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500년을 풍미한 명기(名妓)들의 발자취
사람은 이름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인 신분이나 지위 또는 삶의 발자취를 간파할 수 있다. 조선시대 기생들도 그녀들만의 향기를 담은 이름이 있어서 그녀들의 이름은 개인문집이나 다양한 문학적 사료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기생들이 흔적을 남겼을까? 문득 가지고 있는 사료를 통해 그 이름들을 정리해 보고 싶어 졌다. 기록에 남아 있는 기명(妓名)을 통해 그 시대에 예인으로서 활동했던 인물들도 파악해 보다보면 새로운 연구과제가 나올 것 같은 설렘이 생겼다. 『조선해어화』에 기록된 연대와 지역의 기생 이름은 다음과 같다.
세종(世宗, 1418~1450)때 기생은 녹명아(鹿鳴兒), 성도(成都)기생 일지홍(一枝紅), 은대월(銀臺月), 밀양기생 대중래(待重來), 충주기생 죽간매(竹簡梅)와 월하봉(月下逢)이다. 5명,
성종(成宗, 1469~1494)때는 도성 교방(敎坊)에 뽑혀 들어가서 명성을 날리는 옥부향(玉膚香), 1명,
중종(中宗, 1506~1544)때는 뛰어난 재주와 미모로 거문고를 잘 타는 기생 상림춘(上林春) 그리고 경기기생으로 장안에 명기인 관홍장(冠紅粧), 시가(詩歌)와 서화 그리고 가무에 능한 송도(松都) 황진이(黃眞伊),3명.
명종(明宗, 1545~1567)때는 평양기생 옥매향(玉梅香), 이율곡(李栗谷, 1536~1584)이 시를 지어 주었고 재주와 자태가 출중한 황주기생 유지(柳枝), 평양기생 동정춘(洞庭春)과 전주기생 금개(今介),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이 사랑한 성산(星山)기생 심향지(沈香之), 5명.
선조(宣祖, 1567~1608)때는 천성이 총명하고 시법을 잘 이해하고 파악하는 재주를 갖은 진주기생 승이교(勝二喬), 송월(松月)과 추향(秋香) 그리고 자색 있고 절의가 있는 홍랑(洪娘), 부안기생으로 시와 노래와 거문고에 뛰어난 계생(桂生[매창(梅窓)]), 의기(義妓)가 있는 함흥기생 김섬(金蟾), 평양기생 계월향(桂月香), 의기(義妓)가 있는 진주 기생 논개(論介), 8명.
광해군(光海君, 1608~1623)때는 옥진(玉眞), 금산에서 한양으로 올라온 용모와 가무가 당대에 독보적인 기생 일타홍(一朶紅), 2명.
인조(仁祖, 1623~1649)때는 성천기생 옥부용(玉芙蓉), 평양기생 설아(雪娥)와 계량(桂娘), 그리고 승막수(勝莫愁), 4명.
현종(顯宗, 1659~1674)~숙종(肅宗, 1647~1720) 사이는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이가 손잡는 것을 허락한 기생 계향(桂香),1명.
숙종(1674~1702)때는 추향(秋香), 추성개(秋聖介), 노래를 잘 부르는 안악(安岳)기생 선향(仙香), 3명.
영조(英祖, 1694~1776)때는 제일의 가인 평양기생 일점홍(一點紅)과 시가와 서화에 능한 부안기생 복개(福介)이다. 강계(江界, 평양북도)의 기생으로 자색과 재예가 뛰어난 무운(巫雲), 검무를 추는 평양 기생 추강월(秋江月)과 송랑(松娘), 해남기생 벽도월(碧挑月), 미인인 강릉기생 율단(栗丹), 단양[永春]기생 계화(桂花), 남원기생 춘섬(春蟾), 성도(成都)기생 일지홍(一枝紅), 영월(寧越)기생 초월(楚月) 그리고 영감당(詠甘棠), 만강홍(滿江洪), 행단(杏丹), 월염(越艶), 15명.
정조(正祖, 1752~1800) 때는 출사표와 옛사람 시를 잘 외는 함흥 기생 가련(可憐)과 제주 기생 거상 만덕(萬德)이가 있었다. 2명.
『계미사행록』(1736)에도 기생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검무>하는 덕심(德心), <황창무> 추는 옥진(玉軫) 형제, 밀양기생 걸진(傑珍)ㆍ귀분(貴芬)ㆍ취연(翠蓮), 의성기생(義城妓生) 윤매(允梅)와 봉매(蓬梅), 경주기생 취정(翠晶)ㆍ취애(翠愛) 또한 경주 노기(老妓) 비점(翡點)의 조카로 협기(俠氣)있는 기생 교태를 지닌 운월(雲月), 호협기(虎俠氣)를 지닌 종애(鐘愛), 비점(翡點)ㆍ거문고를 잘 타고 노래와 춤에 능한 영매(英梅)ㆍ백련(白蓮)ㆍ일취(日翠)ㆍ소아(小娥)ㆍ해섬(海蟾)ㆍ 연이(蓮伊)ㆍ옥랑(玉娘)등 이다. 20명.
그리고 경주기생, 퇴석[김인겸]이 사랑한 바 있는 기생 계애(桂愛)ㆍ 조문원(趙文源)이 사랑한 바 있는 기생 취섬(翠蟾), 그리고 취월(翠月)ㆍ상례(相禮)ㆍ운향(雲香)ㆍ앵매(鶯梅)ㆍ다애(茶愛)ㆍ 재랑(才娘)ㆍ귀란(貴蘭) 등 기생의 이름이 있다.9명
『진연의궤(進宴儀軌)』(1744) 기록에는 정재의 종목과 참가할 기생의 명단이 있다. 충주기생 선금(善今), 공주기생 해월(海月)ㆍ죽선(竹仙), 원주기생 예분(禮粉)ㆍ복매(福梅), 안동기생 낙선(洛仙)ㆍ옥섬(玉纖)ㆍ몽안(夢安)ㆍ채옥(彩玉) 등이 있다. 해주기생 이단(二丹)ㆍ현매(顯梅)ㆍ해란(海蘭)ㆍ복섬(福纖), 전주기생 옥섬(玉纖), 황주기생 단(丹)ㆍ상례(尙禮), 안악기생 기린(琪獜)이 있다. 16명.
평양기생 목단(牧丹)ㆍ동월(冬月)ㆍ양대월(陽臺月)ㆍ두견화(杜鵑化), 함종기생 설상매(雪上梅), 청주기생 개화(開花), 성산기생 취정(翠貞)ㆍ옥심(玉心), 상주기생 조녀(曺女), 나주기생 월연대(月延臺), 경주기생 옥란(玉蘭)ㆍ순랑(純琅)ㆍ채옥(採玉)이다. 13명.
성천기생 태진(太眞)ㆍ분명(分明)ㆍ환춘앵(喚春鸎)ㆍ 송애(松愛)ㆍ월빈(月賓)ㆍ두빈(豆賓)ㆍ채란(彩鸞)ㆍ 빙정(娉貞)ㆍ태매(太梅)ㆍ인애(仁愛), 안주기생 양대운(陽臺雲)ㆍ자경화(紫瓊花)ㆍ밀성운(密城雲)ㆍ효애(孝愛)ㆍ 설상매(雪上梅)ㆍ항아(姮娥)ㆍ채란(菜鸞)ㆍ산례(山禮)ㆍ 송대운(松臺雲)ㆍ원애(元愛), 광주기생 수금(壽今)ㆍ귀금(貴今)이 있다. 22명.
『조선해어화』에 연대를 확인할 수 없는 없는 기생이름은 평양기생 온정(溫亭)ㆍ죽향(竹香)ㆍ죽서(竹西)ㆍ매화(梅花)ㆍ 무정개(武貞介), 자태가 요염한 노화(蘆花), 6명.
의성(義城)기생 초옥(楚玉),진남포[평양남도지역]기생 담도(潭挑), 영흥[함경북도]기생 소춘풍(笑春風),성천기생 부용(芙蓉)ㆍ채소염(蔡小琰), 성주(星州)기생 영산홍(映山紅),양덕(陽德)기생 소염(小琰), 7명.
호서(湖西)기생 추향(秋香), 화산(花山), 안동-선성(宣城)기생 매학(梅鶴)ㆍ사봉희(史鳳姬), 뚱뚱해서 춤을 추지 못하지만 시재가 있고 노래를 잘한 한성기생 조비연(趙非燕), 달성기생 백설루(白雪樓)ㆍ현계옥(玄桂玉)ㆍ앵무(鸚鵡), 마산(馬山)기생 주채희(朱彩姬),금릉(金陵[김천])기생 담운(澹雲), 통영(統營)기생 유어당(有魚堂), 남원기생 계월(桂月), 진주기생 계향(桂香), 나주(羅州)기생 자운아(紫雲兒)ㆍ옥섬(玉蟾), 경성(京城)기생 취선(翠仙:호는 설죽(雪竹))ㆍ남취선(南翠仙)과 서화를 잘하는 오산홍(吳山紅), 그리고 남자들이 짝사랑[隻愛]한 기생들의 이름으로. 충주기생 금란(金蘭), 강원기생 대가기(待佳期), 거제기생 소옥(小玉) 그리고 장구를 치며 육자배기 노래를 부른, 전주기생 유섬섬(柳纖纖)이다. 21명.
연대나 지명을 확인할 수 없는 기생은, 금홍(錦紅)ㆍ도화(桃花)ㆍ송이(松伊) 등 이외에도 많은 기생들이 거론되어 있지만 작가들이 기명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3명.
『조선해어화』와 계미사행록, 그리고 『진연의궤』에 기록된 기명만 하더라도 170여명이 넘는다. 위의 사료 이외에도 다른 사료를 찾아보면 많은 기생이름을 찾을 수 있다. 그 당시 기생들의 수는 교방마다 다르지만 중요한 지역에 있는 교방에 속해있는 기생의 수는 대략 300~500명 정도였다. 그렇다면 전국적으로 따져보면 사료에 기록된 명기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기생의 사회적 지위나 기록물을 남기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이렇게 기생들의 이름이 남겨졌다는 것은 대단히 획기적인 일이다. 이런 귀중한 자료를 기록한 사람들은 문인 즉 그 당시 작가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들이 아주 천한 신분인 기생도 자주적 인격체로 볼 뿐만 아니라, 기생을 藝人이라는 창조적 존재로 본다는 점이다.
작가들은 기생들의 뛰어난 재능을 기록하고, 일상 속에 있을 수 있는 기생들의 사사로운 사연까지도 글의 소재로 삼았다. 그리고 작가의 의해 기록된 예인들의 이름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그녀들의 삶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녀들이 미래에 자신의 이름이 쓰이고 기억해지리라는 걸 생각이나 했을까? 요즘 실록에 기록된 한 줄이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영화로 만들어져 1300만 명 이상의 관객 수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다양한 문학적 사료에 기록된 명기의 한 줄이 문화콘텐츠 발굴이 되고 무용계에 새로운 공연 장르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해 본다. 이들을 시대순으로 정리하면 세종(5),중종(3),성종(1),명종(5),선조(8),광해군(2),인조(4),현종(1),숙종(3), 영조(15명),정조(2). 총 49명이다. 계미사록행록(1736년)에 29명. 진연의계(進宴儀軌)(1744년)51명. 朝鮮諧語話 34명.연대 미상 3명. 계미사록행록과 朝鮮諧語話에 嬌坊소속 기생수는 300~500명 정도로 추정돠나 후세에 名妓로 기록된 숫자는 조선 500년 역사에 49명에 불과하니 평균 10년에 1명꼴로 명기가 나왔으니 어찌 群鷄一鶴이라 부르지 않으리오.
그녀들은 조선사 500년 풍미했었고, 한 때는 정치, 경제, 교육,문화를 일조했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논개같은 義妓도 있었다. 빼어난 詩歌를 읊었고 조선의 정치가와 선비들과 교류하며 세상을 풍미한 風雲女들이었기에 그들의 발자취를 재조명하며 이슬같고 서리같은 그녀들의 고운흔적을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의 매마른 영혼들에게 전하고자 아둔한 필치를 찬물에 담근다.
글/ 최성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