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도 강서문학기행 작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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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남도의 비렁길, 그 아픈 역사
김 성 열
벼르고 벼르던 2023년 봄철, 강서 문학기행을 남쪽바다 여수 안도로 가기로 한 것은 행운 이었다. 거리가 멀어 당일치기는 어려워 무박 이일로 하려던 것을, 많은 토의 끝에 일박 이일로 정한 것은 집행부의 선견지명이 딱 들어 맞았다.
경기도 파주가 고향인 데다, 군대생활을 부산에서 했기 때문에 호남지방 나들이는 낯설기는 했지만, 팔십 줄 고령高齡의 가슴이 제법 설렌다. 새벽 6시에 출발한 관광버스는 두어 군데 나 되는 휴게소를 들려 여수항에 도착한 것은, 점심때가 거의 다 되어 서였다.
여객선 터미널 부근 맛집으로 소문난 그 음식점은 주로 이지방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해산물로 맛간 나게 시장기를 해결을 하고, 출항하는 배 시간 맞춰 우리를 싣고 온 버스와 함께 여객선에 올랐다.
그런데 서울서 출발할 때 청명했던 그 날씨는 오간데 없고, 우리들에게 텃세라도 부리는듯 이곳의 날씨는 해 무가 심술을 부려 댄다. 시야가 뿌연 한데 다가 이슬비까지 내리는 것이 죽이 척척 맞게도 훼방을 놓는다. 먼 한양에서 온 손님들이 되 게도 낯 설었나 보다. 아니면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여수 바다 용왕님께 알현을 드리지 못해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해 드렸나 보다.
왜 안 그러겠는 가.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남도의 용궁龍宮의 그 아름다운 비경과 품은 향기를 그리 쉽게 보여준다면, 어쩌면 그것은 아주 헤픈 여심女心처럼 보일 것 같아서 인지도 모른다. 남도의 그 화려한 보고寶庫를 첫날밤 새색시처럼, 옷고름을 서서히 풀어가며 한가지 씩, 한가지 씩 보여 줄 심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까, 우리 일행 모두는 목욕재계하고, 밤이 이슥하도록 용왕님께 아부는 아니지만 남도 여수 자랑에 일색이었다. 곡차잔을 기울이며 동백꽃의 얼 키고 설킨 이야기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여 놓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드디어 여수 앞바다 용왕님께서 우리들의 소원을 받아 드리셨나 보다.
어제의 짙은 해 무와 이슬비는 바람으로 깨끗하게 쓰러 버리고 눈이 시도록 새파란 하늘을 아낌없이 내어 주신다. 끝없이 펼쳐진 머 언 수평선, 바다에 떠 있는 그림 같은 섬, 섬, 섬들과 오고 가는 무역선들, 그리고 고기잡이 배들은 어부들을 싣고는 만선의 꿈을 안고 망망대해로 나간다.
뭍에 몽유 도원 이 있다면, 이곳은 동백과 후박나무, 그리고 유채꽃이 만발한 작은 섬들이 우주와 함께 평화가 공존하는 용궁이 있다. 뭍에 산들과 비교하기는 좀, 뭣하지만, 가는 곳 마다 노적 봉 같은 아담한 산 봉우리들은 마치 부풀어오르는 사춘기 소녀의 가슴처럼 앙증맞기도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경지까지 이른 듯 하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후박나무들이 밀림을 이루고, 가는 곳마다 피를 토하듯 연분홍 동백꽃들이 나뭇가지가 찢어질 듯 휘어져 피어 있는가 하면, 구비구비 가는 길에도 지천으로 피어 있다, 마치 왕실에나 깔려 이슨 직한 꽃으로 된 비단길과도 같아 뭍에서 온 나그네들의 발걸음을 망설이게 한다. 소월은 일찍, 진달래꽃길을 즈려 밟고 가라 했지만, 이곳의 동백길은 차마 그럴 수도 없어, 발길을 돌려 옆으로 피해 갈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랬을까? 동백꽃에는 우리가 모르는 깊고도 애 뜻한 사연들이 꼭 있을 것만 같다. 겨우내 그 추운 해풍海風을 견뎌내느라 찢겨진 아픈 앵혈鶯血들이 동백꽃에는 그대로 맺혀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까, 그 동백꽃들이 상 서럽게 만 보여 아무렇 게나 막 대할 수가 없다는 마음마저 든다.
그래, 분명 사연이 있다면, 이 땅을 수호하기 위하여 목숨 바친 숭고하고도 거룩한 선열들의 피 빛 같기도 하고, 자식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피멍 든 가슴일까, 또 모르지, 사춘기 소녀의 초경 같기도 하고, 첫날밤 여인의 앵혈鶯血은 안일까? 그리고 보니 또 하나 있다. 고기잡이를 나갔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타다 남은 가슴의 불꽃인지도 모른다.
남도의 섬 비렁 길을 걷다 보면 평탄하고 순탄하지 많은 안타. 뭍에서 오면서도 빈손으로 왔다고 삐친 새침데기 여인처럼 성깔을 있는 데로 부려 대는 것 같다. 부숴진 바위 조각들로 만들어진 둘레 길은 조금은 평탄하게 누워 있다 가도, 갑자기 가파른 경사길로 빨 딱 세워 놓고는, 짓 굳게도 먼 한양에서 찾아온 팔순 노구老軀를 헐떡이게 하곤 한다. 다음에 올때에는 해풍에 거칠어진 용왕님 용안龍顔에 필요한 무엇이라도 들고 와 인사라도 드려야 될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도 사바사바가 통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남도의 비렁길을 걷다 보면 이 곳에도 사람들이 살던 마을이 있었나 보다. 돌로 쌓은 축대와 바람막이 돌담들이 어느 것은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주인을 부르면 당장이라도 대답을 하며 뛰쳐나올 것만 같다. 연기가 피어 오르던 어느 집 굴뚝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이 한길도 넘게 뿌리를 밖 고 우주를 향하여 무어라고 외쳐 대는 것만 같다. 그러면 그들은 언제부터 이 길을 걸었을까?
그들은 쓰디쓴 단내를 입에 달고 살았을 지도 모른다. 하늘만큼이나 땅만큼이나 크고도 무거운 삶의 애환들, 그 인생의 짐보따리들을 잠시도 풀어 놓을 사이도 없었을 것이다. 어디 그 뿐일까? 피와 땀이 옹 고 된 삶의 그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비가오나 눈이 오나 얼마나 헐떡이며 이 길을 걸었을까.
아마도, 그들에게 이 길은 생계의 수단 이였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안전을 위한 보조의 줄이 있는 데도 이리 힘이 드는 데, 그때야 그것 마저도 없었을 터 라, 돌부리나 나무 등걸을 의지 했을 거라 생각을 하니 생각만해도 등골이 오싹하고 오금이 저리고도 남는다.
보기만해도 절로 현기증이 날정도로 깎아 지른 천 길 낭떠러지 벼랑 끝 아래로는 섬을 에워싼 해안선을 따라 굶 줄인 파도가, 무엇이던 삼킬 듯이 허연 이빨을 들어내고 게거품을 뿜어 대며 밤낮 가리지 않고 으르렁거린다. 아니, 무슨 괴물처럼 아가리를 벌이고 바위절벽까지도 통째로 삼키려 하고 있다.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발이라도 헛디디는 날엔 그대로 굴러 떨어져, 그들의 제물이 되고 야 말 것 같다. 그것은 어제도, 아니, 태고적부터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람들의 땀냄새가 묻어 있을 듯한 텃밭 우거진 잡초속에는 육지에서도 흔하게 보는 소리쟁이, 엉겅퀴와 쑥이며, 흐드러지게 피어 대는 유채꽃과 작약도 가끔 눈에 띄는 것이 그 시절, 그 사람들의 흔적과 애환으로 힘들어하는 가쁜 숨소리가 들릴 듯 하다.
사람들이 살았었다면 그러면 그들은 과연 무엇으로 생활을 하며 연명을 하였을까? 맨 바위덩어리라 화전도 일굴 수가 없다. 척 팍한 땅에서 생산되는 것 이라고는 기껏해야 도토리나 머루 다래다. 산짐승들도 별로 없다, 후박나무를 쪼아 대는 딱따구리 한,두 쌍, 우거진 동백숲에서 몸을 감추고 울어 대는 동박새들, 그리고 고라니 몇 마리가 고작이니 그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그렇다고 가는데 마다 깎아 지른 벼랑이라 물고기도 마음대로 잡을 수가 없고 미역도 딸 수 가없다. 보이는 것은 망망대해, 사면이 바다로 둘러쳐 저 갇혀 있는 작은 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오래전부터 왜구倭寇들의 칩임과 노략질, 한때, 민족상잔 이었던 여수, 순천 반란과 6,25전쟁, 설마 여기에서도 그 회오리가 요동을 쳤을 까? 아니면 그 회오리바람을 피하려고 섬으로 피신을 한 것일까? 그도 아니면 북에서 온 간첩들과 비밀 접선의 장소 였을까? 보고寶庫와 도 같은 남도의 이작은 섬에는 무슨 비밀이 그리도 많을까? 그 수많은 비밀들을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안일까?
어디 그 뿐인가 6.25전쟁이 한창 치열하던 1950년 8월 3일인가, 비행기 폭격으로 오백 여명이나 되는 죄 없는 피난민을 바다한가운데 수장 水葬을 시킨 것은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 가. 외풍으로 찢겨진 남도南島의 뼈저린 역사와, 앵혈鶯血같은 동백의 그 아픈 사연들을, 여수 관아官衙는 어느정도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2023년 4월30일