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루떡을 한 접시 가져온 이웃이 있었다.
아파트 같은 동 주민이었다. ‘이게 웬 떡이야’. 떡을 유난히 좋아하는 난 속으로 무척 반겼다. 웃음 띤 후한 인심 얼굴의 이웃 아주머니였다. 공짜 떡이니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 주민은 ‘함께 사이좋게 살아보세’의 메시지를 떡에 담아 갖고 온 것이리라. 말 안 해도 알게 된다. 떡으로 소통을 시도한 그 마음이 푸근해 보였다. 이웃사촌으로 살자는 인심을 한 그릇에 담아 들고 온 그분에게 가슴이 따스해 짐을 느꼈다. 찰떡이 아닌 시루떡을 돌린 것은 액운을 쫓는 의식을 겸했을 거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 용기에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핵개인 시대이면서 디지털 미디어로 이야기하는 때라서 인심에 무뎌지고 살았다. 비대면 시대를 지나면서 이웃과의 얼굴 접촉에 꺼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이웃도 떡 한 접시로 인연을 맺자는 호의를 베풀기엔 어느 정도 결심이 생겨야 가능했을 거다. 그런 인간관계 즉 삶의 연결에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서로 배려하고 인내하고 사이좋게 살자는 감정을 나누는 데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는 이유다.
그런 뜻에 딱 맞는 단어가 불교의 인연이고 유교경전, 주역에서 말하는 궁합일 듯 싶다. 부모가 젊은 남녀 자식을 결혼시킬 때 보던 궁합의 개념을 난 다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두 사람의 감정과 생각, 가치관 행동 등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궁합이라고 본다. 그것은 한 개인에 대해 살아있는 감정의 덩어리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궁합이 그 사람 자체는 아니지 않는가. 그것은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단순한 행동, 처세술 같은 건 아닌가. 그렇다면 궁합은 후천적이어도 된다. 선천적이거나 타고난다고 여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는다.
젊은이들이라면 궁합에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결혼 40년 차인 난 중매로 3개월 만에 골인했다. 다섯 살, 두 살 손녀 손자를 둔 딸은, 결혼 중매회사에 돈을 주고 짝을 찾았지만 실패하고 미팅 앱으로 만나서 잘 산다. 사위는 딸의 웃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청혼했다고 한다. 딱 하나! 그게 궁합이었다.
S 방송국에서 하는 젊은이들 짝을 찾는 프로가 있다. 서로 좋아하는 음식, 종교. 직업, 성격. 취미 등을 은근히 서로 맞추어 본다. 인공지능 시대에 취미를 맞추어 보고 성격이 맞아야 호감을 보이고 그제야 사랑을 나누는 젊은이들도 있는 걸 이해하지만 한편 궁합이라는 거에 얽매이는 거 같아 안타깝다. 성격 차이를 인정하고 취미나 종교가 달라도 첫 느낌이 오면 다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하는 젊은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점쟁이는 싫어하겠지만 말이다. 빈부 차가 크고 예비 신랑과 신부 나이 차가 10살이 넘지만 천생 연분이라며, 부모님 반대에도 죽자 살자 결혼하겠다는 젊은이에게 궁합은 의미 없다. 인생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이것저것 다 맞아야 결혼한다는 건, 단조롭고 지루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인가. 차라리 깊은 산으로 들어가 수십년 묵은 산삼을 캐러 다니는 심마니가 되는 게 더 낫겠다.
홍어삼합, 미나리에 돼지고기, 와인에 치즈처럼, 찰떡하면 궁합이 떠오른다. 바위에 달라붙는 따개비 같은 접착력이 연상된다. 차지고 끈끈하며 꽉 달라붙는 성질이다. 남녀 간의 조화, 화합의 인연이 그런 상태라면 좋겠지만 늘 그런 이상적인 관계만 기대할 수는 없다. ‘궁합은 만들어가는 것이지 이미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라는 신념을 갖을 수 없을까.
「티파니에서 아침을」 영화 제목을 따서 「카페에서 찰떡을」 간판으로 내건 별난 카페를 상상해 본다.
( 「찰떡과 커피의 만남.」을 써 붙인 벽에는 ‘궁합은 후천적!입니다. 이제부터 도전하세요’라고 쓴 구절을 붙인다. 화이트데이, 여기선 발렌타인데이에 포옹하며 찰떡궁합을 만들어 가는 이벤트 퍼포먼스를 자주 한다. 한 쪽 창문에는 ‘찰싹 달라붙으리라. 옆의 연인에게 바싹 다가가서 찰떡을 입에 넣어주며 아이러브 유라고 말해보세요” 이런 구절도 붙인다. 또 벽에는 원앙새 두 마리가 찰떡을 입에 물고 있는 그림을 붙여 분위기를 띄운다)
이런 카페가 나타나 소문이 미디어에 퍼지면, 결혼 10주년 30주년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고객도 유치할 수 있다. “주는 자에게 복(福)은 돌아오는 법이다" 복은 재순환한다. 나도 이사를 가면 같은 동 아파트 주민에 찰쌀떡 한 접시를 돌려야겠다. 그 접시에는 ’찰떡궁합의 이웃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쪽지도 동봉하고서...
(2024년 6월 18일 11.1매)
첫댓글 고사떡을 돌리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네요. 요즘은 사라진 풍경인 줄 알았더니 알퐁소 선생님의 마음 안에
따뜻한 이웃이 들어왔네요. 지나가다가 <카페에서 찰떡을>이라는 간판이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 구경해야지.
그 상상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알퐁소 선생님,
요즘에도 이사 왔다고 찰떡을 돌리는 이웃이 있다니 정말 고맙고 반가운 일이네요. 찰떡에 대해 다양한 비유, 궁합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서로 잘 맞는 음식 궁합, 남녀 간의 궁합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우리 모두 찰떡궁합의 이웃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상상력이 넘치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어요.^^
만약 안홍진 선생님의 별난 카페가 생기면 꼭 가볼께요. 궁합은 선생님 말씀대로 지금은 참고 사항일 뿐인게 분명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