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그러한 자동 물시계를 반드시 만들어 궁궐에 설치하
려 했으나, 자신의 구상을 실현해줄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재주를 높이 사고 면천(免賤)에, 관직까지
내려준 국왕 세종을 위해 장영실은 혼신을 다하고자 했다.
이후 장영실은 당시 세종과 정인지, 정초 등이 조사하고 수
집한 자료를 가지고 문헌에 전하는 소송의 물시계와 이슬람
물시계를 비교하면서 ‘자격루’라는 새로운 자동 물시계를 만
들어냈다.
자격루의 제작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장영실은 또 하나의 특
징적인 자동 물시계 제작에 착수했다. 시간을 알려주는 자
격루와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는 혼천의(渾天儀)를 결합한 천
문기구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자격루와 혼천의,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 절기에 따른 태양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고 그 절
기에 농촌에서 해야 할 일을 백성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천지
인(天地人)이 하나로 연결되는 이른바 세종이 꿈꿨던 왕도정
치(王道政治)가 이뤄지는 것이었다. 자격루가 완성된 지 4년
후, 1438년(세종 20년)에 장영실은 또 하나의 자동 물시계인
옥루(玉淚)를 완성하였고, 세종은 경복궁 침전 곁에 흠경각
(欽敬閣)에 지어 그 안에 설치하도록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