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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사에서 1960년대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전쟁의 상흔에 젖은 1950년대 전후문학이 힘을 잃으면서 새로운 문학에 대한 탐구가 필요했다. 당시 사회는 경제개발계획이 본격화하면서 산업화에 가속도가 붙었다. 전장에는 공장이 세워졌고 다양한 직종의 일자리들이 생겨났다. 농촌에서 도시로 노동력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공동체의 가치는 점차 퇴색됐다. 자본의 논리가 점차 사람들을 옥죄기 시작했다.
소설계에도 변화의 싹이 움텄다. 산업화의 격랑 속에서 개인의 자의식을 좇는 4.19 세대 문학기수들이 문단에 대거 등장했다. 그 가운데는 최근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도 있었다.
이청준은 <퇴원>(1965)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장한다. <병신과 머저리>(1966)로 동인문학상(1967), <매잡이>(1968)로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신인상(1969), <이어도>(1974)로 한국일보 창작문학상(1975), <잔인한 도시>(1978)로 이상문학상 등 다양한 문학상을 휩쓸었다. 타계 후 정부는 그에게 문화예술인에게 주는 가장 영예로운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그의 소설은 책과 영상을 넘나들었다. 영화 <석화촌>(1968)은 제9회 청룡상 작품상(1972)을 수상했고, <당신들의 천국>(1976)은 같은 해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벌레 이야기>(1985)는 2007년 영화배우 전도연을 칸의 여왕으로 만든 ‘밀양’으로 재구성됐다. 그는 임권택 감독과 친분이 각별했다. <서편제>(1976)는 1993년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의 영예를 안았고 <선학동 나그네>(1980)는 2007년에 영화 ‘천년학’으로 완성시켰다. 1996년에는 <축제>를 소설과 영화로 동시에 발표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사실을 넘어 관념으로 그린 당신들의 천국
이청준은 현실을 관념적으로 표현하는데 능숙한 작가다. 그의 소설은 지적인 어휘로 쓰여 있어 난해하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현실과 관념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장을 통해 그는 6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가로질렀다.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당신들의 천국>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천국, 지옥, 믿음, 사랑, 자유 등의 관념을 낯설게 엮은 작품이다. 각각의 관념은 인간 존재와 세계를 탐구하는 촉매로써, 설득력 있는 이미지로 표현된다.
소설은 ‘한센병’(일명 나병·문둥병) 환자가 모여 사는 소록도를 배경으로 1970년대 한국 사회의 정치적 매커니즘을 드러낸다. 사건의 중심인 소록도 재건 사업은 개발독재를 은밀히 빗댄다. 소설은 소록도의 역사와 실재인물에 기대고 있다. 작가는 문학과지성사 초판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많은 부분을 실재의 섬 소록도와 소록도의 일에 관계된 분들에게 취재하였다. 그러나 <당신들의 천국>은 물론 한 편의 소설작품이며, 소설 속의 이야기들 역시 과거나 현재를 막론하고 섬의 실제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소설은 3부로 나뉜다. 1부는 낙토 재건을 둘러싸고 소록도 조백헌 원장과 이상욱, 원생들 간의 갈등을, 2부는 조원장이 원생들을 설득해 오마도 간척사업을 벌이면서 겪는 정신적 방황을, 3부는 소록도를 떠난 조백헌이 다시 돌아와 정착하는 과정을 담았다. 소설 전개상 특징은 특정 인물에 대한 내력이나 사건을 뿔뿔이 흩어 독자가 사건의 퍼즐을 짜맞출 수 있게 구성한 점이다. 가령 이상욱의 과거는 그의 회상, 한민이라는 소설 습작생이 쓴 소설의 내용, 일제치하 황장로가 겪은 이야기 등에서 드러난다.
불신과 배반이 점철된 사자의 섬
소설의 배경인 소록도는 죽은 자들이 남긴 불신과 배반이 대를 잇는 공간이다. “이 섬에서는 죽은 자들만이 말을 합니다. (…) 살아 있는 사람은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 이 섬은 바로 그 사자들의 넋이 살아 있는 사자들의 섬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조원장은 죽은 섬을 되살리기 위해 “우리는 이 섬을 다시 꾸며야겠습니다”라며 “행복스런 낙토”를 만들자고 외친다. 원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했고 이상욱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불신과 배반의 역사 때문이다.
섬의 질곡은 일제 말기의 4대 원장이었던 주정수로부터 기인한다. 주정수는 원생들에게 “최소한의 긍지와 보람"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며 생활환경을 개선해 “그들의 고향”을 만들자고 역설한다. 민주적인 일터를 위해 원장과 원생의 교량 역할을 하는 ‘환자 평의회’를 만든다. 원생들은 “새 낙토의 꿈에 부풀어 몸살”이 날 정도로 열심히 일에 매진한다.
그러나 ‘보은 감사일’을 만들어 노임을 강제로 헌납하게 하자 작업 의욕이 떨어진다. 그때부터 주정수는 원생들을 본격적으로 억압한다. 작업 진행과 비품 등을 관리하는 ‘상관단’과 마을을 단속하는 ‘순시소 본부’를 만들어 원생들을 일터로 내몬다. 원생들은 사토의 “무서운 가죽 채찍 아래”에서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도록 노동에 시달린다. 새로운 시설은 이용되지 않고 “조심스럽게 모셔지고 있는 형편”이었다. 원생들의 피로 만든 공원에는 주정수의 동상이 들어선다. 주정수는 섬의 모든 사람이 다 모이는 동상 참배에서 죽임을 당한다.
배반은 환자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단종수술을 받은 이상구와 지영숙 사이에 사내아이가 태어난다. 사내아이는 억압 속에 꽃핀 자유와 사랑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상구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극한 불안심리를 느낀다. 그는 윗사람의 신임을 받기 위해 굳은 일을 다했고 공적을 인정받아 순시원 자리를 얻는다.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는 사내아이가 다섯 살이 되자 깊은 밤에 고깃배를 태워 내보낸다.
이상구는 점점 권력의 맛에 취한다. 원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높은 사람들의 눈에 들어 평의회 의원자리까지 꿰찬다. 자신의 충성심을 과시하기 위해 주정수 원장의 업적을 기리자며 기념 동상 건립을 건의한다. 동상 설립 과정에서 강제적인 기금 각출이 이뤄졌고 그도 원생들의 칼을 맞는다.
불신과 배반이 골은 주정수가 떠난 지 30년이 되도록 아물지 않았다. 조원장은 주정수의 내력을 듣고도 그들을 구제하고 싶은 마음에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원생들을 회유한다. 손가락 발가락이 없는 ‘문둥이’도 축구를 할 수 있다면서 팀을 구성하고 외지 사람들과 시합을 주선하는 등 원생들의 단합을 이끌고 사기를 충전한다. 원생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린다.
그렇지만 이상욱은 예외였다. “명분의 지나친 완벽성, 명분이 너무 훌륭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 명분엔 입을 열어 말을 할 수 없었던 명분의 독점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억압 속에 꽃핀 자유와 사랑의 상징’ 이면서 ‘자유와 사랑을 버린 배신자의 아들’이었다.
당신들 그리고 문둥이만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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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이상욱은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가 경계하는 ‘당신들의 천국’은 지배자의 의해 규정된 사회이다. 그에게 조원장은 재건 사업을 시작하면서 “반발 따위엔 아예 귀도 기울이지 않으려” 했고 “한번 결정이 내려진 일에 대해서는 오로지 일사불란한 실행”뿐이었다.
원생들은 조원장이 “4,5보 거리에서 얼굴을 반쯤 옆으로 돌리고 거기다가 손을 가리고서야 말을 건넬 수 있는 규칙”을 철폐하고 “직원 지대와 병사 지대의 경계를 가르고 있던 철조망을 철거”해도 “그러나 보다”하는 표정일 뿐이다. “그저 그렇게 덤덤한 표정으로” 조원장의 명령에 따라 공원길을 다듬거나 벽돌공장 굴뚝을 허무는 등 수동적으로 행동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들은 조원장이 만들려는 낙토가 ‘당신들의 천국’임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소설 첫머리에는 ‘원장의 부임’과 ‘두 사람의 탈출’이 같이 언급된다. 조원장은 탈출의 원인을 원생들이 섬을 낙토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고 섬 재건 계획을 세운다. 주목할 점은 탈출사고가 “새 원장에 대한 우연찮은 부임 선물”이라는 사실이다.
이상욱은 탈출을 “섬의 지배자들이 저들에게 버릇 들여온 공포를 박차고 자신의 선택과 용기에 의지한 희망찬 인간에의 모험”이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섬에 들어왔던 모든 지도자는 ‘문둥이들만의 천국’을 만들려 했고, 그 속에 있는 원생들은 인간이 아닌 문둥이로만 규정되는 무기력한 존재로만 살아갔다. 지배자를 거부하고 바다를 건너는 행동은 성패를 벗어나 인간으로서 삶을 개척하는 의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천국으로 가는 길
“나의 문학작업은 (…) 애초에는 자기 구제의 한 몸짓으로서 출발되었고 아직도 나의 노력의 많은 부분은 그것에 바쳐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나의 문학이 그러한 자기 구제적 몸짓에서 시작되었고 또 계속해서 그것에 많은 노력이 바쳐지고 있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청준 <소문의 벽> 후기)
이청준은 ‘자기 구제의 몸짓’으로 삶을 실천하고 완성한 소설가였다. 자기 구제의 범위는 소설가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황량하고 억압적인 사회의 모든 이를 포용한다. 그렇다면 그가 ‘당신들의 천국’에서 ‘우리들의 천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독자에게 던지는 구제의 몸짓은 무엇인가?
이상욱은 자유의지를 중시했지만 그의 자유는 불완전했다. 자유라는 이름 아래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믿지 않으며 끝까지 의심한 탓이다. 이상욱은 원생들이 원장의 전임 발령을 취소하는 목적의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을 보고 탈출을 감행한다. 원장의 희생정신에 감동했는데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도피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자유는 오히려 배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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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보완하는 가치를 제시하는 사람은 황장로이다. 그는 섬을 떠나는 조원장에게 “자유라는 건 싸워 빼앗는 길이 되어 이긴 자와 진 자가 생기게 마련이지만, 사랑은 빼앗음이 아니라 베푸는 길”이라면서 사랑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조원장은 뭍에서 “자유와 사랑의 방법이 서로를 용납할 수 있는 길”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해답을 찾아야 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5년이 지날 무렵 상욱에게 온 편지는 그를 다시 섬으로 이끈다. 하지만 그는 자유와 사랑을 행하는데 실패한다. “자유나 사랑으로 이룩해져 나감은 그 자유나 사랑 속에 깃든 힘” 때문인데 그는 이제 원장이 아닌 시민이었다. 여기에서 힘은 ‘원장의 힘’이 아니다. 원장이라는 지위는 힘을 행할 수 있지만 그들과 “공동 운명”이 아닌 탓에 “우상”을 낳는다. 반대로 시민이라는 위치는 그들에게 믿음을 얻을 수 있지만 “실천전인 힘”을 행사할 수 없다.
조백헌에 의하면 사람의 운명은 “자생적”이기 때문에 억지로 어느 쪽에서 어느 쪽으로 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단순히 시민으로서 섬에 산다고 해서 섬과 “공동 운명”이 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그는 “믿음의 씨앗과 싹”이 있으면 힘을 모아 실천이 가능하고 그것이 “공동운명의 튼튼한 가교”로 이어진다면서 미래를 낙관한다.
소설은 믿음을 얻은 조백헌이 건강인 서미연과 원생 윤해원의 결혼을 주선하고 목적을 이루는 것으로 끝난다. 건강인과 병력자의 결혼은 “가장 분명한 신뢰감의 확인”이며 ‘우리들의 천국’으로 나아가는 희망이다.
이청준의 ‘자기 구제의 몸짓’은 자생적 운명이 모인 공동 운명 안에서 사랑과 자유에 근거한 힘을 행사해야 한다는 정치관으로 이어진다. 외부의 힘에 규정된 사회는 ‘당신들의 천국’일 뿐이라는 얘기다. 자생적 질서로 만드는 사회가 ‘우리들의 천국’이다. 사실 이런 그의 주장은 이상주의적이며 민주주의의 이념을 벗어나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절망 속에서도 ‘우리들의 천국’을 위한 희망과 실천을 꿈꾸게 한다.
그는 개판본의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나는 어느 땐가 그것(당신들의 천국)이 ‘우리들의 천국’으로 바뀌어 불릴 때가 오기를 소망했고, 필경은 그때가 올 것을 확신했다. (…) 그렇다면 과연 이제 우리에겐 한 작은 섬의 이름으로 대신해 불렀던 그 ‘당신들의 천국’을 ‘우리들의 천국’으로 거침없이 행복하게 바꿔 불러도 좋을 때가 온 것인가. 대답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각자의 자유이다.”
/김유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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