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제33구간(한계령 - 미시령) : 2012. 7. 22(일) 흐리고 비
(보충) : 2012. 7. 27(금) 맑음
멀고도 먼 미시령, 설악의 밤은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하다.
1) 총괄 자료
산행코스 지도(생략)
① 산행코스 : 한계령 - 2.2km - 서북릉삼거리 - 4.1km - 끝청 - 1.2km - 중청대피소 - 0.75km - 대청 - 3.1km - 무너미고개 - 4.4km - 마등령 - 3.6km - 저항령 - 1.4km - 황철봉 - 4.5km - 미시령 계 25.25km
② 산행거리 : 25.25km 누계 : 702.19 km / 718.63km(97.71%)
③ 산행시간 : 19시간 58분
④ 이동경로 : 서울(버스) - 양양(숙박, 택시) - 한계령 - 미시령(숙박)
⑤ 샘터 : 한계령휴게소, 중청대피소, 소청대피소, 희운각대피소
⑥ 생수 준비량 : 500cc 8병, 사용량 : 8병
⑦ 일출시간(7.22.속초): 05:20, 일몰시간: 19:44, 기온: 19℃ - 25℃
(7.27.속초): 05:24, 일몰시간: 19:40, 기온: 25℃ - 33℃
⑧ 교통
○ 동서울터미널(동서울 → 양양, 인제, 한계령, 오색, 속초) :
1688-5979, www.ti21.co.kr
○ 이지티켓(동서울 → 양양, 속초) : 1544-5551, www.hticket.co.kr
○ 서울고속버스(강남 → 양양, 속초) : 1588-6900, www.kobus.co.kr
○ 양양고속터미널(양양 → 강남, 동서울) : 033-671-2764
○ 양양버스터미널(양양 → 동서울, 한계령) : 033-671-4411
○ 속초고속버스터미널(속초 → 강남, 동서울) : 033-631-3181
○ 속초버스터미널(속초 → 동서울, 한계령) : 033-633-2328
○ 한계령버스터미널(한계령 → 동서울, 양양, 속초)
○ 인제버스터미널(인제 → 동서울, 속초) : 033-463-2847
○ 양양택시(양양 ↔ 한계령) : 033-671-1199
○ 속초콜택시(속초 ↔ 미시령) : 033-636-4499
○ 원통개인택시(원통 ↔ 미시령) : 033-461-8924
⑨ 숙박
○ 양양 코리아나모텔(한계령) : 033-672-2290
○ 양양 명동모텔(한계령) : 033-671-3330
○ 오색 설악온천장(한계령) : 033-672-2645, 3849
○ 미시령 계곡캠핑장(미시령) : 033-462-4343, 010-5463-4343
⑩ 식사
○ 양양 터미널 기사식당(한계령) : 033-673-5959
○ 양양 동건이네 기사님식당(한계령) : 033-671-9163
○ 양양 24시 김밥나라(한계령) : 033-673-8297
○ 미시령 계곡캠핑장(미시령) : 033-462-4343, 010-5463-4343
2) 산행자료
① 시간대별 등산일정
05:00 한계령(해발 920m), 산행 시작
06:10 서북능선 안내 현수막
06:37 전망대
06:42 서북릉 삼거리(해발 1.363m)
07:47 1,456m 봉(중청대피소 3.6km)
08:51 끝청(해발 1,610m)
09:19 중청 갈림길
09:21 중청(해발 1,665m)
09:26 끝청 갈림길(해발 1,600m)
09:29 중청대피소
09:49 대청봉((大靑峰, 해발 1,707.9m)
10:05 중청대피소, 식사(19분)
10:26 끝청 갈림길(해발 1,600m, 소청봉 0.6km)
10:32 설악산 국립공원 경관 안내도
11:32 희운각대피소(해발 1.050m), 휴식( 7분)
11:45 헬기용 인명구조대
11:47 무너미고개(해발 1,020m))
13:43 암반 계곡
15:35 나한봉(해발 1,297m)
15:55 마등령 삼거리(해발 1,260m)
16:07 마등령(馬登嶺, 해발 1,320m)
16:23 세존봉 정상(해발 1,326.7m)
17:10 1,178m 봉
18:18 1,249.5m 봉(알바 2시간)
20:18 저항령(低項嶺, 해발 1,106m)
22:30 1,318.9m 봉
(2012. 7. 23)
01:30 저항령 계곡 너덜지대에서 휴식(4시간)
05:30 하산 시작
12:30 설악동 케이블 카 앞, 산행 종료
2012. 7. 27(저항령-미시령)
10:30 설악산국립공원백담탕방안내소
10:47 길골 입구
13:50 저항령(低項嶺, 해발 1,106m), 간식(22분)
14:50 황철봉(해발 1,380m)
15:54 1,318.9m 봉, 측량기준점(설악 22), 북봉
16:58 울산바위 갈림길(해발 1,068m), 식사(19분)
18:30 미시령(彌矢嶺, 해발 767m), 산행 종료
② 산행기
이제 대간산행도 2코스 남았다. 7. 20(금) 오후 양양 터미널에 도착하여 지난번 숙박하였던 코리아나호텔에 숙박하였다. 방은 조그마하고 시설은 없으나 조용하다. 부근에 있는 동건이네 기사님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내일 아침 4시에 식사를 부탁하였다. 지방은 이른 아침식사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리 부탁을 해 두어야 한다.
7. 21(토) 아침 3시 반에 일어나 등산준비를 하고 동건이네 기사님식당에 가보니 문을 열기 전이다.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 오늘 산행이 걱정이다. 4시가 되니 식당 문을 열어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으로 주먹밥을 준비하였다. 예약을 하였던 택시는 시간이 안 된다고 다른 택시가 왔는데 이곳은 택시가 밤에도 운행을 하므로 특별히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한계령으로 가는데 이슬비는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다. 오늘은 설악산 구간으로 바위가 많은 산이라 비가 오면 산행을 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걱정이다. 택시가 오색을 지날 무렵 비가 더 많이 내리므로 오늘 산행을 포기하고 다시 양양으로 돌아갔다. 택시비만 35,000원 들었다.
코리아나호텔에 다시 와서 방 열쇄를 받아 휴식을 취하다가 일어나서 밖을 보아도 비는 여전히 조금씩 내리고 있다. 내일이 일요일이니 내일 날씨가 좋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오늘 하루는 무엇을 하며 보낼까도 걱정이다. 바로 앞에 있는 명동모텔에 물어보니 인터넷이 있다고 하여 방을 옮겼다. 방도 더 크고 깨끗하고 인터넷도 있는데 숙박비는 같은 30,000원이다.
오전 11시 경 시내 구경을 잠시 하고 모텔에서 인터넷을 하며 휴식을 하다가 저녁에 양양성당에서 미사참례를 하고 나오니 안개비가 조금 뿌리고 있어 내일 산행이 걱정된다.
7. 22(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보니 이슬비가 조금 내리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더 머무를 수 없으니 일단 한계령까지 가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양양시장 앞에 있는 24시 김밥나라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김밥 한 줄을 샀다. 택시로 한계령으로 가고 있는데 이슬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어 걱정을 많이 했으나 오색을 지나면서부터 비가 온 흔적도 없다. 무척 다행스럽다.
아침 5시 한계령에 도착하였는데 등산을 시작하는 계단 앞에는 모두 산행을 떠나고 세 사람만이 남아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날씨에 신경을 쓰다가 좀 더 일찍 오지 못한 것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설악산(雪嶽山)은「삼국사기」에 신라에서는 영산(靈山)이라 하여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한가위부터 쌓이기 시작한 눈이 하지(夏至)에 이르러야 비로소 녹는다” 고 하였다. 「증보문헌비고」에는 산마루에 오래도록 눈이 덮이고 암석의 색깔이 눈(雪)같이 하얗기 때문에 설악이라 하였다고 되어 있다.
등산객들이 모두 올라가 버리고 사람들이 없으니 나만 늦어진 것 같아 급경사로 된 시멘트계단을 부지런히 오르니 설악루(雪嶽樓)가 앞을 막아선다. 설악루 오른쪽으로 조금 진행하니 공사유공자 기념석, 설악산 국립공원 안내도, 위령비, 탐방안내소를 지나 오른쪽으로 대간로가 이어진다.
돌계단과 집채만 한 바위들이 이어져 아직 덜 밝은 아침 기운을 무겁게 위압한다. 등산로에도 돌을 깔아 놓았고 주변도 온통 바위뿐이다. 급경사 오르막으로 된 돌계단과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올라가니 넓은 공터바닥에 돌을 깔아 놓았고 한계령 0.5km 이정표가 있다. 한계령 해발 920m에서 단숨에 고도가 높아져 여기 해발 1,200m가 되었다. 급경사는 계속 이어지고 돌계단이거나 돌을 깔아 놓은 등산로를 가노라니 오늘은 아침부터 힘이 많이 든다. 돌 속에서의 산행이 설악산을 실감케 하는데 안개가 자욱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전 6시 10분 서북능선(대승령) 통제시간을 알려주는 현수막이 나오고 가파른 오르막 계단과 내리막길을 지나 10여분을 더 가니 계곡에 다리가 놓여 있는데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고 있으나 비가 오면 많은 물이 흐를 것 같다.
10여분 더 가니 전망대가 나오고 북쪽으로 시야가 트이는데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전 6시 42분 서북릉 삼거리가 나오고 대간로는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10여분 더 가니 고릴라 같은 기묘한 바위가 보인다.
(고릴라 같이 생긴 바위)
오전 7시경 안개사이로 둥그런 해의 윤곽만이 잠깐씩 나타나고 안개로 시야가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안타깝기는 하나 비만 안 오면 그나마 다행이겠구나 하고 위안해 본다. 40여분을 더 가니 안개가 조금 걷혀가면서 설악의 아름다운 모습이 조금씩 보인다. 마치 동양화를 보는 듯 안개가 걷혀 가면서 나타나는 설악의 모습이 진기하다. 반대방향에서 세 사람이 내려온다. 중청대피소에서 잠을 자고 내려온다고 한다.
오전 7시 47분 중청대피소 3.6km 이정표가 있는 해발 1,456m 봉에 오르니 넓은 바닥에 돌을 깔아 놓았고 오른쪽으로 시야가 탁 트여 먼 산들이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가 조금씩 걷히면서 안개에 싸인 설악산의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고 오른쪽 낭떠러지 밑으로는 너덜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큰 산에 있는 하나의 멋진 광경으로만 생각하였던 너덜지대가 오늘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할지 이때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나는 길목에는 봄이라고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피어 운치를 더하고 있는데 8시 반경 아치형처럼 생긴 나무를 통과하고 나서 잠시 정말로 잠시 좋은 등산로 길이 나타난다.
(아치형의 나무)
오르막 경사는 계속되어 오전 8시 51분 온통 바위덩어리로 되어 있는 봉우리 끝청에 도착하였다. 안개가 짙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남자 세 사람이 올라가고 있어 물어보니 한계령에서 새벽 2시50분에 출발했다고 한다.
오전 9시 19분 조그만 갈림길이다. 왼쪽은 올라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약간 내려가는 길인데 왼쪽으로 조금 올라가니 중청봉이다. 시야가 확 트이지만 안개가 자욱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른쪽에 둥그런 물통이 설치되어 있는데 군 시설이라 접근하지 말라는 출입금지 표시가 되어 있다. 다시 갈림길로 내려가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조금 가니 끝청 갈림길이 나오고 중청대피소가 바로 앞에 보인다.
오전 9시 반경 중청대피소에 도착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으며 이미 식사를 끝내고 등산준비를 하는 사람, 침상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중청대피소와 멀리 보이는 대청봉)
대청봉을 향하여 조금 올라가니 시멘트로 만든 헬기장이 나온다. 뒤를 돌아다보니 중청봉 위의 둥근 물통과 중청대피소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나무과의 희귀한 나무로 잣나무같이 보이는데 나뭇가지 끝에 분홍꽃이 피는 눈잣나무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오전 9시 49분 대청봉(大靑峰) 정상에 도착하니 “1,708m 대청봉” 이라고 쓴 표지석이 우뚝 서 있다.
(대청봉 정상석)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산악회 한 팀만 있어서 많이 복잡하지 않아 좋은데 바람이 쌀쌀하고 안개가 많이 끼어 주변의 경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모처럼 등산객을 만나게 되어 정상에서의 기념사진을 찍었다.
대청봉에서 대간로는 바로 아래 급경사로 된 죽음의 계곡으로 내려가 희운각대피소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데 옛날에 큰 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던 위험구간이라 출입금지가 되어 있으므로 중청대피소를 거쳐 소청으로 해서 희운각대피소로 가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많이 힘이 들어 구간별 등산계획보다 시간이 지체되고 있어 계획대로 잘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오전 10시경 다시 중청대피소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였다. 아침 4시에 밥을 먹었으니 점심이라고 해야 하겠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끝청 갈림길에 올라 오른쪽 소청봉을 향하여 진행한다. 소청봉까지는 0.6km인데 등산로에는 모두 돌이 깔려 있어 등산을 하기에는 더 힘이 든다.
오전 10시 반경 폐타이어를 깔아 놓은 나무로 만든 계단을 조금 내려가니 설악산 국립공원 경관 안내도가 있다. 천불동 계곡의 모습과 가야할 마등령, 황철봉이 그려져 있는데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는 주변은 안개가 자욱하다.
대간로는 길게 만들어진 나무 계단을 따라 이어지고 기묘하게 생긴 바위와 안개속 천불동의 모습이 조금씩 보인다.
(폐타이어를 깔아 놓은 내리막 계단)
바위로 뒤덮여 있는 암봉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돌을 깔아 놓은 넓은 공터가 있는 소청봉에 도착하고 오른쪽 돌계단으로 이어진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가니 자작나무 숲이 이채롭다.
오전 11시경 시야가 확 트이며 잠시 걷혀가는 안개 속으로 준봉들의 모습이 보이고 안개에 싸인 천불동계곡의 모습이 마치 커다란 그릇에 우유를 담아 놓은 모습을 방불케 한다. 폐타이어를 깔아 놓은 나무계단으로 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가다 보니 멋진 암봉들이 안개 속에서 숨바꼭질 한다.
아! 장엄한 설악산의 바위군 들이여!
너무나 감격스런 광경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힘든 것도 잠시 잊고 멋진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본다. 다시 철 계단으로 된 내리막을 내려가니 희운각 대피소의 모습이 조금 보이고 안개에 싸인 천불동계곡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인 듯 환상적인 모습이다.
(안개에 싸인 암봉)
오전 11시 반경 희운각 대피소를 바라보며 내리막 철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계곡위로 걸쳐 있는 다리를 건너니 희운각대피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산준비에 바쁘다.
오늘은 구간별 등산계획보다 지체되고 있어 마음이 바쁜데 비까지 오고 있으니 바닥이 미끄러워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다른 때보다 힘도 더 들고 자꾸 걱정스러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오늘 저녁의 고생길을 예고라고 하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배낭에 커버를 씌우고 희운각 대피소를 출발하여 왼쪽 완만한 내리막길로 10여분 진행하니 전망대 같이 만들어 놓은 헬기용 인명구조대가 나온다. 안개 속에 천불동계곡은 마치 우유를 담아 놓은 커다란 그릇같이 아름다운 모습이고 신선대의 모습이 우뚝 솟아 보이며 대청봉 정상은 안개에 묻혀 있다.
(안개로 가득찬 천불동 계곡)
조금 진행하니 무너미고개가 나오는데 사람들이 오른쪽 설악동 방향으로 많이 내려간다. 지금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오늘 일정을 잘 마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나 계획을 바꾸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그대로 진행한다.
12시 17분 희운각 대피소에서 1.0km 지나온 지점으로 웅장한 암봉이 보이고 험한 길이 계속된다.
안개가 조금 걷히니 1,275m봉의 모습이 보이고 등로는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희운각 대피소 1.5km 지난 이정표에 도착하니 오른쪽에 굉장히 큰 바위가 위엄 있게 버티고 서 있는데 비가 제법 많이 내린다. 지금까지 대간산행 중 느껴보지 못한 불안한 생각이 자꾸 나지만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며 그대로 진행하니 바위길과 돌길이 연속되는 험로가 계속 이어지는데 깊은 산속이라 그런지 스마트폰의 밧데리가 빨리 소모되어 교체하였다.
오후 1시경 멋진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암봉들이 이어지니 불안한 마음도 잊어버리고 이를 감상하고 촬영하느라고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진기한 수석들의 모습을 감상하며 돌계단으로 된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모든 수석을 다 모아 놓은 듯 진기한 수석들의 모습이 펼쳐져 피로도 잊고 오늘 시간이 지체되고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비도 잠깐 그치고 안개도 걷히니 바위산의 모습들이 선명하게 보이고 더 많은 경치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니 몸은 힘이 들어도 오늘 산행의 보람을 느낀다. 천불동계곡은 안개로 가득 찬 운해의 바다다.
(공룡능선의 암봉들)
오후 1시 반경 왼쪽 언덕아래에 소나무가 멋진 모습으로 서 있고 방금 지나온 준봉들의 모습이 그림 같이 보이는데 비가 다시 뿌리기 시작한다. 10여분 진행하니 암반으로 뒤덮여 있는 계곡이 나오고 대간로는 계곡위로 쇠말뚝을 박고 로프를 매어 놓은 급경사 오르막이다. 물이 조금 흐르고 있는데 비가 많이 오면 많은 물이 흐를 것 같다. 오르막을 올라가니 커다란 암봉이 버티고 있고 주변은 온통 바위뿐인데 준봉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바위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고 바위와 바위사이로 보이는 천불동계곡은 안개를 듬뿍 담아놓은 모습이 그 이상 아름다울 수 없을 것 같다.
오후 3시경 현 위치번호 나무목(설악 03-03)을 지나는데 비가 무척 세차게 온다. 일기 예보에는 소나기정도 온다고 했는데 폭우처럼 쏟아지니 당황스럽다. 우의를 입고 부지런히 30여분 진행하니 봉우리가 나타나는데 나한봉 1,297m 봉이다. 안개가 자욱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비는 그쳤으나 옷이 모두 젖은 상태라 마음이 심란하다.
오후 4시경 마등령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설악동이고 왼쪽은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오늘 구간은 바위와 돌이 많고 급경사 오르막과 급경사 내리막이 계속되어 무척 힘들다. 마음이 불안하고 여기서 오늘 산행을 그치고 싶은 유혹을 느끼나 오늘 여기서 산행을 그치게 되면 다시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이 힘들게 되므로 대간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여 오후 4시 7분 마등령(馬登嶺) 정상에 도착하였다.
국립공원 특별보호구 안내판 뒤에 있는 로프를 넘어 오르막 경사를 올라가니 4시 23분 세존봉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나무가 없어 시야가 확 트이는데 안개가 많이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간로는 급하게 왼쪽으로 꺾어져 내려가 너덜길로 이어지고 바위 사이사이로 이어져 있는 너덜길을 지나고 나면 다시 나무숲속으로 들어간다.
(세존봉 정상에서 내려가는 너덜길)
길은 힘든 바위 너덜길로 이어지고 오후 5시 10분경 측량기준점이 있는 1,178m 봉에 도착하였다.
너덜지대는 지루하게 이어지고 안개 속에서 특별한 볼거리도 없는 길을 계속 올라가 오후 6시 18분 암봉으로 된 1,249.5m 봉을 힘들게 넘어서니 굉장히 넓은 너덜지역이 펼쳐진다. 안개가 자욱하다. 출입금지 구간이기는 해도 지금까지는 대간리본이 많이 붙어 있었는데 여기서는 대간리본이 보이지 않아 길이 어딘지 찾을 수가 없다. 시간은 늦어지고 마음은 급한데 무척 당황스럽다.
너덜지대를 지나가야 될 것으로 생각되어 그대로 직진하여 너덜지역을 통과하였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여기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저항령이 되는데 직진을 한 것이다. 숲길을 한참 내려가다가 GPS를 확인해보니 잘못 가고 있어 다시 뒤로 한참을 올라갔는데 어디인지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 비가 와서 바위가 많이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진행하다보니 시간도 많이 지체되었고 스마트폰 밧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밧데리가 없으면 GPS 확인이 안 되어 무척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라 걱정이 된다.
저항령까지만 가면 대간 리본이 많이 보일 것이고 그러면 시간이 늦더라도 미시령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지 저항령을 찾아야 한다. 방향을 잡고 무작정 길을 뚫고 가기로 했다. 숲이 우거지고 밑에는 큰 바위들이 깔려 있어 진행이 쉽지 않다. 가는 비는 수시로 뿌리고 최악의 상황이다. 그러나 어둡기 전에 저항령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무작정 길을 뚫고 가다보니 덩굴에 걸리고 밟은 자리는 푹 꺼지고 몸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서둘러도 저항령은 나오지 않고 해는 저문다. 스마트폰의 밧데리만 있으면 침착하게 길을 찾을 수 있을 텐데 밧데리는 얼마 남아 있지 않아 저항령까지 가면 비상시를 대비하여 스마트폰을 꺼야 될 상황이다. 저항령 방향을 잡고 결사적으로 잡목이 우거진 수풀을 뚫고 나간다.
날이 어두워지니 헤드랜턴을 켰다. 얼마를 헤매었는지 시간을 알 수도 없고 오직 저항령을 향하여 진행할 뿐이다. 갑자기 희미한 산길이 보인다. 아! 드디어 길을 찾은 것이다. 작은 산길에 들어서서 잠간 생각해 보니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마을로 내려가는 길인 것 같고 올라가는 길이 저항령일 것 같다. 여기서 마을로 내려가면 언제 다시 저항령에 오를 것인가. 오늘은 기왕 늦은 것이니 차분하게 랜턴을 켜고 미시령까지 강행군을 해야 하겠다. 결심을 하고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니 드디어 고개가 나온다.
스마트폰을 켜고 GPS를 확인해 보니 저항령(低項嶺)이다. 아무 표시도 없고 넓은 공터가 있을 뿐이다. 현재시간 오후 8시18분, 두 시간을 헤맨 것이다. 왼쪽은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설악동으로 내려가는 저항령 계곡이다.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깔린 저항령!
이제부터는 스마트폰을 끄고 진행해야 한다. 밧데리가 조금 남아 있는데 비상시 전화할 수 있는 정도는 남겨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대로 대간리본이 붙어 있어 길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길이 없는 산을 두어 시간 헤매다 보니 힘이 많이 들어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고 출발하였다. 오르막이 시작되고 너덜지대가 나온다. 다행인 것은 대간리본도 가끔 보이고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야광표시기를 매달아 놓아 밤길을 찾는데 아주 유용하다. 저녁도 못 먹고 저항령까지 길을 찾으면서 너무 힘을 많이 빼서 빠르게 진행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길만 잘못 들지 않으면 열한시나 열두시경이면 내려가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그저 길을 찾으면서 올라갈 뿐이다.
오르다 보니 황철봉을 지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너덜지대가 나오고 너덜지대는 낮에도 통과하기가 힘이 드는데 랜턴에 의지하여 가려니 무척 힘이 든다. 조금만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다행스럽게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야광표시기를 계속 달아 놓아 길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다시 넓은 너덜지대가 이어진다. 그런데 여기에서 야광표시기가 없다. 그렇다면 길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 한참을 내려가서 야광표시기 있는 지점부터 다시 올라가 본다. 그래도 야광표시기가 없다. 몇 번을 반복하여 길을 찾다가 그냥 너덜지대를 올라가 보니 대간리본이 있어 조금 더 올라가니 측량기준점이 있는 1,318.9m봉이다. 바람이 무척 세차다. 비와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어 있는데 바람이 부니 너무나 추워서 오래 서 있을 수가 없다. 여기서부터 미시령까지는 두시간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가야 할 길을 찾을 수가 없다. GPS를 켜고 보아도 가늠이 안 되는데 추워서 어떻게든지 움직여야 한다. 너덜지대를 몇 번씩 돌아보아도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다시 1,318.9m봉에 올라가 보고 몇 번을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데 봉우리 조금 밑 오른쪽에 출입금지 팻말이 있고 조그만 소로가 보인다. 하는 수 없이 그 소로로 들어가 보니 조그만 소로가 한참 이어진다. 그러나 아무래도 길은 아닌 것 같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서 길을 찾아보아야 할 것 같은데 원위치로 가는 것이 쉽지 않다. 당황스럽다. 랜턴에 의지하여 숲속을 또 헤맨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를 결정해야 한다. 오른쪽 아래에 차량 불빛이 이어져 보인다. 그렇다면 그냥 아래를 향하여 길을 뚫고 내려가야 하겠다.
조금 내려가 보니 덩굴지대가 이어지고 불빛은 더 멀어지는 것 같다. 가까이 보이던 차량불빛은 보였다 안 보였다 하면서 조금도 가까워지는 것 같지 않다. 덩굴이 우거져 길을 뚫기가 쉽지 않다. 또 랜턴에 의지하여 발을 딛다보니 갑자기 온몸이 바위사이로 푹 빠져든다. 한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가 겨우 몸이 빠져 나오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이 경우 뱀 굴에 떨어지거나 멧돼지 굴에 떨어지면 영락없이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몇 시간을 헤매었는지 시야가 트이면서 너덜지대가 나온다. 우선 시야가 트여서 반갑기는 한데 랜턴에 의지하여 집채만 한 바위들이 깔려 있는 너덜지대를 통과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걱정이 많이 된다. 그러나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떻게든지 내려가기만 하면 오늘 서울 집에는 못가더라도 속초쯤 가서 몸을 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랜턴을 비춰가며 바위와 바위사이를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걸리고 이제는 밤 안에 산을 탈출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이 밤을 견디어야 할까? 우선 너덜지대의 맨 아래까지는 내려가기로 하고 두 손과 발로 바위 길을 내려갔다.
드디어 너덜지대 맨 아래까지 내려갔다. 위에서 보이던 차량불빛도 보이지 않고 완전히 어두움뿐이다. 여기서 밤을 지내고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하산해야 하겠다. 저녁도 못 먹고 잡목지대를 뚫고 내려가느라고 체력을 너무 많이 소모하여 자꾸 넘어지니 더 진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스마트폰을 켜고 집에 전화를 하였다. 새벽 1시 30분, 깊은 산속이다. 이제는 산속에서 머무르기로 했다고 알려주었다. 밧데리가 모자라 스마트폰을 꺼 놓으니 집에서는 전화를 해도 받을 수가 없고 걱정할 것은 알지만 그러나 산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 것을 알면 더 걱정을 할 것이므로 내가 내려갈 수 있는 정도까지 진행을 하다가 산에서 밤을 새기로 결정하고 나서 전화를 하는 것이다.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고 위험하게 이동하는 것보다는 머무르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해 해 줄 것이다.
몸이 모두 젖어 있으니 불을 피워야 하겠다. 온몸이 젖어 있으니 한기가 느껴지며 콧물이 나와 주체할 수가 없다. 완전히 지친 몸으로 주변에 있는 나무를 모아 바위 사이에서 불을 피운다. 비가 온 뒤라 나무들이 젖어 불이 잘 안 붙는다. 불을 피우려고 아무리 공을 들여도 불은 피지 않고 라이터의 가스마저 떨어져 버린다. 낭패스럽다.
설악의 밤은 변화무쌍했다. 하루 밤 사이에도 이슬비가 조금 뿌리는가 하더니 구름사이로 별들의 모습도 잠깐 보이고, 다시 검은 구름이 덮인 험악한 하늘의 모습으로 변하곤 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양말을 벗어보니 빨래한 듯 물이 짜진다. 배낭에 있는 속옷을 모두 갈아입으니 추위가 조금 덜 한 것 같다. 젖은 옷의 물을 짜서 넓은 바위에 가지런히 널어놓고 조금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날이 밝는다. 시간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산에서는 날이 빨리 밝는구나 생각하면서 스마트폰을 켜고 시간을 보니 다섯 시가 넘어 날이 밝을 시간이 된 것이다. 4시간 동안 불을 피우느라고 헛고생을 한 셈이다.
집에 전화를 하여 아무 일 없이 밤을 잘 보냈고 이제 날이 밝아 산행을 시작하려고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짐을 챙겼다. 어떻게 산행을 해야 할 것인가 망설여진다. 밧데리가 있으면 GPS를 이용하여 길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지금은 그것이 되지 않으니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지 계곡을 따라 내려갈 수밖에 없다.
계곡은 너덜지대가 계속되고 너덜지대에는 물이 밑으로 흘러 물이 없다. 이런 너덜지대에서는 어떤 생물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제 저녁과 아침도 못 먹었으니 기운이 없어 이제는 속도는 생각하지 않고 안전에만 중점을 두어 조심하며 내려가기로 했다.
너무 지친 탓인지 배낭에 있는 간식도 먹어지지가 않는다. 다행이 물 한통이 남아 있어 물을 마시고 문어포를 먹어가며 하염없이 바위사이를 타고 내려간다. 너무 힘이 드니 조금이라도 앉아서 쉬고 싶은데 한번 앉으면 일어나고 싶지 않을까 두려워 앉을 수가 없다.
몇 시간을 걸었을까?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물을 만나야 계곡 아래로 이어지고 탈출을 할 수 있다. 좀 더 내려가니 좌우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시원스럽게 만나는 지점이 나온다. 가지고 있던 물을 아껴 먹었는데 이제는 계곡물을 마셔야 되겠다. 물병에 물을 받아 실컷 마셨다. 물이라도 실컷 마시고 나니 힘이 나는 것 같다.
계곡이 너무 깊어 사람들의 접근이 안 되는 곳이라 길이 없으니 물을 따라 내려갈 수밖에 없는데 물굽이가 구부러질 때 마다 계곡을 건너 반대편으로 해서 내려가야 한다. 돌이 미끄러워 무척 조심스러운데 큰 비가 오지 않았는지 수량이 많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물을 건너기를 몇 번이나 하였던가? 조심스럽게 내려가다 보니 조금 아래에 천막이 보이고 사람들이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 살았다. 이제 탈출하였구나. 저곳에서 식사를 하고 쉬어 가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천막이 보이던 곳에 도착해보니, 아!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천막이 아니고 큰 바위만이 있지 않은가? 사람을 너무 그리다보니 헛것이 보이나보다. 힘이 쭉 빠진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내려간다.
밧데리가 정말 비상전화 할 정도밖에 없으니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볼 수도 없다. 나는 짐을 줄이기 위하여 스마트폰으로 시간도 보고 전화도 하고 녹음도 하고 사진도 찍고 GPS도 확인하니 밧데리가 빨리 소모되어 새로 충천한 밧데리 두 개를 준비하였는데 모두 소모된 것이다. 비가 와서 산행속도가 느려지고 길을 잘못 들어 산속에서 헤매는 바람이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하여 밧데리가 모자라게 된 것이다.
하염없이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이슬비가 간혹 내리다 그치다 를 반복하니 우산을 쓸 수도 없어 그냥 이슬비를 맞으며 내려가다 보니 물살이 제법 세어지는데 한 사람이 우의를 입고 물속에서 무슨 작업을 하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여기가 어디쯤 되는지 라도 물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다가가 보니 사람이 아니고 커다란 바위다. 너무나 황당하여 계곡을 향해 큰 소리를 한번 질러보고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 내려간다. 아무 의미도 없는 계곡 길을 오직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내려간다.
또 얼마를 내려가니 건너편에 사람이 보인다. 두 번이나 혼동을 해서 정말 사람일까 의아한 생각을 하며 자세히 보니 정말 사람이다. 계곡을 따라 나들이를 온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탈출을 한 것이구나.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어 내 몸을 살펴보니 내 몸이 꼴이 아니다. 비에 젖은 몸으로 덩굴 속을 헤매고 다녀 옷이며 배낭이 너무나 험할 정도로 더러워졌고 몸에서는 냄새도 많이 난다.
우선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옷의 먼지도 털고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나갔다. 여기가 어디쯤 되나? 궁금하기는 한데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렇게 짓궂게 비를 뿌려대던 날씨는 햇살이 쨍쨍 내려쪼여 무척 따갑다. 그냥 길을 따라 내려가니 안내판이 나오고 신흥사 뒷길이 된다. 설악동으로 내려간 것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앞에 있는 식당가에 도착하여 우선 집에 전화를 하였다. 무사히 설악동에 내려와 우선 밥을 먹으려고 하니 안심하라고 했다. 긴 시간동안 얼마나 걱정을 하였을까 생각하니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시간을 보니 12시30분이다. 그렇다면 아침 다섯 시 반경 출발했으니 7시간이 걸린 것이다.
어제 아침 5시에 한계령을 출발하여 31시간 30분 만에 산행을 마친 것이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황철봉 다음 1,318.9m봉에서 문바위골로 내려갔고 이어지는 저항령 계곡을 따라 내려간 것인데 나중에 어떤 자료를 보니 이 계곡으로 탈출하려면 차라리 미시령으로 가는 것이 훨씬 쉽다고 되어 있다. 최악의 코스를 선택한 것이다.
너무 허기가 지고 피곤하니 밥이 먹히지 않아 식탁에 혼자 앉아 막걸리를 한잔해 가며 쉬엄쉬엄 식사를 하고 나니 기운이 좀 나고 이제 살았구나 하는 기분이 된다.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니 그 긴 시간동안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산행을 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지도 못한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원통하고 화가 나서 자꾸 눈물이 난다. 택시로 속초에 가서 고속버스를 타고 동서울에 도착하니 오후 다섯 시가 넘었다.
아! 죽음의 골짜기에서 이렇게 살아 돌아 왔구나. 그나마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었음을 주님께 감사드린다.
(다음은 1,318.9m 봉에서 미시령까지 구간의 산행임)
2012. 7월 27일(금) 아침 7시 20분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담사행 버스를 탔다. 속초나 양양행 버스가 백담사 정류장에 정차하므로 수시로 배차가 되는 노선인데 휴가철이라 임시차를 배정하였는데도 승객이 꽉 찬다.
지난 일요일 미시령까지의 구간에서 길을 잃어 31시간 동안 산행을 하였기 때문에 몸이 아직 회복이 안 된 상태인데 3일 만에 다시 등산을 하게 되니 과연 오늘 코스를 잘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우리 부부모임의 일행들이 나의 백두대간 종주를 환영해 준다고 내일 진부령에 오기로 일정을 잡아 놓고 있어 그 일정을 맞추려고 하니 오늘 지난번 못한 구간을 마치고 내일 나머지 한 구간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무리를 하는 것이다. 지난번 산행의 후유증으로 팔 다리에 멍이 들고 몸이 천근만근이라 사실상 오늘 산행은 너무나 무리다.
백담사 정류장에 도착하여 이른 점심을 먹고 셔틀버스로 백담사에 도착하니 오전 10시가 지난 시간이다. 백담사를 지나고 시멘트로 길을 만들어 놓은 계곡물을 건너는데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계곡에서 돌로 탑을 쌓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아래 가족들이 한가롭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한편 부러운 생각이 든다.
(백담사 앞 계곡)
봉정암 방향으로 접어들어 설악산국립공원백담사 탐방안내소 앞을 지나 올라가니 바위길 옆으로 백담계곡의 맑은 물이 시원스럽고 계곡의 맑은 물 옆으로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봉정암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인지 반대방향에서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다.
오전 10시 47분 다리를 건너니 왼쪽으로 계곡 올라가는 조그만 등산로가 보이는데 여기가 길골 입구다. 길골로 올라가면 지난번 어두움 속에서 지나갔던 저항령에 도착하게 된다. 빨간 포장 끈을 나무에 매어 놓은 것이 보인다. 오늘 코스는 대간리본을 보기는 어려운 구간인데 이 포장 끈이 도움을 줄 모양이다.
오늘 일정은 지난번 못한 구간을 마치려는 것이므로 저항령에 가장 접근하기 쉬운 코스를 선택한 것인데 백담사에서 저항령까지도 3시간 반에서 4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희미한 산길이 나타나는데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을 가다보니 산길은 희미해지고 계곡물을 건너게 된다. 계곡물이 많지 않아 어렵지 않게 계곡을 건너보니 산길이 나오고 완만한 오르막 경사가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아직 몸이 피곤한 상태이고 지난번 일요일 산속에서 헤맬 때 바위에 부딪쳤던 왼쪽 허벅지와 엉덩이의 통증이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온 몸을 끌어당겨 산행자체가 어려운 상태이나 오늘은 저항령까지만 길을 잘 찾으면 코스가 길지 않으므로 서두르지 않고 진행하기로 한다.
날씨는 청명하고 계곡이 깊어 고요만이 감도는데 계곡이 구부러질 때마다 계곡을 건너기를 십여 번, 계곡은 맑은 물이 흐르는 조용함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절경 없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가는데 빨간 포장 끈을 매어 놓은 것이 수시로 보여 많은 도움이 된다.
구름이 약간 끼어 더운 느낌은 없고 계곡물은 시원스럽게 흐른다. 등로는 완만한 경사로 이어져 힘든 코스는 아닌데 지난번 산행 시 다친 왼쪽 다리 부분이 걸을 때 마다 통증으로 다가와 힘이 든다. 오늘 산행이 너무 무리라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오후 1시 50분 지난번 어두움 속에서 보았던 눈에 익은 길이 나오고 저항령에 도착한다. 넓은 공터가 나오고 오른쪽은 지난번에 길을 헤맸던 마등령에서 내려오는 길이고 왼쪽은 미시령으로 가는 길이다. 오늘은 몸이 정상이라고 보기 힘든 상태라 얼마 오지 않았는데도 힘이 든다. 잠시 쉬기도 할 겸 간식을 먹었다. 몸이 피곤하니 식욕도 없는데 산에서는 먹어야 간다고 했으니 빵과 참외를 먹었다. 지난번 스마트폰의 밧데리가 없어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는데 오늘 다시 이곳에 오게 되니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어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하다.
옛날에는 저항령을 “늘목령”이라 불렀으며 한자로는 장항령(獐項嶺)이라 표기했는데, 이것이 발음상 저항령으로 변해서 저항령(低項嶺)이 된 것이다. 이곳은 6.25가 한창이던 1951년 남한의 2사단과 북한의 6사단이 한판 승부를 벌여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고 결국 남한이 승리하여 양구를 비롯한 북동쪽 특히 설악산을 가져올 수 있었던 중요한 전투였는데 얼마 전 그 당시 산화한 군인들의 시신 발굴 작업이 있었던 곳이다.
오후 2시 12분 대간리본이 붙어 있는 왼쪽 오르막 경사를 오른다. 햇살이 밝고 바람은 시원한데 지난번 지나간 구간을 보니 1,249.5m봉이 우뚝 서 있고 그 밑으로 저항령까지 구간에 넓은 너덜지대가 보인다.
저 너덜지대에서 길을 잃어 두 시간 가량을 허비하는 바람에 지난번 그 고생을 하였구나 생각하니 거꾸로라도 다시 한번 올라가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나 부질없는 욕망을 억누르고 다시 대간길을 올라간다. 암벽에 로프가 매어 있는 바위길이 나오고 야광표시기가 나무에 붙어 있다. 왼쪽 허벅지가 아프고 땡기니 경사가 심한 경우 많이 힘이 든다.
오후 2시 반경 너덜지대가 나온다. 지난번 지나갔던 봉우리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너덜지대가 모두 선명하게 보인다. 10여분 더 가니 또 다시 더 넓은 너덜지대가 나오는데 집채만 한 바위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지난번 밤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매달아 놓은 야광 표시기가 곳곳에 보인다.
(황철봉 오르는 길의 너덜지대 모습)
너덜지대 마지막 꼭대기는 커다란 바위가 겹쳐져 있는 황철봉 정상인데 날이 맑아 시야가 좋으니 멀리 준봉들의 모습이 겹겹으로 겹쳐져 보여 깊은 산속임을 실감케 되고 몸은 피곤해도 또 산행의 진미를 느끼게 된다.
오후 3시 54분 1,318.9m봉이다. 너덜지대 큰 바위에 그려져 있는 화살표를 따라 힘들게 올라가니 잡목사이에 대간리본이 붙어 있고 측량기준점(설악 22)이 나타나는데 가운데에 북봉이라고 작은 글씨가 씌어져 있다. 지난번에 여기에서 길을 잃어 고생을 하였던 지점이다. 자세히 보니 봉우리를 올라갈 때 바위에 페인트로 그려져 있는 오른쪽 화살표를 따라 올라 갔다가 왼쪽으로 내려가면 너덜지대를 지나 대간로에 빨래줄을 매어 놓아 길을 찾기가 쉽게 되어 있는데 그때는 밤이라 바위에 그려져 있는 화살표가 잘 보이지 않아 왼쪽으로 봉우리를 올랐다가 오른쪽으로 내려가서 길을 찾으니 길을 찾지 못하였던 것이다. 오른쪽에 보니 출입금지 팻말, 내가 거기로 들어갔다가 많은 고생을 하였던 그 한스러운 표지판이 보인다.
(1,318.9m 봉, 북봉의 측량기준점)
오후 4시경 1,318.9m 봉에서 왼쪽 너덜지대로 내려가니 빨래줄을 매어 놓았고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설치해 놓은 야광 표시기가 잘 보여 길을 찾기가 쉽게 되어 있다. 그러나 3단계로 이어져 있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라고 하는 너덜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어 큰 바위와 바위를 건너며 내려가려니 다리를 많이 구부려야 하는데 왼쪽 허벅지가 아프고 땡기니 엎드리는 것조차 쉽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린다.
멀리 미시령을 넘어 이어지는 도로와 속초 시내의 모습이 보이고 조금 내려가니 울산바위와 속초시내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데 바람은 몸의 균형을 잡기 어려울정도로 세게 불어 너덜지대를 내려가는데 더 힘이 든다.
오후 4시 반경 너덜지대를 조심조심 거의 내려갔다. 대간로는 다시 숲속으로 이어지고 계속 불어대던 바람도 숲속에 들어가니 조금 잠잠한 편이다.
오후 5시경 울산바위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울산바위로 가는 길인데 로프에 출입금지 표지판을 달아 놓았고 대간로는 좌측으로 이어진다.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침에 집에서 준비해 가지고 온 주먹밥을 먹었다. 아직도 저녁을 먹으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산을 내려가면 주먹밥은 먹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제 거의 내려왔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어 여유 있게 쉬어가려는 것이다. 나무가 많이 우거진 숲속인데도 설악산의 위용을 보여주는 듯 바람이 무척 심하게 불어 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무섭게 느껴질 정도다.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여 능선 옆구리로 나있는 잠깐씩의 너덜지대를 지나고 편안한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니 미시령휴게소가 보이기 시작하고 오후 6시 30분 미시령(彌矢嶺)에 도착하였다. 철조망 사이로 빠져 나가 미시령 도로에 내려서니 미시령 표지석이 높다랗게 서 있고 미시령옛길을 나타내는 사람모형을 한 나무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많은 고생 끝에 그토록 갈망하였던 미시령에 도착한 것이다.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 도로 건너편에 있는 미시령휴게소 안쪽에 미시령 지킴터가 보인다.
(미시령 표지석)
미시령은 한계령과 함께 설악산 서쪽의 인제와 동해안의 외설악을 이어주는 교통로로 15세기에 길이 개척되었으나 조선 후기 길이 폐쇄되기도 하였다. 현재의 미시령은 1960년대에 개통되었으며, “彌矢嶺” 표지석은 이승만 대통령이 제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 문헌에는 미시파령(彌詩坡嶺), 여수파령(麗水坡嶺), 연수파령(蓮水坡嶺) 등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미시파령은 아득하다는 뜻의 ‘미(彌)’와 때 ‘시(時)’를 써서 ‘아득한 시간이 걸려야 그 재를 넘을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미시파령(彌時坡嶺)
택당 이식((澤堂 李植, 1584-1647)
평소에 호시의 뜻을 품고서/ 사방의 험준한 길 두루 밟고 다녔나니
남쪽으론 조령(鳥嶺)의 잔도(棧道)를 건넜고
북쪽으론 마천령(磨天嶺)을 넘어도 보았어라
그런데 뜻밖에도 동쪽 산골 가는 길에
또다시 미시령(彌時嶺)이 버티고 서 있다니
돌고 돌아 일백 굽이 건너야 할 강물이요
일천 겹 에워싸인 준령(峻嶺)이로세
한 발 삐끗하면 곧바로 푸른 바다/ 손을 들면 잡히나니 푸른 구름
처음에는 디딜 땅도 없을 듯 겁나더니/ 하늘까지 오를 욕심 다시금 샘솟누나
이제야 알겠도다 예맥(濊貊)나라 이 동쪽에
따로 별세계(別世界)가 감추어져 왔던 것을
여기저기 좀 실컷 구경하려 하였는데/ 말 안 듣는 허리 다리 이를 어쩌나
때때로 접하는 기막힐 경치만으로도/ 속세에 찌든 얼굴 펴기에 족하도다
다섯 걸음마다 한 번씩 뒤를 돌아보고/ 열 발 걷고 나서 다시 멈춰 휴식하며
삼일 동안 아침 나절 험한 비탈 올라/ 사흘 저녁에 정상에 우뚝 섰어라
거대한 바위에 발도 다치고/ 깎아지른 낭떠러지 눈이 아찔했나니
굉대하도다 미시령이여/ 천기간에 그 무엇이 그대와 짝하리요
수레를 돌렸거나 마부 꾸짖었거나/ 모두가 충효심의 발로라 할 것인데
노모를 모신 이 길 무엇 때문에/ 깊은 골 뒤질 생각 거꾸로 한단 말가
남은 인생 성명(性命)을 보전할 수만 있다면
자취 끊고 먼 산골로 들어가도 좋으련만
바람결에 날려 보내는 나의 장탄식/ 나의 이 길 과연 옳은 것인지.
이 구간은 출입금지 구간이기 때문에 미시령 도착하기 조금 전 등로에 감시센서가 설치되어 있으므로 미시령휴게소가 보이는 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 미시령 도로에 내려서게 되는데 시간이 늦으니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시간이라 직진 길로 그냥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모처럼 여유 있게 주변의 표지석과 안내판을 사진에 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민박집 주인장의 차를 타고 미시령 캠핑장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미시령터널 입구에 있는 민박과 식당을 하는 집으로 부부가 아주 열심히 영업을 하고 있다.
오늘은 짧은 거리이고 산행시간도 짧은 편이나 피로가 회복 안 된 상태라 많이 힘들었지만 하루 산행을 잘 마치고 나니 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