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소래산에 들다.
김민지
한 통에 문자를 받았다. ‘박영남 교수님 별세하셨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알 수 없는 후회가 가슴을 짓누른다. 그 다음 날 신발장에서 나와 오래 동행한 등산화를 꺼냈다. 내 발에 꼭 맞게 길든 등산화는 발을 편하게 한다. 현관문을 닫고 층계를 내려오는데 내 입에서 ‘시종일관’이란 단어가 툭 튀어나온다.
그 ‘시종일관’이란 말은 박영남 교수님의 좌우명이면서 가장 좋아하시는 사자성어다. 내원사로 올라가다 쉬어가는 숲에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곧바로 헬기장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로 올랐다. 소래산은 머리숱이 빠진 것처럼 숲을 비워가고 있다. 2006년에 박영남 교수님을 만났다. 글을 쓰고 싶은데 다양한 지식 없어 목말라하는 부분이었다. 그 난관을 극복하고자 찾아간 곳이 박영남 교수님 수업이다.
박영남 교수님은 젠틀맨이셨다. 목사님이기도 하셨지만, 결코 다른 종교를 배척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불교 경전, 역학도 가르치셨다. 교수님 수업을 듣고 나오면 가슴이 벅차고 알 수 없는 힘이 생겼다. 교수님과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내가 가야 할 방향도 찾았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가지가 꺾일망정 뿌리까지 흔들리면 안 된다고 늘 강조하셨다.
소래산 정상으로 갈수록 도시가 멀어진다. 멀어진 도시가 가까이 있을 때보다 산 끝에서 보면 더 잘 보인다. 그래서 도시가 부드러우면서 정답게 다가선다. 그 도시에서 잠시 인연으로 만난 박영남 교수님은 나의 가장 큰 나침반이었다. 교수님도 ‘질문 잘하는 민지 때문에 흥이 난다고 하시며’ 좋아하셨다. 사실 난 교수님 수업에 푹 빠져 지냈다. 그만큼 신선하고 지식이 쌓여가는 재미가 있었다.
소래산에서 성주산으로 내려섰다. 성주산은 갈 적마다 느끼는 것이 길이 순하다는 것이다. 꼭 내가 초등학교 다닌 던 길처럼 완만하고 부드럽다. 바람은 스산한 소리로 숲을 지나간다. 낙엽 하나가 겨울을 알리는 명함처럼 낙화를 시도한다. 떨어지는 낙엽을 쫓아 팔을 벌렸다. 낙엽이 내 품에 머문다. 실바람처럼 사소한 일상에서 때를 놓쳐 후회하는 일이 많다. 기다려주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 때문이다. 교수님도 찾아뵈어야지 하며 망설이다가 결국은 후회할 일을 만들었다.
내가 교수님 수업을 좋아하게 된 동기는 다양함이다. 고전, 현대 문학뿐 아니라 시사, 정치, 사서삼경, 세계 역사, 성경 등 두루 가르쳐 주셨다. 매시간 긴장도 하지만, 앎에 대한 충족감으로 자신감을 얻었다. 특히 교수님은 ‘내가 살아 있을 때 내 머릿속에 있는 것 다 가져가.’ 하셨다. 그리고 인간의 성패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돈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쓰느냐, 마음을 어디에 쏟느냐에 따라 성패가 판가름난다고 하시며 늘 배우는 자세를 가지라고 하셨다.
청설모가 나무를 오르내리며 눈길을 끈다. 어느 아저씨가 막대기로 땅을 치며 청설모를 향해 호통을 치신다. 그 이유가 다람쥐를 잡아먹어서란다. 아마 더 큰 이유를 우리가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지. 지금 다람쥐나 청설모가 겨울을 나려면 양식인 도토리와 밤을 모아 숨겨두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으로 도토리와 밤을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잠시 소나무 숲에서 숨을 고르며 사과 한 쪽을 먹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교수님이 불쑥 나타나셔서 조언하실 것 같다. 그만큼 나에게 영향력이 크셨다. 교수님이 주신 A4용지 이백 장이 넘는 아포리즘은 내가 살아가는데 히든카드로 남았다.
성주산 끝에서 내가 지나온 길을 보았다. 동그랗게 이어진 산이 포근하게 와 닿는다. 한 가지에 집착하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곳에 도전하되 우왕좌왕하지 말라는 말씀이 귓전에 맴돈다. 소유는 집착하게 하고 집착은 고뇌와 번뇌를 가져온다. 그래서 집착하게 되면 108번뇌가 생긴다고 불교에서 말하지 않는가. 그동안 교수님이 내게 주신 철학을 바탕으로 글쓰기에 소홀하지 않을 것이다.
소래산과 성주산은 자주 다니던 등산길이라 익숙해서 그런지 마음 다스리는 데는 그만이다. 숭덩숭덩 뚫린 숲이 지금의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 설렁하다.
삼가 박영남 교수님의 명복을 빌며 하늘을 보았다. 바바리코트가 잘 어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던 당신은 내 인생의 소중한 사람입니다.
2013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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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본명:김순기)수필가/문예사조 수필부문 등단 ,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향문학회 회원/현, 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 수필분과 위원장/수필집 : [고추잠자리 시집보내기]
[마주침, 그 시간들], [山, 산과 트다]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