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14:2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출애굽 운동에 있어서 유다는 가장 유력한 지파니 만큼, 여기서 온 이스라엘을 대표한다. "성소가 되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계셨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이것은, 그 상반절의 의미를 좀 다른 형식으로 나타낸 것 뿐이다.
시 114:3
바다는 이를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며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던 첫 걸음에, 그들로 하여금 이적으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그 마지막 걸음에도(가나안 접경에서) 이적으로 요단강을 건너게 하셨다. 그것은 분명히 영적 교훈을 가졌으니, (1) 그들이 애굽에서 지은 죄 때문에 홍해에서 세례를 받음(고전10:2)이며, 또 광야에서 지은 죄 때문에 요단에서 세례를 받음이다. (2) 그들이 광야의 모든 난관들을 만나기 전에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인자를 체험함이 필요하였던 고로, 하나님께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신 기적을 보이셨고, 또 가나안 정복의 어려운 일을 당하기 전에도 그런 체험이 필요하였던 고로, 다시 요단강을 육지 같이 건너는 체험을 하게 하셨던 것이다.
시 114:4
이 귀절은,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에 땅이 진동하고 연기가 떠 오른 사실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출 19장 참조). 그 때에 대자연도 하나님의 장엄하신 임재에 대하여 경외(敬畏)를 표하여, 임금의 행차에 예포(禮砲)를 터뜨리듯이 불과 연기로써 그의 장엄을 축하한 것이다. 이 자연계의 약동은, 조물주의 초자연적 위세(威勢)와 능력에 끌리어 나타난 진동이다. 쇠가 자석(磁石)에 끌리움 같이, 대자연은,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동(動)한다.
시 114:5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찜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찜인고 - 이와 비슷한 물음이 아랫 말씀에 또 나왔으니 그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무의식한 하해(河海)나 산악(山嶽)의 답변을 구하려 함이 아니고, 간접적으로 인간들의 양심적 반성을 재촉하려 함이다. 이것은, 무의식한 하해와 산악들도 저렇게 하나님의 기사(奇事)를 축하하였고 전률(戰慄)하였는데, 인간들이 그것을 느낌에 있어서 심각하지 못하고, 미구(未久)에 잊어버리느냐 하는 암책(暗責)이다.
시 114:8
저가 반석을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 현대의 여행자들은, 전설(傳說)대로 시내산에서 모세의 생수암(生水岩)이라는 아주 큰 돌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암석은 화강암(花崗岩)인데, 그 주위에 깨진 자리가 많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한 때에 샘물이 터져 흘러 나온 구멍들과 같다. 그러나 그것이 확실히 모세가 쳐서 생수를 낸 바위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