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코스도 짧고 높이도 보잘것없는 도드람산이 이천의 명산으로 알려진 것은 능선 전체가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수도권 산 가운데 바위 타는 재미가 으뜸이기 때문이다.
등산 동호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바위맛'이 좋은 산이라고 한다.
바위맛이란 발뿐 아니라 손을 이용해 바위와 풀뿌리 등을 잡고 가는 등산로의 아기자기함을 뜻하는 은어이다.
중부고속도로에서 하행선 이천휴게소 오른쪽으로 완만하게 솟아 있는 산이 바로 저명산인데, 주능선은 크게 다섯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알프스 마터호른을 닮은 이 산은 종전 5만분의 1 지형도에 저명산(猪鳴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문 표기를 풀어 쓰면‘돋(돼지) 저', ‘울음 명'으로 돼지울음산이다.
옛 문헌에 저명산에는 정악사라는 절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산 남쪽기슭에 사지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곳을 정악골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산 이름의 유명세 덕분에 인근 마을에서는 도드람 돼지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마을에서는 돼지몰이, 돼지 씨름, 돼지 보물찾기 등의 놀이 프로그램과 돼지고기 잔치마당이 준비되고 도드람산에서는 돼지와 가장 비슷한 목소리를 지르는 사람을 뽑는 저명인사(猪鳴人士) 선발 대회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이름 풀이에서부터 전설적 기운이 느껴지는 이 산의 전설은 저명산의 이름과 연관되어 있다.
산 동네 외딴집에 한 청년이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몸에 좋다는 약은 다 써 보았으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병세를 비치던 이듬해엔 어머니가 아예 자리에 눕게 되어 버렸다. 뼈만 앙상한 어미를 들쳐 업고 밤낮을 전전하며 병구완을 해보았지만 보이지 않고 어머니의 병을 제대로 짚어 주는 명의도 찾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었다.
이제 청년마저 지칠 대로 지친 상태, 모든 걸 체념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청년은 산기슭 어디쯤에선가 어머니를 등에 엎은 채 쓰러지고 말았다.
“일어나거라. 너의 지극한 효성을 하늘은 알지니 이제 곧 처방을 내려 줄 것이니라. 저 산 정상 절벽 바위틈에 자라는 석이버섯을 따다 드리면 어머니의 눈이 밝아지고 맑은 피가 돌아 기운이 솟을 것이다. 더 저물기 전에 버섯을 따다 드리거라.”
고승의 목소리는 아직 귀에 쟁쟁한데 눈을 떠보니 횡한 바람소리만 스산하다.
인기척 하나 없다. 이 인적 드문 산중에 고승이 나타날리 만무하다.
생생한 현실 같은 꿈속의 목소리를 거역할 수 없어 청년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승의 처방대로 석이버섯을 찾아 헤매었다.
일단 산 정상에 올라 솔잎을 주워 모았다. 푹신하게 어머님의 누울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숨조차 힘겹게 내쉬는 어머님을 뉘어 놓고 버섯이 있다는 바위틈을 주시했다.
놀랍게도 꿈속에서 점지해 준 절벽께에 석이버섯이 예쁘고 단정하게 피어 있었다.
산 정상의 절벽 바위틈에 자라는 버섯을 따기 위해 청년은 마른 나무 뿌리를 이어서 길게 엮어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버섯을 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산돼지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난데없는 돼지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절벽 위를 올려다보니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줄이 아슬아슬 바위에 쓸려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청년은 돼지 울음소리 덕분에 간신히 절벽을 붙들고 올라와 목숨을 구한 셈이다.
지극한 효성에 감복한 산신령이 산돼지를 보내 그 효자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