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출발 - 원동초등학교 도착.
아침 6시 10분, 거세게 불어대는 바람에 실려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흩날리는 눈은 시지동을 향해 달리는 차창에 부딪혀 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인적 없는 인도에는 얇게 눈이 쌓여있다. 오늘 오르는 산은 온통 바위라는데 스틱도 아이젠도 없이 산행에 나선 자신을 원망해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대구보다는 남쪽에 있는 산이니까 눈이 쌓여 얼어붙지 않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시지동에서 기경환 님이 마지막으로 승차를 했고 차는 중앙고속국도를 따라 대동분기점을 향해 달린다. 잠시 만에 삼랑진나들목을 지났고 상동나들목이 다가오자 의견이 분분하다. 상동나들목에서 내리면 낙동강을 건너는 교량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과 대동분기점으로 내려가서 중앙고속도로지선 남양산나들목으로 가야한다는 의견이 또 하나였다. 국도에도 교량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여 상동나들목에서 내렸다. 상동면으로 들어서서 먼저 아침밥을 먹는다. 기경환 님은 아침을 먹고 왔다며 숟가락도 들지 않았다. 된장찌개를 먹는 동안 식당 밖에는 펄펄 눈이 내린다. 옆자리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 택배기사들에게 길을 물었다. 이곳 상동면과 원동면을 이어주는 교량이 없으니 다시 고속도로를 타고 대동분기점까지 가서 물금 나들목에서 내리지 말고 남양산나들목에서 내리라는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숭늉으로 입가심을 하고 급히 식당을 나섰다.
고속도로 주변의 산들은 갖가지 모양과 색깔의 구름을 이고 있고, 하늘에는 해가 떴다가 눈이 내렸다가 어두워졌다가 하면서 종잡지 못할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런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대동분기점을 언제 지나쳤는지도 모르고 대동요금소까지 가버렸다. 요금을 계산하고 나서야 이상함을 느꼈지만 차를 돌릴 곳이 없다. 대저분기점을 지나고 삼락동으로 들어서서 낙동강을 바라보며 강변을 하염없이 달렸다. 이 길은 을숙도를 지나 다대포로 가는 길이다. 낙동정맥을 이어가면서 많이 지나간 길이라서 눈에 무척 익었다. 이마트를 지나서야 유턴할 곳이 나왔다.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올라간다.
남양산나들목을 찾아서 잘 내렸지만 양산시내에 아파트 공사장으로 들어서서 다시 한 번 돌아서 나오는 우여곡절 끝에 제 길을 찾았다. 여러 수십 번 굽어지는 도로를 따라 산허리를 돌고 돌아서 원동초등학교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 원동초등학교에서 산행시작 - 새미기고개 산행완료.
산행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에 승합차 한 대가 운동장으로 들어선다. 열 명 정도 되는 등산객들은 맨손체조를 하며 산행 전 준비운동을 한다. 기경환 님은 그들을 따라서 굳은 몸을 푼다. 등산객들의 등반대장은 준비를 꼼꼼히 잘 해왔다. 하산 후 자동차를 주차해 둔 이곳까지 다시 와야 되는 우리에게 양산에 있는 택시회사 전화번호를 불러준다. 그들이 타고 온 승합차는 양산에서 이곳까지 6만원을 줬다고 한다.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초등학교 정문을 나선다.
09:27 초등학교 담을 따라서 포장된 도로 입구에 등산안내도가 서있다. 도랑건너 외딴집의 넓은 마당에 많은 개들이 몰려나와서 우리를 보고 짖어댄다. 개가 짖어대는 통에 조용하던 계곡은 일순 시끄러워진다. 산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소리가 잦아들었다. 조용한 산속에는 바람도 불지 않았고 간혹 눈발이 날리기는 했지만 지상으로 내려온 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산의 초입에서 토곡산정상까지 2.6km를 해발고도 500m이상 쳐올려야 한다. 우리는 천천히 고도를 높여갔다. 왼쪽으로 불룩하게 솟아있는 잘 생긴 바위봉우리를 보면서 김은필 님은 저 봉우리를 올라야 한다고 했고 나는 다른 능선 상에 있는 봉우리여서 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급기야 맥주 열병 내기를 했다. 이때 임상택 님은 저 바위봉우리가 바로 토곡산 정상이라는 것이다. 이 또한 내기꺼리여서 이번에는 안주를 걸었다. 문제의 봉우리는 골 깊은 계곡 건너로 자꾸만 멀어진다. 의미 있는 봉우리를 그냥 두고 지나칠 수 없어 번갈아가며 기념촬영을 했다. 토곡산 정상은 머리 위로 한참 멀어 보인다. 능선마루에는 거센 바람이 휘몰아친다. 얼굴을 때리는 바람을 피하며 고개를 뒤로 돌리니 낙동강 건너로 낙남정맥의 끝부분인 신어산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산줄기가 낙동강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장엄하게 다가온다. 낙남정맥은 다른 정맥에 비해 짧은 거리였지만 고생은 제일 많이 했기에 정맥길 마디마디가 더욱 생생하게 떠오른다.
10:42 억새에 묻힌 헬기장을 지나서 토곡산이 가깝게 보이는 봉우리에 올라섰다. 토곡산 전경을 등 뒤로 병풍처럼 펼쳐놓고 돌무덤 옆에 서서 기념촬영을 하고 토곡산으로 막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토곡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수려한 바위능선이 시선을 잡는다. 토곡산에서 용골산으로 이어지는 이 바위능선을 일러 양산의 용화장성이라고 한다는데 오늘은 눈인사만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차가운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어와서 알록달록한 덧옷을 입는다. 15년 전에 사서 그 당시 잘 입고 다녔었다. 고어텍스 소재로 만든 옷을 구입하면서 옷장에서 8년을 잠자던 옷이다. 지난주 산행에 자크가 고장 난 고어텍스 소재 빨간 덧옷을 고치려고 수선을 맡겨놓아서 오늘 이 옷이 햇빛을 보게 되었다. 땀을 배출하는 기능은 없지만 바람을 잘 막아주어 다행이다. 옷깃을 여미며 내리막을 막 내려서니 이정표(지나온 길 방향으로 함포, 오른쪽(남)으로 원동역, 갈 방향(동)으로 토곡산)가 서있다. 바로 넘어도 되고 우회 길도 있는 암릉이 이어진다.
11:06 나무이정표(왔던 길 방향으로 원동역, 갈 방향으로 토곡산, 오른쪽으로 복천암)가 서있다. 무심코 지나치면 안 된다. 복천암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아래위로 매직펜으로 쓴 글씨(매봉 어곡산 종주길 4.5km 약 7시간 험함.)를 눈여겨 봐야한다. 지도와 지형을 다시 살펴보니 이곳에서 복천암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 일단 토곡산 정상을 밟는 것이 먼저이기에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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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토곡산 정상(土谷山 855m)에는 삼각점(밀양 22)이 박혀있고 이정표(올라온 방향으로 함포?원동역, 반대방향으로 선창리)와 정상표석이 서있다. 그런데 이곳의 행정구역은 양산시 원동면인데 어떻게 밀양에서 삼각점을 설치했을까? 어곡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아래로 임도가 길게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 다시 눈과 매서운 바람이 불어온다. 기경환 님은 쉬지 않고 내려 갈까봐 걱정된 눈빛으로 부랴부랴 배낭에서 단감을 내놓고 모두 먹고 가자한다. 단감은 무척 달았다. 단감을 먹으며 낙동강을 다시 살폈고 낙남정맥을 더듬었다. 눈이 몰아치는 곳에는 용이 하늘을 오르듯 하얀 기둥이 하늘로 뻗치고 있었다.
내려가는 길은 무척 가팔랐지만 예쁜 산길이다. 조심스레 낙엽을 밟으며 미끄러지고 있는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며 중년의 부부가 올라오고 있다. 정겨운 인사를 나누고 바람에 밀려서 바삐 걸음을 옮긴다.
11:40 복천암으로 내려설 수 있는 갈림길에 이정표가 서있다. 우리는 어곡산 방향이다. 길은 다시 치받이다. 내리막의 끝에서는 오르막이 시작되는 것이 정한이치이니 힘들다는 마음을 버리고 오르막길을 즐겨야한다. 즐겁게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른다. 가사가 맞지 않아도, 음정과 박자가 엇갈려도 큰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금방 마음은 달뜨고 대원들의 심각한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차갑던 바람마저 덩실덩실 춤추며 바다를 향해 날아간다.
12:00 거대한 송전탑 옆으로 임도가 나있다. 토곡산 정상에서 본 그 임도이다. 임도 옆으로 산길은 희미하다. 비탈에서 또 다른 송전탑을 만난다. 송전탑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신선봉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봉우리가 그리 높아보이지는 않는다. 치받이에서 만난 바위전망대로 나섰다. 낙타의 등같이 볼록하게 솟아있는 특이하게 생긴 바위능선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우리가 가야할 선암산 매봉이다. 날씨는 맑아져서 하늘에는 흰 구름이 무리를 지어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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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0 능선분기점에 섰다. 가지산도립공원 높은 봉우리는 모조리 눈에 들어온다. 동북에서 정동으로 이어지며 능선을 이루는 취서산, 정족산, 천성산은 낙동정맥이고, 북서 방향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산은 천태산이다. 낙동정맥 뒤로는 동해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 남으로 시선을 돌린다. 낙동강 끝부분에 펼쳐진 바다위로 햇살이 반사되어 은빛물결이 인다.
그리 힘들게 보이지 않는 수려한 능선의 끝에 솟아 있는 선암산 매봉을 보고 있으니 후딱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른다. 이제 여기에서 목표지점까지는 힘들지 않다는 대원들의 말에 기경환 님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12:50 북풍을 막아주는 선바위 앞 반석에 자리를 잡고 김치와 참치를 넣고 찌개를 끓였다. 추운 날씨일수록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찌개국물, 임금님 밥상에 차려진 산해진미나 진수성찬도 이보다 맛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김은필 님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보온병을 열고 김이 피어오르는 차를 한 잔씩 권한다. 특별한 맛을 내는 약차, 찌개, 경치가 어우러져 산행 외의 즐거움에 흠씬 젖었다.
13:17 반석 위를 말끔히 정리하고 매봉을 향해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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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4 선암산 매봉(710m)은 무척 위험한 절벽을 극복해야만 정상을 허락한다. 왼쪽으로 살짝 돌아서면 굵은 밧줄이 내려져있지만 곧바로 오르는 길에는 밧줄이 없다. 임상택 님은 왼쪽으로 돌아 올랐고 나머지 대원들은 곧바로 올랐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대니 조심 또 조심하면서 올랐다. 정상표석 옆에 서서 나름대로 멋진 자세로 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본다. 자연을 파괴하는 골재채취장이 여기에도 있다. 나무를 모두 뽑아내고 작은 봉우리 하나를 완전히 날려버렸다. 채취장 건너 산 중턱에는 골프장을 조성하는지 군데군데 맨살을 드러내고 있어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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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을 내려갈 때도 드리워진 밧줄을 부여잡고 조심해야한다. 매봉 건너로도 바위능선이 계속 이어진다. 바위능선에서 돌아본 매봉의 전경이 압권이다. 오늘 산행 중 최고의 경치가 아닐까한다. 사진을 찍고 막 돌아서는데 위턱에 하얀 이가 험악하게 들어나 있는 두개골이 발에 차여 굴러가는 통에 깜짝 놀랐다. 고라니의 것으로 보이는데 어찌하다 이곳에 다른 뼈는 보이지 않고 두개골만 나뒹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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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바위능선이 끝나면서 급한 내리받이가 시작된다. 왼손 오른손 번갈아가면서 나무를 잡고 뛰듯이 내려간다. 내리받이가 끝나고 최근에 포장을 한 듯한 2차선 도로가 나온다. 양산시 어곡동 어곡지방산업단지와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를 이어주는 도로 위 새미기고개에 내려선 우리는 원동초등학교까지 갈 방법을 모색한다.(도착시간 14시 30분으로 추정)
** 새미기고개에서 원동초등학교, 그 후 하산 뒤풀이.
양산에 있는 택시회사에 전화를 했다. 택시를 보내달라고 했으나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상담원의 말에 택시 부르기를 포기하고 드물게 지나가는 자동차를 향해 손을 들었다. 다행이 젊은 부부가 산 아래 화제리까지 한 명은 태워주겠다고 한다. 대원들에게 배낭을 맡기고 자동차에 올랐다. 젊은 부부는 양산시내에 살고 있으며, 새미기고개는 처음이고, 드라이브가 목적이라 했다. 1022번 지방도로에서 그들은 양산을 향해 좌측으로 내려갔고 나는 원동으로 올라가는 자동차를 향해 다시 손을 들었다. 차들은 무심하게 지나쳐갔다. 마냥 손만 들고 있으려니 조바심이 났다. 이번에는 물금 택시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화제리 주변에 나가있는 택시가 없다면서 역시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막 듣고 있던 차에 하얀색 자동차 한 대가 멈추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영감님은 원래 고향이 부산이지만 은퇴를 하고 지금은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에서 사과농사를 지으면서 전원생활을 즐긴다면서 자신이 사는 집은 찾기 쉬우니 시간 내어 한 번 들러 라고 한다. 그런데 각북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높은 당도의 단맛과 신맛이 잘 어우러진 환상적인 맛이 난다면서 멀리서 맛있는 사과를 찾지 말고 꼭 각북 사과를 한 번 맛보라는 말씀을 듣다보니 어느 듯 원동초등학교 정문 앞이다. 대원들은 내가 자동차를 가지고 오는 동안 화제리 버스정류소까지 내려와 있었다. 돌아가는 길은 삼랑진나들목으로 방향을 잡았다. 천태산 자락에 있는 천태사 앞을 지나 신불암고개를 넘었다. 삼랑진읍에서 목욕탕을 찾아 목욕을 하고 곧바로 고속도로를 달려 시지동으로 들어섰다. 기경환 님 집 앞 술집에서 늦은 하산 뒤풀이를 끝내고 집으로 향했다.
일시 : 2006년 12월 17일 일요일.
거리 : 도상거리 약 8km.
산행시간 : 약 5시간.
날씨 : 눈 내렸다가 맑았다가 변덕스런 날씨, 영하1도-영상2도.
대원 : 김은필, 기경환, 임상택, 권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