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인물사상 □ 국민화합을 방해하는 정치권과 언론의 이간질 (9807)

[Hey! jude]

국민 화합을 방해하는 정치권과 언론의 이간질

영·호남 화합을 위한 아름다운 행사

최근 민간 차원에선 지역감정을 극복하고 더 나아가 영·호남 화합을 이룩하기 위한 아름다운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몇 개월 사이에 벌어진 그런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해 보자. 심장병 어린이와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결성된 운전사의 모임인 `사랑실은 교통봉사대' 목포 지대와 영천 지대 대원들은 영·호남을 번갈아 방문해 어려운 노인을 위로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아파트연합회 광주-전남 지부와 울산, 부산 지부가 최근 광주에서 합동토론회를 열고 아파트 단지별로 결연을 맺어 농·특산물 직거래, `아나바다' 장터 공동 개최, 사돈맺기 등 행사를 벌이자고 합의했다. 경북 포항 지역에 살고 있는 `영·호남 부부'들이 모임을 결성해 영·호남간 미혼 남녀 중매에 나서기로 했으며, 내년에는 전국 각 도시별로 영·호남 부부 모임을 만들어 동서 화합을 다지는 데 앞장서기로 했다고 한다.

호남 지역의 전북대와 전남대, 영남 지역의 경북대와 부산대 등 4개 국립대학 신문사들이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원인을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공동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구 달서구와 광주 북구 주부들로 구성된 `푸른사랑 어머니회' 회원 80여명은 광주와 대구를 친선 방문하여 어려운 이웃에게 김치 담아 주기와 사랑의 대추나무 심기 등의 행사를 통해 지난 85년 이래 쌓아 온 우정을 더욱 굳게 다졌다.

이런 행사들은 우리가 처해 있는 경제 난국을 극복하는 데에도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범국민운동 차원으로 더욱 활발히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민간 차원에선 그렇게 아름다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치권은 어떠한가? 참으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추태가 벌어지고 있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의 지역분열주의 책동

한나라당은 지난 5월 8일 `DJ 정권 호남 편중 인사 실태' 백서를 발간했다. 나는 야당이 그런 백서를 정기적으로 발간해 행여 있을지도 모를 호남 편중 인사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백서 발간 자체에 대해선 크게 환영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내용이다. 그게 참으로 치졸하고 야비하다. 정략적 이익을 위해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 놓으려는 지역분열주의 음모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각 지역별 인구비에 따르면 호남은 11.7%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통계는 고향을 따지지 않는 거주지 중심의 통계인 셈이다. 그렇다면 각 부문별 요직에 등용된 인사들의 출신 지역이 아니라 주민등록 주소지를 따져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백서는 이 경우 출신 지역을 따졌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고향을 따진다면 호남 인구는 11.7%가 아니라 30%다. 호남 인구는 30%인데도 불구하고 장·차관급 및 1∼3급 공무원 가운데 호남 출신이 차지한 비율은 각기 20%와 23%에 지나지 않는다. 호남은 여전히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호남 출신 인구는 공식적인 집계가 어렵기 때문에 형식적인 통계연감 따위로는 밝히기 어려운 것인데, 30%는 이 분야의 권위자인 경북대 지리학과 박찬석 교수의 견해에 따른 것임을 밝혀 둔다. 6·4 지방선거 기간 중 여야 정당은 호남 출신 인구 비율을 놓고 설전을 벌였는데, 내가 어이가 없었던 것은 국민회의의 주장이었다. 한나라당이 19%라고 주장한 반면 국민회의는 23%라고 주장했다. 하기야 국민회의의 정보 수준이 겨우 그 정도니 당해 싸다. 이런 저능한 수준의 정당을 `비교적' 지지하는 내 신세가 처량할 따름이다.

어찌됐건 한나라당의 백서는 똑똑한 초등학생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궤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언론이 이 백서를 무시했다. 그런데 조선일보 5월 9일자 5면엔 한나라당이 만든 `김대중 정권 출신 지역별 요직 분포' 표가 크게 실려 있다. 그것도 눈에 잘 띄라고 색상까지 가미하는 성의를 보였다. 정말 용납하기 어려운 파렴치한 지역분열주의 책동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 놓고선 조선일보 사람들은 엉뚱한 말씀들을 하신다. 김대중 대통령이 지역감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떠들어 대는 것이다. 주간조선 6월 11일자를 보았더니 감낭기 기자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지역주의를 조금이라도 끌어내려, 지역 갈등이 직업과 계층, 쟁점에 따른 여러 갈등 중 하나로 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정계 개편이 기여한다면, 김 대통령은 그것만으로도 `역사를 바로 세운' 대통령이 될 것이다.'

백 번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조선일보 가 그렇게 앞장서서 깽판을 치는데 김 대통령이 무슨 수로 지역 갈등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에게 조선일보 를 폐쇄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모를까 말이다. 물론 나는 김 기자의 선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김 기자에게 지역주의를 고의적으로 악화시키려는 주범이 바로 김 기자 주변에 득실거린다는 사실에 한 번쯤 주목해 보라는 것이다.

　
이재오, 김덕룡, 조순의 망언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한나라당의 그런 궤변을 유포시키는 데에 앞장서고 있는 한나라당 인사들이 과거 민주화 투쟁 경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민중당 출신인 이재오 의원은 지난 5월 12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전체 인구에서 호남 인구의 비율이 11.7%에 불과한 데 비해'라는 말을 해 놓곤 고위 공직자들의 고향을 따졌다. 우둔한 것인지 사악한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전북 출신인 김덕룡 의원의 행태는 더욱 용납하기 어렵다. 그는 아예 백서 발표에서부터 속된 말로 총대를 멨다. 호남 출신이 호남 편중 인사를 비판하면 더욱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적어도 김 의원이 그런 궤변의 총대를 메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전주에 살아서 잘 아는데, 그가 과거에 했던 지역 관련 발언과 모순되는 게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호남 편중 인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호남인들이 먼저 돌을 던져야 할 것이다. 김대중 정권도 부분적으론 비판의 소지가 있는 일을 한 건 분명하므로 크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용납할 수 없는 것은 기초적인 사실을 왜곡하여 지역간 이간질을 하는 행위다. 그건 그야말로 망국적인 악덕이다. 국민은 화합을 하고 싶어하는데 왜 정치권이 이간질을 못 해 안달하는가? 다음과 같은 이간질을 어찌 용납할 수 있단 말인가?

'최근 한나라당 지도부는 대구·경북 지역 필승 대회에서 `난 간단한 사람이 아니여……. 한다면 하는 사람이랑께'라고 김대중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한 말을 흉내내며 `영남봉기론'을 부추겼다.'( 한국일보 , 98년 5월 15일)

6·4 지방선거전이 가열되면서 더욱 어처구니없는 발언들이 양산되었다. 지난 4·2 재보선에서 '김대중 정부의 호남 싹쓸이 인사로 여러분의 후배, 아들이 밀려나고 있다'는 망언을 한 바 있는 한나라당 조순 총재는, 5월 23일 부산 동래을 지구당 창당대회에서는 '새 정부는 충남 부여에 1,700억원을 들여 100만평 규모의 백제문화단지를 조성하고 전남 진도를 국제관광지로 발표하는 등 이 나라를 온통 전라도와 충청도의 잔치판으로 만들고 있다'는 제2의 망언을 했다. 5월 25일에는 춘천에 가서 '강원도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무대접을 받아 냉소의 대상이 돼 왔으나 이번에는 강원도의 힘을 보여 주자'는 제3의 망언을 했다. 그의 제4의 망언은 5월 28일 기자 회견에서 나왔다. '정부여당의 부정 선거운동이 시중에 나도는 얘기대로 호남 장기집권 50년 계획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인지 정부여당은 밝혀야 한다.'

이게 일국의 야당 총재의 수준이란 말인가? 내 직권으로 이 자리에선 `총재'라는 호칭을 박탈하겠다. 그는 그럴 호칭을 받을 자격이 없다. 한국 야당의 명예를 위해서다. `정부여당의 부정 선거운동'이란 말도 무책임하기 짝이 없지만, 뭐 `호남 장기집권 50년 계획'? 지나가던 똥개도 하품하며 웃을 소리를 그 타고난 진지한 낯빛으로 웃지도 않고 해 대니 정말 나 돌아 버리겠다.

　
어린이 교육을 위해 조순을 응징해야 한다

'선거 뒤 부쩍 어깨에 힘이 들어간 사람은 한나라당 조순 총재다. 여여·야 분열 덕을 봤지만 강원 승리는 수도권 완패와 대비돼 조 총재의 당내 입지를 세워 줄 가능성이 높다.'( 경향신문 , 98년 6월 6일)

더 돌아 버릴 이야기다. 사실 바로 이게 문제다. 조순은 선거 기간 내내 주로 강원도에 머물면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을 수없이 양산해 냈다. 나는 그 어떤 신문에서도, 심지어 한겨레 에서도 조순의 그런 망국적인 작태에 대해 따끔하게 비판을 가하는 사설이나 칼럼을 본 적이 없다. 도무지 응징이 없는 것이다. 그래 놓고선 선거 결과를 놓고 모든 언론과 지식인이 이구동성으로 `망국적인 지역감정' 운운 해댄다. 에라 이 한심한 인간들아! 그리고 조순은 어깨에 힘을 주면서 대권을 꿈꾸고 있으니 이런 일에 돌지 않으면 어떤 일에 돌겠는가?

내가 정말 돌았나? 자꾸 웃음이 나온다. 왜? 조순이 너무 운이 없기 때문이다. 내 말씀을 들어 보시라. 아마 옛날 같으면 그냥 적당히 넘어갔을 것이다. 선거만 끝나면 그런 망언들을 누가 기억이나 하겠는가? 조순은 다시 대권에의 꿈을 불태우기 위해 온갖 책략을 강구하고 자신을 존경한다는 제자들을 귀찮게 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잘못 걸렸다. 나는 끝까지 조순을 물고늘어질 것임을 지금 이 자리에서 선언한다. 왜? 대학 교수 출신으로 정·관계에 진출해 기성 정치인들보다 나을 게 전혀 없는 행태를 보여 한국 대학 교수의 명예를 훼손한 인물에 대해선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그래야 대학은 물론 한국 정치가 맑아진다. 더욱 중요한 건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교육적 효과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차분하게 다시 생각해 보자.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배울 만큼 배웠고 가르칠 만큼 가르친 사람이 왜 그런 망발을 저지르는 걸까? 국민일보 5월 27일자에 김성진 정치부장이 쓴 <지역감정과 아편전쟁>이라는 제하의 칼럼을 읽다 보니 거기에 그 답이 나온다. 이 칼럼은 한 중진 정치인의 고백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선거 때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처럼 확실한 득표 방법은 없다. 특정 지역이 인사에서 싹쓸이를 하고 있다, 우리 고향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소리치면 덤덤하던 유권자들이 금방 달아오른다. 나중에는 유권자들이 더 흥분해서 난리를 친다. 유세장에서 분위기가 오르지 않으면 지역감정을 밑바닥부터 건드려 박수를 유도한다. 그러나 지역감정을 자극해 표를 얻으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평소에는 반성하지만 선거가 시작되면 가장 확실한 득표 방법이라 어쩔 수 없다.'

조순에겐 이 고백을 한 정치인처럼 뒷맛이 개운치 않다고 느끼는 최소한의 양심은 있을까?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조순의 망언에 관한 한 한나라당을 비판할 생각은 별로 없다. 내가 보기엔 이런 망언에 대해선 김대중 대통령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겨우 이런 수준의 인물에게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산신령'이니 `포청천'이니 하는 별명을 붙여 주는 호들갑을 떨면서 서울시장 자리를 안겨 주었으니, 그렇게 정략적 이익에 눈이 어두웠던 김대중 대통령이 대오각성하지 않으면 누가 대오각성을 해야겠는가.

　
차범근과 차인표도 김대중 친인척인가?

어찌됐건 한나라당의 그런 이간질은 김 정권의 인사를 물고늘어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사실 이 점에선 언론이 협조자다. 심지어 한겨레 까지도 행여 `여당지'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시시비비를 가려 주지 않고 비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겨레 21 98년 5월 21일자에 실린 다음과 같은 한 독자의 항변이 한겨레 의 이상한 행태를 잘 지적해 주고 있다.

' 한겨레 21 에 부탁할 게 있다. 호남 편중 인사 `논란'이라고 했다. 논란은 시시비비를 가려 줘야 한다. 제발 논란이라고 보도하지만 말고 그 논란의 실체를 파헤쳐 보도하고 잘잘못을 가려 달라. 역사 없고 실체 없는 호남 편중 인사 보도에 많은 국민이 현혹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한겨레 까지 그 `논란'을 판별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니 이 나라의 언론은 무뇌(無腦) 언론인가? 여당 편을 들라는 게 아니다. 나름대로 판단을 내려 어느 쪽이든 잘못한 쪽을 매섭게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고 양시양비론으로 적당히 버티겠다는 게 문제란 말이다. 언론은 무조건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으로 장사만 하면 그만이란 말인가? 심판이 없는 가운데 정치권이 승부가 날 수 없는 이전투구만 벌이다가 나라가 잘못되면 언론은 또 그 책임을 정치권에게 물을 것이다.

과거 역대 정권들 치하에서 정부 인사에 대한 언론의 감시 기능은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팔짱끼고 구경하는 꼴이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 치하에서 그 기능은 과잉이다. 어찌나 두 눈을 부릅뜨는지, 눈이 충혈이 된 나머지 착시 현상까지 일으켜 사실에 대한 왜곡과 날조까지 판을 치고 있다. 우리 국민은 이 점을 알아야 한다. 내가 월간 인물과 사상 6월호에서 인용한 바 있는 미디어 오늘 4월 29일자 기사 내용의 일부를 여기에 다시 옮겨 보자.

'한국일보가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근거로 서울신문 차일석 사장을 김 대통령의 사별한 첫 부인 인척이라고 비판했다가 정정보도를 내는 망신을 자초.'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저질러졌을까? 우연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중앙일보 5월 21일자 2면 <정정과 반론> 코너에 실려 있는 다음과 같은 짧은 글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20일자 5면 `김 대통령 조카 완도군수 무혈 입성' 기사의 제목과 내용 중 완도군 차관훈 군수는 김 대통령의 고종 조카가 아니기에 바로잡습니다.'

<김 대통령 조카 완도군수 `무혈 입성'> 기사는 신문 한복판에 크게 실어 놓고 그걸 정정하는 건 불과 몇 줄로 신문 한 구석에 처박아도 괜찮은 건가? 아니 신문들은 무조건 성이 차씨면 다 김 대통령의 친인척으로 보이는가? 근거도 없는 그런 유언비어를 그렇게 쉽게 활자화해도 괜찮은 건가?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요즘 잘 나가는 차범근 감독이나 탤런트 차인표씨도 김 대통령의 친인척은 아닌지 의심하는 기사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우리 나라의 정치 수준이나 언론 수준이나 그게 그거지만 굳이 도토리 키재기를 한다면 아무래도 언론 수준이 정치 수준보다 조금 더 낮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순진한 국민은 신문을 보고선 정치권만 죽어라 욕을 할 테니 세상에 그런 코미디가 어디 있나.

시사저널 98년 5월 28일자엔 정말 코미디 같은 에피소드 하나가 실려 있다. 이 에피소드를 감상하시면서 우리 언론을 지금 이대로 두고서 과연 정치 발전이 가능할 것인지 한 번쯤 고민해 보시기 바란다.

'`나를 아주 죽일 작정이구만…….' 국민회의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최근 일부 언론이 국민회의를 정책 부재 정당으로, 조 대행을 무능력한 지도자로 비판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조 대행이 이렇게까지 분개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국민회의는 얼마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신문사에 낼 광고의 가격을 차등화했다. 발행 부수와 영향력 등 나름의 기준을 적용해서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을 받은 신문사가 강력하게 항의하고 나섰고, 국민회의와 신문사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는 동안 조 대행을 비판하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때문에 조 대행측은 이 기사를 분풀이나 협박용이라고 본다. 정균환 사무총장이 중재에 나서 결국 이 신문사의 광고 단가는 상향 조정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신문들이 반발할 조짐이다. 조 대행측은 이러다가 언론에 융단 폭격을 맞는 것 아니냐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만신창이가 된 6·4 지방선거

6·4 지방선거는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만신창이였다. 구역질나는 지역감정 부추기기와 더러운 인신 공격이 판을 치는 가운데 한국의 민주주의는 과연 가능한지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특히 한나라당 최병렬 서울시장 후보와 손학규 경기도지사 후보의 선거 운동은 지역분열주의를 획책하는 음모 그 자체였다.

그럴듯한 건수를 물고늘어지면서 그랬다면 또 모르겠다. 예컨대, 최병렬 후보는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은 둘째 치더라도, 서울 25개 구청장 후보 중 22명이 호남 출신이라는 날조된 주장을 법정홍보물에까지 인쇄할 정도로 내내 하고 다녔는데, 호남 출신 후보는 13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받은 이후에도 그 날조된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손학규 후보 역시 유권자들의 `반호남 정서'를 불러일으키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물고늘어진 `호남향우회'가 실체도 없는 유령단체라는 것이 밝혀진 이후에도 그 더러운 지역분열주의 공작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이뤄진 투표에 의한 수평적 정권 교체의 역사적 의미가 겨우 이것이란 말인가? 그런 개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수평적 정권 교체의 역사적 의미가 크고 중요하기 때문에 6·4 지방선거는 더욱 만신창이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게끔 예정돼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수도권 광역 자치단체장 후보 공천에 있어서 김대중 대통령과 새정치 국민회의가 보여준 행태는 참으로 실망스럽고 개탄스러운 것이었다. 그들은 혹독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아니 싸잡아 비판하지 말자. 김 대통령이 문제다. 그는 야당 시절의 정략을 버리지 못했다. 그것보다 더욱 큰 문제는 그가 현 난국을 그런 정략으로는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대통령의 정략적 속셈은 무엇이었을까? 그 속셈까지 한 번 꿰뚫어 보자. 무엇이 문제였나? 정권 교체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반 세기에 이르는 오랜 세월 동안 수평적 정권 교체의 경험이 없이 살아 온 이 나라 국민들의 다수는 여전히 구시대의 질서와 인물을 `안정'으로 간주하는 타성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김 대통령은 그걸 정공법으로 정면 돌파할 생각은 않고 예전에 써먹었던 `조순 카드'를 또 한 번 써먹겠다는 수를 부린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니 경악스러운 것은 야당인 한나라당이 김대중 대통령을 아직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점 때문에 김 대통령을 비판하려고 굳게 다짐했던 독한 마음을 내팽개쳤다. 아직도 양비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독자들께서는 이 점을 직시하시기 바란다. 그걸 드라마틱하게 보여 준 사례가 시흥 한나라당 정당 연설회에서 나온 김홍신 의원의 대통령에 대한 망언이다. 문제의 초점은 결코 `사법 처리'가 아니다. 김홍신과 손학규는 물론 한나라당 지도부의 그 누구도 그 망언에 대해 즉각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건 다른 기회에 심층적으로 다루도록 하겠다.

　

김대중은 선거 결과에 자만하지 말라!

김홍신은 어떤 인간인가? 평소 그의 행동이 쇼맨십이었건 무엇이었건 그가 `개혁'을 제법 떠들어 왔으며 언론에 의해서도 그렇게 평가돼 온 인물이라는 게 이번 사태의 비극성을 더해 준다. 김홍신의 망언은 자칭 진보적 인사를 자처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죽어도 김대중은 안 된다'는 정신질환을 심하게 앓고 있는 사람이 적잖은 우리 현실을 반영해 주는 것이지 그 혼자만의 `원맨쇼'가 아닌 것이다. 생각하면 참으로 무섭고 두려운 사실이다. 대통령이 된 다음에도 저질러지는 `김대중 죽이기'의 무지몽매함과 잔인함에 전율마저 느끼게 된다. 6·4 지방선거는 바로 수면하에서 꿈틀대고 있던 그런 무서운 현실을 정치인이라고 하는 `정치 동물'들의 본능적 탐욕이 그들의 이성을 압도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든 계기로 기능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6·4 지방선거의 추악상은 김대중 정권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큰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건 결코 역설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한나라당이기 이전에 김 정권의 `정치력 부재'와 `비전의 결여'에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시장 후보로 노무현씨를 공천했다면 6·4 지방선거는 이번처럼 추악한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한나라당의 망국적인 지역분열주의가 곧 김 대통령과 국민회의의 과오에 대한 면죄부는 아니기 때문에 김 정권은 이번 선거를 환골탈태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행일 수 있다는 뜻이다.

김 대통령에게 호소한다. 행여 선거 결과에 자만하지 말고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하여 주시기 바란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정말 나라 망한다. 우선 정략적인 사고와 행태를 완전히 버려 주시라. 그건 단기적인 이득은 가져올망정 지금과 같은 난국을 헤쳐 나가는 데엔 부메랑이 될 뿐이다. 그리고 개혁 주체에 대해 추상과 같은 도덕성과 헌신성을 요구해 국민적 신뢰를 얻는 데에 진력하시라. 국민회의도 꼭대기에서 바닥에 이르기까지 개혁성 중심으로 재편성하시라. 호남권에서 국민회의의 오만방자함에 대한 원성이 높다는 것을 아셔야 한다. 그리고 모든 양심수들을 즉각 석방하셔야 한다. 무엇이 두려운가? 김 정권은 이미 인사 문제로 언론으로부터 맞을 만큼 맞았다. 이제 김 정권이 더이상 전락하기도 어렵다. 오직 경제만으로 `국민의 정부'를 빛내 보겠다고? 박정희가 지하에서 웃을 일이다. 국민의 정부는 정의와 인권이 강물처럼 흐르는 그런 사회를 구현하는 데에 그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경제 문제를 소홀히 하라는 게 아니다. 양심수 석방과 경제가 무슨 관계란 말인가?

그리고 DJP연합의 대원칙도 `개혁'이었음을 재천명하고 요구할 건 당당하게 요구하시라. 그러나 요구를 하기 위해선 김 대통령부터 인사를 비롯한 모든 국정 운영에서 일체의 정략적 사고를 버리고 개혁성을 신앙으로 떠받드는 태도를 분명히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국민회의가 정략적인 행동을 취하는 한 `나눠먹기'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자민련의 불만은 정당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김대중부터 재산을 헌납하라

청렴결백도 중요하다. 현대 정치는 여론 정치니 그걸 과시할 필요가 있다. 지팡이를 파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나는 김 대통령이 재산의 일부를 국가에 헌납하시길 바란다.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나는 김 대통령의 재산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그간 내게 비판적인 편지를 보낸 영남 독자들은 한결같이 김 대통령의 재산을 물고늘어졌다. 물론 나는 그들의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에 처한 마당에 김 대통령이 재산의 일부를 헌납하는 건 매우 중요하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 대통령이 그런 행동을 취하면 재산이 적어도 10억원 이상 되는 개혁 주체들도 알아서 할 것이다. 재벌 총수들도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에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말이 안 되는 비상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아셔야 한다. 실업대란의 불길도 무섭게 타오르고 있지 않은가. 개혁 주체들의 재산 헌납은 상징적 의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현재 국난 극복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는 개혁 주체에 대한 불신인데, 모든 게 지역주의에 발목이 잡혀 있어서 그 불신을 해소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김 정권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엔 부자가 너무 많다는 것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금력과 더불어 권력을 동시에 향유하는 우리의 그 못된 풍토를 바로잡아야 한다. 금력을 가진 사람이 무엇이 아쉬워 개혁을 위해 헌신하겠는가? 금력의 일부를 포기할 뜻이 없으면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공직자가 재산이 많아야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주장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부정된 바 있다. 국난 극복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공직자의 상은 `청렴결백'으로 복귀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각 분야의 구조 조정을 떠들어도 고위 공직자의 자세가 바뀌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진정한 개혁은 이 나라의 공직자들이 돈보다는 명예로 먹고 사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다. 위에서부터 달라져야 한다. 위에서 달라지면 그 변화의 바람이 말단 공무원에까지 미치게 돼 있다. 그런데 김 정권 출범 이후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는가?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재산을 헌납함으로써 무언가 보여 달라는 것이다. 재산 헌납이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우리 같은 나라에서 정리해고제는 더욱 말이 안 된다. 그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졌는데 재산 헌납을 왜 못 한단 말인가?

재산 헌납은 DJP연합과 그에 따른 `나눠먹기' 인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대통령 이하 적어도 1급 공무원에 이르는 고위 공직자들은 개혁성과 헌신성, 아니 자기 희생의 의지를 기준으로 판을 다시 짜야 한다. 권력을 전리품으로 즐기려는 고위 공직자들은 물러나야 한다. 평생 신문사와 공직에만 있었던 최병렬씨가 30억 원에 이르는 재산을 갖고 있다는 건 도무지 말이 안 된다. 그러면서 개혁을 외치니 그게 말이 되나? 최병렬씨처럼 말이 안 되는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은 정부여당에도 많다. 그 말이 안 되는 재산의 일부를 국가에 헌납하라는 데 그게 무어 그리 말이 안 된단 말인가? 김 대통령부터 당장 행동을 취해 주시기 바란다.

김 정권 수뇌부가 그렇게 비상한 결의와 자세를 보여 주지 않고선 이미 갈기갈기 찢긴 민심을 하나로 통합해 국난 극복을 할 수가 없게 돼 있다. 김 대통령은 왜 그렇게 천하태평인가? 의원 빼내오기로 여소야대 구도를 뒤엎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는 걸 정녕 모른단 말인가? 현재 우리가 당면해 있는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게 보이질 않는가? 청와대에선 잘 안 보이는 것도 밖에선 보이는 법이니, 제발 내 고언을 무시하지 마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