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통방송 자료
박정민 작가님 mir26@naver.com 010-8502-9505
군산시 ( 전) 국장 ) 문화관광해설사 이종예: 010-8542-9436
일시: 2013. 9,18일 09;30~50분
장소: 전주교통방송 FM 102.5 MHZ
추석특집 군산지역 가볼만한 곳 소개 프로그램
가을에 여행하고 싶으면 이곳에 오세요! 서해안의 풍부한 해산물과 농산물로 형성된 우리 지역만의 독특한 음식이 미식가들에게. 식도락의 제공. 즐거움으로 여행하는. 군산지역의 추석절 이야기를 곁들여서. 이 시간 군산지역의 가볼만한 곳을 재미나게 이야기를 해본다....
“ 올 추석에는 군산 볼거리는... 군산 8경과, 구불 길 8개 코스가 근대역사의 거리 체험이 제격이다...
금강 하구 뚝 을 걷다보면, 갈대밭과 새로 만들어진 ,강가를 걸어가게 되는데 ,이곳의 유래를 보면 옛날 우리조상들이 선정한, 군산의 팔경들이 거의다 ,이곳에 모여 있다.
群山 八景은
①竹城春露(죽성춘로) : 전 구 경찰서 앞에서, 째보선창 죽성리 에 봄기운이 돋아 오름을 이르는 말로, 봄날에 째보선창에 가보거나, 지금도 그곳에가 보면, 빨간색 무인 등대가 있는 곳에, 아지랑이가 피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
②弓浦歸帆(궁포귀범) : 구암동 산모퉁이로 돌아 들어오는 배, 돛대의 풍경을 말하는데, 어려서 우리가 황포 돛을 단 배를 보면, 청정지역에서나 잡히는, 뱅어 잡이 배들를 말해도, 손색이 없는 이야기 이다 ,
③龍潭夜雨(용담야우): 월명 공원에서 건너 다 보는 장항,(한때 水東이라고도 했음)에 이슬비 내리는 정경의 섬세한 느낌을 말하는데, 이슬비가 내리는 수시 탑에서, 이 모습을 느껴보는 ,일도 지금도 가능하다 ,
④長岩落照 (장암낙조): 장항제련소 돌산 저쪽으로 지는 해 ,그것은 장관 이었다 .그래서 지는 해가 더 아름다운 서해의 절경을, 카메라에 담아 보는 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⑤海望秋月(해망추월): 해망 령 우거진 소나무 사이로, 내비치는 가을 달밤 맑은 정경을 말하는데, 지금은 소나무가 별로 없지만, 가을 달밤에 달을 보면서, 월명공원을 가다보면, 말을 자세히 안 해도 될일 이다,
⑥黑磯釣魚(흑기조어): 아쉽게 요지 음 헐어진, 축 후 소 에서 강 앞으로, 돌출한 산기슭 강가에서 고기 낚는 정경을 말하는데, 어쩌다 요지 음 도, 횟집단지 앞 해상에서, 낚시질를 하는 태공들의, 정경도 담아볼만 하다
⑦西浦落雁(서포낙안): 오성산 동쪽 끝 서포는 큰 포구였다. 포기의 넓은 갯벌 갈대밭으로 내려앉는,기러기 떼는 지금도 가창오리 와 고니. 기러기 때가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가장접근 하기 쉽고, 근거리에서 날 으 기 때문에, 요지 음 이고장의 새로운 명물이 되어, 금강에서 막 비상하는 수십만 마리 오리 때 의 날개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새해 풍년을 기원하면서 맞기,위해서, 인파가 몰려들고 있어, 새로운 관광 자원인 셈이다
⑧烽火慕雪(봉화모설): 점방산 봉수대의 불꽃이 되어 피어오르는 정경에, 설림 산 눈이 쌓인 풍경을 이른 말이다. 금년 설경을 이곳에서 카메라에 담아두면,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 거리다 ,이렇게 의미 있게 바라보면, 그 하나하나가 용케도 찾아낸, 자연과 정서의 경치들이다. 여기에는 하나같이, 그 곳 생활과 관련된 서정적인 것들이라,
이곳들은 옛 사람들의 감성이 풍부했음을, 능히 짐작하게 한 다. 이 풍류적인 말만 들어도 한 번쯤 가보고 싶고, 음미하고 싶은 충동을 준다. 이 모든 것은 멋이 있고, 여유가 있으며, 너그러운 느낌마저 들어, 옛사람들의 생각이 훨씬 시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구불 길 코스
군산하면 도보길 8개의 구불 길이 있다( 전 구간 186.1km도보 완주메달)
군산은 가을에 걸어야 제격이다. 이 길들을 걷다 보면, 재미있는 군산의 근대역사 이야기와 백릉 채만식 탁류 길에 묻어 있는, 구수한 이야기들이 있다. 어느 곳이든 정처 없이 걸어도 운치도 있지만. 멋과 맛이 어우러진 자연 환경의 해택을 누리는.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 역사를 체험 하며 우리 모두 걷고자 하는 관광거리이다,
구불 길은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수풀이 우거진. 길을 여유. 자유. 풍요를 느끼며,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도보 여행길이다. 길을 걷다보면 굴곡 많은 우리네 삶을 닮은 길 1개 코스에 20킬로미터 정도의 평야와 나지막한 동산들이 잘 어울러져 있는. 아름다운 강과 바다가 어울 어 진 풍광들을 마음껏 보면서. 여행하는 도보자의 여행을 돕고 도심에서 찌든 때를 벗겨내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코스로 만들은 프로그램이다 군산시는 1차로 2009년 7월 모두 68㎞에 달하는 군산 구불길 1∼4길이 개통했다. 구불길은 금강 하구에서 시작해 군산 시내를 한 바퀴 돌아 나와 새만금 방조제까지 이어진다.
군산의 흘러간 역사 따라 구불 길 따라 !
군산엔 가장 전통적인 시골의 풍경을 그대로 유지 한 체, 정감 있고 소박한 원시림의 푸근한 매력과 옛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역사 속 이야기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 치열했던 나당 연합군이 쓸고 간, 오성 산 의 전설과 장군 봉 이야기, 백마강 물줄기를 가슴에 담아내는 금강, 하류에서 일어난 백강 전투와 진포 대첩 등 역사의 현장을 말하고 있다 .
군산지역은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왔다고 한다. 2002년 내 흥 동 에서 군장철도 연결 사업 중 에 발견된 유물과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 조개더미를 발견하고 ,내 흥 동 사옥 마을에는 기원전 3000~2000년 정도 조개더미가 인근 밭에 흩어져 있다, 신석기 이후 농경을 주로 한 당시 생활터전 임을 말하고
삼국시대 4세기 후반 < 근 초 고왕 때 > 금강이남 지역을 백제가 차지함으로 고대국가 백제에 속하고 그 후 백제 도성이 금강 연안인 웅진성과 사비성으로 옮겨지며, 군산지역의 12개 지역에서 발견된 백제 식 돌방무덤들이. 군산의 백제시대 발전상을 말하고, 마서 량 현. 부부 리 현. 시산 현이 금강입구에 있었고, 기 벌 포, 백강 혹은 웅진 강구라 칭 하였다, 이를 백제시대 기 벌 포, 혹은 백촌 으로 불리던 지리적 중요성 때문에 나당 연합군의 백제 침략 때 첫 공격의 대상이 되어 치열한 전투현장이 되는데, 지금도 당시 처절한 전투 내용들이 전설로 내려오는 우리가 이번에 만들어가는 구불1, 2길 중에 포함 시켜가면서 오성산 전설 또는 천방사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정리해서 여행객의 흥미를 느끼고 바른 역사를 알리는데 집중 노력을 해 오고 있다.
통일 신라 때 에는 전국을 9주로 다스렸다 하는데 전주는 그중 하나였고. 다시 10군이 있었고 그중 하나인 임 피 군<백제의 시산 군>은 함열 현<백제 의 감물아 현> 옥구 현<백제의 마서 량 현> 회 미 현<백제의 부부 리 현>을 거느렸다 한다, 당시의 한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속인 진성 창 터 .창안 성은 구불 3길에 포함 시키고, 농촌이지만 확 트인 느낌을 주는 주변의 나포 뜰 아름 마을, 깐 치 멀 정보화마을과. 대통령상을 받은 상작마을 농악을 연결하여, 도시 사람들의 답답한 마음도 한방에 풀어주면서. 산야를 달리게 하거나. 소리를 지르면서 걸어서, 운동으로 가족과 함께 손잡고, 즐길 코스를 개발하여, 이곳을 다니면서 카메라에 시골 정취를 담아가는 코스이다,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추억을 만들어가고, 성취감을 얻고 건강도 해결하는 그간 홍보가 잘은 안 되었지만, 벌써부터 군산시에서 새로 만들어가는 구불 길 에는, 요지 음 새만 금 때문에 외지에서 밀려오는 관광객들에게 뚝배기 된장. 고추장 맛 처 럼, 천년을 숨겨두었던 풍경들이 홍조 띤 자태로, 주홍색 치마를 입고 얼굴을 가린 소녀처럼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수줍게 여행객들에게, 그 자태를 드려내고 있다,
이는 누군가 너무 촌스럽다고만 여겼던, 이리 저리 구부러지고 수풀들이 우거진, 오늘 가본 구슬 뫼 길은 옥산수원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산들이 마치 구슬처럼 생겼다 해서, 옥산 면 이라는 지명을 갖고 있다한다, 이곳에는 군산 ~ 전주 간으로 이어지는 산업도로가 생기면서 발견된, 하얀 백석인, 돌 들이 발견되어 구술을 만드는 재료로 쓰일 정도로 옛 사람들이, 그 지방 지명으로 만들어 사용했다니, 역사는 말없이 흘러갔지만, 그런 사연들을 마음껏 느끼면서, 오늘 하루 인적 없는 거리와 숲 속 을 다녀보면 좋을 것이다
구불1길 비단강길 과 <금강에 비단처럼 펼쳐진 강변길>
#구불1길(비단강길) - 군산역에서 시작되는 이 길은 여러 명소 중 금강이 주 무대다. 비단처럼 펼쳐진 금강과 인접한 채만식 문학관, 금강철새조망대, 금강호관광지, 오성산, 나포십자들 등을 둘러보다 보면 문학과 역사, 자연과 생태계가 어우러져 여행의 재미를 더 느낄 수 있다. 비록 화려한 볼거리가 기다리는 건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자연과 역사가 있고 도시의 속도를 벗어나 고향의 향기가 가득함이 묻어 있다. 코스: 군산역(내흥동 유적전시관)→진포시비공원→금강체육공원→채만식문학관(관람 무료)→금강호 시민공원(진포대첩비)→금강 철새조망대→생태습지공원→오성산(해발 227m․오성의 묘)→나포십자들→공주산→즐거운 자역학교<총거리 18km․소요시간:5시간25분>
#구불 2길인 (햇빛 길) < 강바람이 불어오는 오성산, 망해 산, 축성산 의 생태가 어울 어 진 산길>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망해산 능선을 걷다보면 어느새 얼굴에 땀으로 흠쩍 젖어 있다. 하지만 능선에서 금강을 바라보면 마음이 트이고, 가끔 불어주는 강바람은 익어 버릴듯한 몸과 마음을 식혀준다. 이후 만나는 축성산 또한 무성한 나무로 그늘길이 열리는데 이때의 행복은 꼭 한번 누려보아야 그 참맛을 알 수 있단다.
이곳은 산에 느끼는 강바람을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비로소 마음이 넉넉해짐을 알 수 있다. 코스: 즐거운 자연학교→백인농장→불주사→망해산→축성산→축산제→임피초교(노성당)→임피 향교(채만식도서관)→채만식 생가터→임피하수 처리장→서해 황토방→깐치멀 농촌체험마을 <총거리: 13.7km․소요시간:4시간10분)
▣- 구불2-1길 - 미소길 미소길(米疏路) 오늘 주로 ‘임피’로 간다. 익산역버스정류장에서 27번 버스. 그러나 시간이 맞지 않아 28번-호원대 가는 것을 타고 임피향교, 채만식 생가터 등 역사와 문학이 어우러진 임피에서 시작해 남산과 호원대를 거쳐 근대역사자원인 임피 간이역 등의 임피면과 3층 석탑의 전설이 있는 탑동마을, 갈대와 어우러진 탑천, 넓은 들을 끼고 흐르는 만경강을 통해 대야로 이어지는 길이다.
코스정보 총길이 :18.7km소요시간 :약 5시간 거리 :1. 채만식생가터(0.4km) 2. 남산약수터(2.9km) 3. 남산(3.5km) 4. 호원대학교(4.7km) 5. 호원대학교(5.3km) 6. 임피역(7.1km) 7. 탑동마을(8.7km) 8. 라궁마을(9.7km) 9. 원두마을(12.6km) 10. 신창마을(15.0km)
구불 3길 큰들 길< 우수 브랜드 쌀을 생산하는 대야 큰 들판 >
#구불3길(큰들길) - 소비단체가 뽑은 최우수브랜드 쌀인 ‘큰 들의 꿈’을 재배하는 큰들 즉, 대야들을 가로질러 보면 두 발로 느끼는 이 땅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고봉 산을 넘은 후 만나는 채원병가옥의 아름다움은 눈길을 사로잡고. 최호장군유지, 진남정, 발산리 유적지 등 과거를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도 가질 수 있다. 또한 대야의 멋진 산책로를 걷다보면 낭만과 오묘한 멋이 잔득 묻어나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코스: 깐치멀 농촌체험마을→창오 초교(도예원)→고봉산→채원병 가옥→진남정→최호장군유적→발산초교(발산리 유적지)→대방마을선돌→오줌바위약수터→대야면사무소→군산남 고교→옥산맥섬석 허브한증막 <총거리:18km․소요시간:5시간25분>
구불 4길인 <원시림처럼 자연 그대로 숨쉬는 옥산수원지>
#구불4길(구슬뫼길) - 마치 원시림처럼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군산저수지 일명 옥산저수지는 여러 갈래로 나 있는 길 모두가 정말 한국적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은 자연이라서 더 좋다. 창한 숲과 나무, 산새와 다람쥐들을 벗하며 걸을 수 있어 재미가 있다. 옥산이라는 지명이 말하듯 저수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산들이 마치 구슬 같다. 이 수원지는 99개 굽이로 이루어져 있고,
청암산 이라고도 불리는 샘 산 정상 의 높이는 214미터 이다, 우리는 오전 한나절을 이 사연들을 찾아 일행들과 함께 했다. 샘 산 정상에서 바라보니, 금강 물줄기가 아름답게 보이고, 만경강, 푸른 물이 눈앞에 들어왔다. 증 석 리 쪽을 바라보니, 강을 막아서 개간한 금 광 리 옥성 앞뜰과 만경 강 뚝 이 눈에 들어왔고 멀리 보이는 비만 오면 가슴을 태우게 했던, 수산 방조제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120만평을 논을 경작 했다는, 이 지방 거부 남 내 리 문종구씨 집 앞을 지날 때 거의 폐허가 되어 있는, 황성 옛터처럼 만들어진 부잣집 12대문과 정자의 기울어져가는 기와 장들과 아래 행랑채를 바라보면서, 지나던 길과 개정병원 쌍 촌 이 영춘 박사님의 별장을 지나서 지금도 밤에만 나타나는 반딧불의 보고
장군 봉에 이르니 오후가 중반인 시간이다. 오리 알 약수터에서 젖은 등산복을 쳐다보니 소금기가 전혀 가시지 않았다 이렇게 역사와 자연이 어울 어 진 구불 길 마다 주저리, 주저리 열린 그 사연을 어떻게 다 말할까.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쌍천 이영춘박사의 흔적도 이 곳 도보 길에서 만날 수 있다.
코스:옥산맥섬석 허브한증막→문종구 가옥→우동마을→반디불이와 나비의대자연→척동마을→청암산→옥산면사무소→돌머리 마을→개정동사무소→이영춘가옥→장군봉→오리알 약수터→바지런철쭉 분재원→군산역<총거리:16.8km․소요시간:5시간50분)
#- 구불5길 - 물 빛 길;
자연생태가 잘 보전되어 있는 옥산저수지와 백석제를 둘러 볼 수 있고 역사가 숨쉬는 옥구토성 성곽을 걸으며 장수를 기원하고, 햇살 받은 물결이 아름다워 은파라 불리는 도심 속의 여유로운 쉼터인 은파관광지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코스 정보 총길이 :18km소요시간 :약 5시간 35분 ‘밝고 환한 기운’이 넘쳐나는 현재와 미래의 주인공들의 재잘거림과 밝은 표정으로 걷는 수 많은 군산 시민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면서 행복한 주행을 하여 청암산(샘산, 115m)에 도착한 후, 시원한, 바람과 벗하여 물빛길 주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고...무한한 행복감을 만끽하면서 여유롭게 주행하여 원점으로 되돌아 온 후, 은파유원지 음식점단지에 위치한 두메골에서 보리비빔밥 정식과 다양한 먹 거리를 드는 행복감을 만끽한 후, 은파 저수지의 잔잔한 물결을 마음속에 담고 마칠 수 있다
#- 구불6길 - 달밝음길-군산항에서 시내 쪽으로 걸음을 돌리면 구불 6길이다. 구불 6길에서 꼭 들려야 할 곳이 있다. 경암동 철길 마을. 기찻길과 바투 붙어 있는 일렬의 판잣집이 아득하고 서글픈 풍경을 자아내는 마을이다. 이곳은 허다한 영화와 CF가 예서 촬영됐다. 2.5㎞에 달하는 이 철길 마을이 더 아릿한 건, 이 기찻길 옆 판잣집에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어서다. 주민들의 마뜩 잖은 시선이 자꾸 걸려 오래 카메라를 들고 있지 못했다.
1944년 철길이 놓였고,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경암동 철길에서 나와 금강을 따라 걸으면 구불 1길과 만난다. 금강 제방을 따라 18.7㎞나 이어진 길이지만, 강바람 맞으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탐조 회랑을 지나 상류 쪽으로 걷다 보면 제방 위에 세운 정자가 나타난다. 이 정자 주변은 11월 하순∼12월 중순 해질 녘에 걷기를 권한다. 가창오리 수십만 마리가 바로 머리 위를 날아서 지나가는 장관이 펼쳐진다.
#- 구불6-1길 - 탁류길; 백릉채만식 소설 탁류를 배경으로 군산원도심 중심일제강점기 시대역사흔적을통해 우리선조들의 애환을 경험하며 과거를 되돌아보는 길이다 6,1km 102분소요 구불 6-1길은 채만식(1902∼50)의 소설 『탁류』의 무대가 되는 군산항 주변 구시가지 골목을 헤집는 길로, 탁류길이라고도 불린다.
구불 6-1길은 문화재청이 근대역사 문화거리로 지정한 지역과 대체로 일치한다. 군산항을 끼고 있거나 지척에 두고 있는 월명동·장미동·금광동·신흥동·해망동 일대 거리는 아직도 일본식 건물이 곳곳에 남아있다. 파란 대문과 붉은 담장이 인상적인 신흥동 일본식 가옥(구 히로쓰 가옥·사진)은 영화 ‘타짜’와 ‘장군의 아들’에 나온 그 집이고, 키 작은 가로수가 늘어선 낡은 골목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촬영으로 유명한 거리다
문화재청은 이 거리에 있는 일본식 건물을 근대문화재로 지정했고, 문화 체육관광부는 이 일본식 거리를 걷는 구불길을 포함한 금강 하구길을 ‘이야기가 있는 문화 생태탐방로’로 선정했다. 구불 6-1길을 걷다 보면 눈에 익은 건물이나 거리가 자주 나타난다. 그럴 수밖에. 이 후미진 거리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됐다.
#- 구불7길 - 신시도길
답사코스 : 신시도주차장-월영재-월영봉-미니해수욕장-대각산 바닷길-전망쉼터중식(도시락) -은골저수지-등산로입구-안골저수지-논갈림길-199봉해안길-신시도주차장
#- 구불7-1길-새만금길/ 검푸른 파도를 헤치고 인간이 만든 바다속에 만리장성의 길 가력도-신시도-야미도 구간이다
#- 구불8길 - 고군산길.
고군산길은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를 걷는 코스 입니다. 전체 21.2km 구간이며 A, B 두 개의 코스로 세분화하여 안내하고 있습니다.A 코스는 선유도해수욕장에서 출발하여 선유3구, 장자도, 대장도 등을 둘러볼 수 있으며 B 코스는 선유도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무녀도, 선유1구, 선유봉, 선유도해수욕장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와 근대역사 보존지역관광
이곳은 최근 들어 우리나라 역사 교육현장으로 각광을 받는 군산시립 근대역사 박물관과 조선은행. 나가사끼 18은행. 옛 군산세관. 진포대첩 테마 해상공원과 히로쓰 가옥 .동국사. 해망굴 일본인 구마모토농장이었던 이영춘가옥. 발산리 시마타니 농장 정원 등
일제 수탈의 관문으로 개항한 지 111년을 맞는 도시 군산에 일제의 흔적이 없는 싱싱한 유원지의 밤길을 걷는 것은 편안한 마음이 든다. 무려 6km 전 구간을 산책하는 것으로 군산 입성의 신고식을 대신한 밤이다.
군산이라는 도시가 항구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배후의 넓은 곡창지대 때문이다. 김제, 만경평야 등 호남 곡창의 쌀과 자원을 실어 나르기 위한 목적으로 발달한 군산항은 개항이후 한해 200만석 이상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날라 부산을 제외하고는 가장 번성하였던 곳이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인 1912년 호남선의 지선으로 완공된 군산선이 수탈의 동맥이 되었고 그런 흔적은 지금도 군산 시내를 관통하는 여러 갈래의 철도길이 남아있는데서 알 수 있다. 그런 역사의 현장의 중심은 군산 내항 주변이다. 이른 주말 아침의 내항 주변에는 대로변으로 분주히 차만 제 갈 길을 가고 있을 뿐 사람그림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곳 내항 부둣가의 새로 조성 된 작은 조형물들이 있는 백년광장 주위는 당시의 역사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백년광장에 서서 볼 때 바로 좌측에 군산 최초의 은행 건물로 1907년 축조된 나가사키18은행이 있다. 이 건물은 2008년 2월 28일에 국가등록문화재 제372호로 지정되었는데 본관과 창고, 사무실 등 3개 건물(500여㎡)로 구성돼 있다.
18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일제 강점기 총독부가 전국에서 18번째로 허가해준 은행이라는 뜻으로 일제 당시 농민들에 대한 수탈의 최전선을 자임하여 일본 사업가들에 의한 미곡 반출, 토지 강매 등이 자행되었던 곳이다. 조선 민중들에게 있어 은행은 정치적 수단을 제외한 가장 강력한 통제 창구 역할을 했을 것이다. 대개가 소작농이었던 호남지방 민중들로부터 싼값에 곡식을 수탈하고 노동력 또한 헐값에 사는 방식으로 챙긴 잉여금이 일본 제국주의의 선봉에 선 사람들의 수중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나가사키 18은행에서 곧장 걸어가면 1908년 대한제국 예산으로 건립된 (구)군산세관 본관이 있다. 1899년 군산항을 개항한 조선은 광무 3년(1899) 인천세관 관할로 군산세관을 설치했으며, 1906년에는 인천세관 군산지사를 설립하고 1908년에 8만 6천 원의 대한제국 자금으로 이 청사를 준공했다. 독일인이 설계한 이 건물은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을 수입하여 유럽양식으로 건축했는데, 한국은행 본점 건물과 같은 양식이다.
바깥벽은 붉은 벽돌이지만 내부는 목조로 건축했으며, 슬레이트와 동판으로 지붕을 올리고 그 위에 세 개의 뾰족한 탑을 세웠다. 이 건물은 건축사적 의미 외에, 곡창 지대인 호남지방에서 쌀 등을 빼앗아 가던 일본 제국주의의 체취가 묻어나는 또 다른 현장이다.
다시 백년광장으로 와서 보면 왼편 큰길에 1923년 축조된 (구)조선은행(국가등록문화재 제374호, 2008년 7월 3일자) 건물이 폐허처럼 버티고 서있다. 뒤에서 보면 무너져 내리고 있는 함석지붕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데 최근까지 유흥주점으로 사용된 이유로 뒤뜰에 여기저기 나뒹구는 술병이나 빛바랜 네온사인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건물은 일제 식민 지배를 상징하는 대표적 건축물로 채 만식의 소설 ‘탁류’에 등장하기도 했으며 광복 후 한국은행, 한일은행 군산지점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당시 군산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으며 현재 군산에 남아있는 일제 강점기 유물 중 가장 상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바닷가로 눈을 돌리면 뜬다리라 불리는 두개의 부잔교가 눈에 들어온다.
밀물 때면 다리가 물위로 떠오르고 썰물 때는 낮아진 수면만큼 내려가는 구조의 다리로 육지의 곡물을 배 위에 쉽게 실을 수 있기 위한 장치이다. 당시 일본인들이 수집한 농산물을 실어내기 위해 항만은 일본 배들로 가득 차 있었고 이에 일본통감부는 한국정부에 항구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항만건설비를 구한말 조선 정부에 떠넘겼다.
이 시기의 수출 물목은 일본인들이 수집한 농산물이었고 수입품은 대개가 이들이 만들어온 공산품이었다. 그래서 무역량이 크게 늘자 항만은 일본 배들로 가득 차 있었고 기다리기 일쑤였다. 이런 이유로 일본통감부는 한국정부에 항구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항만건설비를 달라고 했다. 이에 1905년 군산항을 늘리는데 필요한 공사비를 8만6천 원을 들여 근대항으로 만드는 첫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1926년∼1933년까지 7년간에 걸쳐 항만을 늘리는 일이 계속 되었고 이때 부잔교 3기를 설치하여 3천 톤급 배 3척이 배를 댈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창고 3동을 만들어 쌀 25만 가마를 한꺼번에 보관할 수 있게 하였으며 항구 뒤로는 철도를 연결하여 하루 1백 50량의 화차가 움직일 수 있었다. 지금도 쓰이지 않는 철도선이 역광을 받아 그날을 증명하듯 상흔으로 남아있고 인근에는 오래된 창고들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침나절, 사람의 그림자를 거의 찾을 수 없는 황망한 내항 바닷가를 어슬렁거리는 일이 몹시 쓸쓸하게 느껴졌다. 뜬 다리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자리를 떠서 동국사 가는 길에 해망굴(海望窟, 국가등록문화재 제184호), 앞에 차를 세운다. 해망굴은 군산항의 제3차 항구 구축 공사 기간이었던 1926년 10월 16일 (구)군산시청 앞 도로인 중앙로와 수산업의 중심지인 해망동을 연결하고자 만든 반원형 터널(높이 4.5m, 길이 131m)이다.
이 지역은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교통의 요충지였던 곳으로 수탈의 편리를 위한 수단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은 이런 시설을 조선 근대화를 위한 일본의 시혜였다고 주장한다. 현재 군산시 해망동과 금동을 연결하고 있는 이 굴은 한국전쟁 중에는 인민군 부대 지휘소로 사용해 연합군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요즘 들어 해망굴 인근의 올망졸망한 가게들은 자주 영화 촬영지로 각광을 받아 전국 각지의 사진 메니아들을 불러들이는 코스가 되었다. 지금은 거미줄과 자물쇠로 문이 굳게 닫힌 채 폐가처럼 변해 있는 오랜 세월의 때가 뭍은 간판이 돋보이는 ´영자미장원´등이 대표적이며 지금도 문을 열고 있는 임시 공간 ´방편´등도 들러보면 일제 건축물의 내부 모습을 알아 볼 수 있다.
더구나 해망굴 위 언덕으로 오르는 ´물고기 길´은 마치 통영의 동피랑 마을이나 부산 영주동 산 위의 마을, 혹은 서울의 낙산과 닮은 곳이다. 좁은 길을 따라 시간을 거스르는 듯 한 분위기와 서민들의 체취를 느끼며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마음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동국사 (국가등록문화재 제64호)를 찾아가는 길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내항에서 구시가를 연결하는 큰길을 따라 가면 곳곳에 동국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기 때문이다. 동국사는 1913년 건립된 전국 유일의 일본식 사찰로 크게 대웅전과 요사채 두 동의 건물로 이루어져있다. 또한 절 마당에는 일본식 동종과 십이지신상이 놓여있는데 매우 이질적이다. 처음 이 절의 이름은 금강선사(錦江禪寺)였다.
금강선사는 1909년 일본인 승려 내전불관(內田佛觀)이 군산에 포교소를 개설하면서 창건한 조동종(曹洞宗) 사찰이었는데 해방 후 김남곡 스님이 인수 동국사로 개칭하였다. 이 절의 역사에 있어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특히 시인 고은 선생을 불제자로 인도한 절로 유명하다는 것이다. 동국사는 일본의 압제와 더불어 일본식 불교도 같이 이 땅에 들어온 현장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일본 신사의 냄새가 느껴지는 듯 거부감이 없지 않으나 마당가에서 대중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스님 한 분을 발견하고는 비로소 절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옆문을 통해 일본식 마루를 지나 대웅전으로 들어가 보니 불상만은 한국에서 조성된 문화재임을 확인한다. 대웅전에 자리한 석가삼존불은 효종 1년(1650년)에 조성한 것으로 좌로부터 아난존자입상, 석가모니불좌상, 가섭존자입상으로 이루어졌으며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과장되게 위압적인 일본식 절집 지붕이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절을 나서는데 절 입구 기둥에는 시주자 이름이 적혀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의 흔적이라면 그가 수탈자였던 일본인들의 앞잡이 노릇을 지나치게 한 사람이 아니었기를, 바라건대는 같은 민족의 아픔을 부처님 앞에 빌러 왔던 사람이었기를 상상해본다.
동국사를 내려와 큰 길 하나를 건너면 신흥동이 있고 그 아래쪽이 월명동이다. 이 지역은 군산 구시가 부근으로 당시 일본인 마을로 조성되었던 곳으로 지금도 일제 당시의 건물들이 100여 채 이상 남아있다. 본정통(해망로) 전주통(영화동) 명치정(중앙로1가) 강호정(중앙로2가)이라는 지명들이 이때 등장한다. 사실상 ‘군산 속의 일본’이 만들어져 개항당시 상시거주 일본인이 77명에서 1940년에는 8391명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그 많은 일본식 집들 중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어 지금도 저택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고 한 건물이 여러 채로 나누어졌거나 구조가 바뀐 것들도 뒤섞여 있다. 그러나 한 눈에 보아도 이곳이 상당한 일본식 거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중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 일본인 포목상 히로쓰 게이사브로의 저택인 신흥동 (구)히로쓰가옥(국가등록문화재 제183호)이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곳이다. 히로쓰는 임피 부근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건물의 형태는 근세 일본 무가(武家)의 고급주택 양식을 띄고 있다. 목조 2층 주택으로, 지붕과 외벽 마감, 내부, 일본식 정원 등이 건립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고 한다.
이렇듯 많은 일제의 탄압과 함께 만들어진 증거들이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와 현재의 대한민국이 그런 과거의 오욕마저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포용력이 커졌다는 말일 것이다. 천막에 가려 고쳐지고 있는 저 가옥도 원형이 손상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히로쓰가 임피면에서 부를 축적하여 군산에 개인 금고를 운영할 정도였다는 것에서 미루어 보듯이 임피면에는 또 다른 일제 식민지 수탈의 현장이 남아있는데 바로 임피역사(국가등록문화재 제208호)가 그것이다.
임피역사는 1936년경 군산선의 철도역사로 건립된 건물로 전라남북도의 농산물을 군산항을 통하여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요한 중간기착지로서 수탈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임피역사는 당시 소규모 간이역사의 전형적 건축형식과 기법을 잘 보여주며, 원형 또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전라도에서 일제의 수탈은 구한 말 이후 조선 백성의 노동력에 의해 생산된 미곡 위주였지만 궁극적으로는 히로쓰처럼 농장주가 되어 직접 수탈의 최전선에서 부를 축적한 부류들이 많았다. 이는 평야가 있는 곡창지대를 중심으로 전국각지에서 보편화 된 수탈의 양식이었다.
어릴 때 부산 외갓집 가는 기차를 타고 가면 김해평야 인근에도 이런 일본인 농장주의 집이나 창고들이 즐비했었고 부산 내항 인근에 해당하는 수정동부터 중앙동에 이르기까지는 히로쓰 가옥과 같은 저택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집들은 80년대를 지나면서 거의 다 뜯겨나가 지금은 군산이나 목포지역을 제외하고는 그 흔적들을 찾기 힘들다.
농장주로 전국적인 악명을 떨쳤던 이가 이곳 군산에 있었다. 그는 구마모토라는 인물이다. 그는 군산에서 26번 국도를 타고 가다 이내 닿는 개정면 일대의 평야를 비롯해 전국 각지의 땅을 소유한 당시 조선 지역 최대의 지주였다. 개정면의 넓은 들판을 바라보는 언덕 위에 그의 별장이었던 가옥 한 채가 남아있다.
이 집은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쌍천(雙泉) 이영춘 박사가 이용했다는 의료사적 가치 때문에 이 영춘 가옥(지방문화재 200호)이라고 이름 붙어져 있으며 지금은 군산보건대학 교정 내에 위치해 있다. 이영춘 가옥은 현재 군산시에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 시절의 건물 중에서 가장 보존이 잘된 건물로 구마모토가 1920년대에 건축하였는데, 당시 조선총독부 관저와 비슷한 건축비를 들여 지은 별장이다. 건축학적으로 외부 형태는 유럽 양식을 띄며, 평면 구조는 일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양식의 응접실과 한식의 온돌방이 결합된 한식, 양식, 일식의 복합 건축양식으로, 우리나라 근대 주거문화가 들어오는 양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건물이라고 한다. 슬슬 집 주위를 돌며 보니 창 안쪽으로는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어 지금도 누군가가 살고 있음을 짐작케 하였지만 문이 잠겨 내부가 궁금하다는 생각만 할 뿐 어쩔 도리가 없다. 다만 아래 교정에 서 있는 이영춘 박사의 흉상을 보면서 잠시 고개를 숙인다. 이런 현장은 또 있다.
이 길을 계속 따라 익산, 전주 방향으로 가면 차로 5분 거리에 개정면 발산리가 나오고 그곳 초등학교 뒷마당에는 제 자리를 잃어버리고 몇 십 년 째 타지의 바람을 맞고 있는 우리의 문화재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발산리 5층 석탑(보물 제276호)과 발산리 석등(보물 제234호)을 비롯하여 여러 기의 부도와 석등, 묘지를 장식하는 인물상 등이 산재 해있다. 석탑은 원래 완주(完州) 봉림사터에 있던 것으로
전체적으로 잘 균형미가 있는 고려탑 으로 간결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역시 완주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온 석등도 간주석 돌기둥이 둥글게 깎인 형태의 것으로 표면에 구름 속을 날아가는 용의 모습을 새겼는데, 이러한 형태는 우리나라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유산이다. 이런 것들이 왜 이곳에 있는가?구마모토와 함께 군산지역의 대표적 농장주의 한 사람이었던 시마따니 야소야가 일본으로 반출하려고 옮겨 놓았다가 미쳐 실어가지 못한 것들이다. 제자리를 잃고 객지로 나온 탑과 석등 등이 일본 땅을 밟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현장이다 .이러한 석조유물들이 자리한 바로 곁에 시마타니금고(국가등록문화재 제182호)가 있다. 역시 시마타니 야소야에 의해 1920년대에 만들어진 금고용도의 건물이다. 이 건물은 농장의 각종서류 및 현금, 귀중한 골동품을 보관했던 장소로 일제에 의한 우리문화재 약탈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굳건한 철문의 두께가 웬만한 금고의 그것보다 두텁고 철통같은 창살 사이로 비어있는 금고 내부를 본다는 것이 뭔가 허망하다는 느낌을 준다. 깊은 금고의 무채색 벽을 타고 음흉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겨울바람이 그 속으로 숨는다.다시 전주 쪽으로 가야한다. 26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임피면이 나오고 전주로 향한다. 가는 길은 봄이면 하동 십리 벚꽃에 못지않은 꽃길이 열린다는 전군간도로(全郡間道路)다.
이 벚꽃 길은 진해의 그것처럼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수탈의 길에 일장기 흔들 듯 벚꽃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그들은 자긍심을 느꼈는지 모를 일이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면 착취와 억압으로 수탈당하던 조선 백성의 눈물처럼 꽃잎 분분하였을 것이다. 우연히 들러보지 않은 도시에 대한 궁금함 때문에 계획에 없던 군산 방문과 답사로 하룻밤과 한나절을 족히 보낸 시간이지만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한다. 군산에서 멀어질수록 어제 밤 지방도로를 거쳐 군산으로 들어오던 길이 이 국도였음을 알아챈다. 멀리 키 큰 전신주는 겨울 햇살 받고 있고
빈 들판에 새떼 오르는 한낮, 이 들판의 오곡이 여물어 갈 가을 무렵 이 동네가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원한다. *군산에는 이 외에도 많은 근대 유적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들로는 군산지역 식수공급을 위해 연인원 10만 명이 동원돼 1912년 착공하여 1915년에 준공하였다는 (구)수원지제방(국가등록문화재 제207호)과 1912년에 축조되어 현재까지도 초기 등대의 원형을 잘 유지한 채 사용되고 있는 어청도 등대(국가등록문화재 제378호)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