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기행 서산 부석사 / 서산 송곡사 향나무/ 석천암 자목련 * 촬영 : 이재익 / 2012.04.29.
<업데이트> * 2013.10. 01.- 21번에. 시, <서산 부석사>, 이재익/25번에 부석사 불상 논란 / 41번 다음에 송곡사 제향 9현인
도비산 부석사 서산 부석사는 영주 부석사처럼 신라 의사대사가 창건했다. 단나라에 유학 온 의상대사는 사모하여 따라오려다 여의치 않자 바다에 뛰어들은 선묘낭자의 설화도 비슷하다. 의상대사가 낭자의 영혼을 위해 도비산에 절을 세우려 하자, 사람들이 반대하며 부수려 한다. 이 때 하늘에서 돌이 날아와 사람들을 꾸짓고 절을 지켰다 해서 부석사라 부른다고 한다.
1. 부석사라는 현판은 만공 스님께서 직접 쓰셨다. 글씨 끝머리에 ‘칠십옹(七十翁)’이라고 적어 놓았다. 만공 스님은 경허 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기 위해, 28세 때 이곳 부석사에 왔다. 만공(滿空), 혜월(慧月), 한암(漢岩), 수월(水月) 스님은 모두 경허 스님의 제자였다.
2. 한국 근현대 불교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승 경허(鏡虛·1846~1912) 스님의 시. “노을 물든 텅 빈 절 / 무릎 안고 졸다 / 소슬한 가을바람 놀라 깨어 보니 / 서리 맞은 단풍잎만 뜰에 차누나.” 경허 스님은 심검당에 사셨다. 심검당은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 지혜의 칼이란 다름 아닌 취모검(칼날 위에 머리카락을 올려놓고 입으로 불기만 해도 잘린다는 검)이 상징하는 것은 중생의 무명을 베는 예리한 명검이란 뜻.
3. 서산 부석사
4. 큰 법당인 극락전, 그 옆에 목룡장·심검당이 나란히 배치되었다. 마치 소가 길게 누운 꼴. 부석사 도량은 누운 한 마리 큰 소 형상이다. 불교에서는 자신의 본래 면목이 부처임을 깨달아가는 구도행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쇠뿔부분엔 큰 돌이 무언가를 들쳐 올리듯 솟아 있고, 심검당 아래 약수터는 소 형상에서의 젖가슴 부위로서 유즙처럼 맑은 생수가 차오른다.
5. 677년 문무왕 17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근대에 만공 스님이 선풍을 진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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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의상을 사모한 당녀 선묘녀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8. 낭자의 화신인 용이 절의 창건을 도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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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도비산은 태종과 세종이 사냥 형식의 군사훈련을 왔던 곳이다. 지형지세를 살펴서 왜구 출몰에 대한 방비책을 구상하기도 했다.그 결과 해미읍성을 축성하였다.
11. 운거루, 구름이 머무르는 누각
12. 운거루
13.광활한 서산의 들판 부석사는 도비산(島飛山) 중턱에 있다. 간척이 되기 전까지 서해 바닷물이 이 도비산 아래까지 이르러 차고 밀려나갈 때에는 육중한 산이 마치 움직이고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을 터. 도비(島飛)와 부석(浮石)이라는 말이 매우 역동적으로 들렸다.
14. 서산 부석사에서 부석사는 산사음악회와 한문학당, 템플스테이로도 유명하다. 산사음악회가 열린 지 올해(2012)로 16년째나 되었고, 이제는 지역의 축제가 되었다. 한문학당은 여름과 겨울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방학기간에 연다. 도비산과 천수만 주변의 생태환경 탐조 체험으로 인기가 많다.
15. 서산부석사에서
16. 서산부석사의 봄
17. 서산부석사의 봄
18. 서산부석사의 봄
19. 지고 있는 벚꽃
20. 특이 가람 배치 산신각에는 중앙에 산신을, 우측엔 선묘 낭자를, 좌측에는 용왕을 모셨다. 선묘 낭자를 모신 까닭은 부석사 창건 설화에 선묘 낭자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의상 스님을 흠모했으나 사랑의 고백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바다에 몸을 던진 이가 선묘 낭자다. 의상 스님은 이곳 도비산 중턱에 절을 지어 선묘 낭자의 혼을 위로하려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절 짓는 것을 방해했고, 그러던 어느 날 공중에 큰 바위가 떠 큰소리로 호통을 치며 사람들을 물러가게 했다. 이후 바위는 훌쩍 날아가 절에서 바로 보이는 바다에 떠 있으면서 절 짓는 공사를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이 돌이 물 위에 떠있다고 해서 ‘부석(浮石)’이라 불렀고, 절 이름도 ‘부석사(浮石寺)’라고 지었다.
21. 부석사에서 본 수선화, 선묘 낭자의 혼인지 아름답다.
서산 부석사
이 재 익
서산 부석사의 연못가에 노란 수선화가 참 곱기도 하다.
선묘룡이 와서 놀았다던 옛적 도비산 산록 바닷가는 상전벽해桑田碧海라더니 벽해도 상전*이 되어 바다가 넓은 들판으로 바뀌었다 그 때 선묘룡*은 수선화*로 변신하였으리.
수선화가 발걸음을 오래 붙듦을 달리 설명할 수 없으니.
저를 예뻐하면 의상대상로 느끼고 꽃잎의 미세한 전율을 나는 느끼노라. 수선화와 더불어 당나라와 신라, 천삼백 여 년의 세월을 찰라에 넘나든다. ------------------
* 벽해도 상전 : 서산 부석사 앞 들은 간척사업으로 바다가 육지가 됐다. * 선묘룡 : 서산 부석사도 영주 부석사와 비슷하게 의상대사와 대사를 사모했던 唐女 선묘녀에 얽힌 사찰창건 설화가 있다. * 서산부석사 창건설화 : 이 절 산신각 중앙에 산신을, 우측엔 선묘 낭자를, 좌측에는 용왕을 모셨다. 창건 설화에 의상대사는 자기를 사모하다 목숨을 버려 용이 된 선묘낭자, 선묘룡의 혼을 위로하려고 절을 짓는데, 사람들이 방해했고, 그래서 공중에 큰 바위가 떠 큰소리로 호통을 쳐서 사람들을 물리치고, 절을 다 지을 때 까지 돌이 바다 위에 떠 있었다고 해서 ‘부석浮石’, 절 이름도 ‘부석사浮石寺’라고 지었다고 한다. * 수선화 : 이 절에 수선화 전설은 없으나, 본 시가 새로운 전설을 탄생시킨다.
22. 작은 연못
23. 서산부석사의 봄
24. 서산부석사의 봄, 느티나무
25. 서산 부석사 불상의 문제
1) 2012년 10월 국내 절도범들이 일본 쓰시마(對馬)섬 관음사(觀音寺)에서 불상 한점-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훔쳐 국내로 밀반입하였다. 2) 서기 1330년(고려 충숙왕 17년) 부석사에서 만들어져 쓰시마 섬에 건너간 것. 현재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관 중이며, 대전지방법원은 지난 2월 '일본 관음사가 불상을 정당하게 취득한 사실이 재판에서 확인될 때까지 반환을 금지한다'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3) 논란들 -훔쳐왔으므로 일본으로 돌려주는 것이 맞다. -일본이 먼저 약탈해 간 것이므로 돌려 줄 필요가 없다. -그 불상이 원래 서산 부석사에 있었던 것은 맞지만, 일본 측이 약탈한 것인지 아닌지 아직 판명되지 않은 상황으므로 일단 돌려준 뒤에 다시 반환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
4)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발언 2013년 9월 27일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한·중·일 문화장관회의 중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일본 문부과학성 장관과 회담을 가졌다. 그런데 아사히신문 인터넷판 등 일본 언론이 "시모무라 장관이 유 장관에게 관음사 불상의 반환을 요청했고, 유 장관으로부터 '불상을 일본에 돌려줘야 한다'는 대답을 받았다"고 보도한 것이다. 유 장관은 28일 문화장관회의 합의문 서명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에 대해 "우리 사법부의 판단부터 기다려봐야 한다고 했고, '도난·약탈 문화재는 반환해야 한다'는 국제 규약을 준수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던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5) 문화재청이 최근 유은혜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모두 20개국 579곳 15만2915점으로 이 중 6만6824점이 일본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비산 석천암
26. 서산부석사에서 도비산을 넘어가면 있는 석천암
27. 도비산 석천암 마애삼존불
28. 도비산 석천암 마애삼존불
29. 도비산 석천암 자목련
30. 도비산 석천암 자목련
31. 도비산 석천암 자목련
32. 도비산 석찬암 자목련
33. 도비산 석천암 자목련
34. 도비산 석천암 자목련
35. 도비산 석촌암 자목련
36. 민들레
서산 송곡사 향나무
37. 550년된 송곡사 항나무, 2그루, 송곡사는 서산 정씨들의 성지라고 할 수있다. 서산정씨 시조는 고려 때, 중국 송나라 말에 서산으로 귀화한 정신보이다.
* [참고] 대한민국 산업의 영웅 고 정주영 회장 본관이 혹 서산인가 찾아 보니 아닙니다. 정주영의 본관은 하동 정씨이고, 고향은 북한 금강산 인근의 통천. 산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경주 이씨 고향은 경남 의령입니다.
38. 550년된 송곡사 항나무, 2그루
39. 550년된 송곡사 항나무, 2그루, 단종~세조 때, 유윤이 단종의 폐위를 보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정원수로 심었다고 전한다.
40.550년된 송곡사 항나무, 2그루, 단종~세조 때, 유윤이 단종의 폐위를 보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정원수로 심었다고 전한다.
41. 서산 송곡사 향나무 소재 ; 충남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 495./ 도지정 기념물 제170호 서산에서 배출된 향현들을 제향하는 송곡사 전면 입구 양측에 위치한 향나무로 조선 세종 2년(1420)에 사마시에 급제한 유윤이 단종의 폐위를 보고 낙향하여 정원수로 심었다고 전한다. 수령 약 55여년의 향나무로서 학술적, 역사적 가치성이 뛰어난 귀중한 자료이다.
42. 송곡사에 배향한 9인의 선현의 이름이 적혀있다.
43. 송곡사를 다시 세우는데 공적이 있는 분을 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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