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와 AD로 나뉜 나의 삶 ---------------
2021년 3월 24일에 세브란스 병원예약을 했습니다.
병원에 크게 기대를 하지않습니다.
그런데 집안 어르신들이 너무 걱정을 하시고 진료받기를 바라시니 제
고집만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ㅠ.ㅠ 나를 걱정해 주시고 기도해주시는
어르신들의 마음에 보답을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2006년에 배에 혹이 주먹만하게 잡혀서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와 피검사 소변검사 CT를 찍었습니다.
이것저것 검사하면서 몸도 많이 힘들고 지치고 또 의사선생님의 절망적 진단을 듣고 어떠했는지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ㅠ.ㅠ 저는 겁두없이 의사선생님께 "약을 먹을까요?! 아님 수술하면 되나요?!" 라고
대수롭지않은듯 여쭈어 보았어요. 의사선생님은 내가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조금 건방진듯한
말투에 기분이 언짢으셨는지 단호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약이나 수술로도 치료가 불가능 하다구요.
우선 소변에서 단백뇨가 많이 나오니 그 약은 먹어야된다고 하셨어요.
물론 치료용이 아니라 보완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드라마에서 봤던 그 대사.. 온세상이 노랗게 보이고(정말 세상에 칼라들이 갑자기 보이지 않더라구요.ㅠ.ㅠ)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5분도 안되는 거리를 걸을 수 조차 없었어요.ㅠ.ㅠ 온 몸이 땅으로 잡아당겨졌습니다.
간신히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온 후 천장만 바라보고 한동안 집밖을 나오지 않고 울기만 했어요.
그때 제게는 돌봐 줄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요양원에 계신 엄마
그리고 수원에서 연년생인 어린 아들둘을 키우며 살림하는 허약한 동생ㅠ.ㅠ
이혼하여 나오면서 상처 준 우리 아이들이 전부였어요.
그냥 방에서 울기만 했어요. 처음엔 억울하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하고 분노가 일기도하고
절망스럽기도하고 무섭기도하고 그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알 수 없을 꺼예요.
잡을 지푸라기조차 하나도 없는 망막하고 깜깜한 느낌 그 자체였어요.
평소 그렇게 즐겨 듣던 발라드 곡을 들을 수가 없었어요. 틀기만 하면 죽음의 공포가 새록새록 올라왔어요.
얼마나 그 노랫말들이 공허한지 위로는 커녕 죽음으로 끄는 것 같았어요.ㅜ.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ccm을 찾아 들었는데 음은 세련된 발라드 풍이었어요.
그런데 가사때문인지 너무 평안하고 위로가 되었어요.~.~;
예전에 들었더라면 따분하고 지루하다고 느꼈을 곡인데 죽음의 그늘을 느끼는
나에게는 ccm 곡들이 생명의 곡들처럼 들렸습니다.
아예 ccm테이프를 하나 사서 계속 반복해서 듣고 들었습니다.~.~;
테이프곡안에 모든 노래가 좋았지만 그 중 딱 한곡은 듣지않고 그냥 넘겼습니다.
바로 '약한나로 강하게'란 곡입니다.
그 가사 내용에 '죽임당한 어린양'이란 구절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듣는것조차 스스로 감당해내기가 어려웠습니다.
ccm노래를 들으며 성경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어려서 성당을 다니고 힘들때
하나님께 습관처럼 기도는 드렸지만 한번도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ccm노래를 들으면서
성경말씀도 읽으면 내게 힘과 위로가 되어 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믿겨지지도 않고
자꾸 의심이 꼬리를 물고 엉뚱한 곳에 내가 희망을 두는 것은 아닐까?!! 신화같은 얘기네..ㅠ.ㅠ
구약초반에는 정말 무섭고 잔인하기까지 하신 하나님이 보여졌습니다. 희망은커녕
내가 느꼈던 하나님과 너무 다른 모습에 깜짝 놀라 성경책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딱히 할일이 없었던 나는 다시 성경을 폈습니다.
마음을 잡고 믿겨지던 안 믿겨지던 성경한권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읽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간혹 구절구절이 내 마음에 벽처럼 막아섰지만 더이상 이것이 진실인가 거짓인가
분별하려는 마음을 접고 그냥 한권 읽기를 목표로 읽어갔습니다.
성경을 다 읽은 후의 나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사링을 깊이 느꼈습니다.
또 하나 깨달은 사실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때까지는 저는 제 나름대로
저를 억울한 편에 속하는 선량한 사람..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자부했었는데요.
성경을 읽으면서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한번도 진짜 사랑을 사람들에게 줘 본적이 없다는
사실을 밝히 알려 주셨습니다.ㅠ.ㅠ 그때까지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요. 그 사람들의 상황이 모두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은 제 마음을 고치시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뵙고 저의 인생도 BC와 AD로 확연히 구분이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은 마치 동굴에서 빛도없이 걸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 동굴을 벗어나
전혀 다른 세상을 발견했고 여기에는 아주 정확하고 밝은 빛이 있으며
다시는 그 컴컴한 동굴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늘 우리곁에 있으셨지요. 우리가 그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다면 여러분의 삶에도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새롭게하소서 모든 간증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동굴속에 있었을때 들었더라면 그 방송은 믿기지도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았을꺼예요.
누구말처럼 그 모든 일들이 우연으로 생각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하신 일로 제게 큰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마태복음 13:11-12]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나님을 만나뵙고 방에만 있었던 저는 밖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살던 곳이 구미 LH주공아파트..
아이들 데려와서 살 것이라고 평수를 넓은데를 구해서 살았는데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증금 1000만원에 월12만원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하나님 손을 잡고 있던 저는 아픈상태이고 혼자였지만 이상하게 두렵지도 막막하지도 않았습니다.
일은 할 수 없었지만 국비훈련을 받으면 한달수당이 나오고 그것으로 생활할 수는 있을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구미는 작은도시여서 국비훈련기관과 기간이 거의 희박했습니다. 옆도시
대구에는 기관도 기간들도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혼자서 대구로 이사간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ㅠ.ㅠ
그 즈음 지역신문을 우연히 보다가이런 광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개인이사짐센터에서 봉사차원에서 이사를 무료로 해주신다구요.~.~;;
전화를 걸어서 말씀드렸습니다. 구미에서 대구로 가는데도 무료이사가 가능한가요?!!
흔쾌히 가능하다고 하셨어요. 바로 대구 북구쪽에 집을 알아보니 전세1000만원
집이 마침 있어서 얼른 계약을 하고 이사도 척척.~.~
대구에서 국비훈련도 접수했어요. 뭘 배워서 취직하려기보다 종일 일을 할수 없는 몸이니
몇시간 훈련받아서 생활하자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수당은 한달에 30만원정도 나왔는데
기름이 한드럼에 20만원이었던 시절 방안 온도를 10도 내외로 유지하고 방안에서도
외투를 입고 이불덮고 오히려 밖에 돌아다닐 때가 덜 추웠고
그때 전기줄 위에 검은봉지를 보고 마지막잎새로 착각하고 울고웃었던 일화도 기억 납니다.~.~;;
캐드교육으로 받았어요. 그때 만난 마음씨 고운 언니들~ 컴퓨터를 배워 본적이 없으셨던 언니
두분은 캐드 배우기를 너무 어려워하셨어요. 언니들 옆에서 캐드를 알려드리는 것이 저의 작은 기쁨이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 품에서 두렵지도 않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배우고 익히고 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 모습에 저를 좋게 보신 훈련선생님이 지도업체에서 캐드아르바이트 3명을 보내달라는
요청에 기어이 저를 끼워넣어 주셨습니다. 조건이 20대 초반에 대졸자였는데 그때 저는 30대 초반에 고졸자였습니다.~.~;
회사안에서 이번 아르바이트생 중에 일하러 온다는 저에 대해서 말이 있었나 봅니다;;;
회사부장님보다 한살 적은 저를 강력하게 추천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았다구요.ㅠ.ㅠ;;
11월 3일 첫출근을 하고 빈자리 아무데나 앉으라고해서 앉았는데
한참 후에 옆자리에 정직원들이 와서 아르바이트생을 한명씩 맡아 일을 지도해주었어요.
그때 지도해 준 사람이 지금 제 남편입니다.~.~;;
출근하던 어느날 아침 그렇게 ccm 테이프 들을때 넘겼던 그 곡 "약한나로 강하게"를 연속해서
2번 기쁘게 소리높여 찬양을 했습니다. 아니 절로 나왔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듣기 거북해하던 죽임당한 어린양이란 구절도 아무렇지않게 불렀습니다.~.~;
가볍게 출근하고 일을 시작하는데 내옆자리에서 일을 가르쳐주던 그 정직원(남편)이
그날 하루 종일 "약한 나로 강하게" 노래만 반복해서 듣더라구요.
평소에도 ccm만 즐겨 들어서 과장님께 종교음악좀 그만 들으라는 소리까지 들었거든요.~.~;;
나도 ccm좋아한다고 했더니 이어폰 한짝을 양보하면서 같이 들으며 일했는데
그 날은 다른 날하고 다르게 "약한 나로 강하게" 곡만 연속해서 듣는 거였어요. 무슨 힘든 일이 있는지..;;
평소에 거부했던 곡이었지만 그날 아침은 연속해서 부르고 온 터라 하루종일
그 곡만 듣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어요..그런데 그런 말을 하면 나를 아주 이상하게 볼것 같아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괜한 오해받기도 싫고 그 시절 내 상황은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없는
막다른 상황(이제 더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병원진단이 내려진 상태여서..ㅠ.ㅠ)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나보다 8살이나 어렸습니다. 막내이모하고 나하고 나이가 같다고 하더라구요.ㅠ.ㅠ
그러면서 은근히 노인네 취급을 했어요.
누나는 그렇게 혼자 늙어가면 폐지를 줍는 독거노인 된다면서 진심으로 말해주더라구요.ㅠ.ㅠ
생각해보니 그사람이 초등학교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더라구요.;;
본인은 지금 배우자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믿음이 좋은 배우자 만나기를 기도한다면서 나중에
방주모양 교회를 본인 고향에 짓고 싶다고 시시콜콜 말해주었습니다.(혹시 제게 마음이 있었냐구요?!!
오~노 원래 말이 많은 스타일이더라구요.~.~;;
그리고 그때는 저를 정말 편한 누나로 생각했습니다.) 이런저런 속마음도 털어 놓았어요.~.~;;
내용중에 본인은 친부모가 없는 양부모슬하에서 자라면서 사춘기때부터 방황을 심하게 했다고..
성인이 된 후로는 자기만의 가정을 빨리 만들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또 아이도 가질 수 없는 비운의 사나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ㅜ
듣는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자주 밥을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조르기의 달인같아서 사줄때까지 전화를 정말 끈지않았습니다.~;;
몇번 밥을 같이 먹으며 우리는 정이 들어갔습니다. 한편으로 그런 형편의 사람을
하나님이 만나게 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아면서 특히 불임인
사실이 내 입장에서는 힘겨운 이 세상 서로 의지하며 살라고 만나게 해 주신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은 양어머니 뵈었을때 살짝 여쭈어 보았다고 하더라구요.
"엄마 연상은 어때?!!"
" 몇살이나 많은데?!!"
"아니예요"
그냥 그렇게 말을 흐리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차마 8살 연상이란 말을 할 수가 없었나봐요.
양어머니의 막내동생과 같은 나이였으니까요.ㅠ.ㅠ
오래전 어느 여자연예인이 이혼후 8살 연하의 남자랑 결혼한다고 했을때 저는
그 여자연예인을 사람으로써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흉을 보았던 사람입니다.ㅠ.ㅠ
가족 분들이나 주위분들에게 떳떳하게 말을 못하고 타향살이 서로 의지하며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딱히 결혼 안하고도 이렇게 서로 의지하며 살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그렇게 사는 것을 바라시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ㅠ.ㅠ
[잠언 16:9]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제 마음 속에 사랑하는 이 사람의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내 몸도 그 사람 몸도;;그런데 마음속에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니
모든 것이 가능하실꺼라는 확실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이를 주세요.~.~
그 날의 그 기도는 가능할까?!라는 의심이 전혀 들지 않는 요동치 않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보통 기도하면서도 우리는 이것이 이루어 질 수 있을까하고 자연스레 의심을 하잖아요.~.~;;)
얼마 후 저는 몸이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아무래도 아기를 갖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본인은 불임인데(그 전에 사귄 몇명의 사람들과 가정의 꿈을 키우며 아이 생기기를 몇번이나
고대했지만 단 한번도 그런일은 생긴 적이 없었으며 특히 나를 만나기 전
사랑했던 여자분과는 아이가 없어 아픈 이별을 했고 그 여자분은 지금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살고
있다고 말해주었거든요.)본인은 불임인데 아이가 생길 수가 없다고..ㅠ
서둘러 병원에 갔고 정확히 임신이라는 말을 해 주셨습니다. 예정일은 2010년 4월이었습니다.
아이아빠는 저를 사랑해주었지만 결혼까지는 차마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8살 연상에다 지병이 있고 이혼했고 아이가 둘이나 있는 사람이고
아무리 친부모가 아니라고해도 26세의 젊은 남자가 감당하기엔 정말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ㅠ.ㅠ
아이아빠가 너무 자신없어하니 제가 혼자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습니다.
아기도 포기하고 서로 각자 갈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수술 전날 둘이 손을 꼭 붙잡고 울었습니다.
아이아빠는 자기에게 주신 생애 첫 아이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라 무척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수술 후 몸조리는 꼭 해주고 싶다고 몇주정도 집에서 같이 지내기로 했습니다.ㅠ
현실이 감당 안되어서 헤어지기로 했지만 서로를 향한 긍휼하고 애틋한 마음은
어느덧 헤어지자던 말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다시 같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몸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다시 병원에 찾아갔습니다. 임신이라고 했습니다.
예정일이 2010년 11월 ㅠ.ㅠ 이번에도 예정일이 2010년 이라는 밀을 듣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이를 더이상 우리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처많은 우리를 서로 만나게 해주시고 의지하며 살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일마다
예배를 드렸고 아이아빠는 어렵다던 담배도 끈었습니다.
둘이 헤어질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고 아이도 생겼으니 양부모님을 찾아뵙고 말씀드리기로 했습니다.
양부모님이시지만 키워주신 분들이라 혹시 며느리가 조건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싫어하신다 해도
일년에 명절날만 잘 견디면 될 것이라고 우리 둘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산으로 인사를 가서 양부모님이 오시기전 집에 먼저 도착해서 둘러보았습니다. 불우한
가정일꺼라고 상상했었는데요. 단정한 집안 분위기에 가족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머니를 사진으로 뵈니 어딘가 낯이 익었습니다.@.@
아이아빠랑 많이 닮으셔서 생각했습니다. 같이 살면 부부도 닮는다더니
핏줄이 아니어도 닮나보다.~.~;;
한참 후에 양부모님이 오셨습니다. 아이아빠는 키가 작은데 양부모님들은 키와 등치가 무척 크셨습니다.
그런데 식사하시면서 말씀하시는 양아버님의 음색이 아이아빠랑 상당히 비슷했습니다.
(등골이 오싹해졌어요;;)마음을 다잡고 양어머님께 여쭈어보았어요.
"혹시 양부모님 맞으신가요?!!"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냐고 집에서 낳으셨다고 하셨어요.+.+;;
맥이 탁~ 풀렸어요. 백일 사진도 돌사진도 없고 생일도 정확히 기억을 못하셔서..
사춘기때 친부모가 아니라고 알고 방황했었다는 말씀까지는 전해드렸는데...
정작 그 뒤에 말씀드려야하는 저의 개인 상황을 차마 말씀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ㅜ.ㅜ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척 보아도 나이가 많아 보이니 자꾸 나이만 물어 보셨습니다.
어르신들도 왠지 이상하셨는지 제게는 더이상 묻지 않으시고 저는 안방에서 자게하시고
거실에서 아이아빠에게만 나이 차이가 많이나면 서로 결혼해서 힘들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ㅜ.ㅜ;;;;
아~ 이 일을 어쩌나 아무래도 조용히 올라와서 정말 헤어져야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를 생각하니 너무 우울하고 슬펐어요.ㅠ.ㅠ
올라오는내내 놀란가슴을 쓸어내리며 아이아빠와 나는 심각하게 대화를 나눴어요.
친부모같다는 말에 더 놀란 사람은 아이아빠 같았습니다.
오랜 세월 그 엄청난 오해로 이유없이 집에도 마음 못 붙이고 학교생활도 잘 못하고 밖으로만 돌면서
특히 어머님을 힘들게 했었다는데..ㅜ.ㅜ
이제 결혼까지 이렇게하면 더 큰 불효일 것 같고..그런데 아이문제도 있고 나에 대한 애정..
그 모든 것이 결정하기 어려운 일생일대의 난관처럼 느껴졌을 거예요.ㅜ.ㅜ
그런데 저는 너무 확고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결혼을 제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아이아빠가 어떤 결정을 한들 저는 이미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고 ㅜ.ㅜ
둘이 손을 붙잡고 통곡했습니다. 이제 정말 세상이 두쪽이 나도 헤어져야 되며 또 아이도 포기해야 되는 상황ㅠ.ㅠ
며칠을 고민하다가 수술 날짜를 잡고 그 전날 우리는 너무 우울하고 슬프게 이별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전혀 찾지도 않고 말이죠.
하나님의 손을 놓고 세상을 바라보니 두려움뿐이었습니다.ㅠ.ㅠ
우리끼리 일을 벌이고 있을때 그 날 저녁 갑자기 아이아빠 어머니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우리 보고 밖에 나가 하늘을 쳐다보라고 하셨어요. 달위에 별이 꼭 붙어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리고 그냥 끈으셨어요. 우리는 그날 그 달을 같이 보면서 아무 말 없이 아이도 낳고 결혼도 하기로 했습니다. ㅠ.ㅠ
겁에 질려 하나님도 까맣게 잊어버렸다가 모든 것이 하나님 섭리속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더 이상 우리마음대로 결정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야겠다고 둘은 생각을 모았어요.
그 뒤 기도를 하고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들어도 자꾸 정직하게 솔직하게 하라고 가르쳐주셨어요.
그런데 아이아빠가 아이를 위해서 또 결혼해서 잘 사는 모습보여주면 된다고
저에 대한 그 엄청난 상황을 숨기고 가자고 했어요.
지금까지 부모님께 너무 속만 썩여드려서 차마 나의 모든 상황을 말씀드리지 못하겠다구요.ㅠ.ㅠ
그렇다고 나랑 아기도 포기 못하겠다고 했어요. 나는 그럴 수 없고 특히 하나님 뜻도 아니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이아빠는 아버님은 고혈압에 어머님은 심장이 약하신대 절대 안된다고..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당못하실 부분만 말하지 말자고 했어요.
정말 나이만 말씀드렸는데도 정말 힘들어 하셨어요. 아이가 생겨서 어쩔 수 없이 받아주셨지만
지병이 있던 저는 흰머리가 빨리 나왔는데 그 한가닥 머리털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셨어요.
몇번의 기회에도 말을 못하고 남편 말을 선택해버렸어요.ㅠ
너무 두려웠거든요. 모든 사실을 알게되시면 남의 집 귀한 외동아들 신세 망쳤다고
저를 가만히 안 두실것 같았습니다. 나이 하나로도 이렇게 신경쓰시고 마음에 안들어 하시니ㅠ
하나님 말씀보다 남편의 뜻을 따르게되니 그렇게 사랑했던 둘의 관계도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 연단된 후 지금에야 깨달은 사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모든 관계도 바로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뒤 결혼생활은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엄청난 가시밭길이었습니다.ㅠ.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면서부터 예전에 하나님 만나기전과 같은
두려움, 고통, 갈등 다시 죽고싶은 나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몸이 아파도 시댁에 건강한 사람처럼 가야했고 아기를 키우면서도 시댁어른들께
부부가 연극을 하며 마음으로는 죄인의 심정으로 우울한 두려움속에 살아야 했습니다.ㅠ.ㅠ
엎친데 덮친다고 친정어머니께서 낙상하셔서 온몸 여기저기 뼈가 부러지시는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한살된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화복기간 내내 돌봐드려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가족들로부터 위로나 격려보다 쓴소리를 들으며 고통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 즈음 저는 주변모두를 다시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을 놓아버린 저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알고있습니다.ㅠ.ㅠ)
친정엄마를 요양원에 모셨는데 요양원에서 탈출하셔서 그때마다 경찰동원해서 찾고
다른 요양원을 다시 알아보고 그러길 4차례나 반복했습니다. 한번 행방불명 될때마다 애간장이 다 녹아내렸습니다.
어디서 험한 일 당하시는 것 아닌지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이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이사를 했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시댁에 내려가는 일이 제 몸에 벅차기 시작하면서 죽을 것 만큼 힘들었습니다.
이혼 얘기를 제가 먼저 꺼냈습니다. 아이아빠는 부모님께 그런 아픔을 안겨줄 수 없다고
말도 못꺼내게 했습니다. 본인도 부모님과 힘들어하는 저를 사이에 두고 너무도 힘들어했습니다.ㅠ.ㅠ
그래서 시댁과 떨어진 전라도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친정엄마의 요양원도 전라도로 옮겨드리고 친정엄마일이 한단락되니까 곧이어 미국에 있는 딸이
너무 힘들어서 한국에 들어와야 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숨돌릴 틈도 없이 딸이 한국에 들어오고 그 날부터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ㅠ.ㅠ 상처가 많았던 딸은 모든 분노를 내게 품어댔습니다.
그렇게 사랑이 많고 웃음이 많았던 아이가 딴 사람이 되어 저에게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같이 있는 시간마다 싸우게 되어서 자주 막내를 데리고 거리를 헤매다가 늦게 들어왔습니다.
간혹 교회에 예배중에 들어가 하염없이 울고 오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부턴가 지병이 있는 신장에 무리가 왔는지 누워있는데 아무느낌도 없이 소변이 흘러나왔습니다.
예전에 사람이 죽기전에 기력이 다하면 소변과 대변을 그냥 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꼭 그렇게 된 것 같은 몸상태였습니다.
딸아이도 같이 있는 것을 힘들어했고 일하는 곳에 있는
숙소로 간다고 했을때 차마 붙잡지 않았습니다.ㅜ.ㅜ
우울한 나날을 살 던 어느날 시내버스를 탔는데 어느 헐음한 옷을 입은 여자분이
해맑은 표정으로 버스에 올라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부러웠습니다.
"저분은 숨기는 것도 없이 자유하시겠다.
나는 감옥에 갇혀사는데..ㅠ.ㅠ"
집에와서 울며 하니님께 기도헸습니다.
" 하나님 너무 힘들어요.ㅠ.ㅠ 왜 이런 결혼을 허락하셨나요?!!ㅜ.ㅜ"
저는 잘 알고 있었어요. 제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순간 이런 삶을
스스로 걸어왔다는 것을요.ㅜㅜㅜㅜㅜ
기도중 이 말씀을 주셨어요.
"쉐마 이스라엘"
그 내용은 '네목숨을 다하고 네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였어요.
진심으로 그렇게 하나님만 사랑하며 살고 싶었어요.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목숨걸고 하나님께 올인하고 싶었습니다. 목숨 내놓고
다시 하나님의 임재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어요.
이렇게 말라죽어가거나 4년동안 숨겨왔던 내과거를 말씀드리고 맞아죽거나
결국 죽는다면 하나님께 목숨걸어 올인하고 그 품에서 죽고 싶었습니다.
고심고심한 끝에 새벽에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이 하나로도 맘에 들지 않으셔서 저를 맘고생 주셨는데
귀한 외동아들 신세 망쳤으니
저를 가만두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화기 넘어로 들리는 전화벨 소리..이윽고 어머니가 잠결에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목숨걸고 어떤 일을 해야 되는 상황이 얼마나될까요?!!
마치 아브라함이 100세때 얻은 이삭을 바칠때의 심정을 알겠더라구요.ㅠ.ㅠ
정말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숨기고 사는 것은 더 이상 못할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 저는 한번 결혼해서 이혼했던 사람이고요.
아이도 둘이나 있어요. 또 몸에 심각한 병이 있어요."
수화기 너머로 한동안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조금 뒤 어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아침에 전화 주시겠다고ㅠ.ㅠ
아침까지 잠을 잘 수도 그 무엇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곧장 여기로 올라오시겠지?!!
오셔서 나에게 험한 행동을 하신다고 한들 내가 피할 수 있을까?!! 나를 지켜줄 식구도 그 누구도 없는데..ㅜ.ㅜ
나이 하나로도 그렇게 미워하셨는데 그런 엄청난 사실을 4년내내 숨기고 왔으니
충격이 크시겠지?!! 귀하디귀한 외동아들이 늙은 며느리 데려와서 사는 것도 내키지 않았는데
친정이라고 아픈어머니 한분도 아들을 그렇게 애를 먹이더니..ㅠ.ㅠ 이게 왠 마른하늘에 날벼락인가?!!하시겠지
오전 10시가 넘도록 아무 연락도 주시하던 현관쪽도 인기척이 없었고
그때까지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ㅠ.ㅠ
이윽고 핸드폰이 울렸다.
어머니 전화번호였다.
오...ㅠ 하나님 올것이 왔네요.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첫마디...
"네가 복이 있는 아이같구나"
뜻밖의 말씀이셨다.@.@
어머니 말씀이 새벽에 내얘기를 들으면서 이상하게도 본인마음이 요동치 않으셨다고
그 말들이 실로 어마어마한 사실들이지만 전혀 심란하지도 않으시고 평안하셨다고..
내겐 홍해의 바다가 갈라지는 것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었다. 어머니가 모두를 위해서 참으시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으셨다.
정말 평온하신 말투로 나를 예전하고는 다르게 대해주셨다. 마음 편히 가지라고 해주시고 전화를 끈으셨다.***
꿈만 같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런 일이
정말 있을 수 있나?!! 어차피 이렇게 말하고 이런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처음 인사갔을때 하나님의 뜻대로 정직하게 실토했을것을..ㅠ
그럼 이런 고통속에서 살지 않았어도 되었을텐데..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이다. ㅠ.ㅠ
남편에게 말했다. 새벽에 어머니에게 모두 밝혔다고...ㅜ 남편은 날보고 자기마음 편하자고
건강하지 않으신 부모님을 놀라게 했다고 결혼생활중 가장 포악하게 화를 냈다.
나는 목숨 걸고 밝힌 것이라고ㅠ.ㅠ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남편을 바꿔달라고 하셨다.
남편과 통화를 한시간 정도하면서 남편의 분노가 사그러 드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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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억울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고아라고 했던 사람 사랑한 것..
아픈 사람 돌본것..도와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손 내민것
그러나... 결정적으로 하나님 뜻에는 순종을 안했다. 일주일에 서너번 전화하셔서 통화가 안되면
호통치시고 명절에 내려가면 친정도 없으니 일찍 갈 필요 없다고
시댁에 며칠 붙잡아 두시면 몸이 아파도 꼼짝없이 견디면서 보냈어야했는데요.;;;
내가 한것이라고는 하나님께 목숨 걸고 올인한 것 뿐인데 그 뒤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전화를 자주 하시지도 않고 필요할땐 남편에게 하시고(예전에는 남편일도 나에게만 전화하셨는데..)
명절에 시댁에서 2박하면 곧장 집으로 올려보내주셨다.
신장에 좋은 건강식품도 매번 챙겨주시고 한번은 전화통화하시며 맘아프게 해서 미안했다고 우셨다.ㅜ.ㅜ
항상 시부모님과 남편은 나의 적군이었는데 지금은 아군이자 든든한 지원군이 되셨다.
하나님의 일하심이시다. 그 외에도 하나님의 일하심이 너무너무 많으시다. 바다를 먹물 삼고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도 그 깊고 넓으신 하나님의 사랑은 다 적을 수 없을 것이다.
[마태복음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