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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 외 9편
김 태 상
1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누구 하나 화려한 서울이
해저 깊이 가라앉으리라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이미 거대한 해저도시다
들쑥날쑥한 질서 속의 움직임
아직은 그런대로 수압을 견딜 만한 모양이다
느낌은 느리게 찾아와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2
퍼득일 필요는 없다
퍼득거리는 제스처는
가쁘게 뛰는 심장의 유머일 뿐
턱밑으로 돋아나는 아가미는 튼튼하다
곧 아가미를 위한 새 화장법이 유행하리니
앞서 옆줄을 그어놓는 지혜도 조화롭다
3
어장이 형성된다
63빌딩도 곧 물에 잠길 거라는 소문이 축축하다
이젠 빠르게 찾아와 느리게 진행될 것이므로
건조한 느낌이 남아 있다면
자살을 꿈꾸게 될 것이다 오히려 그물에 걸린 느낌이
4
안전하다 하지만 물고기가 될 순 없다
들쑥날쑥한 질서 속의 움직임
하늘하늘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63빌딩도
육중한 몸의 발꿈치를 들지 않는가
정확히 15도 기울어진 곳에서 느낌이 조절된다
나의 시
좁은 기억의 틈으로
비집고 나온
나의 시는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곳에서
길을 잃고 맙니다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그럴듯한 친화력을 발휘하는
나의 시는
바람을 거슬러 길을 내는
무모한 짓을 하려 합니다
나의 시를 읽으며
시인이란 바람의 방향을 바꾸는
사람이라고 추켜세울 때
나의 시는
또 길을 잃고 맙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제 몸 눕혀 알려주는
저 길에 난 풀과 꽃과 나무를 보며
나의 시는
비로소 낮아지려 합니다
바람의 방향은
바람도 모르는 것을
부는 대로 사는 대로 따르려는
나의 시는
이제 좀 솔직해지려나 봅니다
오래된 이야기
탄광촌에서 아직 탄이 나올 때
그러니까 지금처럼 깨끗한 도시가 되기 전에
다시 말해 내가 일곱 살 아주 어렸을 때
검고 좁은 냇물을 건너다 발을 헛디뎌
사정없이 떠내려간 적이 있어요
그때 냇가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가
그러니까 리어카에 채소를 떼다 팔던 아저씨가
다시 말해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날따라 일 나가기 싫어 바람 쐬러 나왔다가
기적처럼 아이를 구한 적이 있어요
이런 경험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을 테니
더는 캘 탄이 없어 광산이 텅 빈 것처럼
몸의 뼈와 근육이 서서히 마르고 다 빠지도록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그날 같은 그 기막힌 운명을 믿었기 때문이에요
누가 알았겠어요 아저씨가 아이를 구하고
탄광촌이 카지노와 시원한 동굴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찾는 관광지가 될 줄을
그때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지나고 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지요
그러니 운명을 믿는다는 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을 믿는 거예요
그날 아저씨는 나를 구하고 이런 말을 했대요
얘야 넌 오늘을 기억할 거야 기억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니 어떻게 기억하느냐 그게 중요해
설렁탕
사우디 모래바람 맞으며
억척스럽게 벌어 온 돈
돈 냄새 귀신같이 맡는 친구에게
다 날린 사람과 둘이서
설렁탕을 먹었습니다
삼 년 번 돈 날리는 데 딱 열흘 걸렸습니다
남자는 소금도 후추도 넣지 않고
싱거운 숟갈질만 느릿느릿하였습니다
새하얀 국물 같은 그의 눈빛은
내려앉을 곳을 찾지 못해
끝없이 허공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겨울 찬 서리가 창에 가득 어려 답답했습니다
남자의 설렁탕이 하도 맛이 없어 보여
잘게 썬 파를 넣어 주었습니다
날 보며 씩 웃더니 설렁탕이 다 식도록
남자는 사우디 얘기만 하였습니다
그 먼 땅 모래바람이 그리운지
코를 하염없이 킁킁댔습니다
돈 다 날린 노름판에서 개평 받은 돈으로
남자는 그날의 밥값을 치렀습니다
속은 것도 다 제 탓이라던 그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습니다
식당을 나와 그리운 땅으로 다시 갔는지
그 땅의 별이 된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설렁탕집은
오십 년 전통의 맛집이 되었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나의 단골 그 집에서
가끔은 오래된 그날의 비애를 달래려
소금도 후추도 파도 넣지 않고
뽀얀 국물의 설렁탕을 먹곤 합니다
가족회의
아빠 노릇 좀 하라는 아내 성화에 가족회의 소집
고민 끝에 준비한 것이 장석주의 시
아빠의 멋진 시 낭송
이어지는 대추 한 알의 인생 이야기
대추는 저절로 익어가는 게 아니야
성공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야
시인 아빠의 감성이 돋보이는 호소
열다섯 살 아들, 열한 살 딸은 그저 무덤덤
말이 길어지더니 어느 순간
열매 맺은 대추의 대견함보다
대추가 견뎌야 했던 힘든 날들이 떠올라
자꾸 오독誤讀으로 흐르는 아빠의 시 해설
추위와 더위와 외로움을 겪게 될
아이들의 앞날이 눈에 어려
서서히 떨리기 시작하는 아빠의 음성
실망한 아내의 이글거리는 눈빛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하라는 거 아니야?
아빠의 훈계에 치고 나오는 아들
그런 거였어, 공부 열심히 하라는 시였어?
키득대며 오빠를 거들고 나서는 딸아이
회의 끝, 각자 방으로!
급히 해산을 알리는 아내의 천둥 소리
엉망진창이 된 가족회의
아이들은 신이 나서 방으로 쪼르르
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세상은 슬픈 거야 그게 성공이든 실패든
그러니 얘들아, 살면서 많이 아파하지 않기를
끝내 말하지 못한 아빠의 진짜 속마음
새해에는
걸어온 흔적들이
야광처럼 빛나는 밤
불룩한 왼 주머니 속
불만의 알갱이 다 털어내고
다시 가는 그 길 위에 서리
반복이라는 지겨운 말을
다시는 즐겨하지 않게
수평선 아래 싱싱히 길어 올린
여명의 새날을
성숙한 기억력으로 추억하리
생각을 앞당겨 온 절망이란
얼마나 조잡한 것인지
따를 수 없는 나의 낙천樂天으로
저 굽어 도는 길목에서의 하루를
풍요롭게 하리
세상을 보다
한동안 보지 못해도
늘 별을 보며 산다고
생각하는 것은
별이
하늘이 아니라
마음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헤어져 함께 하지 못해도
늘 옆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별이
상실이 아니라
여백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난 흔들리는 눈동자로
세상을 보는 선 하나를 긋는다
나의 마음, 나의 여백이
모순에 빠지지 않게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더는 구별하지 않게
체온에서 얻은 아주 따뜻한 색으로
세상을 보는 경계를 긋는다
장마
장마 길어지니
고향집 홀로 계신 엄마
툇마루에 나와 사네
생각을 줄여야 할 나인데
사람 구실은 하고 사는지
멀리 있는 자식 걱정
장마보다 길어지네
처마에 부딪히는 빗소리에
곤히 누워 잠든 엄마
대문 밖 누가 오길 기다리나
이 비 끝나고 더위 오면
엄마 기력 또 꺾일 텐데
차라리 장마야,
너는 가고 가을을 불러주렴
아버지가 그러던데
아버지가 그러던데
효도관광 같은 거 생각도 말래
쓸데없이 돈 쓰지 말고 대신 아프지 말래
그런 아버지 때문에 울지도 웃지도 못한 건
아버지와 맞서 싸울 힘이 없어서야
앞과 뒤가 안 맞는 아버지의 말이
시간이 지나면 신기하게도 들어맞거든
그때마다 화가 났어,
그래서 집을 떠난 거야
아버지가 그러던데
상처가 생기고 깊어지고 아물지 않을 거래
그럴 땐 생각을 멈추고 따뜻한 곳에서 잠을 청하래
그런 아버지의 안부를 묻지 않은 건
몸의 피가 언제나 뜨겁게 나를 감싸 흘러
멀어질수록 더 가까워지는
아버지의 향수 때문이야
이상했어, 어느 날부턴가 내 헛기침에
아버지의 음성이 붙어 있는 거야
아버지가 그러던데
늦은 건 아무것도 없대 정말 그렇대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면서 반갑다고 그래
그런 아버지가 말하던 고비란 걸
몇 차례 넘긴 후에 난 돌아왔어
읽던 책을 덮고 잠든 아버지의 얼굴을 봐
깊게 패인 주름에 남은 이야기가 적혀 있어
속상했어, 세상의 모든 언어를 잃어버린
아버지와 미치도록 대화하고 싶었어
겨울, 그리움
1.
부잣집 애건 가난한 집 애건
골목의 아이들은 모조리 손이 텄다
눈을 뭉치거나 구슬을 놀리거나 썰매를
타거나, 아이들의 겨울 손은 늘 분주했다
털옷을 몇 벌이나 끼어 입어도
아이들의 겨울은 추운 법인데
장갑을 끼지 않아도 주머니에 손을 넣은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2.
겨울이면 아이들은 온종일 골목에서 살았다
눈 내리는 날이면 골목은 더 붐볐다
볼그레한 뺨에 겨울 볕이 내리면
담벼락에 붙어 서로의 얼굴을 보며 히죽거렸다
아이를 부르는 엄마의 카랑한 소리는
차가운 저녁 바람에 흩어져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부잣집 애건 가난한 집 애건
그리운 내 유년의 아이들은 언제나 한패였다
산문
내 안의 63빌딩
김경린 선생의 추천으로 내가 시문학사에서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하던 때, 우리나라에서는 63빌딩이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시를 너무 쓰고 싶어 함동선 선생이 계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에 들어갈 때도 63빌딩은 여전히 제일 크고 높았다.
노량진 대성학원에서 삼수하던 친구와 술을 마시고, 그의 남루한 하숙방에 누웠을 때, 좁은 창으로 붉은빛이 깜박이며 들어왔다. 저게 뭐냐고 묻자 63빌딩이라고 말했다. 친구는 저 불빛 때문에 자주 잠에서 깬다고 했다.
“그럼 안 되지. 내가 저 63빌딩 없애 줄게.”
지방에서 유학 온 내게 안 그래도 63빌딩은 그쪽으로 더는 가서는 안 될 문명의 이기로 여겨져 눈엣가시 같은 상징물이었다. 사랑하는 친구의 성공적인 삼수 생활을 위해 쓴 시가 바로 「63빌딩」이었다.
아주 오래되고 이상한 얘기지만, 우리나라에 63빌딩보다 더 높은 건물이 생기면서부터 난 시를 쓰지 못했다. 더 이상 시가 써지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시의 첫 행조차 시작할 수 없었다. 큰 변화라면, 학교를 떠나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그만큼 바빠졌고, 서울 생활이 만만해졌다는 것이다.
그때 나이가 스물일곱이었으니 30년 동안 시를 쓰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구차한 변명 다 차치하고, 그 긴 세월 시를 쓰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였으리라. 나의 글쓰기 실력과 시를 대하는 나의 소양과 살아온 나의 경험이 미천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시를 잊고 살던 내게 지난해부터 작은 생각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높은 빌딩을 보려 고개를 들지 말자. 대신 땅을 내려다보고, 눈을 맞춰 사람을 보자.’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생활인의 시선으로 시를 대하자는 생각이 깊어지자 행운처럼 시가 다시 써지기 시작했다.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40편이 넘는 시가 새로 써졌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좁은 이마, 불량한 눈빛을 가진 내게 소중한 지면을 할애해 주고, 등단의 기회를 준 《시와경계》의 최광임 발행인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나의 졸작에 과분한 사랑과 평을 실어주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의 이승하 교수께 감사드리며, 더 치열하게 시를 짓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김태상/ 강원도 평창 출생. 1989년 시문학사 「시」 동인회로 작품 활동. 시집 『아직 떠나지 못한 자의 발목에』 외.
현 경남정보대학교 미디어영상과 교수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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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스트에서 리얼리스트로 가는 길
김태상은 대학원 시절, 모더니스트로서 실험적인 시를 썼던 예비시인이었다. 신문방송학과를 나왔는데 문학에 씌어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우리나라 1세대 모더니스트로 이상과 정지용, 김기림 등을 꼽을 수 있다면 2세대 모더니스트는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1949)을 낸 김경린·김수영·박인환·양병식·임호권과 1951년 부산에서 결성하여 1954년경까지 활동한 모더니즘 지향의 ‘후반기’ 시문학 동인인 김경린·김규동·김차영·박인환·이봉래·조향이 있었다. 이들 중 김태상 대학원생의 등단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던 이가 시인 김경린(1918~2006)이었다.
그 무렵, 김태상은 문우들과 더불어 ‘ᄇᆞᄅᆞ시’ 동인회를 만들어 『아직 떠나지 못한 자의 발목에』, 『벙어리 연가』 같은 동인지를 내고 있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그때 김경린 시인의 권유대로 등단의 관문을 넘어섰더라면 지금쯤 시집 너덧 권을 낸 중견시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김태상은 자신의 시세계가 아직은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하였고 어느 문예지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롭게 문단 활동을 충분히 한 이후에 등단할 생각을 하고는 김경린 시인의 권유를 완곡히 거절하였다. 그런데 출판사를 차려 5년 동안 이끌었고 미국 체류, 박사과정 진학, 결혼, 두 아이의 탄생, 교수 발령…….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느라 펜을 놓은 세월이 어언 30년이 되었다. 출판사를 할 때 김경린 편저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 대표 동인 시선』(1994)을 내드린 적도 있었다.
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를 강타한 2020년과 21년, 타인과의 소통이 원활히 되지 않는 팬데믹 상황으로 접어들자 불현듯이 자신이 시를 맹렬히 썼던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생 시절이 생각났다. 펜을 들고 A4지 앞에 앉았고, 초고를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요즈음 그는 대학의 기획부총장으로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지만 시를 거의 매일 쓰고 다듬고 있는 중이다. 그 가운데 내게 온 10편의 시를 읽고 소박한 감상문을 써볼까 한다.
1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누구 하나 화려한 서울이
해저 깊이 가라앉으리라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이미 거대한 해저도시다
들쑥날쑥한 질서 속의 움직임
아직은 그런대로 수압을 견딜 만한 모양이다
느낌은 느리게 찾아와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2
퍼득일 필요는 없다
퍼득거리는 제스처는
가쁘게 뛰는 심장의 유머일 뿐
턱밑으로 돋아나는 아가미는 튼튼하다
곧 아가미를 위한 새 화장법이 유행하리니
앞서 옆줄을 그어놓는 지혜도 조화롭다
―「63빌딩」 전반부
아마도 이 시를 썼을 무렵, 여의도에 있는 63빌딩은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건물 중 가장 높은 건물이었을 것이다. 제목만 보면 문명비판이나 세대 간의 충돌 같은 것을 다루나 보다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서울을 해저도시로 간주하고는 인간을 해저생물로 묘사하고 있다. 깊은 바닷속은 빛이 거의 닿지 않는다. 수압이 대단한 그 세계에 적응한 인간은 아가미를 갖고 있다. 지느러미도 꼬리도 갖고 있을까? 카프카는 소설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라는 남자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딱정벌레로 변신해 있었다고 하는 기상천외한 소설을 썼는데 김태상은 인간을 물고기로 변신을 시킨다? 그런데 아가미는 갖고 있되 물고기는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한다.
3
어장이 형성된다
63빌딩도 곧 물에 잠길 거라는 소문이 축축하다
이젠 빠르게 찾아와 느리게 진행될 것이므로
건조한 느낌이 남아 있다면
자살을 꿈꾸게 될 것이다 오히려 그물에 걸린 느낌이
4
안전하다 하지만 물고기가 될 순 없다
들쑥날쑥한 질서 속의 움직임
하늘하늘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63빌딩도
육중한 몸의 발꿈치를 들지 않는가
정확히 15도 기울어진 곳에서 느낌이 조절된다
―「63빌딩」 후반부
4개의 시는 논리적인 이해를 거부한다. 독자마다 자신의 눈높이로, 자신의 상상력으로 이 시를 수용하라고 시인은 권유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 시가 과연 이성의 세계, 혹은 논리의 세계를 완전히 벗어난 시일까? 그렇지 않다. 지구온난화는 북극의 빙하 70%가 사라지게 했다. 남극과 북극이 다 녹아버리면 지구는 대혼란에 빠질 텐데, 그린란드의 빙하가 하루에 60억 톤씩 녹고 있다. 알래스카에 가서 직접 보았는데 빙하가 녹아 흐르는 것이 큰 강물을 이루고 있었다. 63빌딩이 잠기게 된다니 다소 과장된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속도로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 50년 안에 대한민국의 항구도시 몇 개는 물에 잠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바로 이런 가상미래에 대한 시라고 여겨진다. “들쑥날쑥한 질서 속의 움직임”이란 행이 갖는 의미가 2023년 지금에 읽으니 파악이 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 시는 실험정신이 충만한 모더니스트의 시임에 틀림없는데, 본인의 시론을 들어보자.
좁은 기억의 틈으로
비집고 나온
나의 시는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곳에서
길을 잃고 맙니다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그럴듯한 친화력을 발휘하는
나의 시는
바람을 거슬러 길을 내는
무모한 짓을 하려 합니다
나의 시를 읽으며
시인이란 바람의 방향을 바꾸는
사람이라고 추켜세울 때
나의 시는
또 길을 잃고 맙니다
―「나의 시」 앞 3연
생활 때문에 시에 매진하지 못했다는 데 대한 반성의 뜻을 담고 있다. 내 시가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곳에서 길을 잃고 만다고 하고, 바람을 거슬러 길을 내는 무모한 짓을 하려 한다면서 반성한다. 제3연이 의미심장하다. “시인이란 바람의 방향을 바꾸는/ 사람이라고 추켜세울 때” 나의 시는 또 길을 잃고 만다고 하니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시에서 중요한 시어인 바람은 ‘風’으로 해석해도 되지만 ‘바라다’의 명사형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시인이 되기를 꿈꾸게 된 근년에 이르러 「63빌딩」 같은 시를 쓰던 자신을 죽이고 새롭게 탄생하려고 몸부림치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제 몸 눕혀 알려주는
저 길에 난 풀과 꽃과 나무를 보며
나의 시는
비로소 낮아지려 합니다
바람의 방향은
바람도 모르는 것을
부는 대로 사는 대로 따르려는
나의 시는
이제 좀 솔직해지려나 봅니다
―「나의 시」 뒤 2연
나의 시는 비로소(!) 낮아지려고 하고, 이제 좀(!) 솔직해지려고 한다. 즉 모더니스트의 길을 가고자 했던 대학원생 시절의 태도를 버리고 이제는 독자와의 소통에 신경을 쓰고 싶다는 다짐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김태상은 어느덧 솔직하게 추억담을 들려준다. 허구의 산물이 아니라 시인의 체험이 반영된 시라고 여겨진다.
탄광촌에서 아직 탄이 나올 때
그러니까 지금처럼 깨끗한 도시가 되기 전에
다시 말해 내가 일곱 살 아주 어렸을 때
검고 좁은 냇물을 건너다 발을 헛디뎌
사정없이 떠내려간 적이 있어요
그때 냇가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가
그러니까 리어카에 채소를 떼다 팔던 아저씨가
다시 말해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날따라 일 나가기 싫어 바람 쐬러 나왔다가
기적처럼 아이를 구한 적이 있어요
이런 경험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을 테니
더는 캘 탄이 없어 광산이 텅 빈 것처럼
몸의 뼈와 근육이 서서히 마르고 다 빠지도록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그날 같은 그 기막힌 운명을 믿었기 때문이에요
누가 알았겠어요 아저씨가 아이를 구하고
탄광촌이 카지노와 시원한 동굴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찾는 관광지가 될 줄을
그때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지나고 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지요
그러니 운명을 믿는다는 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을 믿는 거예요
그날 아저씨는 나를 구하고 이런 말을 했대요
얘야 넌 오늘을 기억할 거야 기억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니 어떻게 기억하느냐 그게 중요해
―「오래된 이야기」 전문
이 시는 시적 화자의 유년기 회고담이다. 어느 부분이 체험의 영역이고 어느 부분이 상상력의 산물인지 알 수 없지만 대체로 진솔하게 자신의 과거지사를 고백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강원도 정선은 탄광촌이었는데 채탄이 사양산업이 되자 카지노로 바뀌었다. 시는 본인의 운명론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얘야 넌 오늘을 기억할 거야 기억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니 어떻게 기억하느냐 그게 중요해”란 말을 목숨을 구해준 아저씨가 했을 턱이 없다. 시의 화자가 일곱 살 때 들었다면 이해하지도 못했을 말을 기억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이 말을 마지막 문장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일까? 김태상 시인은 소통 불능의 난해시는 쓰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기억’에 의거해서 시를 쓰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시인에게 기억은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아버지의 말씀과 어머니의 모습에 대한 기억이 더욱 생생하게 떠오르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버지가 그러던데
늦은 건 아무것도 없대 정말 그렇대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면서 반갑다고 그래
그런 아버지가 말하던 고비란 걸
몇 차례 넘긴 후에 난 돌아왔어
읽던 책을 덮고 잠든 아버지의 얼굴을 봐
깊게 패인 주름에 남은 이야기가 적혀 있어
속상했어, 세상의 모든 언어를 잃어버린
아버지와 미치도록 대화하고 싶었어
―「아버지가 그러던데」 끝부분
아버지의 말씀이 자꾸 생각나는 때가 있나 보다. “쓸데없이 돈 쓰지 말고 대신 아프지 말래” “상처가 생기고 깊어지고 아물지 않을 거래” “늦은 건 아무것도 없대” 등 아버지의 말씀이 귓가에 맴도는 것은 시인 자신의 나이도 이제 중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생의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 말을 잃고 말았다. 아들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집을 오랫동안 떠나 있었고 아버지와 소원해지기도 했었지만 아버지는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세상에 이미 가 있는 것이다. 고향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펜을 들게 한 날도 있었다.
장마 길어지니
고향집 홀로 계신 엄마
툇마루에 나와 사네
(……)
이 비 끝나고 더위 오면
엄마 기력 또 꺾일 텐데
차라리 장마야,
너는 가고 가을을 불러주렴
―「장마」 부분
시인은 이제 기억의 힘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관념의 세계에서 일상의 세계로, 추상의 세계에서 실체의 세계로 이행하게 된 것이다. 모더니스트에서 리얼리스트로의 전환이라고 해야 할까. 하늘나라의 김경린 시인은 자신의 후계자가 될 줄 알았던 김태상의 이런 전환을 서운해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 20세기의 후반기를 우리가 요리하지 못했는데 2023년부터는 네가 책임져라.
사우디 모래바람 맞으며
억척스럽게 벌어 온 돈
돈 냄새 귀신같이 맡는 친구에게
다 날린 사람과 둘이서
설렁탕을 먹었습니다
삼 년 번 돈 날리는 데 딱 열흘 걸렸습니다
―「설렁탕」 제1연
추위와 더위와 외로움을 겪게 될
아이들의 앞날이 그려져
서서히 떨리기 시작하는 아빠의 음성
실망한 아내의 이글거리는 눈빛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하라는 거 아니야?
아빠의 훈계에 치고 나오는 아들
그런 거였어, 공부 열심히 하라는 시였어?
키득대며 오빠를 거들고 나서는 딸아이
회의 끝, 각자 방으로!
급히 해산을 알리는 아내의 천둥 소리
엉망진창이 된 가족회의
아이들은 신이 나서 방으로 쪼르르
―「가족회의」 제4~6연
앞의 시는 소설(허구)의 한 부분 같고 뒤의 시는 수필(사실)의 한 대목 같다. 그리고 2편 시가 다 일상의 세계를 다루면서도 유머가 있다. 즉, 어느새 김태상은 ‘서사’와 ‘서정’의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 아울러 시를 쓰는 현실의 시인, 현장의 시인이 된 것이다. 시가 관념에 의존하면 안 된다, 지나친 비약은 안 된다, 환상성이나 초월성은 문제가 있다……. 이런 생각들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다다르게 한다.
생각을 앞당겨 온 절망이란
얼마나 조잡한 것인지
따를 수 없는 나의 낙천樂天으로
저 굽어 도는 길목에서의 하루를
풍요롭게 하리
―「새해에는」 제1연
오늘도 난 흔들리는 눈동자로
세상을 보는 선 하나를 긋는다
나의 마음, 나의 여백이
모순에 빠지지 않게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더는 구별하지 않게
―「세상을 보다」 부분
30년 세월 동안 시를 쓰지 못하고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갈망하는 것이 이렇듯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겨울, 그리움」 같은 시는 유년기의 즐거움과 설렘(심리), 장난기와 유희(행동)가 한 편 속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가 있다. 이런 시를 보니 근년에 들어 심기일전하여 시를 쓰고자 하는 결심이 느껴진다. 공백기가 좀 길긴 했지만 금방 불사신처럼 일어나 시에 매진할 거라고 믿는다.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된 시간이 길었던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시의 봇물을 터뜨리며 한국 시단에 우뚝 설 김태상 시인의 후속작들을 기대해본다.
이승하/ 경북 의성 출생.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사 람 사막』 외. 편운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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