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3절에서 그 조상 때부터 섬겨오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하였거니와 5절에 있어서는 그가 드리는 그 감사의 이유를 말했습니다. 바울이 특히 디모데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디모데의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디모데의 신앙은 거짓이 없는 신앙이었습니다.
즉 가식이나 수식이 없는 적나라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소유한 그 신앙은, 먼저 디모데의 외할머니 "루이스"를 비롯하여 그 어미니 "유니게"의 속에 있던 것이었습니다. 요컨데 다모데의 신앙은 어머니의 계통을 따라서 받은 전통적인 신앙이었습니다.
물론 전통적인 신앙에는 독자적인 요소가 없다고 할지라도 그 근거는 즉 그 뿌리는 심원한 것입니다.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으나 그 어머니는 유대인으로서의 진실한 기독자였습니다.
따라서 그의 조모인 루이스도 물론 유대인으로서 열렬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신앙이 전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가 하면 디모데의 신앙이 그 모계를 통하여 전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을 여기에서 또한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기생 "라압"의 신앙이 일가족을 구했고 이방 여인 "릇"의 신앙이
"다윗"에게 미쳤으며 "한나"의 신앙이 "사무엘"에게 미친 것을 또한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어머니의 신앙이 그 자녀들에게 미치어 그 자녀들의 전 생애를 좌우하는 원동력을 이룩하는 것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선교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존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율은 디모데를 항상 마음에 두었으며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었던 기쁨의 사람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이렇게도 칭찬을 하였을까요?
1.디모데는 거짓이 없는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5절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고 했습니다. 거짓이란 히브리어로 "카자브"라고 하는데 이것은 악이나 불신앙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의 진리에서 떠난 심령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거짓된 것의 전형(모형)은 거짓 증거 하는 것이며 거짓의 모양은 속이는 행위입니다.(시120:3; 27:12).허망한 풍설 거짓 풍문을 사실인 양 전하는 것입니다.(출23:1). 거짓된 것은 간사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디모데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간사함이 없었습니다.
간사하다는 말은 "돌로스"인데 고기를 미끼로 잡는다는 뜻에서 왔으며 속이는 것, 교활한 행위, 위선, 외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그렇지 아니하였습니다. 디모데는 그 인격이 진실했습니다. 그의 생각도 진실하였습니다. 그의 봉사와 헌신과 충성이 진실하였습니다.
또한 디모데는 진리 안에서 예수 안에서 산 사람입니다. 인간이 물과 공기 속에서 살고 물고기는 물 속에 살며 어린 아이는 어머니의 품안에서 살듯이 그리스도인은 거짓 없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품안에서 살듯이 그리스도인은 거짓 없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성도들이 믿음 좋은 것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겉으로 슬슬 믿고 잘 믿는 척하고 자기는 천사같이 생각하고 남은 다 죄인같이 생각하고 거들먹거리는 신자 자기는 전도 한 사람도 안 해오면서 교회 부흥이 안 된다고 탓하기만 하는 신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믿는 하나님은 거짓을 미워하고 진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거짓된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진실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의 외식적인 신앙 모습으로 인해 예수께 책망을 받았지만(마23:12-15),
그 마음에 간사한 것이 없는 "나다나엘"은 예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요1:47) 외식하는 "바리새인"의 기도는 주께서 외면하셨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면서 기도했던 "세리"의 기도는 들어 주셨던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눅18:10-14). 거짓된 믿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아무리 화려하고,
보기 좋다 할지라도 주님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 마음에 간사하고 거짓된 것을 버리고 오직 거룩하고 진실하신 하나님만을 진실하게 믿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변함이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믿음이란 변함이 없는 믿음인 것입니다. 악한 사단의 세력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믿음을 꺾기 위해 공격해 오고 유혹해 오기에 우리는 진정 믿음을 변치 않고 굳게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그리스도라는 견고한 터 위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믿음은 결국 잠시 있다 사라질 뿐이며 이는 끝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 되지 못하기에(눅8:13),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깊게 뿌리를 내리고 끝까지 변치 않는 믿음을 지켜나감으로써 구원함에 이르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히10:29).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친다 할지라도 감당키 힘든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믿음을 지켜나가야 하며 주님 안에서의 궁극적인 구원과 승리를 믿고 의지하며 담대히 믿음의 경주를 계속해야 합니다. 또한 평안하고 안락한 중에도 그 믿음이 나태해지고 변질되지 않도록,
조심해서 믿음을 지켜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참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생명력 있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참으로 믿는 자는 능력이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마17:20; 마9:27-30; 마15:21-28; 막16:17-18).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열매를 맺습니다.(약2:17).
주님은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마 7:21-29)고 했습니다. 거짓이 믿음과 가짜 믿음은 어떻게 구별합니까? 그 기준은 열매에 있습니다. 마음대로 살던 내가 죽고 예수가 성령으로 사는 것입니다.(빌1:21). 본능대로 살던 사람이 이제는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은 버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따르는 새 신부와 같은 삶입니다. 남편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라면 싫더라도 기쁨으로 감당하며 오히려 그 속에서 보람을 느끼고 사는 삶과 도 같은 것입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은 최대의 힘이요 재산이요 생명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이 영적 생명력을 잃으면 도덕이 퇴패하고 사회적인 혼란이 오는 것입니다. 믿음은 개인이나 사회의 초대 에너지요 재생력이요 삶 그 자체입니다. 그러기에 수많은 사람들은 이 신앙으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신앙 때문에 신앙을 갖기 위해 많은 희생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거짓 없는 믿음으로 심령이 변화되고 가정을 변화시키고 이 나라를 변화시키는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신자의 의무요 주님이 요구하는 일인 것입니다.
3.금보다 귀한 신앙의 소유자이었습니다. 사람이 현세에서 완전한 인격을 이루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이 세상의 문명과 문화를 다 누린다 해도 그것으로 완전히 행복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천국과 지옥의 내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슬픔 근심 질병 등 죽음과 고통이 없는 곳이며,
우리들의 영혼이 참 만족을 누리며 이 곳에 들어가려면 금보다 귀한 믿음을 가진 자가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요14:6절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시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천국에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것이기에 믿음은 참으로 보배로운 것입니다. 그러기에 벧전1:7절에서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간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여 믿음이 금보다 더 귀하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막9:23절에서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하여 믿음의 능력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배로운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축복과 아울러 땅에 속한 것도 다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적이며 생산적이며 기적적인 권세와 능력과 부요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등과 같은 믿음의 조상들은 좋은 믿음을 그 자손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다윗도 그 자손에게 믿음을 유업으로 남겨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후손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이 범죄 하였어도 그 후손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이 법죄 하여 멸하시려다가 하나님께서 다윗을 생각하사 유대를 멸망시키시는 것을 멈추셨던 것입니다. "무디"의 어머니는 자녀를 아홉 명이나 기르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의 남편이 일찍 죽자 그녀의, 친척들은 그녀에게 아홉 명이나 되는 자식을 다 기르기 어려우니,
몇 명은 고아원에 보내고 또 몇 명은 친척집에 보내 식솔을 줄인 다음 살아갈 궁리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무디 어머니는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두 팔을 앞으로 내밀면서 내 두 팔에는 아직 살이 붙어 있으니 살아 붙어 있는 한 내 자식을 고아원이나 친척집에 절대로 보낼 수 없습니다.
엄마만큼 자식을 사랑하고 돌보아줄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힘을 다해 내 자식을 내 품에서 키우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그녀는 자식들을 믿음과 기도로 가르치고 양육하여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부흥사 무디를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손들에게 믿음을 물려준 사람들은 자손들이 잘되는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4.하나님을 아는 신앙이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믿음의 영웅 모세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요셉의 은덕을 모르는 새 왕의 강압정치는 날로 더 심해졌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날로 번성해 가는 것을 막으려고 히브리인이 남자 아이를 낳으면 죽여 없애고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기르라고 하는 말살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모세는 태어난 것입니다.
그의 탄생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믿음의 가정에 태어나게 하셔서 3개월 동안 숨겨 키우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모세를 갈대 상자에 역청을 바른 후 그곳에 담아 나일 강에 띄워 내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돌아보시고자 애굽의 공주를 나일 강에서 목욕하게 함으로 어린 모세가 떠내려 오자 건져서 아이의 준수함을 보고,
자기 아들로 삼아 궁중에 데려와 키웠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았던 누이 "미리암"이 공주에게 유모를 소개하였는데 바로 모세의 친 엄마였습니다. 모세의 어머니인 "요게벳"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어린 모세에게 그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올바로 가르쳤습니다. 모세는 비록 궁중에서 애굽 공주의 아들로 자랐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생모 요게벳의 의해 심어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잠22: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한 것처럼,
믿음으로 성장한 모세는 세상의 부귀영화가 가득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한 받기를 거절하고,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자리에 처했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바로 왕궁의 물질과 영화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귀했던 것입니다.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음으로 더 크고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을 좋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80세 때 호렙산 가시떨기 불꽃 속에서 모세를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민족을 구원하는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모세가 여호와를 알고 그분만 의지하였을 때 언제나 승리가 따랐고 축복이 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144:15절에서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하였습니다.
5.참되고 꿈이 있는 신앙이었습니다. 7절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내일에 대한 소망과 꿈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꿈은 가지 사람입니다. 꿈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한 나라와 민족은 바라보고 나가야 할 좌표가 있어야 하고 한 개인도 꿈이 있고 비전이 있어야 하며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가슴마다에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르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십시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생명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심어서 다시 한 번 성령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들의 꿈이요 이상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으며, "요셉"은 17세에 꾼 꿈을 실현하기 위해 13년의 역경과 고난을 달게 받았던 것입니다. "야곱"은 루스 들판에서 열린 축복의 문을,
바라보고 20여년의 긴 삶을 밧단 아람에서 참고 견디었습니다. "욥"은 어려운 역경 환난 재난을 믿음의 꿈으로 잘 극복하여 노년에 배의 축복을 받았다고 욥42:12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강하고, 끈질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오래 참는 끈질긴 인내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낮아지는 겸손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피와 땀과 눈물을 쏟는 고통을 각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는 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과 꿈은 영원한 청춘이요 생명이요 창조입니다.
그러기에 낡아질 수가 없고 퇴색할 수도 없습니다. 바닥이 날수도 없고 메마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가질 만한 것이 없습니다. 모두 다 낡은 것들이며 다 퇴색할 수밖에 없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꿈으로 충만하여 기도하기만 하면 신명기 28장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성민으로 선택되어 세계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될 것이며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고 하는 일마다 형통할 줄로 믿습니다. 참된 신앙인은 거짓 없는 믿음의 소유자여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능력 있는 믿음입니다.
기적을 불러일으키고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인은 꿈이 있습니다. 참된 신앙인은 고통도 고난도 역경도 견디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너무 조급해 하지 맙시다. 참된 믿음을 가지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기도 하면서,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주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인내하시기를 바랍니다.
6.도움을 청하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막9:24절에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고 했습니다. 사귀는 최후의 발악으로 아이로 심함 경련을 일으키게 하여 땅 위에 넘어뜨리고 떠났습니다. 모든 군중들은 그 아이를 향하여 말하기를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능력의 손을 내미사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었습니다. 아이는 소생하였고 정신은 완전하였습니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 주어진 능력의 손이요 은혜의 구원입니다. 이 아이가 사귀 걸려 고생하는 것은 사단의 포로가 되어 고민하던 우리의 과거의 죄악의 생애를 그대로 지시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악은 인간을 지배하고 조롱하며 또한 인간에게 고민을 줍니다. 그러나 포로 되어 있던 인간은 자기가 죄악의 포로인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접촉될 때에 비로소 자기의 죄를 깨닫고 그 죄악으로 인해 점점 고통을 당하다가 마지막에는 그 죄를 통회하며 죽은 듯이 땅위에 쓰러집니다.
이 때에 비로소 주님은 능력의 손을 내미사 우리를 일으키시고 새 생명으로 소생케 하십니다. 이처럼 죄로 인한 심각한 고통을 맛보지 못한 자이면 사죄로 인한 기쁨도 맛보지 못한 자일 것입니다.
7.믿음에 대상을 바르게 알다 는 의미입니다. 딛3:8절에 "기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로 하여금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에게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올바른 복음의 진리를 믿는다고 해도 행동력이 선하지 못하고,
생활이 아름답지 못하면 이단자들의 비판을 받게 되고, 또 일반 백성들에게도 복음에 대한 신임도를 떨어뜨리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진리를 믿는 올바른 신앙을 가진 자답게 바른 행동과 아름다운 생활과 선의 열매를 많이 맺게 되면 이단자들의 힘이 약화되게 되고,
일반인들도 이단에 잘 끌리지 않게 되고 복음진리의 정통신앙으로 많이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바른 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선한 일에 힘쓰라고 가르쳐줍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성교회 성도들이 올바로 믿고 행하고 선행의 모범이 되면 이단이 힘을 못 씁니다.
기성교회 성도들이 선행에 모법이 못될 때는 교회가 교회구실을 못할 때는 교회가 사회적인 책임을 못할 때는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생활에 열심을 가지고 사회의 소외 계층을 많이 돌보며 선한 열매를 많이 맺으며 세상사회에 빛을 비출 것입니다.
그럴 때 이단이 잘 생기지도 않고 생겨도 자라지 못하고 이단의 무리가 날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기성교회가 복음의 진리를 굳세게 전하고 성도들이 믿음에 굳게 서서 선한 일을 열심히 하여 선한 열매를 많이 맺을 때는 이단을 많이 물리치기도 하고 이단에 현혹되지 않게도 하여,
사회를 밝게 함으로 많은 사람에게 직접 간접으로 유익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된 성도들이 가져야 할 믿음은 그것이 삶 속에서 의롭고 빛 된 생활과 헌신과 봉사로 나타나는 실천적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약2:26).
그렇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으로서 믿음과 행함이 일치될 때 우리는 진정한 생명력 있는 믿음을 소유한 자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따른다 하면서도 그 신앙생활에 주님께서 친히 보여 주신 실천적 삶을 본받아 행동하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결국 온전한 믿음이 아니요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진정 행함이라는 옷을 입을 때만이 그 믿음이 온전케 되고 주께 인정받고 그 믿음의 살아있는 능력에 힘입어 은혜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의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두는 그 사랑과 의가 우리의 전 삶을 통해 나타날 수 있도록 실천적인 믿음 생활에 매진하도록 해야겠습니다.
8.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짓이 없는 믿음, 행함이 있는 믿음, 변함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라고 한탄하셨습니다. 이는 결국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많이 있지만,
주님께 합당한 온전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을 사모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여 거짓과 변함이 없는 그리고 항상 실천하는 귀한 믿음을 소유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시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말과 행위가 일치하는 성도의 삶은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지는 생활전도입니다. 먼저 믿는 성도들의 생활을 통하여 우리가 생활하는 지역사회가 복음화 되는 데 귀하에 쓰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