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흥로 7코스: 영평팔경길 18.2Km 포천명승지의 중심 영평팔경을 찾아가는 길 ※ 永平八景歌 “화적에서 벼를 베어, 금수로 술을 빚어, 창옥병에 넣어 들고, 와룡말 빗겨 타고, 낙귀정 돌아드니, 청학은 간데없고, 백로만 날아드니, 선유담이 예 아니냐” 라고 國樂으로 부르고 영평팔경소리보존회에서는 매년 축제를 열고 있다 포천 영평면 등은 오늘날 일동면, 이동포천시 북부 지역의 옛 이름으로 영평 에는 예부터 맑은 계곡과 빼어난 풍치가 많았는데, 이들 명소를 묶어 “영평 8경”이라 부르고 있다. 영평팔경길에서 만나는 낙귀정지는 영의정이었던 황씨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금수정은 봉래 양사언의 시조비 현판을 만날 수 있다. 오래전부터 시인 묵객들이 지나칠 수 없었던 영평팔경! 선조들이 느꼈던 감성을 생각하며, 자연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경기옛길 가이드북) 일시: 2022년2월25일 금요일 맑음 동행: 나홀로 코스 영중농협→낙귀정지→금수정→운산리자연생태공원→주상절리길(구라이길)→한탄강지질공원 西門行 (작자미상의 한나라 때의 백성들의 노래) 生年不滿百: 태어나서 백년도 못다 살면서 常懷千歲憂: 근심은 항상 천년을 품네 晝短苦夜長: 낮은 짧고 밤이 길어 괴로우면 何不秉燭遊: 어찌 불 밝히고 놀지 못하리 爲樂當及時: 즐겁게 노는 것도 때가 있거늘 何能待來玆: 어찌 내일을 기다리나! 오래 살아도 백년을 채우기 어려운 게 인생이거늘 끝이 없을 근심 걱정은 이미 먼 옛날에 깨달은 것을 지금에도 그대로다. • 들머리로 가면서 영랑문학상에 기업인 某씨가 거액을 기부하면서 온 국민들이 시를 좋아하고 많이 읽으면 감성이 풍부해지고 “詩는 無에서 有를 創出” 한다는 기사를 아침신문에 읽으면서 나도 남은 餘生을 많은 詩를 접 할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트레킹중에는 금수정이 있는데 조선의 선비 중 많은 문인들이 찾고 시를 남겼으니 살펴 봐야지 하고 06시 출가하여 07시3분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고 양문1리터미널 표를 구입하였더니(요금 6100원) 7시20분 철원행 첫 버스로 3000번 경기고속이며 좌석번호가 5번이지만 포천까지는 4명뿐이고 오늘 코스의 들머리 양문농협 앞에 8시50분에 도착되었으니 한시간30분 걸렸다 양문1리터미널에서 내리고 횡단보도를 건너 곧바로 영중농협 옆 먹거리골목으로 접어들어서 300m가량 진행하니 낙귀정지안내문이 보인다 • 樂歸亭址 낙귀정은 영평 8경 중 제4경이며 포천10경에는 3경으로 영중면 거사리에 있었지민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고 한다 안내문에 낙지정지는 영평팔경(경흥길 제7길)의 하나로 뛰어난 경관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낙귀정은 영의정으로 등용된 重臣 황씨가 관직을 떠나 고향에 돌아와서 자기 집 근처에 정자를 짓고, 낙귀정이라 이름을 지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그 뒤 황 씨는 나라를 배반했다는 무고로 사약을 받았고, 살던 집과 부인, 자식까지 처벌당했다. 그래서 자세히 밝히기를 꺼려한다 官罷向芝川坐樓院- 芝川 黃廷彧(1532~1607) 午憩東樓卸馬鞍: 오후 말안장을 벗기고 동루에 쉬자니 (憩: 게卸: 사) 窮陰忽作暮天寒: 섣달이라 갑자기 저녁 날씨가 싸늘하다 靑春謾說歸田好: 젊을 때 전원으로 돌아가자 쉽게 말했는데 白首猶歌行路難: 백발이 되어서도 행로난을 노래하다니 天或試人聊自遣: 혹 하늘이 나를 시험하여 스스로 위로하게 함인가 雨還留客暫求安: 비가 나를 붙잡아 잠시 편안함을 얻는다 (暫:잠) 明朝刮目鄕山碧: 내일 아침 고향 산 푸름에 내가 놀랄까 且費今宵一夢闌: 오늘 밤을 내게 주어 한가한 꿈꾸어 막으려한다 吉州八詠- 黃廷彧 門巖釣魚 萬古通天一暫開: 만고토록 하늘로 통하는 하나의 구멍이 열려 있어 (暫: 규) 衆魚無數此沿洄: 수많은 물고기 여기로 거슬러 올라오네 漁人擧釣爭相叫: 어부는 낚싯대 잡고 다투어 서로 소리치는데 碧海長鯨得掣來: 푸른 바다의 큰 고래가 끌려오는구나 (掣: 체) 그러나 찾는 사람도 있다 樂歸亭- 李時省(1598년∼1668) 郡松隱暎鶴曾巢: 뭇소나무 으슥하니 학이 깃들이고 半壁橫垂滴露梢: 절벽 가운데 빗겨 드리웠으니 나무 끝에 이슬방울 떨어지네 亭號樂歸應有意: 정지 이름이 낙귀라 했으니 뜻이 있는 듯 何人此地更誅茅: 어느 사람 이 땅에 살았던고 낙귀정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고 李時省은 조선 후기의 경기도 포천 출신의 문신으로, 본관은 慶州. 자는 子三, 호는 麒峰으로 白沙 李恒福의 從孫으로 술 좋아하고 명승지를 찾아다니면서 詩를 짓고 노래를 부르다가 52살에 증광시문과병과에 합격하고 벼슬살이를 하다가 騏峰集을 남기고 71세로 죽었다(포천읍지) “포천문향천년”집에 포천십경의 詩가 있다 樂歸亭址- 김경식 -중략- 이슬도 피하지/ 못하게 재갈물리고/윤회하는 풀들이/허리 춤주다/생 꽃잎만 떨구며/부활하지 못한/빈 협곡엔 살안개 핀다 ⚈ 포천십경 1. 山井湖水 2, 靑鶴洞 3. 樂歸亭址 4. 金水亭 5.禾積淵 6. 臥龍潭 7. 仙遊潭 8. 白鷺岩 9. 倉玉屛 10. 지장산보살 ⚈ 영평팔경 1경: 禾積淵 2경: 金水亭 3경: 蒼玉屛 4경: 樂歸亭址 5경: 仙游潭 6경: 臥龍岩), 7경: 白鷺洲 8경: 靑鶴洞 안내판을 지나 거사3리 교통표지판을 보고 뚝방으로 올라서면 은혜교가 나오는데 다리 중간 부분에서 앞 뒤로 낙귀정지가 있을만한 곳을 살펴보았지만 그럴듯한 곳을 찾지 못하고 다리를 건너니 마을유래판에 옛 지명은 은잿골로 유성룡의 후손이 임진왜란을 피하여 숨어들어 살았다고 되어 있다 • 생각하기를 낙귀정을 지은 황씨 정승은 芝川 黃廷彧(1532~1607)일 것으로 그는 이곳 출신으로 황희 정승의 6세손으로 지천집을 남겼다 전곡 방향길이 나오고 15시 방향으로 영평교가 흐릿하게 조망되지만 거사3리 마을회관(경로당)관 표식을 보고 마을길을 따르다가 우측으로 휘돌아 돌면 형제목장이 나오고 밭 끝에는 길죽한 바위 앞에 양평문씨충선공파가족묘원이 있고 넓은 공터를 지나서 삼거리가 나오면 우측에 영평교가 있다 ⚈ 永平橋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영송리와 영평리를 연결하는 다리. 영평교의 길이는 150m, 폭은 9.6m이다. 2차선이며 다리 높이는 7.4m로 영평교는 1992년1월16일에 준공하였다. 시도 9번 도로가 지나고 포천시 영중면 영송리 남쪽으로부터 영평교를 지나 영평 초등학교 앞에서 국도 37번과 접한다. 영평교를 포함해서 남쪽으로는 포천시 영중면 영송리이지만 다리를 건너 영평교 북쪽은 영평리이다.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 마을 앞인 영평교 아래로 영평천이 흐른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영평교에서 목적지(한탄강지질공원, 비둘기낭)는 14Km로 나래산업의 큼직한 표석이 있고 백운계곡 22Km 산정호수 17Km라는 교통표지판을 볼 수 있다 영평천의 영평교를 건너서 우측으로 영평교 밑을 통과하면 영평천 뚝방이고 긴의자 하나가 있어서 배낭 벗고 쉬었다 지나 온 은잿골은 豚舍가 많아서 糞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할머니들 셋이서 뚝방길을 걷는다 ⚈ 永平川 백운산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한탄강으로 유입되는 永平川변에 우거진 숲, 맑은 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명승지가 많아 옛부터 시인 묵객들이 자주 찾아 즐기었는데 여덟 곳이 특출하여 永平八景이라고 하였다. . 영의정을 14년간이나 지낸 朴淳은 이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매료되어 선조대왕이 조금만 더 있어 달라는 간곡한 만류도 물리치고 이곳을 찾아 창옥병 건너 언덕에 집을 짓고 살며 속세에서 벗어나 시골 백성 노인들과 자리를 함께 하며 즐겁게 지내면서 배우러 오는 자가 있으면 서로 학문을 강론하고 지내다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題二養亭壁- 思菴 朴淳(1523∼1589) 谷鳥時時聞一箇: 골짜기의 새는 때때로 한 번씩 지저귀는데 匡床寂寂散群書: 너른 평상에는 고요하여 책들만 흩어져 있네 可憐白鶴臺前水: 애석하구나, 白鶴臺 앞의 저 물결은 纔出山門便帶淤: 산문을 막 벗어나자 흙탕물과 섞이나니. (纔: 재) • 이양정은 어디에 있었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말뚝이 있는데 “임진강38선역사체험길”이라고 되어 있고 포천야구장(2.37Km) 알림이 있다 강둑을 한동안 걷다가 정자와 운동 시설이 있는 곳에서 좌틀로 내려서면 징검다리(직사각형의 돌다리 12개)가 나오고 조금 후에 오른쪽을 팍 꺾어야 하는데(↱) 전봇대에 방향 표시 알림이 있다 그리고 논과 비닐하우를 지나면 양쪽에 비닐하우스가 있고 비닐하우스 사이로 빠지면 2차선 아스팔트포장도로와 접속하고 멀리 五佳里 보이는데 차량통행이 많고 창수면 알림을 볼수 있다 영중면에서 창수면으로 바뀐다 포천시는 평화시대 남북경협 거점도시가 된다고 홍보하지만 그렇게 되면 좋으리. 정류장이(60-1 60-2 89-1) 나오고 건설 하이콘을 지나 움트리 표식을 보고 포천야구장을 지나 창옥교(밑에는 오가천)를 건너 곧바로 좌틀하면 길 끝에 계단(44개)이 나오고 계단을 오르면 文溫公 金九容과 永昌公 金承澤 上洛公 金昴 묘소가 있고 옆에는 안동김씨고택과 금수정이 있다 • 움트리: 향신료(소스, 프리믹스, 장류) ⚈ 五佳川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에서 발원하여 창수면 중앙을 관통하는 영평천에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6.5㎞이고, 유역 면적은 9.73㎢이다. 한냉기 앞의 개울을 오가리 개울이라 부르고 있는데 한냉기도 오가리 내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지명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다섯 갈래의 길이 있었으므로 오거리·오가리·오가라고 하였다. 또 다른 유래로는 금수정, 창옥병, 아름다운 강, 산, 마음씨 좋은 사람들 등 다섯 가지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여 伍佳里, 五佳里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 金水亭(향토유적 제17호) 輿地圖書에 金水亭은 “永平縣 서쪽 7리에 있고, 옛 府使 金矱이 창건한 樓亭으로 되어 있지만 이 정자는 고려 후기의 文臣이며 文人인 척약재(惕若齋) 金九容(1338~1384)의 아들 金明理가 아버지를 위해 세운 정자라고 하였다. 정자를 지을 당시 이곳이 풍수로 지리적으로 소(牛)의 머리를 닮아서 정자이름을 “牛頭亭”이라 했다. 그후 蓬萊 楊士彦이 “金水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다. 양사언은 이 집안(안동김씨고택)의 사위로 시와 명필로 이름나 정자에 글씨를 많이 남겼다. 金水亭은 포천 永平川으로 둘러싸인 절벽위에 위치하고 있다. 예부터 永平八景의 하나로 손꼽힌 절경으로 조선시대 문인들의 3대 명승지다 • 3대 명승지: 금수정 도봉산 금강산 • 名勝 1761년 영조 때 문사 이현운은 명승은 “경치 좋은 곳으로서 예술적 가치가 크고, 경관이 뛰어난 곳”이라고 정의를 내렸고 정자 이름은 牛頭亭→錦水亭→金水亭으로 바뀌었고 또 소유자도 金穫→楊士彦→安東金氏로 되어 있다 금수정 앞에는 金九容 詩碑가 있는데 전면에는 김구용의 시 후면에는 李穡과 鄭夢周 그리고 李崇仁의 시가 있다 帆急- 惕若齋 金九容 帆急山如走: 돛이 빨리 나부끼니 산이 달리는 듯 舟行岸自移: 배가 나아가니 언덕이 스스로 옮기는 듯 異鄕頻問俗: 낯선 땅에 이르면 풍속을 묻고 佳妻强題詩: 경치좋은 곳에선 억지 시를 읊고요 吳楚千年地: 오나라 초나라 오래된 땅에 江湖五月時: 양자강과 호수는 오월이구나 莫嫌無一物: 내 한푼 없다고 싫어를 말라 風月也相隨: 나에겐 아직도 풍월이 서로 따른다네 李穡은 척약재의 시를 가리켜, “붓을 대면 구름이나 연기처럼 뭉게뭉게 시가 피어나온다.”고 하였고 東文選에 김구용의 시 8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특히 武昌詩가 유명하다. 許筠은 이 시를 들어 淸贍하다 하였고, 申緯도 東人論詩絶句에서 김구용의 시를 들어 감탄하고 있다. 문집인 惕若齋集이 전하고 있다. 또 앞면 하단에는 “萬物은 죽어서 그 根本으로 돌아가나니 人生의 죽음 또한 끝이 아니다.” 라고 牧隱 李穡은 金先生의 어머니이신 三韓國夫人 驪興閔氏의 墓誌銘에 써서 傳하여주고 있다. 後面 道美寺寄敬之- 牧隱 李穡 六友堂中君子居: 육우당에 군자가 살고 계시기에 滿天淸興更無餘: 온 세상에 가득한 흥취 다시 남음이 없네 滂江家處多苛絶: 驪江 가는곳마다 좋은 경치 많아 欲乞殘生對結盧: 원컨대 남은 삶 마주보고 집지어 살고 싶다네 • 六友: 김구용의 친구들(雪. 月. 風. 花. 江. 山) 揚子江渡望北固山悼- 圃隱 鄭夢周 先生豪氣蓋南州: 선생의 호기가 중국 남쪽을 다 덮으니 憶昔同登多景樓: 다경루에 더불어 오른 옛일 생각나네 今日重來君不見: 오늘 다시 왔어도 그대 볼 수 없으니 蜀江何處獨魂遊: 양자강 어느곳에 홀로 넋이 떠 계시느뇨 重九感懷- 陶隱 李崇仁 去年重九龍山O: 작년 구월구일 용산 추흥정에서 坐客望若登神仙: 앉아계신 모습 바라보니 신선이 오르는 듯 達可放歌徹寥廓: 정포은 노래하니 하늘을 뜛고 敬之下筆橫雲煙: 김척약재 글을 쓰니 구름이 도는 듯 하네 • 봉래 양사언의 시비는 “태산가”를 한글 흘림채로 쓰여 있다 스탬프함이 있어서 경흥길 패스포트에 스탬프를 찍고 금수정 안내문을 살펴보고 정자에 올라 정자안을 빙 둘러보니 명사들의 詩板이 걸려 있다 정자를 벗어나서 文溫公安東金氏世阡碑를 눈팅하고 안동김씨고택 옆에 금수단 사이 잔디 밭에서 배낭을 풀고 휴식을 한다 ※ 안동 김씨 고택(경기도문화재자료 제138호) 안동 김씨 고가터는 조선시대 포천지역에 거주했던 안동 김씨의 고택으로 2004년 발굴조사를 통해 안채와 사랑채 등의 초석이 발견되었다. 고가에는 맑은 물과 절경이 어우러진 영평지역 8곳의 절경(영평팔경) 중 금수정이 있었으며 예부터 많은 선비들이 찾았던 곳으로 외부 손님들이 자주 방문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가옥구조에서 사랑채의 규모가 큰 편이다. 안동김씨고가는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며, 한강 이북 지역에 몇 안 되는 조선 후기 양반가옥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등을 복원하였다(백과사전) 아쉬운 것은 영평천으로 내려가서 암각문과 인근에 있다는 포천십경의 9경이고 영평 팔경의 3경인 창옥병을 살펴봐야 하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안동김씨고택 안을 힐긋거리면서 오가교로 진행하였다 영중농협에서 금수정까지는 8Km이고 운산리 표석은 4.9Km다 운산리까지는 도로를 따라 간다 마을길을 걸다가 도로와 접속하니 “ㅜ”字 갈림길로 좌측에는 오가교가 있고 경흥길은 우틀로 87번 도로를 따라 진행되는데 오가교차로 앞에서 “敬事而信” 사자성어를 본다 오가IC를 밑으로 계속 직진하면 오가3리마을회과 보장초교버스정류장을 지나면 삼거리가 나오고 이정표를 무시하고 창동로 따라 계속직진으로 도로를 따라간다 미군사격장에서 사격하는 총소리가 들려진다 뙤약볕에 도로 따라 걷는 것이 지루하고 덕고개 마루턱까지는 완만한 오르막이다 12시16분 운산리 표석과 운산리농원이 있는 고개마루턱에 도착하니 버스정류장이 있다 11.9Km를 걸었으니 망설여진다 오늘은 접자하고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좀처럼 오지 않아서 “에라이 나머지도 걷자”고 마음을 바꾸고 고개를 내려가니 갈림길이 나왔고 좌측으로 진행하니 운산리 마을회관을 지나서 게이트볼장이 나왔고 슈퍼가 있다 슈퍼를 들려 보약 한통 챙길가도 생각했지만 외면하면서 지나치니 아쉬운 것은 구라이골 경치 좋은 곳에서 몸 보신을 해야하는데... 운산리 자연생태공원이 표석이 보이고 구라이골로 캠프장이 있고 캠프장에는 오터 캠핑장도 있지만 한산하다 코로나19의 영향인 것 같다 캠핑장 뒤로 진행하면 표석모듬이 있는데 “구라이골”“구라이둘레길” “위치표식도” “한탄강” 설명문이 있다 ⚈ 한탄강 강원도 평강군, 강원도 철원군, 경기도 포천시, 경기도 연천군 한반도 중서부 화산지대를 관류하는 강. 북한 지역인 강원도 평강군 장암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김화군 경계를 따라 남쪽으로 흘러들어 강원도 철원군과 경기도 포천시·연천군을 차례로 지난다. 한강의 제2지류이자 임진강의 제1지류이다. 한탄강 유역은 자연경관이 빼어나 경승지가 많으며, 6·25전쟁의 전적비와 기념물 등이 많이 세워져 있다. 한탄강 일대는 2015년 환경부에 의해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된 데 이어 2020년 7월 7일 국내 4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되었다. ⚈ 한탄강팔경 1경: 한탄강 대교천 현무암 협곡. 2경: 샘소. 3경: 화적연. 4경: 멍우리 주상 절리대. 5경: 교동 가마소. 6경: 비둘기낭. 7경: 구라이골. 8경: 아우라지 베개 용암. ⚈ 한탄강 주상절리길 제1코스: 구라이길(4Km) 비둘기낭폭포→운산리캠핑장→운산리자연생태공원 제2코스: 가마소길(5Km) 비둘기낭폭포→한탄강하늘다리→마당교 제3코스: 벼룻길(6Km) 비둥기낭폭포→멍우리협곡→벼룻교→부소천교 제4코스: 멍우리길(5Km) 비둘기낭폭포→한탄강하늘다리→징검다리→멍우리교 제5코스: 비둘기낭순환코스길(6Km) 비둘기낭폭포→벼룻길일부구간→하늘다리→멍우리길→비둘기낭폭포 나는 한탄강 주상정리 제5코스는 2020년6월5일 금요일 맑은 날에 동행들과 걸었고 제1코스 구라이골은 홀로 2020년6월10일 수요일에 걸어 봤는데 경흥길 7코스는 한탄강주상절리길의 1코스 구라이길과 공유한다 전망대를 들리고 제2 하늘다리 밑으로 한탄강 제2하늘다리 밑으로 걷는다 • 한탄강 제2하늘다리 강바닥에서 높이 40m, 길이는 200m 폭 2m로 출렁다리 다양한 수생식물과 야생화, 한탄강 자생식물 등 생태 자원과 더불어 제2하늘다리를 통해 한탄강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바라만 보고 다리 밑으로 걷는데 11시 방향으로 종자산(643m)이 있고 긴 의자에서 쉬고 있는 애송이 늙은이를 만나니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비둘기낭 얼마나 더 가야 하오” “십리는 더 가셔야 할겨~”라고 하면서 흠짓 나를 빤히 쳐다 보는데 곁에 3.65Km라고 되어 있는 이정목이 웃는다 그리고 그 사람은 또 물었다 “연세가 얼마나 되쎴오” “8학년이 넘었오” 하니 엄지 손가락을 보이면서 자기도 그 때쯤 나처럼 걸을 수 있을 까라고 부러워하면서 이 지역이 옛날에 미군부대가 있었다고 알려 준다 조금 진행하니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미군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영로대교가 나왔다 대교는 관인면 중리와 운산리를 잇는 755m의 다리로 미군장갑차와 SUV 차량이 추돌하여 SUV 차량에 탔던 사람들 4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곳이고 다리 밑은 한탄강 래프팅을 시작하는 곳이다 빙판길이 나와서 큰 걱정이 되었지만 빙판이 짧아서 조심스럽게 밟으니 잔돌이 밖힌 불량한 길이 나왔고 테크 계단은 가파르다 39개를 쉬엄쉬엄 올랐다가 다시 19게 오르면 역시 비탈길이지만 데크는 없다 2020년에 왔을 때는 여름으로 밤꽃이 활짝 피었었는데 이번에는 겨울이라 한탄강에는 얼음이 풀리지 않고 남아 있다 마을버스는 14시40분으로 아슬아슬 못 탈수 있으나 다음 버스는 17시에 있으니 슈퍼 찾아들어 먹거리를 장만하면서 기다리거나 콜 택시를 하자고 느릿느릿 걸었다 한탄강가람누리문화공원이 나왔는데 먼저 왔을 때는 공사중이었었다 공원은 언덕위에 있고 전망대를 올라 조망하고 싶지만 시계를 보니 14시32분으로 버스정류장까지 부지런히 걸으면 마을버스(대화산리 정류장 53번)를 탈 수 있다 싶어서 언덕에서 내리막을 부지런히 걸어서 대화산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14시40분이고 5분후에 버스는 왔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운전기사가 마스크를 올리라는 시늉하기에 마스크가 코 밑으로 걸렸다 마스크를 코 위로 올리니 버스 문이 열렸고 40분후 영중농협 정류장에서 내리는 경흥길 7코스 들머리로 아침에도 왔던 곳이다 콜 택시 했더라면 거금을 날릴번 하였다 늙은이가 되고 보니 동선이 빈약하여 집안에 웅크리고 있을 때가 많고 심심하면 이책 저책 흝어 보다가 김삿갓의 시집을 펼쳐 보니 김삿갓의 교태시가 마음들었다 嬌態- 蘭皐 김삿갓 對月紗窓弄未休: 달 밝은 창가에서 희롱을 하다보니 半含嬌態半含差: 그 모습 교태 반 수줍음 반 低聲暗問相思否: 그 토록 좋으냐고 나직히 물으니 手整金釵笑點頭: 금비녀 만지면서 고개 끄떡 웃고만 있네.. 동선 동서울버스터미널→영중농협→낙귀정지Board→은혜교→거사3리(은잿골)→영평교→87번도로→포천야구장→창옥교→금수정→안동김씨고택→오가리→운산리→운산리생태공원→운산리켐핑장→구라이골→전망대→제2하늘다리→영로대교→가람누리문화공원→대화산리버스정류장 “옹기종기”를 찾아들고 식사 후 아침에 탔던 동서울행 3000번을 승차하고 동서울터미널에서 2호선 전철로 귀하니 경흥길도 8코스를 시행하면 긴 旅程이 끝난다 金水亭- 퍼옴 蓬萊風流登金水: 양사언 풍류가 빛나는 금수정에 오르니 古人位置遺詩文:고인이 앉았던 자리에 詩文만 남았구나 歷史悠久山川變: 역사는 유구하지만 산천은 변했고 風流亭子落葉轉: 풍류를 읊던 정자에 낙엽만 구르네 永平淸水浮雲影: 永平川 맑은 물위에 뜬구름 그림자 你也如我故迹見: 너도 나처럼 옛흔적을 보러왔나 –이하 생략- 7코스를 걷고 경흥길 7코스 영평팔경 길은 18.2Km 영중농협을 들머리로 한탄강지질공원까지 2022년2월25일 금요일 맑은 날에 걷는다 임진강38선역사체험길엔 금수정 있고 金九容의 詩碑는 “帆急” 詩 楊士彦의 太山歌 눈에 띄고 정자에 오르니 알만한 선비들의 詩板이 걸려 있고 안동김씨 고택 옆에는 척약재의 묘소가 있다 완만한 덕고개 마루엔 운산리 표석있고 자연생태공원 지나면 구라이길 漢灘江 제2 하늘 다리 있고 구라이골 길은 한탄강지질공원까지 주상절리 경승을 본다 2022년2월25일 금요일 맑음 金水亭 선비들이 즐겨 찾았던 정자 금강산 가는 길에 있고 이름 알려진 선비들은 詩를 남겨 정자 안에는 詩板이 걸렸고 安東金氏 古宅과 김구용의 묘소도 있다 안동김씨가 지을 때는 지형의 모습이 소머리 닮았다고 “牛頭亭”인데 봉래선생이 증여 받은 뒤 “금수정”이라 불렀고 정자 앞을 흐르는 물길 永平川에는 암각이 있고 여울물 소리에 큼직한 바위는 천년전에도 만년후에도 변함 없을 것 금수정을 봐야지 봐야지 하던 가슴속의 숙제가 풀렸지만 나는 景勝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2022년2월25일 금요일 맑음 2020년6월10일 구름 많은 날에 홀로 구라이길을 걸으면서 Memo에 남긴 흔적이다 밤꽃이 피면서 독특한 향기를 풍겼다 여울물 소리 뻐꾸기랑 산비둘기 노래소리 어울리고 암놈 찾는 숫꿩의 애절한 소리 귓가에 맴돌고 주상절리 기기묘묘한 절경 보노라니 답답한 심사 풀리는데 숲속을 벗어나면 따까운 땡볓은 사정 없이 땀방울 등어리에 흐는 다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속에 묻히면 보이느니 첩첩 산들 뿐이고 할멈은 허리 아프다 집안에 웅크리건만 나 홀로 足 함에 미안코 배낭속에 한 모금 얼큰하구나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