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 속다
박숙경
입김을 따라 새어 나온 소주 냄새가
바람의 등에 업혀 골목골목 지문을 찍으면
한낮의 모서리들 소리 없이 둥글어진다
첫눈 내릴 때까지
커피나 마시면서 더 작아져야지
흘러내린 목소리를 추슬러 올리는 사이
화병 속 리시안셔스의 하얀 추파
- 모가지 잘려 여기까지 와서 활짝 웃으면 역마
살 맞아
위로의 말까지 준비하는 쓸데없는 센스
조화造花의 은근슬쩍 능청은 무슨 造化?
마른 웃음 간간이 주고받는 풍경 너머로
비웃듯이 소공원을 지나가는 바람
도둑눈이라도 다녀갔으면 했다
-『시마詩魔』 (2021,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