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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 산행기를 쓰기가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그 까닭을 도대체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어쨌든 조금씩 꾸역꾸역 썼던 끝에 일단 대충 다듬어 올립니다. 다른 산행기와 달리 좀 잘 쓰려는 욕심이 작용했던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다른 동기생이 끼어 있었기에 표현에 신중했던 점도 있었던 것 같고, 또는 지리산이 다른 산과 달리 특별한 靈氣와 感動을 안겨주었기에 이를 깨닫고 소화하기 위해서 마음의 전반적인 관조와 성찰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일단 올리고 후일담은 나중에 따로 써서 올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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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1일(금)-12일(토)에 지리산의 대표적인 종주코스인 성삼재-대원사(38.2 km) 구간을 3 명의 동기들(신영목, 김지표, 권태욱)과 1 명의 후배(53회 유시량, 서울경맥산악회 등반대장)가 같이 나서서 예정된 1박2일의 스케줄대로 무사히 종주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가 종주 산행기를 쓸 마음이랄까 기력이 나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서야 겨우 쓰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지 저도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지리산이 아주 크고 또 빼어난 이 땅의 靈山이자 名山이어서 제가 종주하는 동안 마음속에서 여러 면으로 驚異 神秘 敬服 感動 喜悅 등을 많이 느꼈기에 딱히 어떤 소감이라고 단정해서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아래에서는 쉽게 쓰기 위해서 요점별로 생각나는대로 적어보겠습니다.
1. 지리산 종주의 정석처럼 굳어진대로 우리 4 명도 용산역에서 10일 밤 10시 50분 무궁화호를 타고 다음 날 새벽 3시 23분에 구례구역에 도착하여, 미리 예약해둔 택시로 들머리인 성삼재로 가서 희미한 불빛 아래 얼마간 배낭과 스틱과 의복과 소지품 등을 정돈한 후에 4시 20분쯤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신영목은 이미 성대종주를 3번이나 하여 이번이 4번째의 종주이고, 5년 전의 재경 동기 6명의 성대종주에도 참여했으며, 고교때부터 산에 다니고 암벽등반을 배웠으며, 그 후에도 중단없이 계속해서 근교산행과 원정산행을 다니는 등 완전히 베테랑 산꾼이기 때문에 이번 종주의 대장을 맡았으며, 김지표도 지금까지 재경46동기산악회 등의 근교 혹은 원정 산행에 지속적으로 참여했고 산행시에는 항상 선두그룹에 끼어 갔던 관계로 아랫배가 불룩 튀어나오면서도 산을 잘 탄다는 경탄을 많이 받았는데 지리산 종주는 이번이 처음이며, 저는 산행경력이 1년 남짓한 신참이지만 한 지역산악회에 나가서 고참들을 따라가느라고 잦은 過速(overpace)을 하면서 많은 고통을 겪다가 차츰 과속이 무리함을 알게 되어 저 자신의 보폭과 속도로 천천히 가는 법을 익히고 있는 중인데 지리산 종주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2. 처음에는 잘 정비된 넓은 산길을 따라 노고단까지 올라간 후, 이후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한 좁은 산길이 무성한 숲속으로 끝없이 이어진 데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종주가 시작되었습니다.
3. 길을 덮은 무성한 숲을 헤치며 얼마간 나아갔을 때 제 마음속에는 참으로 묘하게도 어떤 잔잔한 기쁨 안정 평화의 감정이 조용히 차오르는 것을 느꼈으며, 그와 동시에 내가 지리산에 마침내 왔다, 들었다, 안겼다라는 실감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감정과 느낌이 저절로 든 것으로 보아 이번 종주는 틀림없이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마음이 더욱 편안하고 뿌듯해졌습니다.
4. 산길을 계속 가면서 전후좌우로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 모두가 웬지 하나같이 제게 아주 익숙하고 정겹고 평화롭고 자체로 정갈하게 느껴졌으며, 또한 모든 사물이 마치 고요하고 현란한 光輝에 둘러싸여서 완전한 존재형태와 궁극의 理想세계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5. 그렇지만 오늘 반드시 가려고 하는 약 60里에 달하는 먼 산길이 남아 있다는 부담감과 긴장감이 항상 마음의 한쪽 구석을 떠나지 않아서 눈에 비치는대로의 산길, 산세, 수목, 주변 풍광, 사물등에 대한 저의 애틋한 관심과 감탄과 애정을 그때마다 自制케 했으며, 오로지 계속 나아감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데에 전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6. 앞을 향해가는 전진과 이따끔씩 정지하여 숨을 돌리거나 몸을 쉬거나 물이나 행동식을 섭취하는 휴식이 각각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또 서로 자연스럽고 리드미컬하게 교차되도록 최대한 신경을 썼습니다. 특히 산행 도중에 만일 조금이라도 숨이 가빠지거나 몸이 피곤함을 느끼면 언제 어디서든 아주 잠시 서있는 자세로라도 무조건 휴식을 취하는 것이 최근에 제가 확립한 산행의 기본법이며, 이에 의하여 저는 비로소 산행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번 지리산 종주에서는 이 원칙을 더욱 철저히 지켰습니다.
7. 제가 산에 가기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지났는데,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한 지역산악회에 나가서 산행을 잘 하는 사람들을 뒤따라가느라고 過速(overpace)을 거듭했던 결과 매번 지옥같은 마음의 고통과 극심한 신체적 피곤만 얻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이것이 過速(overpace)으로 인한 후유증임을 알게 되었고, 더 나아가 산행은 천천히 가기만 하면 초보자일지라도 웬만한 거리까지는 편안하고 즐겁게 갈 수 있으며, 또한 후유증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의 지리산 종주는 이런 확신에 바탕하여 나섰기 때문에 저는 처음부터 천천히 또 잠깐씩 쉬면서 가는 것이 철칙으로 굳어졌습니다.
8. 등에 맨 배낭은 이틀간의 식사와 간식거리, 또 다음날 입을 옷가지 등을 담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제가 울러맨 것 중에서 가장 무거웠으며, 이 때문에 처음에는 상당히 걱정했지만 조금 지나서부터는 전연 의식되지 않았습니다. 신영목이 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자진해서 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져준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9. 날씨는 운좋게도 이틀간 모두 구름이 많이 끼었고 약간의 비만 내려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만약 햇빛이 쨍쨍 내리쬐거나 뜨거운 공기가 몸을 불덩어리같이 덥히는 酷暑였다면 산행이 어려워져서 큰 고통을 겪었을텐데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여름의 산행은 날씨에 많이 좌우될 수밖에 없는데, 이번에는 날씨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10. 산행의 대열은 신영목 대장의 배려로 항상 김지표가 앞장을 서고 신영목이 중간에 서고 제가 그 뒤를 따르고 후배가 마지막에 섰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숨이 가쁘거나 피로가 느껴지면 제 자리에 서서 아주 잠깐씩이라도 무조건 쉬었던 관계로 항상 뒤에 조금 처지는 편이었고, 김지표는 산행속도를 자기에게 가장 알맞게 맞추면서 나아가라는 뜻에서 선두를 맡겼습니다.
11. 저는 뒷편에 가면서 앞쪽에 가는 김지표와 신영목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많이 보았는데, 김지표는 날 때부터 발이 재바르고 활동적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신영목은 발이 마치 將軍처럼 시종일관 굳세고 활기차고 정연하게 움직임을 느꼈습니다. 둘의 활발한 발놀림이 저는 무척 부러웠는데, 왜냐하면 저는 중학교 때부터 하체가 약함을 느끼고 속으로 걱정했기 때문에 잘 걷는 사람은 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12. 그렇지만 맨앞에서 민첩하게 잘 나가는 김지표의 발걸음을 보고 혹시 過速(overpace)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몇 번 느껴졌습니다. 저는 중간 중간에 짧게 쉬면서 걷는데 그는 그냥 계속해서 걷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혹시 과속의 후유증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13. 아니나 다를까 잘 나가던 김지표가 2-3시간 후부터 어지러움 현기증 피로의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곧바로 전체의 산행속도를 늦추고 쉬는 회수를 많이 늘리면서 천천히 가기 시작했습니다.
14. 하지만 한번 過速(overpace)의 증상이 나타나면 이후의 산행이 힘겨워지고 또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남은 산행이 재미가 없고 고통만 되기 쉽습니다. 결과적으로 김지표는 초반의 과속 때문에 종주 내내 상당한 고통을 치러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過速(overpace)에 관해서 우리가 그 당시 또는 그 이전에 미리 충분한 예방조치와 또 사후에 솔직한 심경표현을 못했던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만약 사전에 예방조치를 제대로 했거나 혹은 사후에 고통스러운 심경을 솔직히 표현했더라면 과속은 대처 혹은 극복하기가 아주 쉬웠을 텐데 이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15. 노고단에서부터 좁은 산길을 헤치고 나아가면서 이윽고 산행지도에서만 보았던 돼지령(왕시리봉 능선 입구), 임걸령(피아골 입구), 노루목(반야봉 입구), 삼도봉, 화개재(뱀사골 입구), 토끼봉, 명선봉이 차례로 나타났지만 먼 길을 가야한다는 부담감이 마음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던 까닭에 보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그냥 지나쳤습니다. 우리의 주된 관심은 어디까지나 힘을 최대한 아끼고 적절히 분배하면서 오늘의 목적지인 세석대피소까지 무사히 가는 것이었습니다.
16. 대원들간에 오가는 대화도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말만 서로 짤막하게 나누었고 의례적이거나 가식적인 말은 되도록 삼갔는데, 이것도 힘을 아끼려다보니 저절로 그렇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17. 저는 특히 마음속의 변화와 움직임에 주목하여 숨막힘 답답함 피로 등의 증세가 오면 즉시 걸음을 멈추고 잠깐씩 쉬는 것으로 대처하는 일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18. 나름대로 어지간히 멀리 걸어왔다고 생각했지만 능선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것처럼 정말 길고 또 지루하게 이어졌으며, 그것도 평탄한 길보다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돌길 바위길 너덜길이 끊임없이 나타났으며, 또 오르막길 아니면 내리막길이 번갈아 나타나서 잠시도 긴장을 풀지 못했으며, 이런 상태가 지속됨에 따라 몸과 마음이 점차 큰 부담과 피곤으로 무겁게 짖눌리고 지치고 허덕였습니다.
19. 어느덧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옮기는 것 외에 다른 일 생각 느낌은 거의 떠오르지 않았으며, 그래서 마치 無心과 諦念에 익숙한 사람처럼 자동적으로 걸어가는 듯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다만 몸을 최대한 낮추어 안전을 도모하고 또 힘을 절약하는 보행법만은 잊지 않고 지켰습니다.
20. 마침내 첫 고비로 여겨지던 연하천대피소가 나타나 반가웠으며 한숨을 돌렸습니다. 여기서 잠시 쉬면서 신영목 대장이 김지표의 過速(overpace)으로 인한 현기증과 피로가 염려되어 종주를 계속할지를 물어보고 계속하겠다는 답을 얻고는 얼마 후에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21. 연하천대피소를 지나서 한동안 가다가 길 옆에 나무숲이 그늘을 드리운 좋은 장소를 발견하고서 모두 배낭을 풀고 바닥에 앉아서 점심으로 아침식사(임걸령 샘터 부근에서 김밥을 먹었음)때 남은 김밥과 떡과 간식 등을 나눠 먹었습니다. 점심을 기분 좋게 먹고 나서는 바로 비닐로 만든 자리와 판쵸雨衣 등을 땅에 펴고 그 위에 드러누워서 쉬다가 잠시 낮잠을 잤습니다. 약 20분 정도 불편한 자세로 잔 낮잠이었지만 효과는 물어볼 것도 없이 만점이었습니다...ㅋㅋㅋ
22. 다시 길을 나서서 지루함과 피곤을 느끼면서도 諦念과 無心의 마음상태로 한걸음씩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기이한 바위의 모습을 한 형제봉이 나왔고, 또 그 얼마 후에 기다렸던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여기서 얼마간 쉬긴 했지만, 시간이 늦을까 우려되어 곧 또 길을 떠났습니다. 이미 상당히 먼 산길을 걸어왔으므로 여기서부터는 갈수록 마음의 지루함과 신체의 피로감이 무겁게 느껴졌지만 끈질기게 극복하면서 발걸음을 옮긴 끝에 덕평봉과 칠선봉을 지나 마침내 산행을 시작한지 14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6시 50분쯤에 첫날의 목적지인 세석대피소에 무사히 도착하여 일단 마음의 큰 짐을 벗고 안도했습니다.
23. 세석대피소에 도착하긴 했지만 몸은 무겁고 팔다리는 굳고 마음은 지쳐서 모든 것이 귀찮고 그냥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해가 지고 점차 어두워지고 비까지 간간히 뿌리기 시작했으며, 대피소 앞마당에 놓인 탁자 위에서 바로 저녁 준비에 들어가서 두 개의 버너에 불을 붙여 밥과 찌개를 올렸으며, 다 된 후에는 희미한 전등불 아래에서 술을 곁들인 식사를 하고, 이어서 설거지와 뒷정리를 바삐 마쳤는데, 이 과정에서 야외 취사의 경험이 많은 유시량 후배와 신영목 대장이 큰 수고를 했으며, 무경험자인 김지표와 저는 주로 구경하면서 간간이 잔일만 거들었습니다.
24. 식사를 끝내고 밤 10시쯤 되어서 숙소로 올라가 누웠는데, 김지표는 이내 코를 골면서 잠이 들었고, 신영목과 유시량 후배는 누운 상태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어서 과연 잠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으며, 저는 몽롱한 의식으로 밤새도록 자는 둥 마는 둥 했는데 평소에도 이런 경우가 많아서 별다른 불편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25. 저는 반쯤 잠든 상태에서 어렴풋하게 새벽 2-3시부터 지리산의 정상인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려는 등산객들이 부스럭거리면서 일어나거나 소곤거리며, 또 비가 계속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만 그냥 누워있었습니다. 비가 오기 때문에 새벽 일찍 천왕봉으로 올라가 일출을 볼 일이 없어졌으므로 좀 느긋이 일어나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누워서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니 대부분이 비 때문에 천왕봉까지는 올라가되 하산길은 거리가 먼 대원사는 포기하고 가까운 중산리 혹은 백무동으로 잡는 낌새였는데, 저는 생전 처음 나섰던 성대종주를 비 때문에 중도에 포기할 수 없기에 무조건 대원사로 가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26. 결국 아침 5시 반쯤 일어나서 곧 행장을 꾸린 후에 아침식사는 여기서 간편하게 간식으로 때우고 천왕봉에 오른 후에 하산길 도중에 들리는 치밭목대피소에서 제대로 밥을 해먹기로 하고서는 비 속에서 세석대피소를 출발했습니다. 처음에는 제법 세차게 내리던 비가 우리가 천왕봉에 도착했을 즈음부터 다행히 그치거나 혹은 약해져서 간간이 뿌렸습니다.
27. 이날의 몸 상태는 전날보다 대체로 더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발걸음이 현저하게 무겁거나 느려진 것은 아니어서 그저 보통의 편에 가까웠고, 그래서 걷는 법도 어제와 비슷하게 힘들게 걸어가다가 숨이 가빠지거나 피곤하면 걸음 걸음 사이에 잠깐 쉬었다가 다시 걷는 rest step(산악전문가들의 보행법으로 걸음걸음마다 아주 잠깐씩 쉬면서 계속 가는 보행법)을 응용하면서 걸어갔습니다.
28. 세석대피소를 출발한지 2시간 좀 안되어 지리산에서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여 가느다란 비가 오락가락하는 바깥의 벤치에 앉아서 물과 간식을 먹고 한동안 쉬었으며, 다시 출발하여 1시간쯤 후에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에 도착했습니다. 이때까지 비는 오다가 그치다가를 반복했으며, 짙은 구름과 흐린 날씨 탓으로 천왕봉에서 一望無際인 사방의 景觀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29. 천왕봉에서 꽤 머물다가 아쉽게 작별하고부터 대원사를 향해서 본격적인 하산길로 접어들었는데 6-8시간이 걸리는 아주 먼 길인데다가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으며 또 바위가 많아서 비가 오면 미끄러우므로 조심해야 된다고 알려져서 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30. 하산길 도중에 지금껏 산행지도에서만 보았던 중봉과 써리봉을 지난 후에 中間의 휴식처 겸 취사장소로 잡은 치밭목대피소를 향해서 나아갔는데, 이 무렵부터는 아침밥을 먹지 못했던 데다가 간식도 모두 떨어져서 허기가 오기 시작했던 탓인지 걷기가 유난히 지루해지고 힘들어지고 느려짐을 분명히 느꼈습니다만 별로 뾰죽한 수가 없었기에 모두가 말없이 그저 끈기있게 걸어가는 일에 힘과 관심을 모았습니다.
31. 지루한 忍苦의 발걸음을 한없이 옮긴 끝에 마침내 마음속으로 애타게 기다리던 치밭목대피소에 도착하여 곧바로 밥을 짓고 라면을 끓이며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이 없고 우리만 있어서 대피소의 앞마당 천막 밑에 놓인 平床에 편안하고 넓직하게 자리를 잡았으며, 모처럼 山中의 靜寂과 한가한 여유를 즐기면서 식사를 맛있게 하고 한동안 잘 쉬었습니다. 이제 먹거리는 완전히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출발을 준비할 즈음에 대원사쪽에서 한 사람이 큰 배낭을 메고 올라왔는데, 물어보니 대원사까지의 하산은 족히 4시간이 걸린다고 하여 일순간 암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먹을 것도 없는데 아직도 4시간이나 더 가야 한다니...ㅠ.ㅠ.
32. 속으로 걷는 일에 진절머리가 났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길을 나서서 도중에 유명한 무재차기폭포로 내려가 한참 구경하고 발을 벗어 물에 담그고 쉬었으며, 다시 하산을 계속하다가 광대한 대원사계곡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전망바위에 올라가 탄성을 연발했습니다만 역시 마음속은 지루함과 피로감이 가득 찼으며, 또한 길이 생각보다 힘들고 까다로와서 자칫 부상을 당할지 몰라 걱정과 부담이 계속되었습니다.
33. 마음은 시종 무겁고 괴로웠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참고서 걷고 또 걸었습니다. 까다롭고 쉽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끝없이 이어졌지만 無心과 諦念에 절은 마음으로 묵묵히 걸어만 갔는데, 이윽고 앞장서서 먼저 내려갔던 후배가 되돌아와 우리를 기다리면서 곧 마을(유평리)이 나오므로 그 전에 계곡물에서 목욕을 하고 가자고 해서 길 옆의 큰 바위가 널린 넓직한 계곡물로 들어가서 더위에 찌든 몸을 담그고 씻은 후에 옷을 완전히 갈아입었습니다.
34. 목욕을 끝내고 얼마간 내려오니 마침내 마을이 보이고 넓은 포장도로가 나오고 음식점이 보여서 가까운 곳에 들어가 배낭을 내려놓았습니다. 이때가 오후 6시 40분경이었으니, 세석대피소를 출발한지 12시간 20분쯤 걸렸습니다. 토속음식을 시켜놓고 술잔으로 건배하면서 종주의 성공을 자축한 후에 맛좋게 먹었습니다. 배가 적당히 불러온 후에 상경할 버스 시간이 급하기에 택시를 불러 타고 일대의 교통의 중심지인 원지터미널로 나가서 저를 제외한 3명은 곧바로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고, 저는 혼자서 시외버스를 타고 진주로 나갔다가 진주에서 대구행 버스가 끊어졌다기에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마산으로 옮겨간 후에 대구행 심야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는데 대구에 도착하니 어언 자정쯤이었습니다. 그 후 며칠 간은 무사히 종주를 끝냈다는 생각 때문인지 몸은 제법 피곤했지만 그 대신에 마음은 상쾌하고 흡족하며 때론 뿌듯하기까지 했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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