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深頌(심송) 안호원 목사(시인, 수필가, 칼럼니스트)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언 1 : 7> 지난 1년 반 동안 야심차게 추진되어오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작업이 시행을 앞두고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대다수 ‘을질’의 국민들이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깊은 허탈감에 빠져침통한 표정으로 불만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8일 “올해 안에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안을 만들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하면서다. 결국 ‘갑질’인 고소득 직장인 봐주기니, 개선 방침 백지화니, 청와대가 압력을 넣느니 등등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연말정산에 대한 근로소득자들의 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 시점에서 설상가상으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마저 백지화되면서 정부를 성토하는 국민들의 원성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를 감지한 듯 청와대가 직접 나서 “부과체계 개선이 백지화 된 것이 아니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해서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하기 위해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적으로 복지부장관이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발 빠른 진화작업에 나섰지만 이를 곧이 곧 대로 믿는 국민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한 술 더 떠 정부는 자료미비, 충분한 논의부족 등을 연기 이유로 대지만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 ‘자라(연말정산 파동)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격’이라는 속담이 딱 어울린다.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을 감안할 때 올해를 넘기면 백지화 되는 건 강 건너 불 보듯 뻔하다. 한마디로 국민을 우롱하고 우습게 여기는 처사다. 그리고 정부는 매우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위로 복지부장관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며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이 준비한 개혁안의 핵심은 소득 중심의 부과였다. 재산과 자동차가 있지만 소득이 없는 대다수 퇴직자들이 귀가 솔깃할 개선책이었다. 개선기획단은 논란이 되어온 평가소득 개념을 없애는 안을 만들었다. 소득과 재산에만 점수를 매겨 보험료를 부과하자는 것이었다. 자동차도 보험료 부과 대상에서 아예 빼버렸다. 생계를 위해 차가 필요한 저소득층 가입자를 고려한 것이다. 특히 개선안에는 ‘기초 재산 공제’ 라는 제도가 포함되어있다. 보험료를 부과하기 전에 모든 지역가입자들의 재산에서 동일한 금액을 공제해주는 것이다. 최소 1억1000만원, 최대 5400만원까지의 네 가지 공제 모델이 제시됐으며 재산이 적고 소득이 없는 세대엔 최저보험료만 부과키로 했다. 한 지역 퇴직자는 지난 해 8월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받고 실신을 할 정도가 되었다고 했다. 18만원이라는 금액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퇴직하기 전 직장에서 내던 액수보다 무려 두 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퇴직 후 1년 동안은 직장 건강보험료 만큼 내도록 되어있었는데, 그 기간이 끝나면서 이 같은 통보서를 받고 아연실색을 한 것이다. 현행 건강보험료(이하 건보료) 부과체계는 이 같은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제도가 아닐 수 없다. 고정 수입도 없는데 수입이 있을 때 보다 보험료를 더 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민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부가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을 구성, 대안을 만들었는데 발표직전 주무부서인 복지부에서 무슨 연유에서인지 개선안 전면 보류를 선언하면서 퇴직자들의 원성이 커져가고 있다. 오죽하면 지난 해 말 퇴임한 김종대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복지부 출신)이 퇴임 직전 본인 블로그에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가 잘못 된 것을 꼬집었을까. 김 전 이사장은 아파트를 비롯한 땅을 소유하고 있어 총 5억6000만원 상당의 재산을 갖고 있고 차량도 소유하고 있다. 또 올해부터는 연 4000만원에 달하는 연금도 받는다. 그러나 직장 가입자인 부인의 피부양자로 자격이 바뀌면서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고 비꼬는 글을 올렸다. 이어 그는 지난 해 2월 세상을 등진 ‘송파 세 모녀’ 사건을 언급하며 가슴 아파했다. 월세 단칸방에 살면서 소득이 전무하고 몸까지 아팠지만 건강보험료는 매달 5만140원씩 내는 모순을 자신의 사례와 비교를 하면서 현 보험료부과체제의 잘못을 지적하기도 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요한일서 2 : 22> 이런 제도적 모순을 개선하자는 취지에서 정부가 개선 기획단을 구성하고 얼마 전까지 추진했던 개선안이다. 이번 개선안이 시행 될 경우 지역가가입자 가운데 소득이 전혀 없거나 낮은 600만 명의 건보료는 하향 조정된다. 반면에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가운데 소득이 높은 45만 명은 건보료가 상향 조정된다.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송파 세 모녀’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극빈층 지역가입자를 구제하자는 현 정부의 개혁 방안이었기에 내심 환영하고 공감을 했는데 돌연 복지부가 올해에는 건보료 개편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를 해 귀까지 의심했으나 사실임을 알자 심한 배신감과 허탈감이 역습해 왔다. 정부는 송파 세 모녀 사건의 비극을 잊은 것 같아 분통이 터진다. 물론 장관의 입장에선 보험료를 많이 내야하는 45만 명을 의식해서 일단 쏟아지는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는 “건보료 부담이 늘어나는 이들을 설득 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설득 할 시간을 달라고 주문했다. 연말정산 파동이 불거진 마당에 또 건보료 개선안까지 발표하면 증세 논란에 시달릴 것이고, 여론이 악화 될 경우 국회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연유에서 일까 복지부는 이번 개선안 발표일정을 세 차례나 미뤘다. 문 장관은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을 모면하기위해 발표를 미뤘지만 그런 시간에도 저소득층 지역가입자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불합리한 건보료 부과 체계에 대한 불만 또한 커져간다는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렇게 정치적으로 부담을 느낀다면 이것이야말로 공론에 부쳐 사회적 합의를 거치면 되는 것이다. 지금 장관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특정 계층의 반발이나 여론의 동향을 저울질 할 때가 아니다. 김 전 이사장이 지적한 현행 제도의 모순을 바로 잡기 위해 45만 명의 비난을 정면으로 돌파하며 600만 명에게 혜택이 가는 해법을 택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비난을 피하기 위해 직무를 포기함으로서 후세에 대대로 욕을 먹는 공직자로 기억되어져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한국 건강보험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면서 최악의 정부를 맞고 있는 시점에서 건보료 개선안 유보가 지지율 추락을 가속화 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발표가 미뤄지면서 곳곳에서 심한 반발이 일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노조도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획단 개선안을 즉각 시행하지 않으면 보험료납부 거부 운동 등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 대다수 국민을 위한 건강 보험이 되도록 투쟁을 전개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문 장관 퇴진 요구의 목소리도 쏟아져 나오고 있을 정도다. 정치권도 예외는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고소득자의 부담을 줄이고 그들의 반발이 두려워 국정과제를 포기 했지만 건보료와 연말정산문제에 대해 정부는 공개 사과와 약속이행을 촉구한다” 고 비난했다. 경실련도 성명을 통해 “부과체계 개편을 중단 없이 추진하라”고 밝혔다. 정부는 700만 명이 넘는 지역가입자의 원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은 영세 자영업자, 일용직 근로자 등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약자 ‘을’ 이다. 당장 유보 방침을 철회하고 개선 기획단이 심혈을 기우려 제시한 안(案)을 토대로 금년 상반기 내에 실시하는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고소득 직장인들에게 부담이 높아지는 이유를 설명하고 이해를 시켜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따라서 올라갈 것이다. 하루아침에 밥상 뒤집듯 정책을 뒤엎는 과정도 돌이켜보아야 한다. 그동안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만 끼고 있던 정치권이 이번 일을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누구를 비난하고 책임을 묻고 따지기 보다는 여·야(與·野)가 머리를 맞대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아서 국민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어야 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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