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일(수) / 견진교리 특강 2일차 : 건설하고 다져지는 우리의 신앙(강연 초록)
※ 보좌신부님 미사 중 강론(요약)
오늘은 예수의 데레사 성녀, 즉 대데레사 성녀 기념일입니다.
데레사 성녀는 교회학자이자 신비가였습니다.
성녀의 삶은 거룩함을 쫓는 삶이었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데레사 성녀에게는 두 가지의 계기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성당에서 기도하다가 예수님의 매질 당하는 상처투성이의 예수님 모습을 보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 되었고, 두 번째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참회록이 성녀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고 회심하며 열심히 기도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데레사 성녀는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생활이 당신 생활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어제, 오늘 미사의 복음에서 바이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과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을 자신들의 지식으로 막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때로는 공동체 내에서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하느님을 길을 막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다함께 사랑의 마음을 담아보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향한 지성적 마음을 담아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 하느님께 나아가는 기회로 어제 사랑의 마음, 오늘의 지적인 마음을 가늠하고 우리를 하느님께 봉헌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배기선 영덕 막달레나 수녀님(성바오로 딸 수도회) 강의 초록(이하)
2일차 강연 제목 : 건설하고 다져지는 우리의 신앙
- 마리아, 교회, 7성사, 성경
시작기도
오늘의 첫 시작은 마리아,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여러분에게 성모님은 어떤 모습으로 보이십니까?^^
당연히 예수님의 어머니인데, 우리 교회는 성모님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중개자이신 어머니’라고 각각 정의하고 있습니다.
천주의 모친이라고 불리는 하느님의 어머니는 삼위일체로서 한 분이신 어머니를 의미합니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모님께 나타나서 당신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여자가 결혼하지 않고 임신을 하게 되면 돌로 쳐죽임을 당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을 뜻에 따라 응답하는 자세를 보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 응답의 자세가 우리 신앙인들의 모범이 되는 것이며 우리는 이를 두고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에 대한 일화를 하나 말씀드리면, 본인의 수녀원 청원기 시절에 책방(지역분원)에 실습을 나가야 해서 명동서원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명동서원은 목사님께서 많이 찾아오시곤 했습니다. 인터넷이 아직 덜 발달되었던 때여서 영성적 책이 많은 우리 가톨릭 서원을 찾아오는 상황이었고 그날 중후한 신사 분이신 목사님 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라고 하며 당신이 개신교 목사라고 하면서 독일에서 목회하다가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찾고자 하는 책을 물어오셨습니다. ”예, 저쪽에 있습니다.”라고 한 이후, 그 목사님은 책을 찾고 난 뒤, 문득 저에게 자신은 요즘 한국의 목사님들처럼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닌데, 질문 한 개가 딱 한 개 있다고 하며 질문을 해오셨다고 합니다.
질문인즉, 동정녀 상태에서 예수님을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는 교리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질문을 많이 받지 않습니까?
수녀님의 대답은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어떻게 믿으십니까?“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즉,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라고....^^
다음에는 ‘중개자이신 어머니’입니다. 이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연결해 주는 역할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집에서 아버지가 엄하면 엄마가 통로역할을 해주지 않습니까? 물론 반대의 역할도 있습니다. 중개자이신 어머니는 가나의 혼인잔치의 내용으로 요한복음 2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포도주가 없구나”라고 성모님께서 얘기하시자 예수님은 아직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드러낼 때가 아니어서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성모님은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말씀은 어머니와 아들이 깊은 공감과 공유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며, 성모님 치맛자락을 붙잡고 “도와주세요~“라고 청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 직접적으로 청하는 것도 좋지만, 강력한 전구의 힘을 가진 성모님께 힘든 일이 있을 때 직접 청하시면 좋겠습니다.
다음에는 ‘교회의 어머니’입니다. 이는 다음 성경구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 요한 19,26-27>
우리도 이처럼 성모님께서 우리 안에서 있도록 교회의 어머니인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천주교는 마리아의 교회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성모님을 믿고 따릅니까? 믿고 신앙고백하고 흠숭하는 것은 오직 하느님께만 하는 것입니다. 즉 흠숭, 찬미, 찬양은 단지 하느님께만 하며 성모님과 모든 성인들께는 공경의 존경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인들 가운데서도 성모님께서는 최고가 아닐까요? 그러기에 우리는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다시 정리하면 우리는 하느님을 흠숭지례, 성모님을 상경지례, 성인분들에 대해서는 공경지례라고 말하고 합니다. 전구라는 의미는 하느님께 우리의 기도를 전해줄 것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모님과 성인들께 전구의 기도를 청하며 하느님께 더욱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으로 교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교회를 우리는 ‘하느님의 신부‘,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표현합니다.
오늘 누구의 축일입니까? 바로 ppt화면에 적혀 있는 “저는 교회의 딸입니다.“라고 한 내용은 바로 오늘이 기념일인 대 데레사, 아빌라 데레사 성녀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데레사 성녀는 처음에는 사치스럽게 살았지만 깨우침을 통해 거룩한 삶을 살게 되었고 가르멜 수도원에서 수도자 개혁에 나서기도 해서 때로는 박해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박해 속에서 데레사 성녀는 수도원 안에서 성녀 당신께서는 ”아무리 이런 일이 있더라도 저는 교회의 사람(일원)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사람이십니까?^^
교회는 에클라시아라고 하는데 이는 ‘부르다‘라는 어원에서 온 것으로 ’불리움을 받는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불리움을 받아 하느님께서 따로 떼어놓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즉 이를 다시 정리해보면 “하느님께서 불러 모은 하느님의 백성 /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통해 태어나 성체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양육되어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상을 하나 시청하시겠습니다. 엘살바도로 주교였던 오스카 로메로 주교님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독재 군사정부 아래서 가장 먼저 탄압받는 것은 바로 종교, 교회입니다. 1980년에 암살 당하셨고 그 이후 그 분의 거룩한 삶은 지난 2018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시성되게 됩니다.
(영상 참조)
로메로 주교 영화의 영상 일부 시청(군사정부 아래서 군대 막사로 이용하던 성당을 찾아 성체를 회수하고자 하는 주교님에 대해 군인들은 감실에 총격을 가하고 성체를 줍는 주교님에 대해 총격을 가하지만 주교님은 두려움 속에서도 성체를 회수하고 성전을 나와 다시 신자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는 장면.... 총으로 겨누는 군인들 앞을 당당히 지나가고 성전 앞에서 함께 따라 들어온 많은 이들에게 로메로 주교님은 “여러분이 홀로 고통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교회이고 하느님의 백성이고 예수입니다. 바로 이 곳에서 수난을 받으십니다. 2천년 예루살렘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여러분이 고통속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아는 것처럼 살바도르의 구원과 해방을 위해 기여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십니다. 청년 때 겁이 많고 두려움이 많았던 로메로 주교님은 군사정부, 독재의 탄압의 상황에서도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당신을 이끄시는 주님의 손길, 바로 성령의 힘이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성령께서 살아계십니다. 성령께서 살아계신 교회는 “성령이 거처하시는 성전이며, 교회를 거룩함으로 이끄시고 그리스도의 지체들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일치해야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고, 교회의 전례와 기도, 성사생활에 충실해야 하며 교회 전체의 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직무는 다음과 같이 사제직, 예언직, 왕직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제직 :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와 함께 봉헌 보편적 사제직
예언직 : 하느님 말씀을 말과 행동으로 선포하는 의무
왕직 :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봉사하는 삶을 수행
사제직은 거룩하게 살아야 하고 성화시키는 모든 직무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신부가 아닌 우리도 사제직은 지닐 수 있습니까?^^ 이를 구분하기 위해 성품성사를 받은 사제 직무를 우리는 ‘직무사제직‘이라고 얘기하며 미사집전, 성사를 베풀 수 있는 예수님의 대리자로서 살아가는 권한을 지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사제직은 우리는 성화를 위해 보편적 행위를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으로 이를 ’보편적 사제직’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며, 우리들의 거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주변 사람들도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예언직은 하느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으로 교리교사, 선교사가 직직접적인 것이지만 전반적으로 어떻게 하느님께서 알려주시는 것들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하며, 내 삶을 어떻게 주위에 보여주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도 예언직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직은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삶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예수님과 일치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속에서 제베대오 두 아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어머니는 예수님께 요즘과 같이 치맛바람을 불러일으키고 당시 여러 제자들에게 불쾌감을 안겨줍니다.^^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오 20, 20—28>
우리 가톨릭에서 임금이라는 것은 바로 섬김을 의미합니다. 창세기에서 ‘다스리라‘라는 의미도 내 마음대로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잘 가꾸고 생명을 잘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된 왕이자 하느님 나라의 왕이라는 것은 바로 다름 사람들이 잘 성화되도록 성장을 도와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계제도는 교황, 추기경, 주교, 사제, 부제로 나뉘어지는데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가장 위에 있는 직분, 직책이 바로 사람을 무엇보다도 섬기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교황님 호칭은 천주교의 왕이라는 뜻인데 교황이라는 의미를 왕직 관점에 잘 전달하지 못함으로써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님은 교회의 으뜸이라고 해서 ‘교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며 이탈리아에서는 교황님을 “파파(Pa Pa)”라고 해서 아버지라고 일컫습니다.
다음에는 7성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는 성사는 무엇입니까? 성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감각적, 상징적 표지로 표현한 거룩한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내에서 성사는 크게 7가지로써 세례, 성체, 견진, 고해, 병자, 성품, 혼인성사로 구별 짓고 있습니다, 7은 교회 내에서 히브리어로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먼저 입문성사인 세례성사에 대해 부교재 책 <신앙생활의 핵심 : ,p.68-69>에 나타난 7성사의 의미에 대해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세례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세례의 삶을 살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세례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삶에서 생생한 현실이 되게 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한계를 지닌 나약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르고 교회 안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새 사람이 되게 하고 그리스도를 입게 해준 세례성사 덕분입니다. 사실 우리가 원죄에서 벗어나 예수님이 하느님 아버지와 맺으신 관계 안에 접붙여져 새로운 희망의 전달자가 된 것은 모두 세례성사의 힘 덕분입니다. 우리가 한 평생 구원의 길을 계속 가리라는 새로운 희망을 세례성사가 주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그 무엇도 이 희망을 꺾을 수 없습니다. 희망은 결코 절망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례에 힘입어 우리는 우리를 모욕하고 악을 행하는 이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를 찾아주시고 당신 가까이 있게 하시는 주님의 얼굴을 보잘 것 없는 이들과 가난한 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세례는 궁핍한 이들, 고통 받는 이들, 그리고 이웃의 얼굴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 모든 것은 세례가 가져다준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여러분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불편한 사람은 어느 곳에나 있다는 의미인데요, 어떤 집단에 불편한 사람이 있어서 이를 피해 다른 곳에 가면 반드시 또 다시 불편한 사람이 있습니다. 즉 삼덕성당에 불편한 사람이 있어서 수성성당에 가게 되면 그 곳에는 불편한 사람이 없습니까?^^ 이처럼 피해다니는 것을 언제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공동체 속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계십니다.
본인이 자매님들과 렉시오디비나를 하고 있는데 혼인잔치의 비유를 가끔씩 얘기합니다.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마태 22,8-10>.”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모두 불렀습니다. 그러나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완전해서 하느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고해성사는 안 받아도 되나요?
혼인잔치에서 우리의 옷차림은 어떠한지요? 우리의 잘못된 모습들이 바로 우리가 교회 내에서 비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보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스스로의 나약함으로 인해 죄에 빠져듭니다. 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견진성사는 주교의 안수와 도유를 통해 성령의 은혜를 받는 성사입니다. 10월 18일 견진성사를 통해 더욱 성숙된 신앙인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성체성사는 7성사 가운데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님과 교회가 하나가 됩니다.
고해성사입니다. 고해성사를 말씀드리기 전에 문득 예전 영성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입학한 저의 신학교 시절 처음을 기억해 봅니다. 바로 고 3을 거쳐 올라온 학사님들과 우리는 신학과 교리시험을 치루는데 문득 고3을 거쳐 올라온 신학교 학사님들께 당시 교학부처장 신부님께서 고해성사 5단계에 대한 문제를 내셨는데, 한 학사님의 답안이 코끼리가 냉장고를 여는 5단계였다고 합니다. “고해소 문을 연다~....”^^
고해성사의 5단계는 성찰/통회/정개/고해/보속입니다. 견진성사를 받기 전까지 대죄를 살피고 스스로 고해성사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고해성사는 화해의 성사이기도 합니다. 내가 교회와 한 몸이 되어야 하지만 은총의 상태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면 빠른 시간 내에 이를 회복시켜 교회로 다시 머리를 돌리고 돌아와야 합니다.
병자성사는 단 한 번만 볼 수 있습니까? 예전에는 종부성사라고 해서 죽을 때 단 한 번만 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번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병자성사는 병고로 허약해진 환자의 마음과 신앙을 굳건하게 해 줍니다.
성품성사는 하느님 백성을 위해 일할 봉사자들이 하느님 신적 능력과 권위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앞에서 언급한 사제의 직무사제직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품성사 때는 사제로서 하느님의 인호가 새겨집니다. 이 인호는 사제직을 중단하더라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혼인성사는 그리스도교 신자인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서 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한 생활을 하도록 하느님의 복을 받는 성사입니다. 혼인성사도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평신도는 가정생활을 충실히 해서 하느님 앞에 당당히 서야 할 것입니다.
이제 하느님 말씀, 성경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하느님 말씀은 1)성경은 무엇인가 2)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3)성경을 읽으면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 30-31>“
성경에 하느님 말씀이 기록된 동기 목적은 바로 위의 요한 복음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책을 펴고 평소에 읽으십니까? 어느 성당에서 견진교리 교육을 길게 진행할 때 성경책을 갖고 와서 읽곤 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신자들 중에서 이사야서 몇 장, 몇 절이라고 하면서 성경 구절을 찾아보라고 하면, 성경 속의 해당 구절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는 분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하신지요? 이는 매일미사책의 폐단이기도 합니다. 성경책을 펼쳐보는 것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십니까?
성경책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직접 볼 수는 없습니다. 모세는 하느님과 친구처럼 이야기하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자, 하느님께서는 너는 나를 보게 되면 죽을 거야 하시면서 겨우 옆모습만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을 직접 보게 되는 것은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하느님을 뵙게 되는 것이 아닌지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예언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구약성경에서처럼 끊임없이 배반했고 결국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수난을 통해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부활해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직접 볼 수 없지만 영성체 때 성체로 오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우리는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당신 사랑의 모습은 성경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느님 모습을 알고 싶다면 성경을 통해서, 미사의 성체 속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말씀과 성체는 필수입니다 !
성경책을 늘 가까이 두고 애인처럼 늘 찾아야겠습니다. 성경은 ‘하느님 계시의 책’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알려주시기 위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의 언어로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 당신께서 인간 역사 속에 개입하신 구체적인 사건의 기록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은 누가 기록한 것입니까? 비록 성경이 마태오, 마르코, 루카...라고 얘기하지만 이 분들이 바로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서 쓴 책들이어서 성경은 바로 하느님께서 쓰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성경의 어원(bible)은 당시 갈대종이를 의미하는 파피루스, biblia에서 온 용어입니다. 명칭으로 거룩한 책, 계약의 책으로 불리어지고 핵심저자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느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록된 때는 기원전 900년경부터 기원후 100년 정도까지 기록되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다가 어느 자매님께서 친정엄마가 수녀님께 꼭 물어보라고 하신다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알렉산더 대왕과 마케베오 상하권에 나타나 있는 알렉산더 대왕이 같느냐고 질문해 오셨습니다. 당시는 살짝 당황스러워하면서 다를 것이라고 얘기하고 난 후, 스스로 좀 더 확신을 가지기 위해 찾아보니 얘기해준 것처럼 다행스럽게 각각 다른 시대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닙니다. 또한 역사책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신 사건과 사랑이 담겨져 있는 책입니다.
남자 애인이 애인에게 밤하늘 별을 보면서 “너를 위해 하늘의 별을 모두 따줄거야~”라고 할 때 여러분은 이 말을 과학적으로 믿으십니까?^^ 이 말의 의미는 바로 너를 위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다는 사랑의 말이 아니겠습니까?
탈출기를 읽을 때 어떤 신자 분들은 “하느님께서는 왜 유독 이집트 사람들만을 바닷물에 쳐 박으셨습니까?”라고 물어오시기도 합니다. 이사야서에 “나는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 지를 우리는 늘 가늠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당신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간 실화가 있습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10m 다이빙 플랫폼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영상으로 시청하시겠습니다. 선수 로라 윌킨슨의 이야기입니다.
(영상 참조)
로라 윌킨슨은 경기 도중 출전 바로 직전 내내 중얼거립니다. 그리고 극적인 올림픽 직전 부상을 당했고 출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던 올림픽에 나가게 되었고, 결승에서 멀어진 여건에서 다시 극적으로 최고점을 연속점으로 받아 금메달 획득하는 과정의 영상과 인터뷰.....
로라윌킨슨의 말씀은 바로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필리피서 4,13>“이었습니다.
성경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공부할 수 있는 곳은 여러 곳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공인된 성경 프로그램을 찾아나서야 하겠습니다. 올해 코로나로 인해 우리 모두가 곤혹을 치룬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바오로딸 성경학교(성바오로딸 수도회), 가톨릭 성서모임, 성서못자리, 바오로 성서모임, 여정성서모임, 성서백주간, 가톨릭청년성서모임, 베네딕도성경학교 등이 되겠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요?
- 성경 저자들이 전하고자 하는 신아으이 진리에 주목해야 합니다
- 문학적 구조와 특성, 시대 상황이 반영되어야 하겠습니다.
- 오랜 세월에 걸쳐 편집된 책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 교회를 통해 생긴 책이며, 교회를 위한 책이며, 또한 교회 안에서 읽히고 해석되는 책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필리피서 4,13>“
로라 윌킨슨의 일화처럼 여러분은 지금, 말씀을 붙잡고 있으십니까?
성경을 읽으면 삶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가늠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나에게 주는 사랑의 책입니다. 신앙으로 붙잡고 있는 생명의 책입니다. 성경의 일상을 통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해 1) 악한 세력과 대항해 싸우는 무기를 가질 수 있고. 2) 상처가 치유되며, 3) 인내와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며 4)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5) 우리의 길을 밝혀주며 6)믿음을 더해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둘째 날 강의는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삼덕성당 신자분들에게 퀴즈 2개를 내겠습니다.^^
퀴즈 1) 성모님은 교회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얘기했는데 나머지 한 개는 ○○○의 어머니라고 했는데 무엇인가요?
퀴즈 2) 객관식입니다. 교회 내에서 우리들의 직무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아닌 것은 어느 것인지요?^^ ①사제직 ②왕직 ③예언직 ④교황직
내일(10월 16일)은 기도에 대해 주로 얘기할 것입니다. 오늘 오신 분들은 다음 시간에 나오실 때가지 두 가지를 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1) <신앙생활의 핵심> 책 p55-121을 읽고 7성사 중에서 견진성사 외에 한 가지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것을 정리해 옵니다. 본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당신께서 각각의 성사에 대해 영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 보시면 새롭게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2) 견진성사를 준비하며 나의 신앙생활에 모토로 삼고 싶은 말씀을 찾아서 한가지씩 꼭 가져오시길 바랍니다. 즉 자신만의 말씀, 성구를 가져왔으면 좋겠습니다. 신부님들께서는 각자의 성구를 가지고 계시고 우리 수녀원에서 수녀들도 종신서원 때 수녀님들과 협의하여 각자의 성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로라 윌킨스처럼 자신만의 성구를 꼭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 교육위원장님 견진후보자들에 대한 유의/당부 말씀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