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전국 한자교육 추진 총연합회'
란 데서 만든 선언문과 여러 가지 선전 자
료를 보고 크게 놀라고, 그래서 느끼고 생
각한 것이 많다. 한자교육 자료라는 것 세
가지를 따지기에 앞서, 우선 이 단체에서
나온 인쇄물들을 대강 훑어보고 느낀 것부
터 말하고 싶다.
일본제국에 빼앗겼던 주권을 도로 찾은
지 53년, 그 동안 우리는 자랑스런 우리 말
우리 글로 교육을 하고, 공문서며 신문이며
잡지며 그밖의 모든 글을 우리 말 우리 글
자로 써 와서 오늘의 우리 글문화를 이룩
했다. 비록 신문에서 한문글자를 섞은 제목
을 볼 수 있지만 그런 신문들도 이제는 지
난날과는 많이 달라지고, 역사의 흐름을 거
스를 수 없게 되어 가고 있다. 다만 한글만
으로 쓴 글에서 가끔 알 수 없는 말이 나와
서 언제나 문제가 되었는데, 이것은 한글
때문이 아니고 바로 그 어려운 말, 잘못된
한문글자로 된 말 때문이니, 그런 말을 쓰
지 말고 우리 말로 쓰면 되는 것이다. 가령
<한문교육 자료1>에서 북한의 교과서에도
나오는 '삼림'이란 말은 우리 말로 '숲'이
라 쓰면 될 것이지 '森林'이란 한문글자를
쓸 필요가 없다. 물론 한자말이라도 아주
우리 말이 된 것은 그대로 한글로 쓰면 그
만이다. 같은 자료에 나오는 말 '砂糖'을
'사탕'이라고 쓰면 되는 것과 같다. 어려운
한문글자로 써야 할 까닭이 조금도 없는
것이다. 우리 말 우리 글을 살려 쓰면 모든
것이 저절로 시원스럽게 풀리는 이 훤한
이치를 진작부터 깨달은 많은 사람들이 저
마다 맡은 전문 분야에서 잘못된 한자말을
우리 말로 바로잡아 쓰는 노력을 하여 왔
지만, 아직도 제대로 안 되는 것은 어려운
한자말로 된 글을 읽고 외국말법으로 된
글을 쓰면서 그런 말 버릇 글 버릇이 몸에
꽉 배어 있는 글쟁이들 때문이다. 그들은
생각을 하는 것도 한자말로, 일본말법과 서
양말법으로 한다. 그래서 어려운 한자말과
외국말법으로 쌓아 놓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기회만 있으면 한문글자를 섞어 쓰자
고 하더니, 이제 역사가 성큼 앞으로 한 걸
음 나아가자 이러다가는 어려운 말과 글로
지켜온 권위를 아주 영영 잃어버리겠다 싶
은지 성명서를 내고 궐기대회란 것을 하려
하면서 온 국민의 관심을 모으기에 발벗고
나선 듯하다. 갈 것은 결국 가고야 말겠지
만, 우리 겨레가 목숨을 지키면서 나가는
길 앞에 어찌 이다지도 지저분한 훼방꾼들
이 사라질 날이 없는가.
나는 이번에 이 한자교육 연합회란 데서
나온, 온통 새까만 한문글자로 된 여러 가
지 인쇄물을 보고 우선 가슴이 탁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는 달리, 젊은이들이
나 학생들이라면 어떻게 느꼈을까? 어깨가
꽉 눌리는 위압감을 느꼈을까? 가련한 노
인들의 헛소리로 비쳤을까.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곧 머리에 떠오른 것은, 여
러 해 전 신문 광고란에 거의 날마다 떠들
썩하게 나오던 온갖 단체와 기관 이름으로
된 여러 가지 광고문이다. 학생 문제, 학원
문제, 노사 문제, 교원 노조 문제 … 이런
문제들로 온갖 성명서며 결의문이며 호소
문 같은 글이 광고란에 나왔는데, 내가 재
미있다고 느낀 것은 그런 광고문의 내용보
다도 거기 쓰인 말이고 글자였다. 가령 노
사 문제가 되면 노동자들이 내는 글은 한
글로만 되어 있는데, 회사 쪽, 경영자 쪽에
서 내는 글에는 대개 한문글자가 섞여 나
왔다. (요즘은 달라져서 경영자들 쪽에서
도 한문글자를 안 쓰지만) 사회 문제, 정치
문제에서 민주 운동을 하는 쪽의 글은 한
글인데, 정부의 어떤 부서에서 나온 글은
한문글자를 섞어 놓았다. 교원 노조 문제로
나온 글도 마찬가지였다. 교육행정을 맡은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단체, 무슨 사립 중고
등 학교장 연합회 같은 데서 나온 성명서
를 보면 온통 한문글자를 써서 새까맣게
되어 있었다. 사람이 그 마음 속에 품고 있
는 생각이란 것은 글의 내용에서 나타나기
전에 우선 이렇게 글자로도 잘 나타나는구
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조금 돌려 본다. 우리 나라 우
리 겨레가 남과 북으로 이렇게 기가 막히
게 갈라져서 서로 원수처럼 된 지가 반 세
기도 더 지났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통일
이 될까? 어쩌다가 우리는 이렇게 그 모진
왜놈 밑에서 시달리다가, 다시 또 이렇게
갈라져 서로 헐뜯고 살게 되었나 하고 언
제나 답답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어
찌 나뿐이겠나? 왜 우리만 이 지구 위에서
이렇게 늘 비참하게 살아야 하나. 그래 나
는 오래 전에-아주 젊었을 때 이런 생각
을 한 적이 있다. 남들이 들으면 어린애 같
은 생각이라고 웃을 터이지만 그런 생각을
지금도 아주 버릴 수 없다. 뭔고 하면, 남과
북이 이렇게 맞서 다투고 헐뜯고 싸우면서
서로 지치고 상처를 내고 괴로워하고 고생
할 것이 아니라 아주 좋은 수가 있다. 그것
은 삼팔선이고 휴전선이고 싹 없애고, 서로
겨누고 있던 총칼을 죄다 버리고, 그래서
누구든지 마음대로 넘어가고 넘어오도록
내버려두면 다 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하
고 싶은 사람은 북으로 가고, 공산주의 싫
은 사람은 남으로 오고, 그래서 공산주의가
살기 좋은가, 자본주의가 살기 좋은가, 서
로 좋은 사회를 만들도록 하면 얼마나 좋
겠나?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저쪽보다 더 살
기 좋은 나라를 만들도록 경쟁을 붙이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통일이 된 것보다 두
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이 더 좋다. 그래서
그 어느 쪽이 다른 쪽보다 아주 살기 좋은
사회가 되면 저절로 그 쪽으로 사람들이
많이 가게 될 것이고, 따라서 못 사는 쪽은
저절로 없어지거나 잘 사는 쪽과 같은 사
회로 따라가서 바뀌게 되어 통일은 저절로
이뤄질 것 아닌가. 왜 이것이 안 되는가?
그것은 뻔하다. 정치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
들이 진심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
해서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남이고 북이
고, 무슨 주의고 무슨 사상이고 이론이고
하지만, 그것은 다 허울일 뿐이다. … 이것
은 물론 현실성, 실현성이 조금도 없는 어
린애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정말이지 우리
가 어린이 마음이 될 수 없다면 결코 참된
진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자, 이제 한문글자와 한자말 문제로 돌아
와 보자. 나는 이번에 이 한자교육 추진 위
원회에서 만든 새까맣게 된 한문글자 문장
을 보고, 이런 글자를 쓰고 이런 글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내 동족인가? 같은
땅에 사는 한 겨레인가? 하는 느낌이 들어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서 또 여기서도 어
린애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한
문글자 쓰고 싶어하는 사람과 한글만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서로 맞서 싸우면서 괴로
워할 것이 아니라 그만 이 땅을 또 남북으
로든지 동서로든지 둘로 갈라서, 한쪽에는
한문글자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가서 살
고, 다른 한쪽에는 한글만 쓰는 사람들이
살면 어떨까? 그렇게 하면 문제가 다 풀릴
것 아닌가.
만약 이렇게 한다면 한문글자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땅에는 아마도 사람
들이 아주 적을 것이다. 그 곳에는 주로 나
이가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고, 젊은이들
은 거의 없고, 아이들은 아마도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 얼마 안 되면 넓은 땅
은 소용이 없을 테니 한 도나 제주도 같은
섬으로 가게 하든지, 제주도 섬도 넓으면 울
릉도 같은 섬에라도 가서 살 수 있을 것이다.
하도 답답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런
공상을 해 보았다. 그런데 말과 글의 문제,
글자의 문제는 사람이 그 정신을 어떻게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에 깊
이 이어져 있다. 내가 보기로 우리 겨레가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남북의 분단 대
립도 아니고, 경제난국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말을 살리느냐 죽이느냐 하는
것이다. 남북의 분단도 경제난국도 결국 우
리 얼을 잃어버린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
는 재앙이다. 이 글 첫머리에서 나는 지난
반 세기 동안 한글만을 쓰도록 해서 빛나
는 한글 문화를 만든 것처럼 말했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글자만 한글로 썼을 뿐
말은 한자말투성이였다. 말을 쉽고 바른 우
리 말을 쓰면 글은 저절로 한글로 쓰지 않
을 수 없는데, 글자만을 한글로 쓰게 했으
니 여기서 문제가 풀리지 않아 우리 말 우
리 글의 모순은 사회의 모든 문화에 그대
로 나타나 마침내 오늘날 이런 글자 싸움
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니 거듭하는
말이지만 우리 말, 쉬운 말을 써야 한다. 그
래야 모든 일이 풀리고 우리 겨레가 살아
난다. 우리 겨레가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이
렇게 간단하고, 이렇게 쉽다. 쉬운 것이 어
렵게 되어 있는 것, 이것이 우리 역사다.
북한의 한문글자 교육을 따라가서
는 안 된다
-<한자교육 자료 1>에 대한 비판
'전국 한자교육 추진 총연합회'에서 내
놓은 <한자교육 자료 1>에서는 '北韓에서
도 이렇게 漢字敎育을 실시하고 있다!'는
제목으로 북한의 '한문 교과서(중학교 제5
학년, 평양도서출판사, 1969)' 한 대문을
'원형대로 複寫'했다면서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을 여기 다 옮길 필요가 없기에 첫머
리만 들어 본다.
第十四課 우리 나라의 山林
山을 綜合的으로 利用하고 山林資源을 不斷
히 增大시키며 그것을 保護管理하는 事業을 强
化할 데 對한 우리 黨의 正確한 山林保護政策에
依하여 우리 나라의 多種多樣한 植物은 훌륭히
保護增殖되여 茂盛한 森林資源을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過去 半世紀間의 日帝의 掠奪的亂
伐의 後果를 가시면서 到處에 自然保護區를 設
定하고 國家的으로 保護하는 한편 全群衆的運
動으로 油脂林, 纖維製紙林, 특수用材林 等 經
濟林이 造成됨으로써 나라의 人民經濟發展에
크게 寄與하고 있다. (이하 줄임)
이런 자료만 내어 놓았을 뿐 그 다음에
는 설명이고 의견이고 더 적어 둔 글이 없
다. 그러니까 첫머리에 크게 내걸어 놓은
제목 '北韓에서도 漢字敎育을 실시하고 있
다 !'고 한 말에 이 자료를 보여 주는 뜻이
들어 있고 주장이 담겨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곧, 북한에서도 이렇게 한문글자를
가르치고 있으니 우리도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 주장이 아주 잘
못되어 있는 까닭을 세 가지로 나누어 적
어 보겠다.
첫째, 잘못된 북한 교과서를 따라가다니 !
북한 중학교의 한문 교과서에 나오는 교
재라고 해서 보여 주는 이 글의 내용을 끝
까지 읽어 보면, 북한에서는 산림자원을 아
주 잘 보호하고 관리하고 있다는 것과, '공
화국 남반부' 곧 남한에서는 산의 나무를
마구 베어 버려서 숲이 모두 황폐해졌다는
것, 그래서 미제국침략자들을 몰아내어 조
국의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런 내용을 가르치자는 주장은 아닐
것이기에 여기서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다만 이렇게 한문글자로 써
놓은 북한 교과서의 글을 읽어서 새삼 놀
라게 되는 것은, 남이고 북이고 우리가 글
이란 것을 쓰면서 얼마나 한문글자로 된
말을 많이 쓰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
고 또 이렇게 한자말투성이로 된 글이 일
본말법을 그대로 따라 쓰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게 된다. 위에서 들어 놓은 대문에서
만 보아도 '종합적' '약탈적' '국가적' '전군
중적'이라고 해서 일본의 지식인들이 만들
어 낸 무슨 '-적'이라는 말이 네 군데나 나
오고. '-에 의하여' '등' 따위가 나오고. '반
세기간의 일제의 약탈적 난벌의'라고 하여
'-의'가 자꾸 나오는 일본말을 그대로 따라
써서 괴상한 글이 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남이고 북이고 지난날 우리가 한문글에 쏙
빠져서 입고 있던 해독, 일본제국의 식민지
정치에서 받은 깊은 상처가 그대로 학생들
이 배우는 글에 무섭게 나타나 있다. 그런
데도 우리는 이 해독을 풀어 없애려고 하
지 않고, 상처를 아물게 하려는 마음조차
먹지 않고, 도리어 이것을 자랑스럽게 아이
들에게 가르쳐서 이어 주려고 하고 있다.
어째서 우리가 이런 어려운 글을 아이들에
게 가르쳐야 하나? 어째서 우리가 이 어수
선한 글을 아이들 머리 속에 억지로 집어
넣어야 하나? 그래서 우리 말을 버리고 우
리 말을 죽여야 하나?
이 글을 보면 우리 말로 써도 되는 말이
얼마든지 있다. 한문글자를 안 쓰고 한글만
으로 이런 내용을 얼마든지 적고도 남는다.
지금까지 남한 사람들이 알기로 북에서는
우리 말 우리 글을 소중하게 여겨서 잘 살
려 쓰고 있다고 되어 있는데, 지난날에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많이 달라진 듯
하다. 밑에서 올라가는 정치가 아니고 위에
서 내려오는 정치는 어쩔 수 없이 그 본색
이 오래 가지 못해 이렇게 드러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별것 아닌 내용이기에
이렇게 어려운 말로 어려운 글자로 써야
정치고 학문이고 교육이고 권위가 서니까.
더구나 속셈을 감추거나 얼버무리는 짓을
하려면 누구나 쉽게, 시원스럽게 알게 되
는 우리 말 우리 글로 쓸 수가 없고, 이런
어려운 글자로 어려운 말과 괴상한 남의
말법으로 써서 읽는 사람을 그저 어리둥절
하게 만들고 위압을 받도록 하는 것이 가
장 좋은 수단이 되니까.
이 글은 말이 어렵고 글자가 어렵고 말
법이 괴상할 뿐 아니라 글이 어수선하기도
하다. 도무지 우리 말이 될 수가 없는 글인
데도 이 글을 배우는 학생들은 이런 문제를
살펴서 따질 수가 없고, 우선 어려운 글자
와 어려운 말 익히기에 온 정신을 쏟아야
할 것 같다. 이게 교육인가? 이러니까 글의
내용도 황당하고 (내용이 엉터리니까 글을
이렇게 쓰고) 이런 교육을 하니까 그쪽 사
회가 그 지경이 된 것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데도 이 교과서를 좋은 자료라 들어
보이면서 우리도 이와 같이 한문글자를 모
든 교과서에 섞어서 쓰자고 하니 정말 말
문이 막힌다.
또 한 번 보태는 말이지만 앞에 들어 놓
은 문장만 해도 조잡하기 짝이 없는 글로
되어 있다. 어린애라도 잘 알고 있는 우리
말 '산'까지 '山'이라고 쓰면서, 어째서 '특
수'란 말은 또 한글로 써서 '특수用材林'이
라 했나? 초안으로 써서 다듬지도 않은 글
같다. 이런 글을 교과서에 싣는 사람들이나
이런 교과서의 글을 우리도 아이들에게 가
르치자는 사람들이나 다 제 정신이 아니라
생각된다.
둘째, 이것은 북한의 한문 교과서이지,
국어 교과서가 아니다.
복사했다는 자료 끝에 적어 놓은 대로
이것은 북한의 중학교 5학년용 한문 교과
서다. 중학생들의 한문 교과서를 들어 보이
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말을 가르치는
국어 교과서를 이와 같이 한문글자로 써서
초등학생들에게도 가르치자고 하는 주장
은 말이 될 수가 없다.
한문 교육과 국어 교육은 그 목표가 다
르고 방법도 다르다. 학생들에게 한문을 가
르치는 까닭은 우리 선조들이 남겨 놓은
한문으로 된 고전을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국어 교육은 우리 말을
가르치는 교과다. 이 두 가지 과목을 구별
하지 않고 우리 말을 가르쳐야 할 시간에
한문글자와 어려운 한자말 가르치는 짓을
한다면 그것은 우리 말을 죽이는 교육이
되고 우리 국어를 망치는 교육이 될 수밖
에 없다. 어째서 <전국 한자교육 추진 총연
합회>란 데서는 우리 말 우리 국어를 죽이
는 교육을 하려고 하는가?
여기서 북한의 그 한문 교과서를 또 따
지게 되었는데, 사실 북한의 그 교과서는
앞에서 말한 것 말고도 문제가 많다. 우선
한문 교과서라고 했지만 한문 교과서가 아
니다. 그게 어디 한문인가? 어려운 한문글
자로 된 말을 요란하게 엮어서 괴상하게 적
어 놓은 병든 우리 글이다. 그래서 이것은
한문도 아니고 우리 말로 된 우리 글도 아
니다. 따라서 이것을 한문 교과서라 해도
말이 안 되고, 국어 교과서, 곧 우리 말 교과
서라 해도 말이 안 된다. 어쩌자고 이런 교
과서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한
문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우리 말 교육
도 엉망으로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지금 우리 남한에서는 중학생들이 한문
시간에 한문 교과서를 가지고 한문을 배우
고 있다. 이것은 잘 하고 있는 것이고, 한문
교육은 국어 교육과는 따로 해서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 만약 학생들의 한문 공
부가 모자란다면 시간을 늘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말 공부와 한문 공부를 구별
할 줄도 모르고 마구 뒤섞어서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가 없는 짓
거리다. 앞에 들어 놓은 글이 정말 '한자'
교과서라고 한다면 북한에서는 이런 괴상
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런 상식에도 어긋나는 짓거리를 이곳 남한
의 어떤 어른들은 한 교과에서뿐 아니라
모든 교과서에서, 그것도 초등학교부터 하
자고 하니 이게 대관절 어찌 돌아가는 세
상인가?
셋째, 이것은 얼이 빠진 교육, 얼을 빼는
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주장할 때
걸핏하면 외국을 들먹이고 외국의 이름난
학자가 했다는 말을 내세운다. 물론 때로는
그럴 필요도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로는 그
것이 너무 지나치다. 그래서 말을 듣는 사
람이나 글을 읽는 사람도 다른 나라 얘기나
이름난 사람의 말이면 귀가 번쩍 하지만,
말하는 사람 자신만의 생각이면 '뭐 저런
무식한 주제에…' 하고 시시하게 여긴다.
옳은 얘기라면 거지가 하는 말에도 귀를 기
울여야 하고, 잘못된 말이라면 박사고 교수
고 총장이고 대통령이 하는 말이라도 잘못
되었다고 해야 할 것 아닌가. 이것이 모두
제 정신이 없기 때문이고, 얼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같은 겨레지만 북한을 대하는 태도에서
도 제 정신을 가진 사람보다 얼이 좀 빠져
있는 사람이 더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
다. 가령 조그만 일이지만 글쓰기에서 보기
를 들면, 언제부터인가 '있다'는 말을 앞 낱
말에 붙여서 쓰는 사람이 많다. 신문이고
잡지고 낱권 책에서도 '있다'를 붙여 쓰는
경향이 있다. 참 이상하다. 이것은 띄어쓰
기 규칙에도 어긋나는 것이고, 붙여서 써야
할 까닭이 없는데 왜 모두 이렇게 쓰는가
싶어, 한번은 어느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하
는 분에게 "왜 '있다'를 붙여서 씁니까?"
하고 물었더니 대답이 이러했다. "이북에
도 붙여 쓰는데요."
여기서 '있다'란 말을 보기로 들게 된 것
은 바로 앞에서 들어 놓은 북한 교과서의
글에 보니 정말 '있다'는 말을 죄다 붙여
써 놓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도 이렇게
하는데…' 이것 역시 '일본에서도 한문글
자를 쓰는데…' '중국에서도…' '서양에서
도…' 하는 정신 상태와 같은 것이라 본다.
다만 이렇게 북한을 대하는 우리 남한
사람의 태도가 일본이나 중국이나 미국이
나 그밖의 나라를 대하는 태도와는 좀 다
른 면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다른 나라를
대하는 경우에는 대개 무엇이든지 좋게 보
고 긍정하는 쪽이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덮
어놓고 따라가는 편과, 덮어놓고 부정하고
반대하는 두 쪽으로 나눠져 있다는 것이다.
또 말에 대한 것이지만 보기를 들면 '동무'
란 말에 대한 것이다. '동무'는 옛날부터 써
온 우리 말이다. '친구'는 어른들만 쓰는 한
자말이다. 아이들은 '친구'란 말을 하지 않
았다. 그런데 6·25 전쟁 이후 우리 남쪽에
서는 '동무'란 말이 사라졌다. 왜 그렇게 되
었나? 이북에서 '동무'란 말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한 사람들은 옛날부터
써 온 귀한 우리 말 하나를 잃었다. 잃은 것
이 아니라 버렸다. 참 어리석은 사람들의
어리석은 짓이다. 북한 사람들이 흔하게 쓴
다고 그 말을 버리다니. 어째서 우리가 이
꼴이 되었나? 얼이 빠졌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한두 가지 말 가지고 얘기했지만, 이
밖에 정치와 경제와 교육, 문학을 비롯해
온갖 문제가 다 이와 같이 덮어놓고 따르
거나 덮어놓고 반대하는 두 극단으로 갈라
져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렇게 따라가고
싶어하든지 반대하고 싶어하든지 무엇이
거나 덮어놓고 하는 짓은 제 정신을 잃은
짓이요 얼이 나가 버린 짓이다. 이것은 '북
한 소아병'이라고나 해야 할 큰 병통이 아
닌가 싶다.
이제 여기 '전국 한자교육 추진 총연합
회'란 데서 한문글자 쓰기를 주장하면서
그 첫째 자료로 북한의 교과서를 보기로
들어 '북한에서도 이렇게…' 하고 있으니
정말 쓴웃음이 나온다. 옳은 일이면 함께
하고, 옳지 않은 일이면 어느 나라 어떤 사
람이 한 말이라도 따르지 말아야 한다. 그
래야 나라 일이 바로 되고 통일도 제대로
이뤄진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제 정신을
가지고, 제 정신으로 살아가자. 제 정신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 말, 우리 글을 살리자.
아이들에게 우리 말을 가르쳐 겨레 얼을
이어가도록 하자.
이런 말을 쓰기 위해 한문글자를
가르치다니!
-<한자교육 자료 2>를 비판함
'전국 한자교육 추진 총연합회'에서 만
든 <한자교육 자료 2>는 신문과 방송에서
쓴 어려운 한자말과 한자말로 된 구절 40
가지를 들어 놓았다. 그리고는 이 자료를
보이는 뜻을 앞머리에 제목으로 크게 다음
과 같이 내걸었다. '<한글 專用>이 招來한
오늘의 新聞 放送 言語의 實態 (知識人도
알 수 없는 한글 어휘들) 이래도 한글 專用
을 主張할 수 있을까?'
어려운 한자말을 한글로 적어 놓으면 무
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한자말은 한
문글자로 써야 한다-이것이 한문글자 쓰
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내세우는
핑계다. 여기에 대한 내 대답은 아주 간단
하다. "그러니까 쉬운 우리 말을 써야 한다.
말이 그렇게 어렵게 된 것은 한문글자를
쓰고 한문글자로 된 말을 좋아하기 때문이
다. 무엇 때문에 그런 어려운 말을 쓰고, 그
어려운 말을 쓰기 위해 그 어려운 남의 나
라 글자를 배워야 하나? 세상에 이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나? 온나라 백성들
을 바보로 만드는 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면 <한자교육 자료 2>에 나온 40가
지 말을 보기로 하자. 밑줄은 내가 그은 것
이다. 아마도 이 말들을 '지식인도 알 수 없
는 한글 어휘들'이라고 한 것 같다.
1. 비극성 유기용제
2. 시료채취 준비
3. 펌프의 보정
4. 척추만곡증
5. 옥상만가
6. 액취증 수술
7. 빌딩의 취기 대책
8. 모양체근
9. 비보전형도 파산 당시 금액
10. 경제관료의 부침
11. 근린 공원
12 난상 토론
13. 남동구 지역 수탁업체
14. 닛산 벤츠 결합 땐 '고립무원'
15. 다한증의 예방
16. 단란주점
17. 무수익 여신
18. 문학상 고사 이해 힘들어
19. 민유총기 일제 점검
20. 반짝 세일 수의
21. 부직포 못자리
22. 북한쪽 백두대간 가상종주
23. 사회의 튼튼한 편자가 되는 것
24. 손해 사정인 없는 보상 대리점 많다
25. 야전상법
26. 여당 손들어 주며 사건은 '미제'로
27. 역세권 첨단 아파트
28. 연금가 판매
29. 염장 죽순
30. 오니 처리장
31. 일 금융 합종연횡 가속
32. 임신 소양증
33. 자망과 주낙 어업
34. 전륜구동
35. 조선산 접류 총목록
36. 퇴출 대상
37. 특수 관로 조사
38. 환란
39. 공당간의 공조
40. 대여 파상공세
정말 '지식인도 알 수 없는' 말이라 할
만하다. 뜻은 대강 짐작이 가는데 그 느낌
이 이상한 말도 있고, 아주 어려운 말도 있
고, 무엇을 썼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도
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신문에 나오거나
방송으로 듣게 되면 한문 공부를 안 했기
때문에 한문글자로 된 말을 모르니 한문글
자를 배워야 한다고 하는 주장이 이치에
맞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한문글자를 애
써 배워서 이런 말을 죄다 한문글자로 써
서 읽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말들
을 모두 한문글자로 바꿔 써 보자.
한문글자를 안 써서 많이 잊어버렸기에
사전을 애써 뒤져서 겨우 이렇게 적었지만,
5(옥상만가). 21(부직). 23(편자). 37(관로)에
나오는 말들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한문글자로 바꿔 쓸 수가 없었다. 이
렇게 한문글자를 찾아 내어 쓰면서 새삼 불
쾌하고 화가 났다. 세상에 무슨 할일이 없
어 이 따위 어려운 글자를 이렇게 써야 하
고, 이런 하잘것 없는 일에 내가 매달려 시
간을 빼앗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면 앞에서 한글로 적어 놓은 것과
이렇게 한문글자로 적어 놓은 것을 견주어
보자. 어느 것이 더 어려운가? 내가 보기로
앞의 것이나 뒤의 것이나 어렵기는 마찬가
지다. 앞의 것은 그 뜻을 알 수 없지만 그래
도 읽을 수는 있다. 초등학생이라도 읽는다.
그런데 뒤의 것은 읽지도 못한다. 다만 한
문글자를 많이 알고 있는, 나이 많은 사람
이라면 한글로 적은 것보다 한문글자로 적
어 놓은 것이 그 뜻을 알아 보기 좋을 것이
다. 그러나 얼마 안 되는 그 '나이 많은 사
람'들을 위해 이런 어려운 글자를 쓰고 이
런 어려운 글자로 된 말을 배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첫머리에 내
놓은 결론과 같이, 어려운 한문글자말을 한
글로 적어도 안 되고, 한문글자를 그대로
적어도 안 된다. 바로 한문글자로 된 어려
운 말을 안 쓰고 그 대신 우리 말로 써야 한
다. 우리 말이니까 모두 잘 알고, 우리 말이
니까 어려운 한문글자가 필요 없고, 한문글
자를 쓸 수도 없다. 한글만 쓰느냐, 한문글
자를 섞어서 쓰느냐 하는 문제는 이렇게 해
서 시원스리 풀린다. 그리고 이 길 밖에는
절대로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이 없다고 본다.
이제 앞에 든 40가지 말을 쉬운 우리 말
로 바꿔 보기로 한다.
1. 비극을 가져오는 유기 녹임액
2. 실험 재료 캐기(따기) 준비
3. 펌프 고치기
4. 등골 굽음병
5. ?
6. 겨드랑 냄새병 수술
7. 빌딩의 냄새 방책(대책)
8. 눈알 꺼풀 심줄
9. 보전하지 않은 것도 파산할 때 돈
10. 경제 관리들의 뜨고 잠김
11. 이웃 공원(마을 공원)
12. 난상 토론·낱낱 토론
13. 남동구 지역 부탁받은 업체
14. 닛산 벤츠 결합 땐 외톨로 남아
15. 땀 많은 병 예방
16. 단란 주점·의좋은 주점·정다운 술집·오순도
순 주점·오순도순 술집
17. 수익(이익) 없는 여신
18. 문학상 굳이 사양 이해 힘들어
19. 민간 총 일제 검사
20. 반짝 싼값팔기 수의
21 ?
22. 북한쪽 백두대간 지도 따라 산등 가기
23. ?
24. 손해 사정인 없는 보상(갚음) 대리점 많다
25. ?
26. 여당 손 들어 주며 사건은 해결 안 된 것으로
27. 지하철 역세력권 첨단(최신) 아파트
28. ?
29. 절임 죽순
30. 더러운 흙 처리장
31. 일본 금융 크게 뭉치기 서둘러
32. 임신 가려움증
33. 자망(자리)과 주낙 어업
34. 앞 바퀴로 달리기
35. 조선 나비 종류 총목록(모든 차례)
36. 물러날 대상
37. 특수관리 길 조사
38. 외국환 난리
39. 버젓한 정당끼리 돕기
40. 여당에 대한 잇달은 공격
세 번째로 적은 이 우리 말로 바꿔서 적
은 40가지 말에 대해 몇 가지 설명을 다음
에 보충하겠다.
⑴ '5.옥상만가' '21.부직포' '23.편자'
'28.연금가'는 알 수 없는 말이어서 우리 말
로 적지 못하고 말았다. 이 가운데서 '옥상
만가'는 '屋上萬家'일까 '屋上輓歌'일까?
어느 쪽도 사전조차 없는 엉뚱한 말이다.
'부직포'란 말도 한문글자로 만든 말 같은
데 알 수 없다. 농촌에서 농민들을 지도한
다는 공직자들은 농사일에 관한 말을 농민
들이 하는 말대로 안 쓰고 온갖 괴상한 한
자말을 만들어 쓰면서 유식함을 뽐내고 권
위를 세우려고 하는데, 이 말도 그런 말 가
운데 하나가 아닌가 싶다. '관로'는 어느 사
전에 '官路'가 나오기는 하지만, 이 말이라
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차라리 사전에는 안
나오지만 '管路'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이 '관'은 '속이 비고 둥근 대롱'이니 '특수
관로 조사'는 '특수관 길 조사'라든지, 그보
다 실제로 이 관을 무엇으로 만들었나에
따라 그 이름이 있을 것이니 뚜렷하게 그
이름을 적으면 될 것이다.
⑵ '지식인도 알 수 없는 한글 어휘들'이
라고 했지만 '준비' '수술' '대책' '파산 당
시 금액' '경제' '공원' '토론' '남동구 지역'
'업체' '결합' '예방' '주점' '문학상' '이해'
'일제 점검' '북한' '사회' '손해' '대리점' '여
당' '사건' '첨단' '죽순' '처리장' '금융' '임신'
'어업' '조선' '총목록' '대상' '특수' '조사' 따
위 말들은 비록 한문글자로 된 말이지만
한글로 적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말이라
보아서 거의 모두 그대로 두었다.
⑶ 좀 알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말도 쉬
운 우리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아서 그대
로 둔 것이 있다. 그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
유기(有機), 난상토론(爛上討論), 단란주
점(團欒酒店), 여신(與信), 수의(壽衣), 백두
대간(白頭大竿), 사정인(査定人), 보상(補
償), 첨단(尖端), 자망(刺網).
이런 말들은 어떤 특정한 지역이나 직업
인들, 어떤 사회계층 또는 어떤 특수한 자
리에서 쓰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 그
런 자리에서는 보통으로 쓰는 말이요 어렵
지 않은 말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말이
어렵다고 하는 사람의 경우도 이것을 한문
글자로 써 놓으면 더 어렵게 되고, 흔히 읽
지도 못 하게 된다.
⑷ '근린 공원'이란 말은 더러 써서 그다
지 귀에 설지는 않지만, 더 좋은 우리 말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⑸ '척추 만곡증' '모양체근' 같은 말은
의료계에서 더 좋은 우리 말로 다듬어 놓
은 줄 안다.
그러니까 신문이나 방송에서 어려운 한
자말을 쓴다면서 한문글자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공문서고 책이고 간판에도 써야
한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억지 수
작이다. 말이 어려우면 그 어려운 한자말을
쓰지 말고 쉬운 우리 말을 써야 한다. 어려
운 말을 쓰기 위해 어려운 글자를 배우는
바보 같은 짓을 왜 우리가 해야 하나? 더구
나 한문글자를 쓰게 되면 한문글자로 된
어려운 말을 자꾸 쓰게 될 것은 뻔한 이치
다. 그래서 우리 말은 버림받고 죽어갈 수
밖에 없다. 우리 말이 죽으면 우리 겨레 얼
이 어디 깃들어 있을 수 있는가? 우리 말
우리 글을 없애고 우리 겨레를 죽여 없애
려던 간악한 일본제국에서 해방이 된 지 53
년, 그 동안 그래도 우리 말 우리 글 문화를
이 정도라도 꽃피워 왔더니, 이제 웬일로
그 옛날로 돌아가 한문글자를 쓰고 어려운
한자말을 써서 반민주의 글문화를 만들어
교육이고 학문이고 사회생활 전체를 어지
럽게 하고 나라와 겨레를 망치려고 하는
사람들이 설치게 되었는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한글로 써서 알 수 없다면 우리 말
이 아니다
-<한자교육자료 3>을 비판함
먼저, <한자교육자료 3>을 그대로 여기
옮겨 본다
이러한 語彙를 모두 한글로 써도 文章의 앞뒤로
보아 뜻이 區別된다고 主張한다면, 이는 억지 强辯이다.
이러한 語彙를 몰라도 生活에 支障이 없다고 主
張한다면, 知識不在, 哲學不在, 思想不在를 自招하는 것
이다.
사전에 나오는 말 여섯 가지를 골라서,
이렇게 다른 뜻으로 쓰는 말이 많은데 한
글로 똑같이 써서 어떻게 구별하느냐, 한문
글자를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 자료
에서 주장한 것을 비판하기에 앞서 우선
내가 크게 놀라게 되는 것이 두 가지다. 그
하나는 한문글자와 한문글자말이 이렇게
우리 말을 어지럽게 하고 어수선하게 했구
나, 이렇게 우리 말을 죽여 왔구나 하는 것
이고, 또 하나는 이런 말로 이런 글자를 써
야 한다고 하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사실은 갑자기
이 자료에서 처음 만나는 것이 아니고 오
래 전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 자료를 보니 새삼 또 놀라지 않을 수 없
다. 정말 이 <한자교육자료 3>은 <한자교
육자료 2>와 함께 우리 글, 한글만을 쓰면
서 우리 말을 살려야 한다는 우리들의 주
장을 뒷받침해 주는 참 좋은 자료가 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이 자료에서 주장한 것을 따져
보겠다. 이 자료는 세 가지를 주장하고 있
다. 그 첫째는 제목으로 써 놓았는데, '우리
말에는 '동음이어'가 이렇게 많다. 이래도
한글전용이 가능한가?' 하는 것으로, 곧 우
리 말에는 같은 소리로 된 말이 많으니 한
문글자를 써야 한다. 한글만 써서는 안 된
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은 제
목에서 묻고 있는 말에 대한 대답으로 아
주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이 <한자교육
자료 3>에 내어 놓은 한문글자말은 거의
모두 '우리 말'이 아니다. 그러니 이런 한문
글자는 쓸 필요가 없다"고.
우리가 귀로 들어서 알 수 없는 말은 우
리 말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 글자로 적어
놓았더라도 우리가 그 뜻을 알 수 없다면
그 말은 우리 말이 아니다. 이 자료3에 나
와 있는 거의 모든 한자말은 이것을 한글
로 적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으니 우리
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말을
우리가 써야 하고, 이런 말을 쓰기 위해 이
런 한문글자를 익히는 데 귀한 시간을 다
버려야 하나?
온갖 소리를 다 적을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우리 한글은, 온갖 모양과 빛
깔과 소리와 움직임을, 온갖 느낌과 생각을
나타내는 우리 말을 자세하고 바르게 적어
낼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 말은 버려
두고 남의 나라 글자 소리를 따라 적으면서
알 수도 없는 말을 만들어 내어 우리 말을
어지럽게 하고 우리 말을 죽이는 노릇까지
해야 하나? 그래서 도리어 우리 한글은 불
편하다, 한글만 가지고는 우리 말을 다 적
어 낼 수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말까지 애매
하게 들어야 하나?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죽
이고 우리 얼을 죽이려는 고약한 속셈을 가
진 사람들 때문이라 할 밖에 없다.
자료에 적혀 있는 한자말이 거의 모두
우리 말이 아니라고 했다. '거의'라고 한 것
은 16가지에서 22가지나 되는 이 낱말들
가운데 하나 또는 둘, 많아도 세 가지밖에
는 우리 말이 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한글로 써서 우리 말이라 알
수 있는 말은 같은 소리말 16~22가지 가운
데 하나 아니면 두셋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말이 우리 말인가, 차례를
따라 살펴보기로 한다.
◎ <고사>에 나온 22개 낱말 가운데 우
리 말로 되었다고 보아야 할 말은 '考査'와
'告祀' 둘뿐이다. '첫째 시간에는 국어 고사
를 치렀다' '고사를 지내는 데 가서 고사떡
을 얻어 먹었다' 이와 같이 쓰는 말이다. 이
두 말을 뺀 나머지 말들은 모두 우리 말로
쓸 수 있는 말이거나 실제로는 쓰지 않는
말이다.
◎ <사기>에 나온 22개 낱말 가운데 우
리 말이라 할 수 있는 말은 '士氣' '詐欺'
'沙器' 세 개뿐이다. 그러나 이 셋 가운데서
도 '沙器'는 '사기 그릇'이라 해서 '그릇'을
붙여 쓴다. 그러니 '우리 편은 갑자기 사기
가 올라서…' '그 친구는 사기를 당해서 재
산을 날리고' 이렇게 쓰는 두 가지 밖에 우
리 말로 볼 수 있는 말이 없다. 나머지 말은
모두 우리 말로 바꿔 쓸 수 있거나, 아주 쓰
지 않는 말이다.
◎ <전기>는 '電氣' '傳記' '前期' 세 가
지를 쓴다. 세 가지 말이 아주 쓰는 뜻이 달
라 한글로 '전기'라고 쓴다 해서 무슨 말인
지 헷갈리는 일은 없다. 이 세 낱말밖에는
모두 쉬운 우리 말로 써야 할 말들이거나
쓰지도 않는 말들이고, '傳奇'는 '傳奇小說'
이란 말로 쓰니까 차라리 '괴기소설'이라
고 쓰는 것이 좋겠다.
◎ <전사>에서는 '戰死'와 '戰士'두 말
뿐이고, 다른 것은 모두 우리 말로 써야 할
말이거나, 평생을 살아도 쓰지 않는 말들이
다. 그런데 '戰士'란 말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병사'라고 하면 그만이다.
◎ <전주>에서는 '前奏'와 '錢主' 두 가
지만 쓰면 된다. 이 두 낱말도 아주 쓰는 뜻
이 다르니 '전주'라 써도 아무런 탈이 없다.
'電柱'는 '전봇대'다. '全州'라는 도시 이름
까지 나왔다. '전주에 간다' '전주시' 무슨
동이라 할 때 알아듣지 못하거나 알아보지
못할 사람은 우리 나라 사람이 아니다. 그
밖에 모두 우리 말이 따로 있거나 평생 한
번도 쓰지 않는 말들이다.
◎ <정수>에서는 '正手'하나만 써도 된
다. 바둑 둘 때 '정수로 두어야지' 한다. '正
數'는 '양수'라고 하고 '整數'는 '자연수'라
하면 된다. '艇首'는 '뱃머리'다. '우물물'이
란 우리 말을 두고 무엇 때문에 '井水'란
말을 써야 하나? 그 밖에 쓴 한자말들도 도
무지 쓰지도 않는 말이거나 우리 말로 얼
마든지 쓸 수 있는 말이다.
우리 말 사전이란 것을 보면 이밖에도
같은 소리로 된 말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
말들 가운데 실제로 쓰는 말, 귀로 들어서
곧 알 수 있고 한글로 써서 알 수 있는 말
은 이와 같이 열에서 하나 아니면 둘뿐이
다. 쓰지도 않는 말을 써야 한다고 하면서
어려운 한문글자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고 하는 것은 정신이 돌아 버린 어른들이
나 하는 교육의 폭행이고, 이런 쓸모 없는
글자를 죽자 살자 외우고 쓰는 공부를 한
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바보들이나 할
노릇인가. 지난날 우리 선조들은 이런 한문
만 숭상하다가 나라를 망쳤다. 우리 말 우
리 글을 병들게 하고, 우리 얼을 잃어버리
고, 마침내 나라까지 팔아먹었다. 책으로
남겨 놓은 학문이란 것도 우리 말 우리 글
로 적어 놓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고전을 모든 국민들이 읽어서 우리 말, 우
리 정서, 우리 삶, 우리 마음을 고스란히 이
어 받았을 것이고, 그래서 우리 겨레답게,
사람답게 살았을 터이고, 또 그래서 교육이
고 경제고 정치고 문학이고 그밖에 모든
문화가 제대로 꽃피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
렇게 되었다면 우리 나라는 오래 전부터
일본보다 훨씬 앞선 나라로 발전했을 것이
란 생각도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지난날의 우리 말 우리 글
멸시, 외국 문물 숭배의 부끄러운 종살이
버릇에서 벗어나지 못한 권력층과 양반 계
층이 지배하던 사회가 조금도 새롭게 바뀌
지 않고 도리어 그 병든 문화가 사회 전체
에 퍼져서, 그래도 조금씩 남아 있던 우리
문화는 그 밑뿌리까지 뽑히다시피 되어 그
자취를 감추고, 드디어 오늘날 이런 경제난
국으로까지 떨어지게 된 바로 이 판에 또
다시 난데없이 우리 역사와 사회를 망친
근원이 되었던 그 한문글자와 한자말을, 죽
어버린 그 말들을 사전을 뒤져서까지 찾아
내어 이런 말을 쓰고 이런 말을 쓰기 위해
한자말을 배우도록 하자고 하는 소리가 들
리니, 이 무슨 괴이한 세상인가?
선조들이 남긴 고전을 읽어야 한다면 그
것을 우리 말 우리 글로 옮겨 놓을 수 있는
일꾼들을 따로 길러 내면 되고 마땅히 그
렇게 할 일이다. 온 국민이 미국말 지껄이
는 미친 짓을 할 필요가 없듯이, 온 국민이
한문글자 쓰는 멍청이 노릇을 해서는 절대
로 안 된다. 나이 많은 어른들이 자기들만
이 알고 있는 한문 지식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다면 그것을 배우고 싶은
학도들에게나 가르치면 된다,
세 가지 주장 가운데 두 번째 주장은 '이
러한 어휘를 모두 한글로 써도 문장의 앞
뒤로 보아 뜻이 구별된다고 주장한다면, 이
는 억지 강변이다'고 한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벌써 지금까지 한 말에서 다 대
답이 나왔다. 이런 어려운 한자말 자체를
쓰지 말아야 하고, 쉬운 우리 말로 써야 한
다고 했으니 이 주장은 문제가 안 된다. 다
만 우리 글자로 써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우
리 말로 된 한자말이 한두 가지씩 있다는
것도 말해 두었다.
마지막 세 번째 주장은 '이러한 어휘를
몰라도 생활에 지장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지식부재, 철학부재, 사상부재를 자초하는
것이다'고 한 말이다. 이 주장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한 말에서 대강 해답이 되어 있
다고 보지만, 여기서 더 말해 보겠다.
앞에서 말했듯이 같은 소리말에서 한글
로 적어도 쉽게 알 수 있는 말, 곧 우리 말
이 된 한자말 한두 가지 말고는 모두 쓰지
않아도 될 말이고, 쓰지 말아야 할 말이다.
우리 말이 따로 있기 때문이고,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어휘를 몰라도 생활
에 지장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했는데,
그렇다. 그런 말 몰라도 생활에 지장이 없
다. 한글로 써서 알 수 있는 우리 말만 알면
그만이다. 한글로 써도 알 수 없는 한자말
을 모른다고, 그런 한문글자를 모른다고 생
활에 무슨 지장이 있겠는가? 만약 지장이
있는 것이라면 우리 국민 거의 모두가 어
려움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
은 그 따위 어려운 말 몰라도 잘 살아 왔다.
만약 조금이라도 지장이 있었다면 도리어
이런 어려운 한문글자로 된 말을 신문이고
책이고 광고문이고 방송말에서 제멋대로
써서 그 유식함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한자
말 중독자들의 말과 글 때문이다.
이런 어려운 한자말을 모르면 지식이 없
고 철학이 없고, 사상이 없는 것이라 한 것
도 웃기는 말이다. 우리 말 가지고서는 지
식을 얻을 수 없고 철학을 할 수도 없고 사
상도 가질 수 없다니, 이런 해괴한 망발이
어디 있나? 우리 말이 될 수 없는 어려운
한자말을 한문글자로 써야만 지식을 얻게
되고 철학을 하게 되고 사상을 가지게 된
다면, 그 따위 지식, 그 따위 철학, 그 따위
사상은 개나 돼지들에게 줄 것이다. 그러나
짐승인들 그 따위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
겠는가.
대관절 지식이 무엇이고 철학이 무엇이
고 사상이 무엇인가? 나는 지금 나이가 일
흔셋을 넘어서려고 하는데, 이 나이까지 책
만 읽고 글만 쓰고, 또 글만 가르치면서 살
았다. 내가 있는 방에는 책이 모두 1만권은
꽂혀 있을 것이다. 내가 쓴 책도 몇십 권이
된다. 그런데 지금 나는 우리 말을 살리려
고 애쓰고 있고, 한문글자를 안 쓰고 우리
말로 되어 버린 말 아니면 한문글자말을
안 쓴다. 말할 때도 그렇고, 글을 쓸 때도
그렇다. 물론 남들에게도 이렇게 해서 우리
말을 살려야 우리 겨레가 살아날 수 있다
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지식도 없고, 철
학도 없고, 사상도 없는가? 우리 말만으로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나 같은 사람은 무지
무식하고 속이 빈 사람인가?
정말이지 나는 내 방에 가득 차 있는 이
책들, 그 가운데서도 지식인들, 학자들이
써 놓은 책들이 싫다. 우리 글로 썼다는 이
책들이 철학이고 역사고 사회고 경제고 문
학이고, 문학에서 소설이고 수필이고 시고
아동문학이고 모든 책이 잘못된 한자말, 잘
못된 일본말, 일본말법, 서양말법투성이로
되어 있다. 책이 이렇고 신문이 이렇고 방
송말이 이러니 우리 말 우리 얼은 자꾸 죽
어 간다. 그래서 대낮에 나타난 도깨비같이
한자말을 쓰자, 한자말을 알 수 있도록 한
문글자를 쓰고 가르치자고 하는 미친 소리
까지 나올 판이 됐다. 그러나 나는 학교 공
부를 하지 않은 사람, 그래서 글을 읽지 못
하고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 그저 말밖에
할 줄 모르면서 살아온 농사꾼들, 그밖에
일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야말로 깨끗한
우리 말을 하는 사람들이고, 산과 들에서
곡식을 가꾸면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사람
들이야말로 가장 깨끗한 사람, 참된 철학과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믿는다.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썼고, 책을 일만 권 가지고 있는
나 같은 사람보다 책을 모르고 살아온 이
런 사람들이 훨씬 더 훌륭한 철학을 가졌
고 사상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는가?
기독교의 성경은 한글로 적어 놓았다.
한문글자를 단 한 자도 모르는 사람도 성
경을 잃고 기독교의 이치를 깨닫고 생각할
줄 안다. 한글만으로 적어 놓은 성경은 철
학이 없고 사상이 없는 책인가? 더구나 어
려운 한자말을 모두 쉬운 우리 말로 고쳐
쓴 성경이 나온 지도 오래다.
나는 어려운 한자말을 가르쳐서 우리 말
을 버리게 하는 오늘날의 학교 교육을 믿
지 않는다. 나는 어려운 말을 지껄이고 어
려운 외국말법으로 글을 쓰는 지식인들의
사상이고 철학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몸으
로 행동할 줄은 모르고 말만이 요란하다.
어렸을 때부터 잘못된 말로 된 글만 읽고
책 속에 빠져서 그 머리 속에는 온갖 쓸모
없는 잡동사니 지식으로 차 있고, 뿌리 없
는 철학과 사상이 책에서 익힌 남의 나라
말과 말법으로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또는
하늘 위에 떠 있는 신기루처럼 들어 앉아
있다. 국회고 행정부고 학교고 어디고 이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우리 사회
를 이 정도로 끌고 왔지만, 이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망쳐 놓은 것도 사실이다.
어째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살
아가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나? 국회
의원이고 장관이 될 수 없나? 어째서 말만
앞세우고 수단방법 안 가리고 입신출세를
하려고 하는 재주꾼들만 설치는 사회가 되
었나? 어째서 속은 비어 있으면서 겉만 꾸
며 보이려고 하는 풍조가 온 나라를 휩쓸
고 있나? 얼이 빠졌기 때문이다. 우리 말,
우리 글자, 우리 땅, 우리 것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니 얼이 빠질 수밖에 없다. 남의 말
남의 글자를 하늘같이 받들고 섬기는데 무
슨 정신이 바로 박히겠는가. 이 근본 문제
를 제대로 보지 않고는 절대로 우리 사회
를 바로잡을 수 없고, 우리 역사를 바로 세
울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