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문화는 생활양식이다. 교육도 또한 문화다. 굳이 애써 옥천서원을 이분법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함은 아니지만 순천만 갈대는 우리 순천 지역민들의 환경속에서 자연과 건강이라는 점에서 삶과 연결되어 많은 문화적 시사점을 가져온다. 그렇다면 옥천서원은 인물과 교육이라는 점에서 그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옥천서원 앞 임청대는 아름다운 옥천의 냇가에서 있었던 것으로 너럭바위 곁 물가에 세우고 당시의 순천사람들이 경현당과 옥천서원을 세우며 이곳을 오르내리며 맑은 물소리와 함께 마음 씻기를 하였던 곳이며 그 면면한 정신은 알게 모르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로 오늘의 삶은 어떤 땐 유효기간이 있는 지식으로 유효기간이 없는 지혜로 이어내려 와 문화를 일궈낸 소산이다. 그리하여 유학의 산실로서 옥천서원을 통해 궁구하고자 하는 교육활동은 무엇을 구가하고자 하였던가? 하는 것이 화두였으며 그에 따른 교육활동은 모양과 형식을 달리한다 하더라도 계속하고자 한다.
펼쳐내며
1. 역사의식의 발로의 차원에서 옥천서원의 활용
우리 고장에 1593년 순천부사로 온 이정(퇴계선생의 제자)과 당시의 순천의 지식인들인 배숙, 정소, 허엄, 정사익 등이 주축이 되어 경현당과 경현당 오른쪽에 1564년 편액을 옥천정사라 하고 재는 지도재와 의인제로 하였는데 퇴계 선생이 명명하고 손수 쓴다. 이어 유림에서 사액을 청하는 상소를 올려 1568년 옥천이라는 액호를 받아 전라도의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당시 지식인들의 서원을 세운 초창의 정신이 얼마만큼 정신의 수성의 내리물림으로 이어져 왔는가 하는 것이다. 1597년 정유재란때 서원이 소실되자 1604년 순천유림인 허건 정지추 등이 주동이 되어 재화를 모아 중건을 하고, 1653년에는 다시 조시일, 이율 등이 중수하였으며, 1669년에는 원규를 엄하게 하는 한편 우암 송시열을 원장으로 초빙도 하였으며 1717년에는 다시 한차례 중건을 하였고 1760년에는 호남지역 사림정신의 발원지로서의 이 서원의 의미를 강조하는 묘정비를 서원의 뜰에 세웠다. 1864년 만동묘와 화양서원이 철폐되고 1868년 비사액서원전체가 철폐되고 1871년에 1인1서원인 47개서원만이 존치되는 일로 옥천서원도 1871년 3월 18일 이후 철폐되었다.
그러다가 1928년 신실이 복원되고 1960~1961년에 신실이 중수되고 1984년 순천지역의 여러 문화재들과 함께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4호로 지정된다. 그리고 지금의 옥천서원 모습은 2005년 신실과 외곽담당 등이 임청대 주변을 배경으로 임청정원으로 정화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2. 교육적 요구로서의 옥천서원의 활용
서원이 가지는 교육적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 옥천서원이 가지는 위치는 다양한 방법에서 추구되어 왔다. 필자가 1981년 이곳 순천에서 인연을 맺어 순천동산여자중학교, 순천공업고등학교, 순천삼산중학교, 순천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 교육활동을 하였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활동이 지극히 미미하였지만 굳이 애써 이를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이유는 향후 이러한 교육활동을 통해 순천의 유교문화의 산실로서의 향교와 함께 교육적 기능을 보다 활발하게 회복하여 서원의 교육적 기능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데 있음이다. 또한 옥천서원을 통해 교육활동을 하고자 하였던 가장 큰 이유는 필자가 교육학도로서 윤리 도덕교사로 출발하여 이곳 순천의 학생들과 함께 하고자 하였던 것은 대학교 때 〈명심보감에 나타난 교육적 덕목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을 쓰면서의 인연과 〈퇴계와 율곡의 교육사상비교연구〉라는 석사학위논문을 쓰면서 이곳 순천의 향교와 옥천서원을 방문하였던 인연이었다. 비록 과거의 유학사상이 비록 흘러 가버린 물처럼 두 번 다시 발을 씻을 수는 없겠지만 모양과 형세를 달리하여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이 녹아 있음이니 어찌 이 인연됨을 소홀히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그리하여 초기 교육활동으로 1981년부터 1998년까지는 춘추 소풍과 현장탐방학습으로 조례동과 매곡동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이곳 중앙시장에 내려 이곳 옥천서원과 향교를 방문하여 순천유학사상의 산실로서의 충효사상을 연계하여 교육활동을 하였다. 교육활동의 교수 내용은 옥천서원을 소개하고 안내하는 차원에서 임청대와 향교를 소개하고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일대기가 이곳 순천에서 끝을 맺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소학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교육활동이 이루어졌다. 필히 빠질 수 없는 학습 활동으로 서원 옆 느티나무 크기 알기로 두 팔 뻗어 안아보기와 옥천의 맑은 물과 주변경관을 소요하는 활동과 그림과 글쓰기 활동 또한 빼어놓을 수 없는 활동이었다.
그러다가 1998~2011년의 본격적인 교육활동기로 1998년에는 순천과 인근의 초(순천남초등학교 교사) 중(순천동산여자중학교) 고(순천고등학교, 구례고등학교, 순천공업고등학교 교사)들로 구성된 한훤당 김굉필 교육사상연구회를 조직하여 학교급별 수준별로 교육활동을 전개하여 소속 학교의 교사들의 한훤당 김굉필 교육사상과 옥천서원을 널리 알리는 교육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유학사상 관련 유명 강사를 초빙한 강연(순천대학교 조원래교수, 조선대학교 이종범교수)과 이곳 동부지역사회연구소와 연계하여 옥천서원관련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2006년에는 한문화재한지킴이 활동 주관부서인 문화재청과 연계하여 옥천서원을 널리 알리는 알림이활동과 가꿈이 활동과 지킴이 활동을 전개하여 관련 교육활동을 기록한 것으로 옥천서원 책자를 발간하여 이곳 유학사상의 산실로서의 널리 알리는데 일조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교육활동 등은 순천대학교의 교육대학원 논문 관련 내용으로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2011년에는 나주로 전근이 되어 옥천서원에서의 유사한 활동으로 2013년에는 한훤당 김굉필 선생과 관련있는 나주에 있는 경현서원을 통해 다양한 교육활동을 전개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세부적인 교육활동 내용
가.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작품 알기
1)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글씨와 그 속에 담긴 정신알기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유묵을 통해 알 수 있는 정신은 이 작품 하나로 충분하다 할 것이지만 필자 본인도 2006년 6월 20일 겨울이 꽃핀다라는 시집에서 박노해시인이 말한 「경계」에서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 것, 현실이 미래를 잡아 먹지 말 것, 미래를 말하며 과거를 묻어버리거나 미래를 내세워 오늘 할 일을 흐리지 말 것” 이라 하였다. 또 하나의 경계 삼아 살아갈 일이다.
最愛梅兄節(최애매형절)은 風霜獨未凋(풍상독미조)요
百年期作契(백년기작계)러니 其奈鬢蕭蕭(기내빈소소)오
宏弼 胡草(굉필 호초)
해석 : 가장 매형(妹兄)의 절조를 사랑하노니,
바람 서리에 홀로 시들지 않구나.
백 년 동안 계(契=分交)를 맺으려고 기약했건만,
귀밑이 벌써 희어짐을 어이하랴.
굉필 호초
호초(胡草)는 난초(亂草)와 같은 뜻으로 일명 서명과 같음
2) 한훤당 김굉필 선생 그림 알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6권에서 도동서원에 대한 설명에서 게시한 서원의 한훤당 김굉필의 위패를 모신 사당 내부의 벽화 그림 두 점 중 하나인데 그림의 화제는 ‘강심일월주’라고 하며 유홍준교수의 표현에 의하면 “달빛 아래 낚싯배를 드리운 강변 풍경”이라고 한 그림이다. 따라서 학생들에게도 한훤당 김굉필 초상화가 있긴 하지만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일화를 들려주고 이를 상상하여 선생의 얼굴을 그려보자고 하여 상상력과 한훤당 선생의 생각을 조명하도록 하였다. 또한 옥천서원을 머릿속에만 그리지 말고 가지고 있는 도구로 그려보며 설계하라는 교육활동을 실시한다. 교육은 의도적 교육도 중요하지만 무의도적인 교육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3) 한훤당 김굉필 시조 알기
길이란 늘 다녀 생긴 길이다. 시를 짓고 하는 일은 일상이다. 이러한 일은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일상이다. 인성을 가지고 사는데 있어서의 사회성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주체성을 가지고 생활하는 자신들에게 늘 생각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당시의 삶을 조망하고 지금의 나를 세우는 일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한훤당 김굉필 선생은 시문을 짓는 일보다 도학사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신 분이다. 하지만 일편의 시를 통해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편편의 모습을 가지게 한다. 우측의 시는 학생이 쓴 것으로 마치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서회라는 시가 생각이 날 정도로 자신의 가늠하게 하는 시로 생각된다.
삿갓에 도롱이 입고 세우중에 호미 메고 산전을 흩매다가 녹음에 누웠으니 목동이 우양을 몰아 잠든 나를 깨우도다
한훤당 김굉필 선생 시조
하루하루 다른 모습과 하루하루 똑같은 모습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되는 틀에 박힌 마음으로 살아가는
옥천의 물을 보자면 나를 보자면
나를 되돌아 보게끔 한다 옥천의 물을 되새기게끔 한다
서상우 < 자책 >
4) 소학알기, 한빙계 알기-소학 득강
소학은 한훤당 김굉필 선생이 즐겨 읽었던 서책으로 배우는 학생수준에 맞는 내용을 구안하여 10쪽 자리로 자료를 제작하여 이름을 소학득강이라고 하여 소학 가운데 꼭 읽어야 할 부분을 골라 제작하였다. 득강(得講)이라는 열심히 행하여 이익을 얻어 강의한다는 말로 하나를 얻으면 둘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궁구하자는 말 뜻을 담고 있다. 비록 단기간에 걸친 서책으로 보기보다는 소학 공책이라고 해도 좋을 듯한 자료로 제작하여 활용하였다. 특히 여기에는 퇴계 선생의 성학십도 중 소학을 언급하여 책의 이해를 도왔다. 이 자료는 사자소학보다 분량면에서는 적지만 각 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만을 골라 편집한 자료이기 때문에 일관성과 논리적인 면에서의 수미일관된 느낌은 없지만 소학의 정수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였다. 물론 2006년 간행된 것을 바탕으로 2013년 경현서원에서의 교육활동의 내용은 조금 쉽게 제작 활용하였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 수준별로 자료를 제작하여 활용하였다.
한빙계는 한훤당 김굉필 선생이 반우형이라고 자신보다 벼슬이 더 높았던 사람에게 1496년에 한빙계(寒氷戒)라는 이름으로 준 18條 조목이 있다.
옥천서원관련 문화재청의 한문화재 한지킴이의 블로그를 운영하여 순천의 옥천서원과 광양의 봉양사 그리고 나주 경현서원과의 인연으로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하였던 사실들을 이곳에 언급함으로써 학생들의 유학사상에 접근도를 높이고자 하였다. 관련 자료들을 옥천서원과 경현서원에 관련 자료들을 제작 배치하여 이곳을 탐방한 사람들에게 관련 이해를 돕고자 하였으며 경현서원에는 내방하는 사람들의 방명록을 제작하여 배치 활용하도록 하였다.
1. 옥천서원 묘정비
묘정비는 옥천서원의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1760년에 세워진 이 묘정비는 우리 고장의 금석문 가운데 팔마비와 함께 역사가 있는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화강암일 터이지만 풍상으로 254여년이 지나다보니 글자가 훼손되고 옆면이 파손되어 금석학적 보존처리가 시급하여 의견을 개진하여 조치가 내려졌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어렵다 하겠다.
옥천서원이라는 전자체 글씨와 옥개석 문양의 아름다움 또한 묘정비의 운치를 더해준다.
이 묘정비는 우리 고장 순천의 얼마 안 된 오래된 금석문으로 옥천서원의 관련 유적 가운데 가장 오랜 것으로 팔마비와 임청대 등과 함께 문화재 지정이 있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이와 관련하여 경현서원과 봉양사에서는 금석문을 연구하는데 탁본자료를 마련하여 탁본하기를 통해 학생들과 체험학습을 실시하였다.
2. 노거수 느티나무
나무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따라서 옥천서원 가까이 임청정옆에 있는 느티나무는 지금의 우리보다 나이가 더 많은 수령을 가진 나무다. 따라서 그 나무를 아끼고 가꾸고 지키는 일은 우리 사람의 일이다. 옥천서원과 임청대의 역사를 가만히 바라보며 살아온 이 나무의 공덕을 함께 기려야 할 이유를 가진다. 그것은 더불어 사는 삶일 것이다. 하찮게 보일 수 있는 나무로 이해되어 갖가지 이유를 들어 도로 통행에 방해되니까 베어버려야 한다는가 하는 일등이 비일비재하는 현실에서 옥천서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두 팔을 벌려 함께 어울리며 이 나무를 안아들어야 할 이유를 가진다. 또한 이 느티나무는 여름날의 번개나 벼락에 의해 손괴될 이유가 다분하다. 따라서 이에 따른 조치도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3. 나의 순천 문화유산 답사기-옥천서원을 중심으로
가. 답사기
순천에 가면 옥천서원이 있다는 내용으로 순천시내에 사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순천근방에 사는 학생들에게 일단 선생님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난 뒤 옥천서원을 자기가 희망하는 해당 월에 다시 한번 가 보고 난 뒤 자기 나름대로 소회를 적도록 했다. 그리하여 옥천서원을 비롯한 임청대 향교를 적어도 두 번 이상을 방문토록 하여 옥천서원과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사상에 대해 논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였다. 사려깊은 학생들의 문답이 오가는 시간이 되었다.
나. 지도안
본시 교수ㆍ학습 과정안
대상
고등부 1학년
계 : 7명
장소
고등부 1학년
교실
일시
2013.11.27 5교시
수업자
김00
송병관
단 원
Ⅲ-21. 나라 사랑
차 시
4 / 5
학습주제
지역의 위인에 대해 알기 - 한훤당 김굉필(팀티칭 교육활동)
대상아동
송○○, 김○○, 허○○, ○○빈, ○○빈, ○○수, 남○○, 김○○
학습목표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정신과 활동에 대해 두 가지 이상을 말할 수 있다.
교수ㆍ학습 활동 및 내용
학습과정
학습요소
교수ㆍ학습 활동
자료 및 유의점
준비활동
(7‘)
동기유발
학습문제
제시
․ “나라를 빛낸 100명의 위인들”노래 듣고 부르기
(자) 노래가사
․ 공부할 내용 제시
한훤당 김굉필 선생에 대해 알아보자
중심활동
(26‘)
한훤당 김굉필 선생에 대해 알기-송병관
● 문화재청 홈페이지 검색하기
(자)웹 자료
- 옥천서원을 아시나요.’ 문화재지킴이방 검색하기
- 올려진 사진 자료 보고 설명 듣기.
● 한훤당 김굉필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
- 책을 가까이함. 소학(小學)을 행동의 지침서로 삼음.
- 매우 의롭게 행동함.
- 제자를 양성함.(대표적 인물: 정암 조광조 )
(자) 옥천서원사진자료, 소학(小學)글자․한빙계 17조, 사진자료 등.
한훤당 김굉필 선생에 대한 자료판 만들기
● 한훤당 김굉필 선생과 관련 있는 자료 찾기
- 자료판에 학생 개개인이 찾은 한훤당 선생님과
관련 있는 사진자료 붙이기
정리활동
(7‘)
정리하기
․ 배운 내용 정리하기
- 꾸밈판 발표하기
차시예고
․ 다음 시간에 공부할 문제 알아보기
- “옥천서원 현장학습 하기
마감하며
한훤당 김굉필 선생과 관련 있는 공부를 하면서 늘 하는 생각은 ‘찾아라!’ 하는 것이 화두였다. 그러기에 나에게 배움을 함께 하는 학생들과 함께 나의 진정한 생의 지침이 될 책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었고 나의 친구는 누구였는가 그 친구를 찾으려고 하였고 나의 스승은 누구인가 나의 스승을 찾으려고 하였고 배움을 함께 하는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주문했다. 한훤당 선생은 소학이라는 책 한권으로 자신의 몸을 일궈내신 분이다. 그러한 일의 표상이 되신 분이시다. 원래 소학이라는 책자는 주자가 학동들에게 대학은 철학서로 이론적인 부분이라면 실천적인 책자가 없어 제자인 유자징에게 짓게 하고 이를 감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소학이라는 책자를 수신의 첫 우선에 두고 그대로 가르침을 실천하셨던 분이 한훤당 김굉필 선생이며, 성학십도라는 그림에서 모든 가르침의 출발과 인륜의 시작과 자신의 몸을 다스리는데 있어서 둘이면서 하나요, 하나이면서 둘인 대학과 짝이 되게 하였던 분이 바로 퇴계 선생이다.
왜 소학인가? 인간 행동 근원의 한결같은 공부법으로 이 소학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소학을 배우지 않고 있다. 왜인가? 이미 흘러가버린 물로는 두 번 다시 발을 씻을 수 없다. 늘 새물이어여야 한다. 과연 그러한가? 모양과 형식을 달리한 채 내면에 흐르는 본질은 그대로일 않는가! 모양과 형식을 달리하지만 그 내면을 관통하는 인간의 본성적 합일이 있다는 점이다. 왜 옥천서원인가? 옥천서원은 눈에 보인다. 쇄락한 건물이며 개축이 필요한 건물이지만은 그 옛날 우리의 선인들이 이 옥천서원에 바른 길을 찾고자 하였던 그 정신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왜 한훤당 김굉필 선생인가? 죽은 사람에 대한 평가는 후한 편이다. 인간적인 결함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이긴 하지만 배움을 구할 때는 최선을 다하여 배움을 찾아 점필재 김종직 선생을 만났고, 또 최소한 젊었을 때는 젊음 그대로 살기를 원해 자신의 스승인 점필재 선생에게 자신에게 가르친 내림과 자신의 이로 터득한 배움과의 괴리에 대해 스승과의 대척점에서 옳은 일을 하기를 간했고, 한훤당 선생은 정암 조광조와의 일에서 효를 실천하는데서 군자의 덕을 어지럽힌 일을 하게 되자 곧바로 자신의 과오에 대해 “내가 너의 스승이 아니라 네가 나의 스승이라! ”하였음이니 이러함이 있는 일이 520여 년 전에 있었음이고 그 정신의 면면을 이어져 내려고 있음이니 이를 널리 알리고 옥천서원을 가꾸고 이러한 정신을 지켜나감이 좋지 아니한가!
옥천의 맑은 물에 발을 담그며 커가는 총생들과 그리고 우리들의 나이보다 훨씬 많은 키 큰 느티나무를 보며 옥천서원 상량문 속 남쪽을 보면 굽이굽이 인제산 높으나 기린은 자취 없고 빼어난 빛 천년에 푸른 산노을 잠겨어라 하는 말과 함께 동서남북상하를 둘러 그 뜻을 잇고자 함으로 가름한다. 종(終)
첫댓글관련 자료로 한훤당 선생의 사상적 내용을 현실의 교육적 소산의 산물로 기록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선생의 사상적 접근이 이루어졌으면 하여 올립니다. 메일 주소를 주시면 위와 관련 자료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등재 메일이 20M미만으로 한정되어 일단 문서상으로 된 내용만 게시하였습니다. 메일주소 송병관 song2777@hanmail.net 입니다. 한시적 게시로 안내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한훤당의 사상적 접근과 함께 이를 현실화하는 방법의 교육적 소산으로 접목시켜 이를 통해 한훤당의 널리 알리고자 하는데 접근하고자 하였습니다. 가끔 순천에 내려가 옥천서원을 방문하고 오지만 이사를 2018년에 안성으로 이사를 하여 이곳에도 서흥김씨삼정문이라 또 다른 인연속에 있음을 봅니다
첫댓글 관련 자료로 한훤당 선생의 사상적 내용을 현실의 교육적 소산의 산물로 기록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선생의 사상적 접근이 이루어졌으면 하여 올립니다. 메일 주소를 주시면 위와 관련 자료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등재 메일이 20M미만으로 한정되어 일단 문서상으로 된 내용만 게시하였습니다. 메일주소 송병관 song2777@hanmail.net 입니다. 한시적 게시로 안내해드립니다.
순천지역 역사. 문화. 교육 부분에 훌륭한 유산을 교육전문가로서 자신의 고장에서 자라난 학생들에게 교육코저하시는 발상이 매우 훌륭합니다,
지역의 훌륭한 선조의 유산과 업적을 학생들에게 직접 현장실습으로 눈으로보고 느끼고 학습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훤당의 사상적 접근과 함께 이를 현실화하는 방법의 교육적 소산으로 접목시켜 이를 통해 한훤당의 널리 알리고자 하는데 접근하고자 하였습니다.
가끔 순천에 내려가 옥천서원을 방문하고 오지만 이사를 2018년에 안성으로 이사를 하여 이곳에도 서흥김씨삼정문이라 또 다른 인연속에 있음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