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신경영 12 기업문화1 오빠와 언니
앞 글에서도 빙혼이 직접 경험하고 실행한 사항을 바탕으로 글을 썼지만
누군가가 그래서 100점으로 운영을 하였는가? 꾸준하게 실행을 하였는가? 질문을 하면
당연하게 확고하게 “아니다”고 말을 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시스템은 경영/관리방식은 완벽한 것은 없으며 영원한 것도 없다.
중국 집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먹는 기분이다.
내가 짜장면을 시켜 먹을 때 옆 사람이 먹고 있는 짬뽕이 더 맛있어 보이는 것과 같다.
성공한 기업들의 경영방식을 배우고 익히지만 그런 방식을 조직에 절대로 도입하지 않는다.
영화를 100번 쳐다 보아도 내가 주인공이 아닌 이상 현실과는 완전히 다를 뿐이다.
그래서 빙혼은 다양한 경영방식, 경영기법은 지금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만
항상 조직에 맞도록 짜깁기를 하여 실천 가능한 방법을 새롭게 만들어 적용을 한다.
많은 전문가/사람들이 도요타시스템을 매우 선호하는 편이고 열심히 배운다.
그런데 과연 그런 도요타시스템을 도입하여 얼마나 성공을 하였고 몇 개월이나 유지하였을까?
간판시스템은 도요타시스템의 대표적인 생산관리시스템인데
이 시스템을 도입하여 꾸준하게 운영하고 있는 조직이 있을까?
도요타는 아직도 이 간판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을까?
IT를 넘어 AI가 판치고 챗GPT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데....
그래도 결국은 전쟁의 승리는 육군이 땅을 뺏고 깃발을 꽂아야 하는 법이듯이
제조업도 무인자동화가 도입되어 인력을 대체한다지만 아직까지는 사람이 중심이다.
특히 생산/공정 자동화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매우 위험한 제조방식이다.
자동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표준화가 선행/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사람은 변수에 따라 변경관리를 통하여 문제점을 해결하지만
자동화는 변수에 따라 관리를 하지 못하면 로트불량 또는 공장가동이 중단될 뿐이다.
자재의 표준화, 모든 장비의 표준화, 장비 부품의 표준화, 유틸리티의 표준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6시그마가 필요한 것이다.
빙혼은 완전 자동화는 모른다.
반자동화, 로봇으로 제조를 하는 경우 적절한 인력과 자동화의 조화가 필요함을 느꼈다
카이신경영은 사람 중심의 조직에 해당되는 것이지
자동화나 로봇아 중심이 되는 조직과는 상관이 없다,
로봇과 웃으면서 일하는 사람이 미친 것 아닌가?
한국에서 일을 할 때 해당 공장에 맞는 기업문화를 많이 만들어 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이 호칭에 대한 문화였다.
남자는 모두 “오빠”
여자는 모두 “언니”라고 호칭을 만들어 사용하였던 적이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서로가 어색하기도 하고
직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칭을 달리한다고 반대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꾸준하게 사람들을 설득하여 유행을 시키니까
사장님은 물론 모든 종업원들이 나중에 흔쾌하게 동참을 하여 퇴사할 까지 유지했었다.
사장님이 아닌 사장오빠 또는 큰오빠
공장장은 이상한 오빠 또는 둘째 오빠
빙혼은 멋쟁이(?이때만 해도 연예인 부럽지 않았음. 정말, 사진 참조^^)오빠, 막내오빠
박반장은 박반장오빠, 김반장은 김반장 언니
나이 드신 분에게도 적당하게 앞에 동네이름, 특징을 만들어 오빠 또는 언니 호칭을 붙였고
나이 어린 사람에게는 이름 뒤에 오빠 또는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였었다.
나이 드신 현장의 할머니가 나이 어린 현장의 작업자에게 “00이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니
생산 현장을 방문했던 고객들이나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신기하게 바라본 적이 있었다.
처음에 입사를 하는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하지만 한 달도 못 가 곧 모두 동참을 하였다.
그러다보니 외부공급자들도 우리식의 호칭을 부르기도 하였다.
차이나에서도 몇 군데에서는 “따지에, 지에지에, 따꺼, 꺼꺼”라는 호칭을 사용하도록
바람을 넣었으나 한국에서처럼 성공은 못했지만 재미가 있다고 호응은 한 적이 있었다.
어쨌든 하루 일을 하면서 모든 종업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이 빙혼의 인생/인간 품질관리였다.
효과는 상대방을 부를 때 항상 먼저 오빠나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서
툭하면 말다툼을 하면서 일을 했던 분위기를 가는 말과 오는 말을 곱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마 또 공장을 다니게 되면 한번 더 시도하고 싶을 정도로 재미는 있었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도 반드시 암을 이겨내고 공장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