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창조이상의 좌절
타락의 한스러운 심정을 몰라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제아무리 효자·충신·성인·성자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해도 거기에 미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핏줄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렇게 핏줄이 달라지게 한 것은 하나님의 본연적인 사랑·생명·혈통이 아닙니다.
원수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핏줄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핏줄이 달라졌기 때문에 타락한 이후의 모든 존재가 하나님과 180도 반대의 방향으로 갈라져 갈 수 있는 조건이 된 것입니다. 본연의 자리에서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을 중심한 일족의 출발로부터 사랑의 왕궁을 중심하고 살던 것이 전통이 되어 수많은 족속이 번성하여 천년만년 가더라도 그 전통을 사모하면서 살 수 있었던 세계가 황막해져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창조주 주인의 자리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생각하게 되면, 누구든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뒤넘이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결과의 세계를 참고 참으면서 하나 둘 수습해 가지고 본연의 기준까지 찾아 나오기에 얼마나 수고가 많았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386-50~51,…2002.7.15)
아담 해와가 저지른 한 번의 실수가 억천만세 인류의 지옥을 만들어 놓아서 한스러운 역사를 거쳐왔다는 사실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뼈가 울고, 골수가 녹아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뜻 앞에서 자기를 변명하고 “나 뭐가 어때서 못 가겠어! 무엇 때문에 못 가겠다.”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영계의 밝은 태양 빛 아래로 가야 될 자신이 깜깜한 칠흑 같은 지옥 밑창에 가더라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의 길을 통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4대 속성인 절대·유일·불변·영원한 그런 부모, 그런 자녀, 그런 남편, 그런 아내, 그런 가정을 내가 가지지 않고는 하나님을 해방할 수 없다는 원통한 역사를 알아야 됩니다. 무엇이 아깝습니까? 부모와 자식을 한꺼번에 제물로 바치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길입니다.
(306-326,…1998.11.2)
세상에서 볼 때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딸, 특히 외동아들이나 외동딸이 있다면 그 아들딸을 위해서 부모는 있는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부모가 철없이 자녀를 낳아서 키우면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느낄 것을 다 느껴 보고, 인간으로서 체험해 볼 것을 다 체험해 본 다음에 소원하고 소원하던 아들딸을 얻었다면 애지중지하며 정성을 다하여 키울 것 입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키우는데, 만약 그 아들딸이 타락의 길로 가서 부모를 배반한다면 그 부모의 고충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부모로서는 그것을 옹호할 수 있는 아무런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책망할 것밖에 없고, 또 부모로서 그 자녀를 추방할 수밖에 없더라도 부모는 그 자녀가 어떤 조건을 세워서 소생할 수 있는 길,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소망의 한 점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부모도 관계를 맺으려야 맺을 수 없는 자식을 세워 놓고 상심하는데, 본연의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도 그런 마음을 가지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한 아담으로서는 다시 회생할 길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이 회생할 수 있는 어떤 조건을 제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하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 자신으로서는 회생할 도리가 없지만,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게 어떤 조건을 세우게 해서라도 회생시키려 하셨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비참함이 절정에 달할지라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하고,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도리를 다했다는 상대적인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 조건을 요구하시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입장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42-14,…1971.2.19)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 하루의 실수가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문제가 무섭고, 결혼하기가 무서운 것입니다. 상대가 나를 붙들고, 내가 상대를 붙들어서 상대가 나를 해방해 주고, 내가 상대를 해방해 주는 것입니다. 무엇에서 해방해 주느냐? 사랑의 함정에서 해방해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함정이 개인적 사랑의 함정, 가정적 사랑의 함정, 국가·세계·천주적 사랑의 함정입니다.
하나님이 그 함정 가운데 떨어진 것입니다. 참부모가 이상하던 모든 창조세계가 사랑의 함정에 떨어졌습니다. 그 사랑의 함정이 무엇이냐? 그릇된 생식기를 중심삼은 사랑으로 하나된 자리입니다. 거기에 빠졌습니다.
(322-192,…2000.5.18)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어떻게든지 인류에게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그 길을 열기 위한 것이 종교운동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속해 있는 민족,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적 여건과 습관 그리고 풍습이 다르고 문화배경이 다른 환경을 거쳐서 세계를 수습해 가지고 끝날을 맞이하여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됩니다.
그 길을 가려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타락 이후에 수천만년의 역사를 지내 오면서 품고 오신 그 슬픈 사연을 누가 알아드리겠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됩니다. 그분은 우리와 상관없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근본이 되시고 우리의 모든 생명과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적 기대를 편성해 주시는 분입니다.
생활환경에서나 생애환경을 통해서 끊으려야 끊을 수 없고, 역사와 환경을 통해서 분리시키려야 분리시킬 수 없는 인연적 중심존재가 그와 같은 고독한 자리에 몰려 가지고 눈물지음의 사정이 얼마나 많았겠느냐! 그것을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향을 잃어버린 자녀들을 하늘이 볼 때 어떻겠어요? 그 자녀들은 모르지만, 그 자녀들이 살고 있는 이곳을 하나님이 몇 번이나 다녀가셨겠느냐? 그걸 생각해 봤습니까? 그렇게 다녀가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컸겠느냐! 그 간절함에 비해서 이 땅을 찾아오고 싶은 날들이 얼마나 많았겠느냐 이겁니다.
그러나 찾아오려야 찾아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쫓아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찾아올 수 없었던 하늘의 심정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느냐! 그렇지만 버릴 수 없습니다. 그렇게 버릴 수 없는 사정을 품은 하늘의 곡절에 기가 막힌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쫓아내서 찾아올 수 없으니까 자기 농토를 지키는 사람 혹은 자기 신세를 지는 사람을 통해서 은연중에 자신의 사연을 엮어 가지고 전해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 자식은 몰랐지만, 배후에 그런 일을 해 오신 분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냐 하면 종교를 통해서 섭리해 나오시는 종적 참부모이신 하나님이었더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219-134~135,…1991.8.29)
향기로운 해방적 꽃동산의 세계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세계가 안 되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동산의 한 모퉁이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런 입장이면서도 세상을 다 갖춘 듯이 활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못 사는 것입니다. 언제나 죄인의 모습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날에 하나님이 느꼈을 한을 생각하기 때문에 문 총재가 한의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총생축헌납물을 바쳐서 교회의 소유권 내에 세우라고 했는데, 그걸 천년만년 바라던 소원이라고 하면서 만세를 부른 사람이 없습니다. 걸레 짜박지 같은 돈, 똥 묻은 돈 짜박지를 싸 가지고 아들딸을 먹여 살리겠다고 하면서 저금통장을 숨겨 놓고 “선생님이 하는 일은 선생님이 하지!”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분별된 입장에서 남아질 것 같습니까? 내 손으로 불살라 버려야 됩니다. 탕감을 해원하라고 불살라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것들을 모아 가지고 말입니다. 사탄이 좋아하던 것들을 불살라 버리고, 내가 그 이상의 것을 창조하고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 봉헌하겠다고 해야 됩니다. (386-64,…2002.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