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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 천 마 지 맥 2차
구간; 수산리..쇠푸리고개..과라리고재, 꾀라리봉, 돌핀샘,
천마산..장수샘(길가),고매골,호평등산매표소
일시;
참가자; 쑥맥대장,강강수월래,태백산,지성인,온누리
7월 초에 산행을 하고 이제야 산행기를 쓴다.
게으르기는 여름 소나기에 마당에 널린 곡식이 떠 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책 읽는 선비 꼴 같아 내가 생각해도 답답하다. ….
남은 2차 구간을 이번에 마치자고 의기 투합하여 5명이 출발이다.
20여년 전에 마석, 천마산을 다녀온 이후 오늘이 처음이라서 어느 길로 접어 들어야 하는지
지도를 보고 한 동안 공부를 한다.
퇴계원에서 새로난 Motor Way로 접어들어서 수동면으로 향하는 국도 387번을 타고 가면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것 같다.
그래야 마석으로 하산하여 차량 회수가 쉬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수동, 마석 IC표지를 보고 쑥맥 대장이 이리로 가지 않느냐고 한다.
조금 더 진행 하다가 경춘 국도상에서 좌회전 하면 된다고 하고 그냥 달린다.
대성리를 지나는데, 왜 이 길로 가냐고 또 묻는다.
조금만 가면 바로 계곡 초입이라 대답하고 운전을 한다.
왠 일인지 내 말을 듣고 조용하다.
청평을 지나고 현리 검문소를 지나고 좌 회전 하다가 보니…아뿔사, 가평군 상면까지 왔다.
주금산과 서리산 계곡을 넘어 돌아와서 원래 목적지에 도착하니
처음부터 지난번 하산한 OO 보병사단이 있는 진벌리로 올라 갈 것을,
차량 회수가 용이한 지역 같아서 수동면 수산리로 가자고 한 내 고집 때문에 한 구간을 더 지났다.
판단 착오로 인하여 1시간이나 더 지체 되었고,
운전 도중에도 조언을 듣지 않아 많은 길을 돌아왔다.
아…오늘 왜 이러나…. 하산하고 저녁이라도 사야지, 미안한 마음이 크다.
막상, 도착을 하고 보니 지도상의 삼일교회 기도원은 없다.
매실 농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산으로 난 임도로 올라 가라고 한다.
송림 사이로 뚫린 비 포장 길을 따라 숲 길을 오른다.
계곡의 물이 너무도 깨끗하고 수량도 풍부하다.
비 포장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멘트 포장 길이 이어진다.
길은 두 갈래로 나눠져서 우측 방향은 기도원 옆에 철마산 이라고 표시목이 있고
좌측은 펜션이 있다.
능선을 쳐다 보면서 좌측 길이 맞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올라선다.
펜션 주인에게 확인을 하니 이 길은 잘 다니지 않는 길로서 등로가 좋지 않다고 한다.
시멘트 길 끝에 서 있는 공터 원두막에서 가지고 온 막걸리를 한잔씩 한다.
희미한 숲길을 따라 본격적으로 오른다.
5분여 지날 즈음 이름 모를 들풀이 가득한 공터에 도착한다.
그러나 길은 더욱 희미하여 잘 구분이 안된다.
올려다 보는 능선은 매우 가깝게 느껴지고, 시간은 줄 잡아 한 시간이면 될 듯도 하다.
작은 계곡과 희미한 등로를 따라 오르는데, 숲이 우거져서 어둡기 조차하다.
고로쇠 액을 채취하기 위해 설치한 비닐 호스가 어지럽게 널려져 있다.
길은 간간히 희미하게 이어 지다가 없어 졌다가 한다.
그져 지형만 짐작하고 앞으로 나가는데 마치 새로운 등로를 개척하는 형국이다.
한동안 이어지던 길이 급격히 오르막이다.
힘겹게 오르는 도중에 감사님이 더덕이 지천이라고 큰 소리친다.
드디어, 산행 3년 만에 더덕을 캐는 구나 싶어 가까이 간다.
잎은 이렇게 생겼고…. 하나를 발견하면 주변에 군락을 이루고….
설명을 듣고 두리번 거리다가 같은 형상의 잎을 발견한다.
그러면 그렇지, 드디어 산 신령님이 나를 인정 하는구나,..
열심히 캐 보지만, 뿌리는 볼펜 심 정도로 작아서 실망이 너무 크다.
가뿐 숨을 몰아 쉬고 능선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한다.
출발 지점에서 1시간 10분이나 걸렸다.
가야 할 능선은 완만하고 뒤 편으로 보이는 봉우리는 매우 높다.
첫 번째 봉우리를 지나고(578m) 두 번째 봉우리 사면을 지나는데
어쩐지 철마산 남봉 봉우리가 나타나지 않는다.(지도상으로 0.9km를 지나면 철마산 남봉인데…?)
앞서가던 쑥맥 대장이 우리가 잘못 온 것 아닌가 ? 철마산이 왜 안보이지 ? 한다.
다시 지도를 보니, 아차, 우리가 올라온 능선은 철마산 남봉을 지난 지점,
쇠푸리 고개로 올라온 것이다.
산행 초입에, 철마산이라고 설치된 표시목을 보고 우측으로 갔어야 옳았다.
뒤 돌아 보니 우리가 지나온 능선에 비해 철마산 남봉은 매우 높아 보인다.
두 번째 실수다.
아쉽지만, 발이 빠른 감사님이 대표로 갔다 오라고 농을 하면서 그대로 진행을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오솔길 같은 완만한 능선을 수월하게 걷는다.
이따금씩 나무 사이로 수동면 계곡이 보이고 진건읍 방향 저수지(오남 저수지)도 보인다.
남양주시는 유독 읍邑이 많다.
지난번 하산한 진벌리를 중심으로 진접읍은 진벌면과 접동면이 합칠때 생긴 이름이고,
진건면은 진관면과 건천면이 합친것으로서 일제시대 행정구역 개편때 억지로 생겨난 이름이라 한다.
우리의 고유한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고 강제로 통.페합한 지명들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지성인 님이 새로 시작한 사업이 재미가 있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넨다.
외국 노동자의 한국 내 취업을 관장하는 일로서 필리핀 사람들에 대한 칭찬이 끊임이 없다.
순진하고 성실하고 이쁘기 조차 하단다.
필리핀, 15세기에 마젤란이 이 섬을 발견한 이후 1898년 까지 식민지로 있다가
미국의 영향아래에 들어가면서 영어를 공용어로 쓰기 시작한다.
스페인의 식민지를 370여년 동안이나 받았다.
그 덕분에 동양에서 일찍 현대화를 하였으나 마르코스라는 지도자를 잘못 만나
국정 후반에는 국력이나 경제가 우리나라에 훨씬 뒤지는 빈국으로 전락한다.
그나마 수빅 만(Subic Bay)에 있던 미 해군 기지도 반미 운동을 하면서 몰아내고
지역 경제마저 몰락한 이후 그 시설물에 한진 중공업이 진출하여 성공적으로 운영을 하는 곳이다.
홍콩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식모가 필리핀 출신이며
미국에서 가장 힘들다는 간호사도 필리핀 출신이 많다.
지성인님이 잘 보았듯이, 서구 스페인의 영향으로 체구는 완전히 유럽인들과 흡사하다.
특히, 여성은 매우 매력적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초반의 실수도 잊고 산들 바람을 맞으면서 평탄한 길을 걷는다.
내려서는 안부에 돌탑과 함께 참나무 그늘이 시원하다.(과라리고개)
돌탑 같기도 하고 성황당 같기도 하다.
이정표에는 과라리고개—보구니바위라고 써 있고, 어떤 표지판은 괄아리 고개라고도 쒸었다.
그 뒷편에 누군가 세워 놓은 과라리 아리랑 가사를 옮겨 본다
과라리 아리랑
산다는 게 살아 간다는 게 모두
굽이굽이 돌아 산마루턱에 다다르는
산길과도 같아서
천번을 다녀도 갈 적마다 새로운 것이
우리 인생 여정과도 같아서
…..
…..중략
아리랑 아리랑 과라리 아리랑
과라리 과라리 울엄니 아리랑
자, 다시 시작 하거라
가는 길에 행여 고비를 맞거든
스스럼 없이 이제
나를 밟고 지나 가거라
무심하게 그냥 무심하게
Since 1999.6…
가지고 온 막걸리를 한 잔씩 하면서 참외 안주로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잠시 후 오남읍에서 올라오는 한 무리의 등산객들로 인하여 안부가 시끌 시끌하다.
이곳에서 부터는 좌,우 계곡에서 올라온 등산객들로 인하여 등로가 분주해진다.
완만한 능선을 올라 과라리 봉에서 점심을 하자고 주저 앉는다.
여름에는 상추쌈과 된장이면 진수 성찬이다.
막걸리에 오미자 술을 한잔씩 더하고 있는데
좌측 보광사에서 올라온 분이 황구와 함께 털썩 주저 앉아 무표정하게 쉰다.
과라리 고개를 지나고 1시간여 지날 즈음 넓직한 공터가 나타난다.
지도마다 표기가 조금씩 다르다. 괄아리 고개라고도 하고 배랭이 고개 라고도 한다.
한번 더 다리 쉼을 하고 서서히 치고 올라간다.
로프가 메 달린 짧은 오르막 암봉을 지나고 고도를 높여서 능선을 지난다.
우측 오남리 저수지가 더욱 선명하고 부근에 있는 산 아래 유원지에서 웃음 소리도 들린다.
좌측 수동 계곡 뒷산 축령산, 서리산 봉우리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높낮이가 제법 있는 암봉을 우회하니 좌측 봉우리에서 등산객의 환호 소리가 들린다.
(멸도봉,795m)
우측 아래로 향하는 소로 끝에 돌핀샘이 보인다.
돌핀샘, 이렇게 높은 곳에 샘이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그 이름도 특이하다.
어떤 등산객의 산행기에 의하면 주변의 바위가 돌핀 같이 생겨서 유래된 이름이라 한다.
바위의 모양이 고래의 일종인 돌핀인지, 선박을 메 두기 위한 구조물 돌핀인지
잘 판단이 안되지만 800여 미터나 되는 지점에 있는 이름이라서 더욱 기이하다.
마지막 오름길이 지나니 탁 트인 정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건너편 정상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발 빠른 감사님은 그 중턱에 앉아서 손짓한다.
내려서는 길이 여의치 않아 우회하여 내려선다.
암봉에서 직벽을 만난다.
로프가 있지만 애매하여 풀쩍 뛰어 내려선다.
칼날 같은 능선을 지나 아름다운 소나무 아래서 감사님을 만난다.
간식을 하고 음료를 들이키고, 그리고 나서 지나온 길을 조망해 본다.
철마산을 기점으로 하여 능선은 S자를 그리면서 크게 휘 돌아 천마산에 이른다.
서울 인근에 이렇게 좋은 산이 있어서 주말이면 어린 아이들도 많이 오르는 좋은 곳이다.
산이 힘겨우면 계곡으로 내려서면 그것도 무릉 도원이다.
날이 갈수록, 오랜 세월에 걸쳐서 나무를 키우고 푸른 산을 만들어 준 우리 조상님께 감사한다.
뜀 바위를 지나 천마산天摩산 정상에 도착한다. (812m)
자그마한 표지석은 화강암 바위 틈에 끼어 있는 형상이고
삼각점과 태극기, 그리고 등산객들로 좁은 정상이 더욱 비좁아 보인다.
태극기가 게양된 그 아래는 천인단애 절벽이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 말
산이 높고 매우 험준해 지나가는 촌부에게 이 산의 이름을 물었는데
촌부는 "소인은 무식하여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자
이 산은 매우 높아 푸른 하늘에 홀이 꽂힌 것 같아 손이 석자만 더 길었으면
가히 하늘을 만질 수 있겠다(手長三尺可摩天)."
라고 한 데서 천마산(하늘을 만질 수 있는 산)이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홀(笏, 조선시대에 관직에 있는 사람이 임금을 만날 때 조복에 갖추어 손에 들고 있던 물건)
남동쪽 아래 화도읍은 큰 도회로 바뀐 모습이다.
우리 세대에게는 마석이 더 편한 지명이다.
천마산 스키 리조트가 아름답다.
국도와 새로난 Motor way 가 동서로 시원스레 뻗어있다.
그 사이 멀리 북한강이 조금씩 물 줄기를 보여준다.
남서쪽은 나무로 인하여 시야가 가리지만 정상에서 한 발짝 벗어나면
그 방향도 조망이 뛰어나다.
다음 구간에서 지나치게 될 적갑산, 예봉산도 아스라히 그 모습이 보인다.
진건읍 방향으로 내려서면 며느리 명성왕후와 끈질긴 싸움을 한 흥선 대원군의 묘가 있고
남양주 읍(미금)에는 고종과 명성황후 민비를 모신 홍릉,
그리고 마지막 황제인 순종과 그 비妃인 순명효황후와 계비 순정황후를 모신 유릉이
나란히 있다
이씨 조선의 왕릉 전부가 유네스코 문화 유산에 등재 된 것으로 볼 때
이곳은 가히 명당에 해당되는 지역인가 보다.
내려서는 분기점 공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리 저리 갈림길이 유독 많아서 정신을 차리고 보아야 할 지점이다.
30여분 동안 급 경사 길을 내려선다.
능선 끝 자락에서 암봉들이 가로 막고 로프도 한두 가닥 보인다.
그 길을 더듬고 있자니 건너편 우측 능선에서 그리로 오라고 외친다.
다시 계곡을 가로 질러 건너편 능선으로 올랐다가 그쪽 능선으로 내려선다.
10여분을 내려 가면서 좌측을 보니 우리가 가야 할 마치 고개로 향하는 능선이
저 만큼 홀로 뻗어있다.
앞서서 내려가는 일행에게 소리쳐서 되 돌아오라고 하여도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포기하고 그 길로 계속 내려간다.
능선길은 이제 제법 서늘하기 조차하다.
소나무와 갈참나무가 뻬곡한 능선을 따라 수월하게 시멘트 포장 도로로 내려선다.
쑥맥 대장님이 아쉬워 하지만, 오늘은 일진이 그렇게 되는 날인가 보다.
세번째 실수를 하고 길옆 장수 샘에서 시원한 약수를 들이킨다.
지루한 시멘트 도로가 끝나고 동리 뒷산 같은 능선을 만난다.
하나 둘씩 가벼운 옷 차림에, 슬리퍼에 올라 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눈에 뛴다.
동리 가까이 낮은 능선에 묘 십여기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산 자락을 다 내려와서 따가운 햇살아래 쉬고 있는 동안 태백산님의 처남이 도착한다.
시원한 차 안에서 호평동을 지나고 마석을 지나 수동 유원지 방향 숯 가마에서 하차하고
우리는 차량을 가지러 간다.
출발지에 도착하여 계곡에서 시원하게 땀을 씻는다.
다시 돌아온 숯 가마에서 태백산님 처남 내외가 미리 준비한 숯불 오리고기 요리에
막걸리와 소주를 곁 들이고 감칠맛 나는 잔치 국수로 마무리 하면서 재미있는 산행을 복기한다.
태백산님이 산행 도중에 몇 차례나 부인과 처남에게 전화를 하더니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미리 준비 시켜놓은 것이다.
처남은 제수씨와 함께 숯 가마에 와서 휴식을 취하는데
체격이나 마음 씀씀이가 넉넉하고 듬직하다.
덕분에 즐겁게 담소 하면서 고마운 마음으로 맛있게 식사를 한다.
덕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boyfriend, girlfriend는 우리가 이야기(직역) 하는
남자 친구, 여자 친구와는 그 의미가 확연히 다르다고 설명을 한다.
지성인님이 귀를 세우고 그 차이점을 확실히 이해 하려는 자세가 진지하다.
후기; .태백산님, 오리고기 너무 맛있게 잘 먹었읍니다.
.무슨 귀신이 쒸었는지, 3차례나 실수를 하여 함께 한 일행에게
대단히 죄송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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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날의 일들이 눈앞에 선하네요,,늘 고생하시고요 산행기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