 요즘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옛날엔 말이야,한 식구들이 너 댓 명이 둘러 앉아 밥을 같이 먹는 일도 많았지. 적어도 일 주일에 서너 번씩은 됐었다니까. 요즘엔 형제 자매란 말도 모르는 애들이 많지만... 어쩌고저쩌고..." 이러지 않을까? 암울한 얘기가 될 것 같네.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