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살게 하소서
(첫째- 생명력을 지녀라, 둘째-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셋째-적응성이 있어야 한다, 넷째 확장성이 있어야 한다)
오늘 본문말씀의 핵심은 물이 지닌 속성처럼(The attribute which is a Water) 살라고 하신 것이죠. 그것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생명력을 지니고 살라(The life characteristic which is original)(-사람의 인체는 4분3이 물이죠~ 지구의 4분의 3이 물로 덮여 있습니다. 사람이 어머니 배속에 잉태하면, 그 태아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산소를 공급받게 되는 것이 양수입니다. 또 출산 시 양수가 터지면서 산모도 아이의 생명을 안전하게 합니다. 따라서 사람의 탄생에서 사람의 생명에서 물을 떠 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이 없는 곳에 생명이 잘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을 길러 내는 거예요. 물에 의해서 생명이 자라는 거예요”라고 본문말씀에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이 생명 되게 하는 물의 속성 중에 물처럼 부드럽지만 물처럼 강하고 세상의 어떤 칼보다 예리함이 있다는 것을 보통 사람은 잊어버립니다. 세계철강업계를 선도할 포스코의 최고의 강철판을 자르는 톱이 절삭기가 바로 물칼이라는 것을 알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하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지만 굳고 센 것을 공격하는 데 물보다 앞설 것은 없다. 왜냐하면 그 무엇으로도 물과 바꿀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莫之能勝 以其無以易之-노자의 노덕경 제78장)”
그러니 비록 아주 부드럽고 유약한 물망울이라도 계속 물방울이 바위 위에 떨어지게 되면 결국 그 바위도 깨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죠~ 그래서 서양에서 말하는 섹스라는 말 즉 성이라는 개념의 어원에는 컷트라는 즉 자르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지 모릅니다. 아이가 탯줄을 자르지 못하면 하나의 인격으로 자랄 수 없는 것이죠~ 그러기에 생명력 있는, 개성진리체가 되려면, 자기 정체성을 방해하는 것은 아주 과감히 잘라야 됩니다. 아담이 아담 되게 하고 해와가 해와 되게 해야 하는데, 아담 해와가 탁락하고 만 것은 사탄의 유혹이 왔을 때 과감히 자르지 못했기 때문이죠. 즉 자를 것을 자르지 못하면, 타락으로 죽게 된 것입니다.
살면서 잘라야 할 것이 많죠. 생명이 되기 위해서, 좋은 품질이 되게 하기 위해서 좋은 결실이 되게 하기 위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잘라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꼭 불행한 사람은, 건강치 못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은, 인생을 망친 사람들은 이것을 반대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라야할 것을 자르지 못하고 키워야 할 것을 잘라버지죠. 이러면 농사 잘 못 짓는 것이죠. 자식농사 남편농사 아내농사 부모농사 잘 못 짓는 것이죠.
물은 가장 부드럽게 생명이 생명이 되도록 상처를 주지 않고 생명에 방해되는 것을 무통으로 자른 다는 것입니다. 물은 생명력을 갖추기 위해 과감하고 예리한 절단실체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생명을 낳고 죽음이 죽음을 낳습니다. 생명력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생명력을 불어넣죠. 그러기에 본문말씀에 “물은 모든 생명의 부활력을 지니기 때문에, 그 길 가는 데에는 언제나 부활이 있다.”라고 하시고 있는 것이죠. 자신의 더 낳은 혹은 가족과 이웃의 더 좋은 삶을 위해 견딜 수 없는 움직임 있게 되는 것이죠. 아무리 힘을 쓰고 노력을 해도 죽은 자는, 죽은 사람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물은 죽음 거부하는 생명을 창조하는 필수 영양소입니다. 따라서 생명이 있는 곳에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오늘 부모님께서 물이라는 속성을 통해서 타락성은 가장 예리한 원리의 칼로 도려내고 죽은 자가 아니라 생명을 창조하는 필수 영양소와 같은 역할을 우리 축복가정이 하시길 바라신 것이죠. 그것이 내가 끊어야 할 것을 끊고 내가 채워야 할 것을 채우는 물같은 생활이죠.
참부모님께서는 만왕의 왕 하나님 대관식을 봉헌 드리고 그 모든 천운실체를 가지고 10월14일 모든 세속적인 타락의 조건을 청산하시고자 하는 특별은사 축복을 통하여 축복가정이 생명력을 지닌 보통 하나님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물처럼 생명을 지닌 부활체가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물을 창조하여 우리에게 축복하신 그 뜻은 우리의 생활과 가장 가까운 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생명성을 느껴서 그와 같이 살아달라고 당부하고 계시는 것을 체득하라는 심정이 깊숙이 배어 있음을 말씀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물은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 본질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The directivity which is essential) 흔히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죠~. 노자의 도덕경 66장에 보면 “바다가 여러 골짜기의 임금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낮춤을 잘했기 때문에 능히 모든 골짜기의 임금이 된 것(江海之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故能爲百谷王)”이라고 되었있죠. 제 몸을 낮추는 물의 덕성을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은 더욱 적극적이죠. 물은 틈만 있으면 채우고 메꾼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채우기 위해서 올라가기도 한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물처럼 위에서 흐리기도 또 틈이 생긴 곳을 메꾸기도 쉽지가 않죠?
왜 그러냐하면 즉 물과 같은 삶을 살려면 또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사실적으로 흐르려면 진짜 높은 곳에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망각하기 때문이죠. 인격이 높은 사람, 수준이 높은 사람, 높은 산이, 실력이 높은 단계에 있는 사람이 낮은 단계로 오갈 수 있죠. 오르랑 내리랑 할 수 있죠. 낮은 인격으로는, 비참한 실력으로는 흐를 데가 없죠.
그렇다면 반대로 제일 높은 실력, 제일 높은 인격, 제일 전지전능하신 분이 누구냐? 하나님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중심해야 하나님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를 수 있죠.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우리가 신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자일수록 그러니까 온유겸손 하죠. 자기가 가득한 사람은 자신이 잘난 맛으로, 교만한 맘으로 살지만 그래서 낮은 곳을 흐를 수도, 낮은 곳으로 임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중심한 능력자는 실력자는 참사랑을 소유한 사람은 낮을 곳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을 모시는 신앙을 해야 하는 것이죠. 내가 가진 것이 조금이라도 낳은 것이 좋은 것이 더 수준 높이 것이 있다면 그렇지 못한 좀 더 낮은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로 자연스럽게 흐르고 채우고 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인격자라면 낮아질 수 있어야죠~ 낮은 자리까지도 통할 수 있어야죠~ 사람이 겸손하지 못한 것은 사회적으로는 지위는 높을지 모르지만 인격적 수준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진정으로 높아지려면 하나님이 들어와야 되고 하나님이 들어 있어야 실재로 낮은 데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죠~.
10월14일 특별은사 축복을 허락하신 것은 우리 축복가정을 하나님의 인격수준으로 높여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들의 심정과 사랑이 임할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성경 가운데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이 사울왕이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선민의 초대왕이 이었으니 하나님의 기대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하지만 그가 그렇게 높아지게 한 것이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사울 자신으로 왕의 자리를 채우려 하자 왕의 높은 자리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과 심정의 자리에 내려올 수가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다윗왕은 그것이 사울왕과 달랐던 것이죠~. 어쩌면 개인적인 문제가 아주 많은 사람이 실수가 많았던 분이 다윗왕이었는데도 다윗은 하나님을 중심하고 생활했었기에, 하나님이 그에게 들어와 있기에, 원수를 용서할 수 있었고, 백성의 생활권에 내려와 그 심정을 어루만질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러기에 참아버님께서는 너희들이 하나님이 되어 세상 것에 물들어 있는 낮은 가치 앞에 하나님의 심정의 가치를 흘러주셨으면 하는 심정을 토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게 되는 것이죠~ 축복가정의 가치가 윗물이라고 자부는 하는데 그 물이 고약한 냄새로 악취가 나는 썩은 물이라면 차라리 윗물이 아니라 아랫물이 되어야죠~ 특히 고인물일수록 썩게 됩니다. 따라서 물이야말로 자기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행동하는 생활의 표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 다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그러기에 윗물이 맑아야 되며 그 윗물이 썩어서는 더욱 안 되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틈이 있으면 어디든지 들어가서 채우려는 물의 방향성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물은 적응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Adaptability of environment) 물은 일직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지형에 따라 굽이쳐 흐른다. 환경에 적응하고 포용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감을 뜻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본문말씀에 “어디든지 가서 부착해 버리는 거예요. 어디든지 가서 화해 버리는 거예요. 물이 그렇잖아요? 어디 가든지 메워져요. 그렇기 때문에 물은 만상세계의 주체적인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많으면 홍수가 나고, 지나치게 적으면 가뭄이 나게 됩니다. 천사장의 과분한 욕망이나, 아담 해와의 때 아닌 때의 것을 바람은 자신의 위치를 떠나게 한 것이죠. 만약 아담 해와가 창조본연의 청담수인 하나님의 심정의 물을 바라보며 이것을 깨우칠 수 만 있었더라도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물은 분수에 맞는 생활로 극단적인 사고나 행동은 불행을 초래함을 깨우쳐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은 담는 그릇의 형태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가롯 유다와 베드로는 둘 다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하지만 가롯 유다는 자신을 자살이라는 그릇에 담았고, 베드로는 회개의 그릇에 자신을 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의 내용이 다르게 보이게 된 것이죠~. 그래서 한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역사에 씻을 수 없는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으로 한사람은 거룩한 사도 바울로 오늘 천주교를 탄생시키게 된 것이죠. 잘 못을 담는 그릇이 달랐던 것이죠. 가롯 유다의 물에 놀면 배반자로 자살로 인생이 끝나게 되지만 베드로의 물에 놀면 참회를 통한 거룩한 신앙자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물은 가치의 확장성을 갖고 있습니다. (Expandability of value) “아무리 높이 솟아 있어도 홀로 선 돌을 탑이라 하지 않는다. 셋이서 다섯이서 받쳐주며 높아질 때 탑이 된다”.(이정란 돌탑에서) 물 한 방울은 결코 바다 될 수 없죠. 그러나 바다는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서 된 것이죠.
개인의 작은 힘도 뭉치면 큰 힘을 발휘합니다. 물은 다른 성분과 결합하면 새로운 성분이 태어난다. 자신의 지식, 경험, 아이디어를 다른 동료들과 합하면 더 큰 효과를 낸다. 한 단계씩 실천하는 생활로 원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감 상징합니다. 더욱이 물은 다른 성분과 결합하면 새로운 성분이 태어난다. 자신의 지식, 경험, 아이디어를 다른 동료들과 합하면 더 큰 효과를 냅니다.
그러기에 본문 말씀에 “물은 하늘 높이 구름이 되어 올라갈 줄도 알지만, 땅속 깊이 지하천이 되어 가지고 지구의 어디까지도 내려갈 수 있다 이거예요. 높이와 깊이도 다 갈 수 있다구요. 그러면 넓이는 어떠냐? 세계에 내(川)가 없는 데가 없습니다.”라고 하신 것이죠. 물은 액체에서 기체로, 기체에서 액체로, 액체에서 고체로도 그 모양을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죠. 그러나 그 본질인 물 자체는 그대도 있죠. 그러면서도 다른 것과 결합하면 더 큰 가치를 창조해내죠. 그러기에 시원하고 깨끗한 생명력이 있는 진정한 참된 물이라면 환경을 소화 흡수하고 더 나아가 반드시 번식하고 확장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물은 더러운 것을 씻겨 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어려움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또는 희생을 통하여 조직을 활성화 극대화 시켜주게 됩니다. 아버님께서 10월14일 특별은사축복을 전축복가정과 전만민에게 받으라고 하시는 것은 물처럼 축복가정들로만 있지 말고, 축복을 주변에 연결시켜 타락성을 정화시켜서 창조본연의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이 될 때까지 확대 확장시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의 핵심인 "물처럼 살라"고 하신 것은 첫째로 근원적인 생명력이 지녀야 되고, 둘째로 본질적인 방향성을 가져야 하며, 셋째로 환경에 대한 진정한 적응성과 주관성을 길러서, 넷째로 그 가치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댓글 흐르는 물은 막을 수가 없고 순방향성 갖고 가야 되겠죠(수수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