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다 값진 도전정신이란 없다
2012년 임진년 설날인 1월 23일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에 있는 레이니어산(4392m)을 오르던 한국인 2명이 실종되었다.“ 10년만의 폭설과 거센 눈보라로 수색작업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실종자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현지 구조당국과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는 외신이 있었고 그 후의 소식은 아직 접하지 못했다. 한편, 이 실종사고가 있기 열흘 전인 1월 14일 레이니어산에서 조난당했던 60대 한국인 남성이 지폐 등을 태우며 48시간을 기다린 끝에 1월 16일 극적으로 구조된 바 있다.
2011년 10월 18일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1봉 남벽을 등반하던 박영석, 신동민, 강기석 3명이 실종된 사고로 한국산악계는 큰 슬픔에 휩싸인바 있었다. 이 사고가 있은 지 한 달도 안 된 11월 11일 촐라체 북벽을 등반하던 김형일, 장지명 2명이 추락사한 비극이 또 발생했다. 히말라야에서 사고를 당한 5명의 산악인은 세계적인 탐험가 또는 등반가이거나 그러한 반열에 오르기 위해 활동 중인 산악인이었다.
말하자면 젊은 산악인에게는 산악활동의 목표가 되고 청소년에게는 귀감이 되는 그런 산악인들이었다.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는 도전정신은 알피니즘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가치다. 통념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행위를 실현시키고 살아서 귀환하여 그 모험의 과정을 증언할 때에 비로소 탐험과 도전정신이 가치 있고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도전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극대화시키고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는 사회적 순기능을 한다. 그래서 죽음을 무릅쓴 탐험가들의 활동이 추앙받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도전과 탐험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가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목표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어버린다면 그 가치가 퇴색되거나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더군다나 죽기 전까지의 아무런 활동기록도 없이,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선구자적 도움을 주지 못하는 그러한 죽음이라면 그저 무모한 행위를 하다가 발생한 안전사고일 뿐이다.
북극을 탐험했던 피어리나 남극을 탐험했던 아문젠도 살아 돌아와 그들의 탐험과 도전 과정을 생생히 전했기 때문에 탐험가로서 의의가 있었다. 만약 그들이 북극이나 남극의 어딘가에서 실종되고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못했다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저 ‘실종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무리 값진 도전이라 할지라도 생환(生還)하지 못하면 불행한 실종일 뿐이다.
‘일상생활형 등산사고’ 급증
지난 호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행정안전부 산하 소방방재청 공식 집계에 의하면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는 2010년도 우리나라 23개 재난분야 중‘ 등산사고’가‘ 인적재난 2위(사망·부상 2521명)’와 ‘사고건수 3위(3088건)’에 올라있다.
올 1월 22일 저녁 무렵 설악산 천불동계곡에 위치한 양폭대피소에서 발생한 화재는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난로 옆에 널어놓은 옷에 불이 붙어 발생한 사고였다고 한다. 양폭대피소는 발전기를 돌려 전등을 켜고 있는데 만약 발전기용 기름통에까지 불이 옮겨 붙었다면 엄청난 폭발로 이어졌을 것인데 그만하기 다행이다.
2월 5일 12시경 나는 강원도 원주 인근에 위치한 7봉유원지 인공빙장에서 가스스토브 폭발사고를 직접 겪은 바 있다. 오전 빙벽훈련이 끝나갈 무렵, 훈련을 먼저 마친 동료 대원 3명이 가스스토브(소형 노줄과 부탄가스통을 가느다란 호스로 연결한 스토브)와 프라이팬으로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꽝!”하는 폭발음과 함께 전쟁영화에서나 봄직한, 직경 3미터가 넘는 강력한 화염이 발생했고 주변에 있던 세 명이 나가떨어졌는데 그 중 한 명은 몸이 공중부양하기도 했다. 부탄가스통 폭발 원인은 확실치 않으나 주먹만한 부탄가스통의 폭발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세 사람 모두 안면과 손에 1~2도의 화상을 입고 원주 기독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한 후 서울로 이송되어 2~4주의 입원치료를 요했다. 피부이식 수술까지 거론된 아찔하고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2월 13일 TV뉴스에“ 설악산에서 빙벽등반 대기 중이던 40대 여성이 낙빙에 맞아 부상”이라는 자막이 흘렀다. 이 사고 또한 겨울철 빙벽등반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안전사고다.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최근 급증하고 있는 국내 등산사고는 알피니즘이 추구하는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는 도전활동에서 비롯된 불가항력적 사고라기보다는 충분히 예방이 가능한‘ 일상생활형 안전사고’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산’이라는 공간에 사회적 안전시스템이 없다
과거의 등산은 취미활동의 하나였다. 위험한 암벽등반을 하거나 무거운 짐을 지고 땀 흘리며 눈 덮인 설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별난 취미를 가진 사람들’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불과 20년의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에 인식은 많이 달라졌다.
아름다운 우리나라 산줄기엔 둘레길, 올레길이 생겨나고 각 등산학교에서는 암벽등반, 빙벽등반을 전문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앞서가는 대학에서는‘ 등산’ 과목을 개설하여 학생들의 교육 수요에 대처하고 있다. 취미로서의 등산이 아닌 직업으로 등산을 하거나 등산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수만 명에 달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등산’이란 단순한‘ 취미’가 아닌‘ 생활’ 즉,‘ 삶’그 자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산’이란 별난 사람들의 취미활동 장소가 아닌 건강을 관리하는 생활공간이며,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무대이고, 생계를 유지하는 근무공간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산은 너무 아름답고 어프로치가 쉽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옛날에는 산은 먹거리 조달처로서의 의미가 컸었지만, 이제는 건강을 유지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공간으로 그 역할이 확장된 것이다.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설악산 한계령과 지리산 노고단까지 자동차로 쉽게 오르내릴 정도로 산이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왔다. 따라서 산에 사람이 몰리고 사고가 급증하고 사고유형 또한‘ 일상생활형’이 된 것은 당연지사라 하겠다. 믿고 싶지 않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등산사고’가 국가관리 23개 재난분야 중‘ 인적재난 2위’와‘ 사고건수 3위’가 되었고 그 결과 등산사고는 이제 너무 중대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생활공간이 된‘ 산’을 이용하는데 따른 사회적 안전시스템이 너무 허술하다는 것이다.
산은 이미 우리의 생활공간과 삶의 무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도모하는 사회안전시스템이 그 변화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좀 심하게 비판하자면 국민들의 안전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업무가 이러한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해서‘ 예방이 가능한 등산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인 것이다.
등산사고예방을 책임진 정부 부처는 어디이며 어느 정도의 예산으로 어떤 예방활동을 하고 있는지 시급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정해진 등산로의 안전시스템과 사고발생시 구조시스템은 최적화되어 있는지 연구되어야 한다. 산을 오르고자 하는 국민의 입장에서 주무 관청에 요구해야 한다.
등산사고! 언제, 어디서 많이 발생하나?
정부는 우리나라 등산사고의 유형 즉, 사고의 직접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추락 : 산악지역 바위, 절벽 등에서의 추락사고.
? 실족(미끄러짐) : 산악에서 실족, 미끄러짐, 걸려 넘어짐 등에 의해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고.
?조난 : 산악에서 길을 잃어 구조를 요하는 사고.
? 고립 : 산악에서 바위 또는 계곡 등에 고립되어 구조를 요하는 사고.
? 신체마비 : 산악에서 심장, 신체부위 등의 마비 또는 개인질환에 의하여 구조를 요하는 사고.
? 안전수칙 불이행 : 헬멧 등 안전등반장비의 미비나 산행금지시간, 금지구역에서의 사고.
소방방재청 자료에 의하면 등산사고 발생원인은 역시 실족과 추락이 1순위다. 2010년도 월별 등산사고 발생건수를 살펴보면 년 중 꾸준히 발생하고 있으나 특히 5월과 9월, 10월이 300건 이상으로 봄철과 가을철 등산객 증가와 비례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증가하는 추이를 나타내고 있다. 전국 총 발생 3088건 중 서울지역이 1354건으로 44퍼센트나 되는 것은 서울지역의 등산객 수와 암벽등반 사고가 많음이 그 원인이라 하겠다.
등산의 위험 요소는 무엇인가?
등산의 위험 요소는 객관적인 요소와 주관적인 요소로 나눌 수 있다. ‘객관적인 요소’란 산의 지형이나 등산로(암벽, 빙벽에서의 등반루트를 포함하여)에 관련된 물리적인 위험요소와 기상 여건을 말한다. 예를 들면 연약지반이나 눈사태, 낙석(낙빙), 급류, 절벽, 흔들리는 돌, 썩은 나무, 크레바스, 커니스(눈처마), 아이스폴(빙탑), 고소(고산증세), 날씨(눈, 비, 폭염, 추위, 바람) 따위로 이들 위험요소는 인간의 행동과 관계없이 자연에 존재하는 현상이다.
목표로 하는 산과 코스를 선택하여 등산에 임하고자 할 때는 이와 같은 객관적 위험요소에 사전 대비하고 산행 중에 항상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주관적인 요소’란 경험과 지식, 체력, 숙련도, 판단력에 의한 행동양식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물리적인 위험요소를 회피하는 요령, 최적의 등산계획의 수립과 준비, 등반팀이 떠안아야 할 위험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능력, 함께 등산할 대원들의 능력에 맞는 산이나 루트를 선택하는 판단력, 안전장비 활용법의 숙련도, 환자나 사고 발생시 응급처치 능력과 구조체계 가동성, 영양보급과 산행 중 건강관리에 관한 지식 등을 말한다. 객관적인 위험요소에 의해서 사고나 조난이 발생했을 때 신체적 손상이나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대응전략이 바로 주관적 요소라 하겠다.
이 대응전략을 세움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산행시 휴대할 수 있는 짐의 부피와 무게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원 각자가 직접 메고 갈 수 있는 용량이 너무 제한적이므로 장비, 식량, 의료 등의 최적화 준비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산행 중에도 사고와 질병은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언제라도 우리를 덮칠 수 있다. 다만 의료전문가의 도움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에 등반팀 자체적으로 환자에게 응급처치를 하면서 스스로 사태를 수습해나가야만 한다. 어떤 사고나 질환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생명을 위협하고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아래 표는 산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질병)의 종류와 예방법 또는 응급조치를 정리한 것이다. 붉은 색으로 표시된 증상은 응급 또는 생명이 위독할 수 있으므로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
산행 300회에 큰 사고 없었다면 그건 단지 요행일 뿐이다
등산이란 불규칙한 장소에서 불규칙한 행동의 연속이다.
미국 보험회사 관리자였던 하인리히는 < 1 : 29 : 300 >이란‘ 하인리히 법칙’을 발표한 바 있다. 하나의 사고(accident) 배경에는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던 29개의 사건(incident)이 있었으며, 사건의 배후에는 표출되지 않았던 300개의 불규칙(irregularity)이 있었다는 것이다.
독자들 중에 지금까지 300회 이상의 산행을 해왔음에도 다행히 큰 사고가 없었다면 그것은 단순한 요행이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의 산행에서 더욱 주의하기 바란다.‘ 하인리히 법칙’에 의하면 무사고 300회 이후의 산행은 매번 사고가 날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금년은 60년 만에 찾아오는 흑룡(黑龍)의 임진(壬辰)년이다. 용이란 상상의 동물로서 깊은 바다나 호수에 살면서 구름을 타고 하늘을 오르내리며 천둥번개, 바람을 불러 날씨의 조화를 관장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옛 조상들은 용을 농사의 신으로 모시기도 했다. 오늘날 날씨에 민감한 활동 중 하나가 바로 등산이다.
날씨란 안전등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자다. 많은 등산사고사 기상급변에 의해 야기된다. 히말라야등반은 그 성공여부가 전적으로 날씨에 달려있다. 악천후에 감행하는 고산등반은 자살행위와 같다. 등산을 계획하고 가장 먼저 체크하는 것이 기상예보다.
기상특보가 발령되면 국립공원은 입산금지 조치가 내려지고 언론들은 주요 뉴스로 보도한다. 동료들과 모처럼 어렵게 계획했던 산행도 취소할 수밖에 없다. 옛말처럼 용이 날씨의 조화를 관장한다면 용을 가장 받들어 모셔야 할 사람들은 다름 아닌 산악인들일 것이다.
즐거워야 할 산행(山行)길이 사망(死亡)길이 되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그리고 사고를 줄이고 그 예방법을 찾는 일도 위험을 선택한 산악인들 스스로의 몫이다. 등산 사고와 관련된 몇 가지 격언을 소개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 산에 오를수록 더 높은 곳을 지향한다.
- 등산사고는 하산사고다.
- 클라이머는 반드시 추락한다. 다만 그 때와 장소를 모를 뿐이다.
- 관직(권력)은 등산과 같다. (권좌에서 물러날 때에는 산에서 내려올 때처럼 조심조심 내려와야 한다는 깊은 뜻을 등산에 비유한 중국 속담)
- 히말라야등반 성공여부는 날씨에 달려있다.
- 등산사고 원인 1순위는 음주다. (북한산 경찰구조대에 의하면 북한산 등산사고원인 1순위는‘ 음주’라고 함)
# 첨언하여 우.리.들.산에선 지금까지 237차례의 산행중 7차례의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1. 00님이 하산완료후 오솔길을 걷다가 나무 열매를 따는 살들을 보며 걷다가 넘어져 다리가 골절된 사건.
2. 00님이 심산을 산행중에 등산화가 아닌 슬리퍼형 등산화를 신고 산행중 바위틈에 발뒤끔치 힘줄을 다친 사건.
3. 00님이 우중산행을 하면서 고무신을 신고 산행하다가 미끄러져 골절을 당한 사건
4. 00님이 전날 과음한 후에 산의 급경사를 준비운동없이 오르다가 심장이상으로 산행을 중단한 사건
5. 나머지 3회는 산행중 음주과다로 찰과상등을 입은 사건입니다.
이상의 예를 보듯이 산행시에 항상 복장과 장비를 철저히하고 산행중의 과다음주를 자제함은 물론 산행전날 과음, 과로를 피하며 산행시작전 준비운동을 철저히 할것과 마지막으로 산행중엔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야겠습니다. ^-^
첫댓글 이제부턴 그런 사람들을 위해 뒷동산이나 자주 다니자! 아 덥다 더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