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최상해
거창하면 민족의 아픔이할퀴고 간
현실이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오늘은 앙증맞은 사과 하나 앞에 두고
붉고 푸르게 다가오는 것 있어
먼저 높다는 것 그리고 차다는 고냉지(高冷地)
청정산간 맑고 투명함을 지닌
거창, 땅은 기름 넘치는 상징이라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택함 받아서
이리도 살갑게 태어났으니
보기만 해도 입안 가득 침을 돌게 하는
달콤함의 극치 이름하여 꿀사과
그 맛 그 때깔은
경남의 50% 국내 5%를 당당하게 책임지는
천하의 일품 당도를 자랑하니
설레임처럼 '보고싶다'는 글자가
한눈에 보였던 햇빛이 빚은 거창문자사과
아 오늘은 거창 사과 앞에 두고 차별적 가치를
몸소 체험하는 거창한 일
그 땅의 소산을 자랑스럽다
할 때가 지금이리니
●시작노트
현대사를 통틀어 이 땅에 아프지 않는 곳이 있겠는가 마는, 그래도 거창하면 민간인학살을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다.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창이지만, 푸른 하늘아래 두 발로 서서 오늘은 저 탐스러운 사과 한 입 베어 물고 싶다.
수승대
최상해
원래 이름인 '수송대'의 내력처럼
누가 여기서 이별을 생각하나
이리도 맑게 여름이었다가
이리도 풍성하게 가을이었다가
텅텅 비어가는 겨울 그 길목에서
어찌 다시 맞을 봄을 생각지 않고
이별을 먼저 떠올리는가
좀 느리더라도 천년을 살다지고 갈
거북모양의 암구대에 올라
한 번 보면 다시 못 볼까 다시보고
또 다시 보는 요수정을 앞에 두고
허투루 보지 말라고 태초에 자부심을 걸었던
산자락이 깊고 깊다
앞으로 드넓은 위천이 펼쳐지고
기품이 있는 소나무가 병풍처럼 막아선
이 곳 풍경을 예찬한 퇴계 이황이 읊은 시 한수에서
수승대의 이름은 거북모양의 바위에 새겨지고
빼어난 절경마다 내 가슴에도 채곡채곡 새겨지는데
마음 한바닥에 봄이 먼저 들어가
똬리를 틀고 앉아도
나 오늘 막걸리 잔 앞에 두고
다시 못 볼까 헤어짐을 걱정할 밖에
●시작노트
명승 수승대를 천천히 걸어보라 숲을 통과하는 바람소리와 강물 소리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소리를 어떻게 표현할까? 표현 할 수 없을 때는 가슴에 차곡차곡 쌓일 때까지 발길을 돌리지 않는 것이다.
* 최상해
2007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객토문학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