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동문 6명이 충남 공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사당역에서 아침 9시에 모이기로 계획을 세울 때만해도 여행 중에 예기치 못한 일들을 만나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날은 마침 날씨도 좋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일은 사당역에 모인 우리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되었다. 렌터카를 가져오기로 한, 장 학우가 렌터카를 운전하고 오는데 휴대폰을 집에 놓고 와서 다시 집을 다녀와야 한다며 예정보다 20분 늦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다렸고 약속한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가로수들이 늘어진 도로를 달리며 제대로 된 여행의 시작이라고 들떠있을 때, 장 학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친형이 돌아가셨다는 부고였다. 장 학우는 장례식장으로 가야했고 최 총무가 여행을 미루고 함께 조문을 가자고 했다. 하지만 장 학우는 오래 전부터의 약속이며 펜션도 이미 예약되어 있으니 여행을 진행해야 한다고 의왕역 부근에서 내렸다. 우리는 여러 의견 끝에 장 학우의 말대로 여행을 마치고 조문하기로 결정을 했다. 장 학우 대신 조 학우가 운전대를 잡았고 여행은 계속되었다. 하행하는 중에 수원 호매실동 능실초교에서 선 학우를 태우고 봉담IC를 지나가는데 다시 장 학우에게 전화가 왔다. 경황이 없어서 렌터카 키를 주지 않고 내렸다는 것이다. 우리는 동시에 깜짝 놀랐다. 자동차 키도 없이 자동차를 몰고 도로를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나온 자동차는 시동만 끄지 않으면 계속 갈 수 있다고 하니 아무도 자동차 키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자동차 키 없이 도로를 달린다고 생각하니 모두들 아찔했다. 장 학우는 구로역에 와서야 자신이 키를 가져온 것을 알았다며 미안해했다. 구로역 사무실에 가서 키를 아산배방역까지 운반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키를 맡긴 열차가 12시40분에 도착한다고 아산배방역에서 키를 받으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아산배방역에 도착하니 11시 반이었다. 시간이 남아 역 인근에서 경 학우네를 방문했다. 아담한 농장은 정돈이 잘 되어 있어 잡초를 보기 어려웠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농장을 구경할 수만은 없었다. 자동차 시동이 꺼지면 안 된다는 말에 경 학우가 깎아 준 참외를 먹으면서도 시동이 꺼질까 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번갈아 고개를 돌리며 자동차를 지켜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불안한 상태의 여행을 계속해야 하나 싶었다. 역사무실에 도착했는데 또 새로운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 기관사가 키를 가지고 아산역 종점까지 갔다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말하길, ‘모든 문서연락은 열차의 맨 뒤 칸에 있는 차장이 하고 있는데 전달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자신들은 연락을 못 받았다는 것이다. 열차기관사와 통화를 했는데 기관사는 아산배방역에 사람이 없자 그냥 출발했다는 것이다. 여행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 있을까, 본격적인 여행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김이 다 빠진 음식 같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는 다시 열차가 아산역 종점에서 아산배방역까지 세 정거장을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가 역사 직원에게 키를 받았다. 이번에는 경 학우가 운전을 했다. 그래도 신나게 가 보자며 출발을 했다. 공주에서는 시의 도시재생센터장을 하고 있는 봉 학우를 만나 운전대를 넘겨주었다. 보리밥집에 가서 나물을 섞어 보리밥도 먹었고 공주 무녕박물관을 관람했다. 우리는 숙소를 찾아갔다. 긴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출발부터 삐끗한 여행 탓에 모두 지쳐있었다. 하지만 머피의 법칙처럼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숙소인 공주한옥마을에 가서 예약을 확인하니 다른 날짜로 예약이 되어 있었다. 허탈함과 아쉬움은 말할 것도 없고 그쯤 되니 여행 자체가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직원이 여기저기 수소문한 결과 누군가 예약을 취소한 방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정에 없던 숙소에 각자 짐을 풀고 보니 본래 예약이 되어 있던 숙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고 열악한 숙소다. 침대 하나에 거실 하나였고 크기도 협소했다. 분위기를 돋우려고 봉 학우가 공주에서 제일 맛있는 한우고기집이 있다고 가자고 했다. 하지만 겨우 찾아 도착하니 7일 전에 이전했다는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허탈함은 마지막 남은 힘마저 빼버렸지만 다 오늘의 팔자려니 하며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다른 고기집에 가서 대강 끼니를 해결하고 숙소로 가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을 만큼 짜증나는 시간이었다. 비는 쏟아지고 날까지 어둡고 운전까지 난폭해져서 불안했다. 숙소를 못 찾아 숙소 근처를 두어 바퀴 돌고 겨우 찾아 간 모텔 방에서 맥주 한 잔 씩을 마셨다. 우리는 그날 겼었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이가 없어 한 바탕 웃었다. 다음날 비는 오다 말다 했고 무지개도 떴다가 사라졌다. 공주산성시장은 장날이 아니어서 그런지 조용했다. 우리가 선지국을 시켜먹는데 반찬이 여러 가지 나와서 놀랐다. 전라도만 그런 줄 알았는데 여기도 그러냐며 모두 맛있게 먹고 나왔다. 제민천변 물은 졸졸 쉬지 않고 흐르며 오랜 이야기를 재갈거렸다. 그나마 시원한 풍경이었다. 봉 학우가 근무하는 도시재생센터에서 도시재생에 관한 강의를 듣고 나왔다. 우리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문학관’에 들렀다. 4년 전에 시향문학회 회원들과 같이 왔던 추억을 회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주말이라 나태주 시인은 없었고 책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진 몇 장을 찍은 후 다음 장소인 박찬호 생가로 이동했다. 야구선수 박찬호 생가는 보수하여 만든 기념관이었다. 보수비용이 많이 든 것 같았다. 그곳을 들러보니 마치 박찬호선수를 만난 느낌이었다. 돌아보고 나왔을 때 비가 오락가락 했다. 참석하지 못한 학우들 선물을 주려고 농협마트에 가서 가변에다 주차를 하고 총무가 들어가 밤꿀 1통씩을 사 가지고 나왔다. 후진해서 출발하려는데 우리들의 차 뒤에 모닝 차가 있는 걸 모르고 들이받았다. 렌터카는 뒷부분이 찌그러졌는데 다행히 모닝 자동차는 괜찮았다. 공주시청 부근에서 봉 학우를 내려주고 올라오며 렌터카 뒷부분에 난 상처 때문에 의논을 했다. 출차한지 보름밖에 안 된 신형 차이기 때문에 일반 사고가 나면 기본이 50만원이고 수리비는 별개라고 했다. 차를 렌트한 인천 송현동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였다. 장 학우를 다시 만나 렌터카 사무소로 갔더니 차 상태를 확인한 렌터카직원이 견적은 내일 나온다고 했다. 우리는 저녁을 같이 먹고 헤어졌다. 집에 도착하니 강릉에 간 아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빈 집에서 허탈하고 씁쓸한 하루를 떠올렸다. 다음 날 장 학우한테 연락이 왔다. 찌그러진 렌트카 뒤에 모닝 차량번호가 찍혀 있다는 내용이었다. 렌트카 수리비는 120만 원이 나왔다고했다. 정말 모닝 자동차는 괜찮았던 걸까. 걱정도 걱정이고, 돈도 돈이지만, 난처하고 불길했던 여행의 기억들이 모닝의 차량번호처럼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이상하고 끝까지 불완전한 여행이었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기는 하다. 앞을 바라보며 달리지만 뒤에 불안한 기억을 달고 달리는 게 삶 아닐까. 아침에 출근하려고 자동차 문을 열다 나도 모르게 손에 쥔 자동차 키에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