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안에서 한 번은 짚고 가야할 난제들.1★ ㅡ 태초(레쉬트) 우리는 구약성경의 맨 첫째 장을 창세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히브리 성경에는 이 책의 명칭을 창세기라고 하지 않고 쉐페르 마쉐 배레쉬드라고 했는데 태초(레쉬트) 즉 태초께서 하신 일들의 책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태초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창조 때 가장 큰 빛은 토라(성경)라고 믿는 사람들이 계시를 받아 창세기를 쓴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이름이 번역 과정에서 70인역에 의해 헬라어 성경으로부터 Genesis 즉 기원의 책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이 책에는 기원에 대한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던 것을 게다가 또 한문이 그 기원을 세상의 시작으로 보아서 창세(創世)라고 하는데 우리가 세상을 세웠다고 할 때는 어느 나라를 가령 예를 글어 왕건이 고려를 다시 세울 때도 창세라고 부를 수 있다. 창건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세상의 맨 처음일 때 창세란 말은 엄밀히 말해서 레쉬트 하나님은 이 세상나라를 창건하신 분이 아니고 우주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궁창의 하나님이시며 레쉬트 ㅡ우리말로 태초 또는 한 처음이라고 번역ㅡ그분은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여홍와라고도 하고 만유라고도 하는 것이다. 만유는 온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뜻하는 동시에 우주 자체가 만유이시고 레쉬트 곧 한국말로 '한 처음' 이라고 번역한 그 분이시다. 레쉬트 곧 한 처음이신 그분이 만유를 창조하셨고 그분 가체가 만유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천태만상으로 나타나실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히1:1~2에 "옛적의 선지자들로부터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말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매이지 않으시고 시공간을 초월하심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만유를 지으심 창조 하나님이다. 아버지로 나타나시기도 하고 아들로 나타나시기도 하고 또는 그리스도로. 천사로 아담으로. 멜기세댁으로. 캔 족속으로. 어린양으로 성령으로. 새벽별로. 생명나무로. 포도나무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선지자들 등등으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니까 말씀으로 나타나기도 하셨고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시기도 했다. 사41:4를 보면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테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태초부터 만대를 이라고 하니 태초부터 자신을 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그 한 처음 그분이 곧 여호와 하나님이다. 미가5:2를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라. '태초에'란 말은 태초 안에 또는 태초에게 라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근본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1:1에 "테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 즉 헬라어로 '엔 아르케'라고 한다. 그 뜻은 우두머리. 첫째 자리라는 뜻인데 태초께서 창조하신 천지만물이 우주 안에 있는 것같이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만물이 태초 안에 있는 것이다. '태초'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말하는 태초는 그 태초 안에 계시는 생명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동시에 요한복음의 태초는 창세기와 시기적으로 같은 수가 없는 것을 우리가 금방 알 수 있다. 창세기는 레쉬트. 한 처음 즉 피조물의 한 처음이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것은 선재하신 하나님 즉 그 창조 전에 하나님과 함께 했던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영원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아니면 궁극시대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피조물의 새창조와는 아득하게 먼 시대를 계시록이 말하고 있음으로써 예수님의 선재성을 강력하게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창세기는 말이 적합한 것이 아니요 원명대로 레쉬트, 한 처음 또는 태초. 이것이 우리는 하나님의 또 하나의 이름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빌2:5~8을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음이라." 예수님의 마음도 근본 본체는 레쉬트. 하나님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그 분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는 것이다. 계21:6에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계22:13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성경 첫째 권에 '한 처음' 즉 '태초' 라고 한 말은 나요 마지막 죽기까지 증거한 예수도 나란 뜻이다. 다 같은 하나의 존재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맞는다 하늘님이 맞는다고 논쟁하지만 근본 본체는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맞다 그분이 맨 처음 태초에 아무것도 없는 텅 비어있는 우주 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분을 레쉬트라고 하고 만유라고도 하는 창조주시요 또 그래서 우리는 한 처음이라고 부른다. 한 처음 곧 레쉬트로 하신 일들에 대한 책의 명칭을 70인역이 창세기란 명칭으로 아니 기원의 책으로 만들어놓고 그것을 중국 사람들이 창세기로 붙여놨기 때문에 우리는 롬1:20에도 '창세기부터' 라고 하였는데 창세기부터가 아니고 태초부터라고 해야만 맞는 것이다. 태초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보다도 조물주가 어디 있고 하나님이 어디에 있나고 창조주를 부인할 수 없을 텐데 오늘날 인간들이 그분의 말씀을 잘못된 교육을 받고서 십자가 우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제도의식과 그런 모든 것들을 우리가 우상화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라' 고 하셨다. 우리에게는 사부(師父) 예수님이 계시다. 이 땅에서 계시를 받고 나를 가르치시다가 육체를 벗고 영계에 가서 하나님께 나에 대한 소원을 올려서 계시의 채널을 그 사부가 받아서 수시로 나에게 계시를 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계통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계시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부와의 사제 관계가 풀리지 않고 계속 매어 있어야 되는 것인데 우리는 그 관계가 때때로 풀리고 있는 것이고 때때로 우리가 사제 노릇을 다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이럴 때 사제(師弟)라는 것은 사부의 제자를 의미하는 것이고 동시에 또 인젠가는 그 곳에 백보좌에서 심판을 책임지실 분 밑에 사제(司祭)로서의 시중권을 또한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 사부가 육체를 벗고 하늘나라에 가실 때까지 나와 사제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매여져 있으면 하늘나라에서 나를 하늘나라 백성으로 인정할 것이고 땅에서 맺은 사제 관계가 끊어지면 하늘나라에서 나를 하늘나라 백성으로 받아주지 않으신다. ㅡ 멋쩽이 햇살 옮긴 글 ㅡ
출처: 멋쨍이 햇살 동산 원문보기 글쓴이: 멋쨍이 햇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