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제목 : 모든 의료행위는 부작용이 있다.
○ 작성자 : 신현호 변호사의 의료사고-의료분쟁 이야기
○ 출 처 : 헬스조선닷컴 카운슬링코너 中 의료분쟁 상담
배관공으로 일하는 한동성(34)씨는 한 달 전부터 어깨가 심하게 쑤시고 저려 약을 지어먹기도 하고 물리치료도 받아 보았지만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이를 본 친구가 “근처에 용한 한의사가 있다”고 하여 한방병원을 찾았다.
한의사는 “어깨근육이 뭉쳐 있으니 침을 맞으면 금방 나을 수 있다”고 하면서 한씨의 어깨와 등에 침을 여러 대 놓았다. 침이 효과가 있어서인지 어깨통증이 한결 가시는 듯하여 기분 좋게 잠을 잤는데 다음 날 아침부터 고열이 나고 온몸이 굳어져 갔다. 3일을 버티는데 침을 맞은 부위에 고름이 나오고, 얼마 후 의식이 희미해지기 시작하였다. 한씨는 119구급차를 타고 급히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일주일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다가 겨우 의식이 회복됐다.
원인은 침을 맞은 부위에서 메티실린내성포도상구균(MRSA)에 감염됐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MRSA는 병원 내에서만 존재하는 균으로 알려져 있다.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되지 않는 치명적인 감염균으로 침을 맞는 과정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됐다. 다행히 그는 기적적으로 생명을 구하고, 퇴원하였지만 전신강직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동성씨가 "침이나 침 맞은 부위를 제대로 소독하지 않아 감염됐다"고 주장하며 한방병원에 소송을 제기하자, 한의사는 원인불명이라고 부인하다가 법원의 권유로 4000만원을 배상하고 화해하였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한방에 익숙하여 어깨나 허리가 아프면 한의사를 찾아 침을 맞거나 부황을 뜬다. 그 후에는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고 지내나, 침이나 부황은 양방에서 수술을 하는 것과 같이 감염의 위험성이 있다. 양방이든 한방이든 부작용이 별로 없는 것으로 잘못 알고 방치하다가는 병을 키울 수 있다. 또 의사들도 병원에서 사용하는 각종 기구들의 소독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상담제목 : 의사의 환자비밀유지는 절대적인가?
캘리포니아대학에 다니는 패다군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태라소프양을 짝사랑하여 쫓아 다녔으나, 보기 좋게 딱지를 맞게 되었다. 충격을 받은 패다는 대학병원 정신과의사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정신과 의사에게 “태라소프와의 현실적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태라소프를 죽이고, 마음속에서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고백하였다.
정신과 의사는 살해계획이 구체적이어서 대학경찰에 신고를 했고, 그 결과 패드군은 72시간 동안 격리수용 되었다. 72시간 후 석방하려 하자 정신과 의사는 “패드의 정신상태가 아직 온전하지 않다”는 점을 경고하면서 응급입원조치를 연장해 주도록 요구했으나, 경찰은 살인할 위험성이 없다는 이유로 ‘태라소프에게 접근하지 않겠다’는 각서만을 받고는 석방하였다.
그러나 패다는 두 달 후 태라소프를 찾아가 총으로 살해하였다.
이에 태라소프의 부모는 정신과 의사가 소속된 대학에 대하여 “패다가 살해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면 당연히 피해자인 태라소프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고, 대학측에서는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치료내용은 비밀을 유지해야 하므로 피해자에게도 알려주는 것이 위법이다”라고 맞섰다.
이에 대해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정신과 의사는 환자가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를 위험이 있다고 판단될 때, 비밀유지의무보다는 피해자에게 알리고 경찰에 신고하는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우선한다”고 하면서 대학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의사의 비밀유지의무는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비밀유지로부터 지킬 수 있는 법익보다 알려서 얻을 수 있는 법익이 클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 만약 의사가 치료중 살해의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당연히 그 사실을 알렸어야 할 것이다. 이는 즉시 수술을 하지 않을 경우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에게 있어서는 의사의 설명의무가 면제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건에 있어 정신과 의사가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와 상의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서로 모르는 부분에 대하여 상의하는 것, 우리 사회에도 그러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상담제목 : 수혈 중 혈액이 바뀌어 사망한 억울한 죽음
하영철(25세)은 국도에서 운전하다가 급커브길에서 중앙선을 넘으면서 맞은편 차량과 충돌하여 다리와 배에 손상을 입고, 응급의료센터에 후송되었다. 의료센터에서는 수혈을 위하여 먼저 피를 뽑아 임상병리실로 보냈고, 잠시 후 혈액 4봉지가 와서 수혈을 시작하였다.
뒤늦게 사고 소식을 듣고 응급실로 달려온 가족들이 혈액봉지를 보니 ‘A’형 혈액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간호사에게 “영철의 혈액형은 O형인데 왜 A형이 들어가고 있느냐?”고 물었다. 간호사가 혈액검사지 상단을 보니 빨간 스탬프로 ‘O형’이, 혈액봉지에는 ‘A형’이 찍혀있어 즉시 수혈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영철의 피를 다시 뽑아 보냈다.
얼마 후 돌아온 간호사는 “임상병리사가 좀 전 채혈한 피로 검사하여 보니 A형이 틀림없다. 착각하여 O형으로 스탬프를 잘못 찍었다고 한다”고 하면서 보여준 혈액검사지를 보니 먼저 찍혀 있던 O형은 두 줄로 지워져 있고, 옆에 A형이 찍혀져 있었다. 가족들이 반대하자 간호사는 “환자의 생명이 위독하다”면서 밖으로 내보내고 A형 피를 계속 수혈하면서 개복수술을 하였으나 사망하고 말았다. 사인은 과다출혈사로 밝혀졌다.
가족들은 이형혈액쇼크사로 인한 출혈사라고 주장하였다. 부모형제의 혈액형, 영철의 초등학교와 육군훈련소의 혈액검사기록, 사체에서 채취한 모발과 사망 당시 입고 있던 청바지혈흔의 검사결과 모두 O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응급의료센터에서는 교통사고로 인한 복부손상 때문이라고 항변하였다.
법원은 재검사결과 하씨의 혈액형이 A형으로 나왔고, 수술시 총장골동맥이 찢어진 것이 발견되었으므로 수혈쇼크라고 할 수 없다고 하여 청구를 기각하였다.
판결 후 어느 임상병리전문의는 “하씨처럼 O형에 A형이 섞여 들어간 피는 자칫하면 A형으로 잘못 읽는 경우가 아주 많다”고 귀뜸하였다. 이형혈액이 들어가면 혈액형이 바뀌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긴 것이다. 의학지식이 부족한 환자들은 종종 사실과 전혀 다른 주장을 그대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상담제목 : “자식보다 1시간 더 오래 살게 해 주세요”
첫 딸 하늬를 낳은 후부터 하늬 엄마는 천직으로 여기던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산부인과 의사의 순간의 실수로 뇌성마비가 된 하늬의 손과 발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늬엄마는 임신초기부터 동네 산부인과의원에서 산전진찰을 받으면서 출산일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분만예정일이 3일 지났는데도 산기가 없자, 의사는 유도분만을 하기로 하고 그녀를 입원시켰다. 산부인과 의사는 초음파검사를 하더니 “태아상태가 정상”이라고 하면서 자궁수축제를 주사하고, 양막을 터뜨려 분만을 시작했다.
그런데 하늬의 머리가 골반에 걸려 분만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태변이 섞인 양수가 나오자 의사는 “20분만 더 기다려 보고 그때도 안나오면 기계로 빼내거나 수술을 하자”고 말했다. 그로부터 2시간이 더 흐른 뒤에 태어난 하늬는 4분이 지나서야 첫울음을 터뜨렸다. 분만이 늦어지면서 태변이 섞인 양수가 기도를 막았기 때문이다. 하늬는 응급처치를 받고 근처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산소부족으로 인하여 뇌가 망가져 뇌성마비가 되고 말았다.
태아가 클 경우에는 머리나 어깨가 골반을 빠져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수술을 하여야 한다. 분만하다 멈춰지게 되면 태아는 머리압박, 과도한 자궁수축 등에 의해 산모로부터 산소공급이 줄어들어 저산소증에 빠지게 되고, 이때 태변이 배설되면서 태아는 양수를 마시게 되어 기도가 막히게 된다. 따라서 분만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진공흡인기를 사용하거나 즉시 제왕절개수술을 하여 뇌손상을 막아야 한다. 그러함에도 하늬를 담당한 산부인과 의사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아 적시에 제왕절개수술을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하늬엄마는 의사를 상대로 하여 2억 여원의 손해배상을 받았지만 평생 뇌성마비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하늬와, 그런 하늬를 바라보아야 하는 가족들에게선 웃음꽃이 사라진 지 오래다.
오늘도 ‘제왕절개수술율 43%로 세계 1위, 80%가 의사권유로 시행’하는 신문기사를 본다. 그 때마다 정작 해야했던 수술은 하지 않고, 하지 않아도 될 수술은 남용하는 우리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뇌성마비아를 바라보는 이웃의 편견이다. “저에게 바램이 있다면 하늬보다 1시간이라도 더 사는 거예요. 만일 제가 먼저 죽는다면 우리 하늬는 누가 돌보겠어요?” 하늬 엄마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상담제목 : 솔로몬의 지혜는 어디에....
보람이는 엄마가 둘이다. 한 분은 낳아주셨고, 또 다른 한 분은 키워주신 분이다. 집이 가난하여 양자로 간 것이 아니다. 병원 신생아실 간호사의 실수로 같은 시각에 옆 분만실에서 세상 빛을 보게 된 하늘이의 바구니에 들어가게 되는 바람에 부모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보람이는 길러 주신 엄마가 친엄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해본 일도 없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열이 나고, 온몸에 반점이 생기는 등 이상증세가 나타나 ㅂ람이는 혈액병리검사를 받게 되었다. 의사선생님은 난치성 선천성질병인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고 진단한 후, 조심스럽게 양자로 들어 왔느냐고 물었다. 부모의 혈액형은 모두 A형인데 멘델의 유전법칙에 의하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B형이었기 것.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피검사에서도 보람이는 B형이 나왔으나 단체로 하다 보면 종종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해서 그냥 보람이 엄마는 그냥 지나쳤었다.
그러나 대형 병원에서도 같은 혈액형으로 진단받자, 보람이 엄마는 그날부터 보람이 몰래 친부모를 찾기 시작하였다. 보람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골수이식이 반드시 필요한데, 아무래도 친부모가 조직적합성이 높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출생당시의 병원기록에 쓰여진 주소가 달라, 우여곡절 끝에 보람이의 친부모를 찾았다.
그 분들은 보람이와 바뀐 하늘이를 친자식으로 알고 지내오다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곧 이성을 되찾고 보람이의 건강을 심각하게 걱정하게 되면서 뜻밖의 문제가 생기게 됐다.
기른 엄마와 낳은 엄마가 서로 보람이를 키우면서 치료하겠다고 싸우게 된 것이다. 낳은 정을 따를 것인가, 기른 정을 따를 것인가? 보람이는 자신의 병이 난치성이라는 것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었다. 보람이는 낳은 정을 따르자니 지금까지 같이 살아온 엄마아빠와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기른 정을 따르자니 내 몸의 피는 저쪽 아닌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진정으로 피부에 와 닿는다는 것을 느꼈다. 보람이의 고통에 대해 병원에서는 이미 소멸시효 10년이 지나갔기 때문에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한다. 보상은 이제 의미도 없다. 보람이는 몸은 하나인데 서로 기르겠다는 두 엄마들한테 누가 솔로몬의 지혜를 주지 않겠느냐고 울부짖고 싶을 뿐이다.
상담제목 : 어느 의사의 때늦은 후회
열흘 전부터 감기증상을 보이던 다희(1세, 여). 동네 소아과에서 장중첩증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는 권유를 받고 다희의 엄마가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것은 새벽 2시경이었다.
당직의사는 나름대로 진찰을 해 본 후, “장중첩증은 아니고 단순한 감기예요. 퇴원하셔도 되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희 엄마가 “회복될 때까지 응급실에 있게 해주세요”라고 요청하자, 의사는 “그럼 아이가 보채니 편히 자게 해주겠다”면서 진정제(클로랄 하이드레이트)를 투여하여 잠이 들게 하고는 당직실로 올라가 버렸다.
그런데 입원할 때 정상이던 아기의 체온이 1시간 후 38.6℃로 올라가고 오한이 나면서, 맥박수 140회(평균 100회), 호흡수 52회(평균 28회)로 이상이 나타났다. 다시 1시간이 지나자 활력증후는 더 나빠졌다.
이를 지켜보던 간호사가 당직의사에게 3차례에 걸쳐 전화를 걸었으나, 잠에 취해있던 의사는 내려와 보지도 않은 채 옷을 벗기라고만 지시하였다. 아침 9시경 계속 잠을 자고 있는 듯하던 다희의 얼굴이 갑자기 시퍼렇게 변해서 보니 호흡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의료진은 급히 의사를 불러 심장마사지를 하였으나 다희는 깨어나지 못했다.
부검결과 다희는 라이증후군(소아질병으로 감기회복기에 뇌압이 상승하면서 급격히 악화되기 때문에 조기진단이 우선. 혈당 및 혈청 암모니아검사를 하면 비교적 간단하게 알 수 있음)으로 판명됐다. 법원도 아무런 검사도 하지 않은 채 진통제만을 투여한 잘못을 들어 의사에게 8000만원을 배상하도록 하였다.
법정을 나오면서 담당 의사는 다희의 엄마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3일 동안 밤을 새 잠을 자지 못했거든요”라고 말이다. 이번 사건으로 대학병원 응급실 당직의사들이 며칠씩 잠을 못 잔다는 사실을 안 다희 엄마도 “이제 다 끝난 일인 걸요.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의사를 어루만져 주었다.
인력이 부족하여 응급실 당직의사들이 며칠씩 밤을 새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다희와 같은 아이가 발생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상담제목 : 정관수술 후 임신한 아내, 수술 실패인가? 아니면 혹시...
“정관수술 받는 예비군은 훈련면제, 비용은 일체 무료”
3년 전 동원훈련을 받던 박정혁 씨. 하나만 낳아 잘 기르기로 한 처와의 약속도 있었고, 마침 아들을 낳은 직후여서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미치자 얼른 손을 들고 나가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아내가 입맛이 없다고 하고, 피곤해 하길래 동네 산부인과의원에 아내를 데리고 간 박씨는 임신 4개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았다. 정혁씨는 처를 의심하자, ‘수술한 부분이 풀릴 수 있다고 하더라’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였다.
부부는 상의 끝에 낙태수술을 먼저하고 정관수술을 시행한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와 비뇨기과의사를 상대로 불임수술 실패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한 과실책임을 물었다. 수술한 의사는 “정관수술이 성공하여도 정자가 검출될 수 있는 빈도는 약 2%이고, 10회 이상 정액배출 후 무정자증이 확인된 경우에도 약 0.1~1% 정도 수개월 내지 수년 후에 자연적으로 풀리는 수가 있다. 이는 의사로서도 불가항력이다”고 하면서 정자검사를 해보자고 하였다.
법원이 지정한 대학병원에서 정자검사를 한 결과 뜻밖에도 보람씨의 정자 수는 700만개에 불과하고, 모두 운동성이 없어 임신을 시킬 수 없다고 감정되었다. 통상 정상인의 정자 수는 최소 2000만개가 넘고, 그 중 50% 이상 운동성이 있어야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처는 정혁씨가 아닌 다른 정자로 임신된 것이다.
법원은 정관수술이 성공적으로 시행된 후에도 정액이 배출되거나 재개통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원칙론과 함께 정혁씨는 임신시킬 능력이 없으므로 정관수술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여 박씨 부부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정혁씨는 믿었던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 동창들을 만난다며 자주 집을 비웠지만 별달리 생각하지는 않았다.
정혁씨가 불임수술을 받은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남편의 씨라고 우겼던 처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그는 아직도 모르겠다고 한다. 또한 이미 소송을 아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또 어떻게 피해야 할 지.
상담제목 : 흉터 없애려고 피부이식술 받다 암으로 숨진 H씨의 후회
한우석씨(54세)는 30년 전에 시골에서 몰던 경운기가 전복되면서 불이 나는 바람에 오른 손에 심한 화상을 입게 되었다. 흉한 상처 때문에 남이 악수를 청할 때마다 곤혹스러웠으나 당시는 먹고 살기도 바빠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다. 그 후 서울로 이사와 갖은 고생을 한 끝에 청소용역업체를 운영하게 되었고, 자식들도 모두 대학에 진학시켜 이제는 남부럽지 않게 지내게 된 한 씨는 그 한을 치료하기로 마음 먹었다.
회사근처의 종합병원을 찾아 상담하니 정형외과 의사는 “피부이식수술을 하면 되니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자신있게 말하여 그 자리에서 수술을 결정했다. 정형외과의사는 한 사장의 우측 광배근을 떼어내 이식하는 유리피판술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수술부위가 아물지 않고 썩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정형외과의사는 괴사부위를 들어내고 좌측 광배근을 떼어 재이식수술을 하는 등 5차례에 걸친 공격적 수술과 항생제투여를 계속하였다. 6개월쯤 지나서도 상처에 진물이 나와 피부조직검사를 하자 정형외과의사는 “이식부위에 편평상 피부암이 발생하였고, 이미 전신으로 퍼져나가 오래 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진단을 내렸다. 한사장은 “흉하지만 그냥 지낼 것을 내가 지나친 욕심을 냈다”고 후회하다가 재판도중 이승을 떠났다.
법원은 정형외과의사가 ‘수술전 켈로이드성 피부 등 특이체질여부와 수술 후 고름이 나오면 농배양 및 피부조직검사를 통한 피부암 발생여부’를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아 조기치료를 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 하여 8000여만원의 손해배상을 명하였다.
자기피부를 이식해도 거부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식수술에서는 이를 막기 위하여 면역억제제를 투여한다. 그런데 이 약은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부작용이 있다. 이식수술 후 암 발생을 확인하는 검사가 필요한지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난 한 사장, 아마도 그는 앞으로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주는 의료환경이 갖추어져 자기와 같은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상담제목 : 골절 치료 후 남아있던 뼈조각 때문에 다리 절단까지
심영찬(18세, 남)은 왼쪽 다리가 절단된 장애인이 되었다. 만일 의사가 조금만 더 엄살같은 환자의 호소를 귀담아 들었더라면 굳이 다리까지 절단하는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사연은 이렇다.
신문배달을 하기 위해 영찬이 몰던 97cc 오토바이가 앞서가던 승용차의 급제동을 피하다가 넘어지면서 왼쪽다리에 골절상을 입게 되었다. 영찬은 사고 즉시 인근 정형외과병원에 후송되어 뼈를 접골과 봉합을 하고 부목을 대어 치료를 했다. 그러나 영찬은 치료 후에 다리가 매우 아파 통증을 호소하였으나 의사는 ‘뼈가 부러지면 처음에는 무척 아프다’면서 엄살로 여겼다.
영찬이 너무 아파하자 의사는 진통제를 놓아주었고, 어느 정도 통증은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3일이 지나면서부터 영찬은 치료부위가 심하게 붓고, 다시 통증이 심해졌다. 병원에서는 혈관이 막힌 것으로 의심하고 근막절개술만 한 채 확진을 위한 혈관조영검사는 하지 않았다.
근막절개술에도 불구하고 체온이 38.7℃까지 상승하면서 피부가 변색되고 찬 기운이 나타나는 등 증상이 악화되어 결국 무릎 밑 10cm이하를 절단하고 말았다. 검사결과 원인은 교통사고당시 부러진 뼈조각이 무릎을 지나는 동맥에 들어가 혈액순환을 막아 괴사된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의 뼈가 부러질 때 혈관이 손상되면서 그 속으로 뼈조각 등이 들어가 혈액의 흐름을 막고, 이때 심한 부종이 나타나면서 상승작용을 일으켜 피가 더욱 통하지 않게 되어 불과 수시간 안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따라서 골절환자에 대하여는 주기적으로 골절부위가 변색되는지, 붓지는 않는지, 체온은 올라가지 않는지 등을 살펴 만약 혈행장애가 발생하면 즉시 혈관이식수술이나 감압술을 시술하여 다리가 썩어들어 가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도 의사는 이를 게을리했다. 법원은 의사에게 검사미비, 진단지연, 진통제 남용 등을 이유로 약 1억원의 배상판결을 내렸다.
매일 비슷한 환자를 보게되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아프다고 호소하지만 골절 후 잘 회복된다. 그러나 환자마다 체질과 상황이 다르다. 아파한다고 진통제만을 투여한 채 수술부위를 보지 않아 피부가 변색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되면 이미 늦게 된다. 설사 환자들이 엄살을 피우는 것일지라도 이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의사 선생님을 기대해 본다.
상담제목 : "제발 저희 남편을 조용히 죽게 해 주세요"
대기업 영업팀장이었던 김기창씨(45세)의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마흔살이 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 손에 힘이 없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벌써 내 나이에 이러나”하고는 헬스클럽에 등록하여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팔과 어깨까지 점점 늘어졌다.
이상하다 싶어 병원을 찾아 검사를 한 결과 김 씨는 ‘근위축성 축색경화증(ALS)’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근육이 위축되면서 힘이 빠지고, 결국 온몸이 마비되다가 5년 내에 사망합니다. ALS환자는 희귀하여 치료법조차 연구되지 않아 암보다도 고치기가 더 어려운 병입니다. 현재로서는 죽음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의 설명을 들을 때 김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처음은 집에서 지냈지만 다리에 마비가 오고, 입이 굳어지면서 씹는 것이 어려워지자 입원하게 되었다. 곧이어 스스로 숨조차 쉴 수 없게 되어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기를 3년. 호스를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고 배설해야 했을 뿐 아니라 침대에만 누워있다 보니 욕창이 생겨 온몸이 짓무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김씨는 의식은 아무 이상없이 듣고 생각할 수 있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에 김씨는 “차라리 인공호흡기를 떼고 자연스럽게 죽게 해달라”고 강하게 얘기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냐? 난 당신없이는 못산다”며 펄쩍 뛰던 부인도 하루하루 고통으로 죽어가는 남편을 지켜본 끝에 동의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의사들에게 “제발 제 남편 좀 죽게 해 주세요”라며 치료중단을 요구하였다.
존엄하게 죽게 해 달라는 환자의 요구를 받은 병원에서는 병원윤리위원회를 열어 환자의 명백한 의사에 따라 자연스럽게 죽을 권리를 인정하고 퇴원을 허락하였다. 창기씨는 집에 도착한 후 부인에 의하여 인공호흡기가 제거되고 고통스러운 생을 조용히 마감하였다.
인간의 생명은 존엄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주어진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도 일어나서는 아니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어느 누구에게든지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무조건 생명을 유지하라’고 할 수는 없다. 과연 당신의 가족이 위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상담제목 : 정신과 치료의 목적이 자살방지뿐이랴?
이우울씨(남, 49세)는 대기업체 상무이사로 지내다가 퇴직한 후 주식에 투자했다. 기업에 있을 땐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지만 주식투자에서는 석달 사이에 무려 2억원을 날리자‘내가 누군데, 남들도 다 이익을 내는 주식투자에서 손해를 보나’하는 오기가 발동하여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다시 투자를 했다.
결국 투자가 투기로 바뀌면서 오히려 손해만 커져 가자 이씨는 우울증과 불면증에 빠지게 되었다. 보다 못한 친구들이 기분전환이나 하자며 데리고 간 설악산에서 이씨는 등반도중 자살소동을 벌여 구급헬리콥터로 정신병원 5층의 폐쇄병동에 후송입원도 했다.
보름가량 치료받으면서 가벼운 운동도 하고 동료 환자들과 이야기도 나누는 등 회복기미를 보이자 정신과 의사는 병원 3층에 있는 뇌파검사실에서의 정밀검사를 마친 후 5층 입원실로 돌려보냈다.
이우울씨 역시 동행한 간호사에게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다’고 대답하면서 엘리베이터쪽으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간호사를 밀치고 반대편으로 뛰어가 3층으로 투신하여 두개골골절로 죽고 말았다.
이씨의 유족은 정신병원을 상대로 그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의사가 자살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아 폐쇄병동 밖으로 환자를 데리고 나갔고, 동행한 간호사에게도 아무런 주의를 주지 않아 자살을 미연에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병원은 문진결과 자살위험성이 없었고, 간호사를 힘으로 밀치고 도망가 뛰어 내린 것은 불가항력이었다고 항변하였으나 법원은 자살을 시도하였던 환자가 별안간 평화스럽게 보이면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하는데도 폐쇄병동 밖으로 환자를 내보냈고, 간호사에게도 밀착감시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책임을 인정하였다.
이 판결의 영향으로 정신병원에서는 환자를 폐쇄병동 밖으로 내보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가 자살을 막을 수 있을진 몰라도 정신질환의 치유는 더욱 어려워졌다. 왜냐하면 자살우려가 높다고 하여 환자를 감시하고 폐쇄병동에만 두게 되면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형성이 어렵게 되어 치료가 어려운 것은 물론, 환자는 영원히 정신병원에서 지내게 될 지도 모른다.
정신질환자의 치료목적을 자살방지에 둘 것인가, 사회복귀에 중점을 둘 것인가? 당연히 후자가 우선되어야 한다. 자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둬두거나 묶어서 데리고 다녀서는 아니된다. 정신질환자도 사회로 돌아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고, 그것을 우리 모두가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상담제목 : 휴일, 병원의 맹장수술 지연으로 사망한 K씨의 죽음
강기남(24)씨는 토요일 밤 10시경 아랫배가 아프고 열이나 종합병원 응급실에 가서 피검사를 해보니 백혈구가 정상보다 2배나 많이 나왔다. 당직 인턴은 맹장염일지 모르니 입원하라고 했으나 진통제를 맞고 난 환자는 통증이 덜해지자, 의료사고가 발생하여도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자의귀가서를 작성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일요일 점심 무렵부터 통증이 아주 심해진 강씨는 다시 종합병원을 찾았다. 인턴은 집에 있는 외과의사와 통화한 후 ‘과장님이 내일 출근해서 수술하자고 한다’고 전했다. 밤새 환자의 체온이 38。C를 오르내렸지만 인턴은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았다. 월요일 출근한 외과과장이 개복하여 보니 맹장이 터진지 오래되어 뱃속에는 고름과 악취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겨우 수술을 마치기는 하였지만, 환자는 고열, 통증, 전신부종이 가라앉지 않았다. 수술 후 4일경 배에서 검은 분비물이 나오고 호흡까지 어려워지다가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부검결과 맹장염후의 범발성 복막염이 사인이었다. 맹장염은 조기에 발견하여 수술하여야 한다.
법원은 강기남씨가 처음 병원을 찾은 토요일에 맹장염을 의심했으면 곧바로 시험적 개복술을 하여 복막염으로의 진행을 막았어야 할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하여 병원 측에 1억 9천만원을 배상하도록 하였다.
의료처치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얼마나 빨리 진단하고, 수술을 하느냐에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태가 얼마나 위중한지 잘 모르는 환자가 집에 가겠다고 한다고 하여 아무런 설득없이 자의귀가서 한 장 받은 것으로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
일요일이라도 전문의는 응급환자가 내원하면 쉬던 중이라도 병원에 와서 환자를 직접 진찰하고 수술을 결정하여야 한다. 인턴의 간단한 전화로만 진단한 채 수술시기를 놓쳐 생명을 잃게 한 것은 비난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
상담제목 : 사랑니를 뽑았는데 뇌농양이라니!
건축기사로 일하는 차지철(30세)씨는 아침에 일어나 보니 왼쪽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어금니가 붓고,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치과병원 구강외과의사는 숨어 있는 사랑니가 썩었다면서 이를 뽑고 치료하였지만 점점 더 부었다.
의사는 혈액검사결과 급성염증소견이 나타나, 치아부위중 감염이 생길 수 있는 곳을 모두 살폈으나 고름을 발견하지 못했다. 혹시 잇몸 속이 썩지 않았는지 몰라 일회용 주사기를 찔러 보니 약간의 고름이 나온 것을 근거로 턱관절농양으로 진단하고, 전신마취한 다음 턱을 절개하여 고름을 완전히 제거하고, 퇴원시켰다.
그런데 집에서 요양하던 지철씨는 개구장애는 물론, 심한 두통과 고열로 쓰러지고 말았다. 치과병원 응급실에 실려와 MRI 결과 뇌에 염증이 있는 것이 확인되어, 수술하려고 하자 좌측 턱관절과 귀사이의 부위에서 고름이 저절로 쏟아져 나왔다.
급히 마취를 한 후 입안을 절개하고 남아 있는 고름을 걷어내는데 갑작스러운 발작 증세가 발생하여 기도를 유지하고, 산소를 공급한 다음 MRI 촬영을 실시한 결과 고름이 혈관을 타고 이미 뇌로 가서 뇌농양으로 진행된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신경외과로 옮겨 뇌농양제거술을 시행하였으나, 간질증세와 지능저하증세가 나타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치과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였다.
상담제목 : 대리모가 낳은 자식의 출생신고는?
최은정씨 부부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결혼 9년이 지났지만 아직 아이가 없다. 그동안 병원마다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고, 몸에 좋다는 약은 물론 분위기를 바꿔보라는 권유에 따라 집도 옮겨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불임클리닉원장은 은정씨에게 “이제 포기하고, 대리모를 구해 임신하는 것이 어떻느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하였다. 은정은 차라리 양자를 들일까 하는 생각도 하였지만 그래도 내 피를 가진 아이를 낳고 싶은 본능에 동생 여정을 어렵게 설득하였다.
언니의 부탁에 선뜻 응한 여정은 은정 부부의 수정란으로 임신하여 열달을 잘 참고 견뎌주었다. 여정씨가 들어간 분만실 입구에서 기다리던 언니는 얼마 후 간호사로부터 “축하합니다. 아들입니다”라는 말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털석 주저앉아 마냥 울어버렸다.
며칠 후 은정씨는 엄마가 되었다는 설레임을 가슴에 안고, 출생증명서를 떼기 위해 병원을 방문 하였다. 그러자 원장은 아이의 엄마 란에 동생이름인 ‘최여정’이라고 쓰는 것이 아닌가?
놀란 은정씨가 “우리부부의 수정란인데 왜 동생이 엄마가 되어야 하느냐”고 항의하였지만, 원장은 “탯줄을 끊은 사람이 엄마가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대로 신고하면 호적상 남편과 동생이 간통하여 아이를 난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또한 나중에 아들에게 어떻게 설명하여 이해시킬 수 있을까? 혼란스럽던 은정씨에게 원무과장이 “집에서 출생한 것으로 인우인보증서를 작성·신고하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유전학적으로 은정씨가 엄마이지만 현행 민법상으로는 여정씨가 엄마이다. 한번 호적에 올리면 여정씨와 아들 사이의 생물학적인 모자관계는 소송을 통해서도 바꿀 수 없다. 의술의 발달로 대리모시술은 늘어가지만 아직 우리 법은 모른 척 한다. 그 사이에 죄없이 태어난 아이의 인권침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상담제목 : 무좀과 바꾼 목숨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Y씨는 여름만 되면 발가락에 생긴 무좀 때문에 잘 걸을 수가 없어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우연히 들른 약국의 약사로부터 연고제만 있는 줄 알았던 무좀치료제로 먹는 약이 있다는 설명에 귀가 번쩍 띄었다.
약사는 무좀과 같은 피부사상균감염증에 특효약이라면서 케토코나졸 성분의 니조랄 1개월치를 소화제와 함께 조제하여 주었다. 약사는 “처음 1, 2개월간은 몸이 아플 수 있으나, 이는 치료과정에서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이니 아무 걱정 말고 3개월만 복용하면 완치될 수 있다”는 말까지 덧붙이기도 하였다.
Y씨는 니조랄을 복용한 지 얼마 안되어 목과 얼굴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오심, 구토, 전신무력감, 식욕부진, 소화불량 등의 증세가 계속되어 약사에게 전화로 문의하였더니, “처음에 이야기한 대로 약에 대한 적응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니 염려하지 말고 약을 계속 복용하라”고 답변하였다. Y씨는 조제받은 1개월 분량의 약을 먹고, 다시 2개월치를 전화로 주문하여 계속 복용하였으나, 소화불량 증세 외에 황달과 공복시 속이 쓰리며 가슴이 답답한 증세가 나타나자, 집근처 내과의원에 찾아가 간기능 검사를 받은 결과 약물중독에 의한 급성 간염으로 진단받고, 즉시 대학병원에 응급입원치료를 받았으나 간성혼수로 사망하였다.
약물에 의한 간손상은 약물복용 후 1~5주, 길게는 수개월이 지나서 나타나기도 하고, 간독성이 있는 약물을 장기간 투약할 경우 간손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커지므로 투약 전은 물론 투약 중에도 정기적인 간기능검사를 통한 추적관찰로 만일 간효소치가 상승하는 등 부작용으로 보이는 이상소견이 나타나면 즉시 투약을 중단하여 간손상을 최소화해야 한다.
케토코나졸은 간독성 강하여 이를 매일 일상용량인 200~400mg씩 장기 투약하는 경우 1만~1만5000명 중 1명의 비율로 급성간염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는 급성간부전증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케토코나졸은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약사가 임의로 처방조제해서는 안되는 제품이다. 병원에서도 이 약을 처방할 때 2주에 1번씩 간기능 검사를 하고 있는데, 약사는 간기능 검사의 필요성이나 횟수에 대하여 한번도 복약지도를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단순한 전화주문만으로 2개월치를 우송하기도 하였다.
법원에서는 약사에게 약화사고책임을 물어 1억여 원을 Y씨의 가족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하였으나, Y씨는 이미 이승을 떠났다. Y씨는 약사도 의사의 처방없이 약을 지을 수 있다고 잘못 안 것이 화를 자초하였다. ‘처방은 의사가, 조제는 약사가’라는 구호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후회하기는 이미 소용없게 된 것이다.
상담제목 : 신생아실에서 아이가 바뀌어 이혼할 뻔한 부부
철호(35, 남) 부부는 한때 이혼했다가 재결합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힙들게 결혼하여 태어난 외돌딸 자영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받은 혈액검사가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철호씨는 AB형이라 멘델의 유전법칙상 딸이 O형이 될 수 없는데 자영이가 혈액검사에서 O형으로 통지표를 받아온 것이다.
그때부터 철호씨는 아내를 의심하여 별거를 하다가, 결국 합의이혼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억울한 철호씨의 아내는 가슴앓이만을 하고 지내던 중 우연히 신문에서 혈액형을 통한 DNA감정을 하면 1억분의 1까지도 친자감별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즉시 철호씨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로 가서 DNA감정을 하였더니 놀랍게도 가람씨 부부의 자식이 아니라고 판정되었다!
철호씨 부부는 자신들의 친자식이 신생아실에서 차연이와 바뀐 것을 의심하여 산부인과의원을 찾아가 보았으나 이미 원장이 몇 번 바뀌었고, 자영의 출생기록부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어렵게 당시의 신생아실 간호사를 수소문하여 만나보니 10명이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목욕을 시키고, 모유를 먹이러 산모실로 올려 보내고 하는 사이에 신생아가 뒤바뀔 수 있다고 하였다. 간호사의 작은 실수가 철호씨 부부에게는 친자식은 물론 부부의 연까지도 끊게 하였다.
철호씨 부부는 의사를 상대로 제소하여 정신과 치료비, 위자료 등으로 6,000여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았지만, 아직 자영이는 철호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만약 자영이가 이 사실을 안다면 기른 정마저 잃을지도 모른다.
신생아가 태어나면 우선 발바닥 지문을 찍고, 손목에는 인식표를 붙인다. 그러나 몇 안되는 간호사들이 그 많은 신생아를 돌보다보면 ‘기록 따로, 아이 따로’ 돌게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아이가 뒤바뀌게 되면 가족관계가 모두 뒤바뀌게 된다. 그 가족은 해체되므로 일본에서는 이를 ‘가족의 죽음’이라고 표현한다. 철호씨부부는 기른 정이 옆에 있지만 친 딸이 지금 어느 하늘 아래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하는 걱정으로 날을 지새고 있다. 낳은 정을 잊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상담제목 : 나의 간을 이식하여 주세요
황인수(45세)씨는 시골에서 상경하여 갖은 고생 끝에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면서 외아들이 무럭무럭 성장하는 것을 삶의 기쁨으로 알고 지냈다. 작년 여름부터 쉬 피곤하고, 얼굴이 부어 과로 때문으로 가볍게 여기다가 올 초 목에서 피를 토하자 종합검진을 받아보았다.
검진한 의사는 12년 전부터 앓아오던 만성 B형 간염을 제 때 치료하지 않아 말기간경변으로, 식도정맥류가 생기고, 복수까지 심하게 차기 시작한 인수씨에게 “간이이식을 받지 않으면 6개월을 넘기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 사이에 언제 뇌사자가 발생할지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우선 가족들의 조직을 검사하여 보았더니 외아들 찬식의 조직이 일치하였다. 가족들은 “이제 아빠가 살았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생체간이식수술을 신청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병원에서는 “장기등이식에관한법률상 ‘16세 미만인 자’로부터는 어떠한 경우에도 장기를 적출할 수 없도록 못박고 있어 이식수술을 할 수 없다”고 거부하였다. 찬식은 키가 180㎝, 몸무게 65㎏이어서 외모상 어른이나 다름이 없었으나, 아직 15세의 중 3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찬식이 16세가 되려면 아직 10개월을 더 기다려야하는데 그 때 인수씨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찬식은 “고아로 살 수 없다. 내 간을 떼어 아빠를 살려달라”고 울면서 매달렸으나, 허사였다.
장기등이식에관한법률서 미성년자장기적출을 금지하고 있는 이유는 아직 의식이 미숙한 미성년자를 부추기거나 협박하여 장기매매 등에 악용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찬식의 가족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생명복제술이 발달하여 인공장기가 대량생산되는 날까지는 이러한 비극이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상담제목 : 섣부른 판단으로 맞은 주사제가 사망 부르다
최미선씨(32, 여)는 남편과 두 딸을 둔 가정주부로, 2일 전부터 두통, 오한 및 구토 증상이 있어 동네 약국에 갔더니 진통제, 진토제, 소화제 등을 처방해주었다. 그러나 약을 먹어도 영 낫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침 10시경 집 근처 다나 외과의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다. 의사는 2일 동안 구토를 하였고 그 외에도 오심 및 두통 증상이 있다고 하자 청진기로 청진만 한 후 위염과 신경증으로 판단하여 진경진통제를 주사하고, 신경안정제와 소화제를 조제하여 주었다. 최씨는 다나 의원에서의 치료 후에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아침에는 없었던 상복부 통증 증세가 나타나자, 5시간 후에 다시 다나 의원에 찾아가 증상이 악화되었다고 호소하였다.
다나 의사는 위염 증상이 악화되어 경련이 발생한 정도로만 가볍게 생각하고 별다른 검진 없이 진통효과가 높은 펜타조신 1cc를 정맥주사한 후 약 기운이 독하여 어지러울 것이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안정을 취하라고 하였다. 최씨는 남편과 함께 병원문을 나선 지 채 3분이 되지 않아 사지가 마비되면서 쇼크에 빠져 사망하고 말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의 부검결과 최씨의 폐에 광범위한 염증소견이 있었고, 약물에 의한 과민성 쇼크사로 추정되었다.
펜타조신은 향정신성의약품으로서 뼈가 으스러진 환자와 같이 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에 사용되는 강력한 진통효과가 있는 반면, 호흡중추신경계에 작용하여 호흡억제를, 심혈관계에 대하여 순환억제, 쇼크 등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폐렴환자에게는 신중히 투여하여야 하한다. 또한 주사 후에는 경과를 살펴 안전함이 확인한 후 귀가하도록 해야 하는데, 다나 원장은 이를 게을리하여 법원으로부터 약 1억 2천만 원을 최씨의 유족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것이다.
주사가 먹는 약보다 약효가 빠르다. 이 때문에 병원에서는 주사제를 선호하고, 환자들도 병원에 가면 의례 주사를 맞아야 병이 낫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는 주사를 놓지 않으면 놓아달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수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한 주사약의 오남용은 세계적인 비난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약효가 빠른 만큼 부작용도 많고, 빨리 나타난다. 다나 외과의원에서 펜타조신을 주사하는데 좀더 신중하였다면 최미선씨가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을 등지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상담제목 : 라식 수술 후 시력 상실
훤칠한 키에 자그마한 얼굴을 가진 나오미(20세, 여)양은 미스코리아에 입상한 후 영화배우로 스타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런데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왼쪽은 0.5, 오른쪽은 -1.0디옵터로 눈이 나빠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는데 결막염이 종종 생겼다. 우연히 여성지에서 ‘라식수술로 안경으로부터 해방’이라는 광고를 보고는 곧바로 안과 의원에 갔다. 의사는 눈을 검사하더니 “교정시력이 나쁜 약시일 때는 수술이 불가능한데 오미씨는 교정시력이 0.8로 가장 수술하기 좋은 환자다”고 하였다. 6일 간격으로 양쪽 눈을 수술하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점차 시력을 잃어 거의 실명에 이르게 되었다. 원인은 각막을 한쪽만 너무 깎아 튀어나오는 원추각막증이 된 것이다. 라식수술은 3겹으로 되어있는 각막의 가장 바깥층을 얇게 제낀 후 레이저를 쏘아 안경알을 연마하듯 각막실질을 일정하게 깎아내어 시력을 교정하는 것인데, 이 때 각막실질을 잘못 깎으면 각막의 한쪽이 볼록 튀어나와 결국 시력상실이 된다. 일단 원추각막이 되면 각막이식수술 이외에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법원은 안과의사에게 각막을 원추형으로 깎아 시력을 감소시켰고, 수술부작용에 대하여 아무런 설명 없이 과장된 효과만을 늘어놓아 수술을 동의하게 한 책임을 물어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배상판결을 하였다.
라식수술은 미용성형수술이 아니다. 수술이란 신체의 일부를 침습하여야 하므로 생명이나 건강을 다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시력이 떨어지면 우선 안경이나 렌즈로 교정하고, 이마저 여의치 않게 될 경우에 마지막으로 라식수술을 하는 것이 순서다. 단지 안경이 쓰기 불편하고, 예쁜 얼굴에 방해가 된다며 수술을 받은 오미씨, 이제는 사체로부터 각막을 기증 받아 이식할 날만을 기다리는 처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