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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7:25-26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요”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법을 고친 세력이라는 제목으로 안식일을 주일로 변경시킨 세력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지난번에 카토릭의 글을 인용하여서 그래도 카토릭은 정직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의 법을 바꾸었다고 말을 하니까 말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로마의 도전이라는 책을 아십니까?
천주교회에서 나온 소책자를 우리 교회에서 다시 보충하여 작은 책자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는데 그 책에 개신교인들은 왜 일요일을 지키는가? 라는 제목으로 이런 내용이 그 가운데 있습니다.
로마의 도전에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을 제외한 세계의 개신교회의 교인들은 동일한 성경을 그들의 소중하고 유일한 무오의 스승으로 받들면서도 그 행위로는 개신교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16세기 이래 유대인들의 오랜 관습을 분명히 목격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경배하는 날로 정하신 그 날을 거부하고, 거룩한 책인 성경에 그 목적을 위해 단 한번도 언급된 일이 없는 날을 지키는 명백한 모순을 범해 오고 있다”
무슨 내용입니까? 개신교회에서는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을 따르지 않고 카토릭을 따르고 있다고 하죠? 카토릭의 유명한 출판물에는 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신부서한집 1890년6.1일 발행 173쪽
“성경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 한다 그러나 로마 카토릭 교회는 말 하기를 아니다 나의 신성한 권위로써 안식일을 폐하고 주일 중 첫째 날인 일요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말 하노니 교회전통은 성경보다 위에 있다고 선포하는 바이다 우리는 우리 교회를 전통에서 기초한 것이다”
카토릭은 안식일과 일요일을 어떻게 말합니까?
성경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한다 그러나 카토릭은 말하기를 뭐라고 합니까?
아니다 나의 신성한 권위로서 어떻게 했다고요? 안식일을 폐하고 일요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는 바이다.
1942년도에 발행한 천주교 세계회보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천주교 세계회보 1942년 8.14일자 4면
“교회는 그 창립자 그리스도께 받은 거룩하고도 절대적으로 확실한 권위를 가지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일요일로 변경하였다”
카토릭이 무엇을 받았다고요? 절대적이고도 확실한 권위를 가지고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 시켰다.
태양신을 믿고 있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서기 321년에는 일요일에는 모든 국민들은 휴식하라는 일요일 휴업령이 내려 졌고요.
로마의 종교 박해를 피하여 지하 묘소로 들어가서 살았던 그리스도인들도 밖으로 나와서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후 392년 로마의 제 50대 황제였던 대오도시우스1세는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승격을 합니다,
교회가 살판이 났습니까? 신앙의 자유가 주어져서 마음 놓고 그리스도교 믿음을 지킬 수는 있었지만 그 대신 교회는 급격히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그전 로마에서 가지고 있었던 미트라에서 수 많은 종교 유물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 출신의 장로교 신학자 뵈트너 박사는 4세기경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4세기 초, 서방을 다스리던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그리스도교에 호의를 베풀기 시작하고...324년,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종교로 만들었다. 결과로 신자가 되면 누릴 수 있는 특전을 얻기 위해 수많은 이교도들이 교회로 밀려 들어왔다. 화려한 이교 의식에 익숙한 이교도들에게 단순한 그리스도교 예배는 만족을 주지 못했으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이교적인 신조와 종교 행사들을 끌어들였다. 사람들은 점점 성경의 진리를 소홀히 여기게 되었고, 진리에 대한 신자들의 무지로 인하여 교회는 점차적으로 그리스도교의 교회라기보다는 오히려 이교의 교회라고 불러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교의 행습을 본받아 교회 안에는 화려한 복장을 차려입고 제사를 드리는 사제와 화려한 의식, 돌과 나무로 새긴 각종 성상들, 성수, 분향, 수사들과 수녀들, 연옥의 교리, 구원은 은혜보다는 행함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이교적 신앙이 일반 신자들과 성직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나갔다”(Liraine Boettne, Roman Catholicism, 11. The Prebyterian and Refomed pub-Iishing Co. 1979)
교회가 어떻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이교와 다를바가 없는 교회가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정말 믿음으로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을까요?
예 저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지지난 시간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라는 제목으로 조금 말씀을 드렸습니다.
전쟁은 전쟁영웅을 만들어 내고 교회에 대한 핍박은 신앙의 영웅을 만들어 냅니다.
교회가 부패 되어 갈 때 로마 교황권의 권위에 맞서서 진리를 보존하고자 나섰던 사람들 가운데 왈덴스 인들이 있었습니다.
로마시대의 박해가운데 진리를 수호하였던 사람들이 카타콤 지하동굴의 그리스도인들이었다면
종교 암흑시기 동안 진리를 수호하였던 대표적인 사람들이 왈덴스 인들입니다.
그들은 인적이 드문 알프스 산중에 자리를 잡고 시골 생활을 하면서 밖으로 나가 교황권에 의하여 부패된 교회의 신앙을 바로 잡기 위하여 진리를 전하였습니다.
그 당시는 교황권에 의하여서 성경을 볼 수가 없도록 종교적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성경을 가지고 있다 잡히면 바로 사형이었습니다.
왈덴스 인들은 보따리 상인처럼 생필품들을 가지고 가정을 방문하여 물건을 팔고 신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성경 진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그 일을 많이 감당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행상 차림으로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나간 사람들이 돌아 올 때는 50%정도 밖에 돌아오지 못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50%는 어떻게 되었다는 말입니까?
잡혀서 순교자의 자리에서 이나 심한 형이 동반된 그런 죽음으로 순교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들은 계속하여 복음을 전하면서 진리를 고수하였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들 중에도 변질된 성도들이 있어서 알프스 산중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산중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수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미 다니엘 시대에 이런 일이 있을 것임을 말씀해 주셨죠.
시작 때 읽은 말씀 다시 올립니다.
단 7:25-26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요”
“그가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서” 얼마를 지내리라 합니까?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간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핍박도 허락을 하시나요? 핍박이 오지 않도록 해 주시면 안되나요? 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핍박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핍박을 허락하실까요? 핍박을 허락하시는 이유에 대하여 증언의 말씀은 이런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행적 105 “그들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하여 새로 개심한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대신, 이미 성취한 일에 만족하도록 모든 사람들을 이끄는 위험에 빠져 있었다. 그분의 대표자들이 국외로 흩어져 거기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핍박을 허락하셨다”
핍박을 허락하신 이유 중 하나가 무엇이라 합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요?
이미 성취한 일에 만족하면서 안일한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 온다고요?
핍박이 온다, 핍박뿐 아닙니다. 갑작스런 재난으로 인하여서 우리가 가진 재물들을 없이 하실 수도 있습니다.
혹은 질병이나 수습할 수 어렵게 보이는 사고를 통하여서도 잠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깨우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 갈 수 있도록 길을 인도 해 주십니다.
저는 자급 사역을 하다가 아이들 교육문제 핑계로 경산으로 가서 큰 교회에 다니면서 정말 평안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 저를 세상은 가만두지를 못하였습니다.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시작한 일들은 자꾸 망하는 징조를 보였고 결국에는 내 힘으로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일어 설 수 없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분이 저에게 그런 말을 해 주는 것을 들었습니다.
장로님은 이런 생활이 체질이 아니라고요.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시는 분이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요.
그래서 다시 자급 사역의 길을 가게 되었고요, 하나님께서는 저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환경들을 다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저의 생활은 이 생활을 벗어나서 살아가도록 두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혹 아내가 교회에서 나가서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언질을 주지만 저는 한번 경험을 해 보았기 때문에 무서워서 나가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슬에 꼭 묶여서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근데 성도님들이 저를 쫓아 보내주시면 저도 하나님께 할 말이 있을텐데 그 일도 못하게 상처만 남기고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 같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신앙의 길을 너무 편하게만 하시려고 생각하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늘 데려 가시길 정말 원하신다면 평안하게 사는 길이 멸망의 길이라는 것을 아신다면 그냥 두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좀 더 나은 생활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더 충성하시고 주의 일을 받들어 함께 섬기게 되길 축복합니다.
교회가 그런 타협의 정신이 들어 올 때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정화시키기 위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때라는 고난의 시간을 허락 하셨습니다.
이 기간은 성경에 많이 언급되어 있는 시간입니다,
“때”를 성경은 “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4장에 보면 일곱 때를 지나리라 했는데 느브갓네살 왕이 7년을 짐승처럼 보낸 기사를 우리는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한 때와 두 때 그리고 반때는 몇 년을 가리키는 말입니까? 삼년 반이죠?
삼년 반을 달로 계산하면 몇 달이 되고요? 42달이 되고요.
일로 계산하면 며칠이 됩니까? 1260일이 됩니다. 참고로 한달을 30일로 계산해서 그렇습니다.
관련된 말씀을 올립니다.
첫 번째 기록된 말씀이 우리가 읽은 다니엘 7장 25절이고요.
다음으로는 이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 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그리고 마흔 두 달로 기록된 말씀이 있습니다.
계 11: 2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또 이런 말씀이 있고요,
계 13: 5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1260일에 대한 말씀도 있고요,
계 11: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1260일에 대하여도 이런 말씀이 또 있습니다.
계 12: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같은 기간을 어떤 곳에는 한 때와 두때 반때로, 또 어떤 곳에는 마흔두달로, 또 다른 곳에는 1260일로 기록되었다. 왜 이렇게 기록하도록 역사 하셨을까요?
여기도 어떤 섭리가 있을까요?
딸이 외국에 있는 엄마 에게 전화를 합니다.
엄마 언제 올거야? 응 1년 있다 갈게. 그리고 집에 왔습니다.
엄마 언제 다시 갈거야? 그래 삼백 육십 다섯밤을 지내면 갈게.
집주인이 집을 비우래 그래 열두 달만 참아 내가 데리고 갈게
지금 제가 무슨 이야기를 드리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똑 같은 일년 열두달 삼백육십오일을 다르게 말했죠?
기다리는 딸에게는 일년으로, 함께 하는 시간은 삼백육십오일로, 괴롭힘을 받는 날은 열두달로요,
저는 한때와 두 대와 반때도 그렇게 이해를 합니다.
모진 박해를 받는 시간은 한 때와 두때 반때로고요.
힘든 시기는 마흔두달이고요. 하나님의 품안은 천 이백 육십일로 말입니다.
꼭 그렇다고 볼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이해를 하니 은혜가 더 되드라는 것입니다.
이시기는 언제 였지요?
제가 지난 번 년도 하나 기억하고 있으면 좋다는 년도 기억하시나요?
세뿔을 뿌리채 뽑으리라는 예언이 마지막으로 성취된 동고트족이 멸망이 된 538년입니다.
538년에 1260을 더하면 몇 년이 됩니까? 1798년이 됩니다.
비실리우스
1798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538년 아리안주의를 신봉하던 동고트족이 멸망하던 해로부터 시작하여 교황권은 중세기를 완전히 주도하면서 유럽의 왕 중 왕으로서 자리를 확고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급속히 부패하였고 타락한 교권은 부패한 왕권에 의하여 몰락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프랑스의 혁명정부는 타락한 교황권의 반발로 일어났다고 하여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1798년 2.10일 프랑스 버티어장군이 거느린 군대가 로마성으로 쳐 들어가서 당시 교황 비우스 6세를 사로잡아 발렌스로 유배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그곳에서 옥사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한때와 두 대 반때의 삼년 육개월 1260일 그 날을 예언적인 환산으로 1260년은 동고트가 멸망된 해인 538년에 시작하여 교황이 잡이가는 해 1798년에 마쳐 졋습니다.
그런 일을 성경은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단 7:26-27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요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
이 말씀은 교황권의 몰락과 이후 부활 그리고 영원한 심판으로 인한 완전한 멸망을 함께 언급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요한이 예언한 몰락한 교황권이 부활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온 세계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찰라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은 어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결국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들이 이길 것이라, 우리에게 희망적인 말씀입니까? 지금은 그렇게 밝아보이지 않을지라도 더 어두원 가운데 살았던 성도들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수 백년 지하묘소에서 그리고 1260년동안 박해를 피하며 산중에서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잡혀서 맹수들에게 먹이로 화형장에서 불꽃이 되어 사라졌던 사람들의 신앙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더욱 우릴 위해 자기를 버리시고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신 예수그리스도,
그리고 우리를 끝까지 함께하시겠다고 하시는 그 분을 바라보시면서 더 믿음안에 살아가게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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