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은 이슈마엘이라는 인물이 초반부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선원들이 피쿼드호에 처음 탔을 때는 선원들 각자에게로 시점이 옮겨지고, 그 다음은 에이해브 그 이후는 3인칭 시점에 의해 소설이 진행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이슈마엘에게로 소설의 시점이 되돌아온다. 시점이라는 한 가지에 의해서만 <백경>을 볼 때는 일관되지 않고 작가가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편한 대로 자꾸 바뀌는 작품이다. 하지만 <백경>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먼저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들 수 있다. <백경>에는 성서에서 따온 인물들이나 이야기들이 종종 나오는데, 이슈마엘이라는 이름도 그렇다. 이슈마엘은 '추방자'라는 뜻이라고 밝혀주고 있다. 추방자가 이야기를 이끌어가게 하다니, 재미있는 설정이다. 그가 추방되기 전에 속해 있던 세계는 어느 곳일까? 소설 전체의 내용으로 볼 때, 흰 고래 잡기라는 집단무의식상태에 빠져있는 피쿼드호에서 혼자만 살아남아서 그렇게 이름지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에이해브 선장의 이름도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에이해브는 비참한 전사를 한 포악한 이스라엘 왕의 이름이라고 알려준다. 이름이 가진 뜻을 밝혀줌으로써 에이해브가 어떻게 죽을지 독자들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에이해브 선장은 피쿼드호에 승선한 고래잡이 선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선원들은 대부분 고래를 많이 잡아 만선의 귀향을 꿈꾼다) 모비딕이라는 흰 고래를 잡는 데만 관심이 있다. 에이해브가 흰 고래를 발견하는 사람에게 주겠노라고 선언한 금화로 선원들을 꾀고 자신이 흰 고래에게 품고 있는 원한을 공공연히 표현함으로써 선원들 전체가 흰 고래를 잡아야만 한다는 집단무의식에 빠지게 한다. 또한 이슈마엘이 피쿼드호에 승선하기 전에 만나는 일라이저라는 인물은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 엘리야와 이름이 같다.
<백경>이 흥미로운 다른 이유는 퀴퀘그라는 멋진 등장인물에 있다. 퀴퀘그는 식인종 추장의 아들이었는데 문명사회를 알고 싶어서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온 인물이다. 그래서 고래잡이배의 작살잡이가 된다. 퀴퀘그가 이슈마엘과 한 침대에서 자고서 그와 가까워지는 이야기가 <백경> 전체에서 가장 흥미로웠다. 언제나 고래잡이 작살을 지니고 다니고, 온 몸에 문신이 있으며 요조라는 나무인형을 숭배하는 퀴퀘그는 이슈마엘과 친구가 되자 그를 위해 방값을 대신 지불해줄 정도로 순박한 인물이다.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을 알기 위해서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를 과감히 뛰쳐나올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인물, 퀴퀘그와 같은 인물을 만날 수 있는 날을 꿈꿔본다.
이슈마엘이 피쿼드호에 승선하기 전에 들리는 교회와 그 교회의 목사인 매플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교회 전체의 구조가 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교회, 설교단에 올라가려면 배를 탄 채 밧줄을 잡고 끌어올려야 하는 교회의 모습과 전직이 선원이었다는 매플목사가 설교한 요나의 얘기는 소설 전체에 대한 큰 암시나 복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고래에게 잡아먹힌 다음에야 신을 믿지 않고 신에게서 벗어나려고만 했던 자신을 참회하게 된다는 요나의 얘기.
내겐 에이해브 선장보다 퀴퀘그나 매플목사가 더욱 관심이 가는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그래서 소설도 에이해브에 대한 서술이 중심이 되는 중반 이후보다는 퀴퀘그와 매플목사가 나오는 낸터킷의 장면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져서 마치 내가 낸터킷을 이슈마엘과 함께 거닐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