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05:50. 정확하게 날 깨워주고. 물 끓이고, 밥, 김치, 밑반찬을 간단히 챙기고 재우와
함께 졸린 눈을 비비며 대문을 나섰습니다.
07:20. 드디어 출발! 늦게 나타난 조기사 그러더라구요. 한시간이나 늦어서 못 갈지도 모
른다고(이게 무시기 소리. 기다렸잖아!). 아이들의 심드렁한 얼굴을 뒤로하고 조기사와 나는
떠남에 즐거워했습니다. 지도책과 인터넷으로 찾아온 지리정보를 무릎에 놓고 태양을 받으
며 서해를 향했지요. 말로만 듣던 서해안 고속도로를 탄다고 해서 정말 바다 옆으로 가는
줄 알았습니다. 광명, 구로, 고척, 철산, 안양 공장지대를 지나가는데 조기사 삐칠까봐 내색
도 못하고 가다보면 바다를 보면서 해안선 굽이돌아 나오겠지. 한참을 달려도 추수 끝난 드
넓은 논과 흐릿한 산자락만 나오고.
심심하여 지나가는 터널을 외워보기로 했습니다. 이름도 요상한 순산터널. 금방 두 번째
팔곡터널이 나오고.
"앗! 저-기."
조기사의 손가락을 따라 눈을 돌리니 노란 옷을 입은 은행나무가 곱게 서있었습니다.
"나! 오늘 조개 안 잡아도 돼!!!(아니, 조개를 안 잡다니?)"
아무 말 못하고 계속 달리는데 세 번째 용담터널이 나오자 또 조기사가
"세 번째야 외워! 용! 담!"
멀리 눈앞에 H자 모양의 구조물이 들어오더이다. 저게 그 서해대교구나(사람들이 그 위용
에 압도되어 차에서 내려 구경하고 간다는). 약간 올라가는 듯하더니 뭐 다리입디다. 네 번
째 갈산터널을 지나고 서산을 지나 해미를 향해 갈 무렵
"우리 해미 들러갈까?(조개는 어떡하고?)"
경숙씨네 차에서 지리정보를 문자로 찍어주고, 또 오는 길에 우체국 옆에서 호미(1500원),
장화(여자용 8000원)를 사라는 당부며, 홍성IC 나와서 좌회전 두 번에 우회전하여 계속 직
진하라는 메시지가 도착. 신기하게도 딱딱 들어맞는 정확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바지락 칼국수 판다는 안내깃발들이 나부끼는 걸 보니 다 온 모양입니다. 그때 눈앞에 펼
쳐지는 드넓은 들판.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아, 여기가 그 천수만이구나). 왼쪽에는 넘실대
는 바다가, 오른쪽에는 추수를 마친 빈 들판이 쫘---악. 그때 조기사
"여기가 네덜란드네!"
철새도래지라는 말이 생각나고 고개 숙여 뭔가를 열심히 찾는 검은 새를 보면서 우리는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안면도를 아래로 하고 태안반도 몽산포를 향하여 올라가기 시작했습
니다(우회전하여 60속도로 10분가면 등나무식당이 나오면 전화하라 했는데). 바다는 아니 나
오고 마을 한복판을 지나 자꾸 내륙 쪽으로 차가 가는 겁니다. 뭔가 이상해. 전화를 하니 우
리가 가는 곳이 진산1리. 여긴 진산2리니까 조금 더 가야합니다. 등나무식당이 보이면 바로
바다 인줄 알았는데 마당입니다. 전화해서 물었더니 그 사잇길로 올라와서 계속 직진하랍니
다. 고개 올라갔더니 바다는 없고 배추만 가득(여기 바다 맞아?). 갑자기 나타난 두 갈래 길.
다시 전화. 계속 직진하랍니다. 그 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바다에 대한 정보들이 쓸모 없었
습니다(그래 믿고 가보자). 다시 나타난 산길 그리고 비포장. 이번엔 내리막길. 드디어 바다
가 보였습니다.
아이들을 갯벌에 풀어놓고 도구를 사러 되돌아나갔습니다. 조기사는 240, 난 235 여자용
장화와 구부러진 사지창 호미를 사고, 조개잡이 망을 서비스로 받고, 완벽한 도구에 뿌듯해
하며 갯벌로 되돌아왔습니다.
장화로 갈아 신고,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갯벌을 걸었습니다. 바다물결이 수놓은 아
름다운 줄무늬를 밟고 가서 좀 안타까웠지만 부드러우면서도 약간 단단한 느낌이었지요. 아
이들은 벌써 몇 마리씩 자루에 담아놓고 놀고있었습니다. 5-6번 호미질을 하자 뭔가 걸렸습
니다. 한 마리, 두 마리, 그리고 잠시 소강 상태. 지연인 밤게랑 칠게 잡느라고 바쁘고, 해창
이와 재우는 조개(동죽) 없다며 왔다갔다 시큰둥했습니다. 아이들은 조개가 시들해지자 "유
치찬란"이라는 이름의 성을 짖고 신나게 놀았습니다. 갯벌에서의 간단한 간식과 작전회의
후에 장소를 옮겼습니다. 호미질 3-4번에 한 마리씩 나오자, 바로 이 손맛이라며 작업에 속
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사이 물이 점점 들어오고. 아이들 먼저 나가라 했더니 끝까지 의
리를 지킨답니다. 밀려들어오는 바다를 등뒤로 하고 걸어가다가 몇 번 파고. 또다시 걸어가
다 몇 번 파고. 아! 그때, 조개가 그것도 대합이 딱 걸리는 겁니다. 물은 등뒤로 성큼 성큼
다가오는데 이래서 사고가 나나보다 머리는 생각을 하는데 손은 계속 파고 있었습니다.
남은 김밥과 컵 라면으로 간식을 먹고 일정을 수정하여 새들을 보기로 했습니다. 천수만
에는 철새를 관찰 할 수 있게 탐사대를 마련해놓고 축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차장으로 들
어가는 입구에 솟대가 세워져 있어 우리의 안전을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무논조류탐사대라는 곳으로 올라가서 아까 지나가면서 보았던 그 까만 얘들을 확인했습니
다. 그 얘들이 기러기랍니다. 그런데 기러기 색깔이 짙은 회색이었습니다. 혹시 흰색 아니었
나요? 하늘을 나는 청둥오리도 몇 마리보고 우리는 서둘러 해미를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5시에는 해미에 가야 읍성을 볼 터인데. 속도가 느려지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6시까지니
까 빨리 오라는 관리사무소의 말을 뒤로하고 해미IC 톨게이트 요금소에서 물어보니 읍내를
지나서 있다고 했습니다. 읍의 중심부를 지나자 왼쪽으로 기와지붕 망루가 보이고 돌로 된
단아한 성벽이 보였습니다. 잠든 아이들을 깨우니
"이게 뭐야! 추워죽겠는데!"
"왜? 여기를 봐야하는데!"
보여주고픈 내 맘과는 다른가 봅니다. 역시 준비하지 않은 답사는 이렇게 실패할 수도 있
습니다. 해미읍성의 설명서를 읽어보고 안으로 들어가니 밖에서 느꼈던 단아함은 온데 간데
없고 황량함뿐이었지요. 낙안읍성을 생각하고 왔는데 초가집은 없고 관아인지 사당인지 뭐
그런 것들 만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들은 풍월이 있어서 성 밟기를 하면 무병장수한다는 말
로 아이들을 유혹하여 성벽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건 고창읍성에서 해야하는 겁니다.
소나무와 갈대밭 사이로 붉게 물드는 노을을 뒤로하고 서울을 향해 출발!
차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지루하게 밀려갔습니다. 앞차의 후미등을 바라보며 쟤는 쌍꺼풀
을 했네 반쯤 감았네 이야기를 하며 잠시 졸았습니다.
"스-스-슥-탁! "
"아! 조개다!"
"슥- 슥- 탁!"
"조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